“설지연, 그게 무슨 말이야!” 은아는 이미 기분이 안 좋았었는데, 그녀가 현재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였기에 설씨 집안 내에서의 위치도 이전과 달랐다.이 순간, 은아는 화난 얼굴로 지연을 노려보며 상대의 죄를 묻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지연은 가볍게 웃으며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하찮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냐니? 언니, 잘 알고 있잖아!”“원래 그 처가살이 남편이 너무 쓰잘데기 없어서 그래도 너를 불쌍하게 여기고 종종 너 대신에 나서서 말했는데, 네가 그런 여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남편이 손도 못 잡아봤다며. 원래 믿기지가 않았는데 이제 믿겨지네! 네가 바깥에서 바람 피니까!”바람을 핀다고?!은아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찼다. 이 일은 매우 심각했다. 이건 그녀의 결백을 모욕하는 것이다!“설지연, 아침에 양치 안 했어? 어떻게 하는 말이 화장실이랑 같아? 남의 명예를 회손하는 건 범법인 거 몰라?” 은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지연이 몸을 일으키더니 떳떳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일을 저지를 엄두는 있고 인정하지는 못해? 그럼 언니가 말해봐, 그 쇼핑몰 프로젝트 문제는 해결했어?”“당연히 해결했지!” 은아가 말했다.“그래?” 지연이 조소를 지었다. “그럼 말해봐, 어떻게 해결했는데? 돈을 얼마나 썼어?”“돈을 안… 안 썼어…” 은아가 잠시 멍하게 있더니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하현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지만, 희정과 유아는 모두 하현이 조규천이랑 손을 잡고 은아를 속인 거라고 생각했다. 은아도 이 일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그러나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은아는 아침에 이미 공사장에 전화했다. 본래 공사 작업을 방해하던 자들이 이미 며칠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제 공사장의 각종 작업들도 정상으로 돌아갔다.“하하하!” 지연은 손을 허리에 걸치고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돈도 안 쓰고 해결했다고? 언니는 정말 능력
“설은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똑바로 말해!” 설 씨 어르신이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 테이블을 힘껏 내리치더니 소리쳤다.은아는 지연을 보다가 민혁을 보았다. 그녀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는데, 심지어 민혁이 일을 꾸몄을 확률이 아주 크다.설 씨 어르신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혹독했고 차가웠다.원래 그녀는 민혁에게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하현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참지 못하고 민혁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이 두 사람 중에 대체 누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가? 민혁의 태도를 봤을 때 민혁일 가능성이 더 큰 듯 싶은데?“할아버지, 문제를 이미 해결했습니다.” 은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열었다.“우리도 다 알아, 근데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해결했냐는 거지!” 지연은 더 기다릴 새도 없이 말했다.“어젯밤에 그 농촌 민박집을 떠나지 않았죠? 누나, 그 처가살이 남편이랑 어울려 지내지 않아도 상관없고, 밖에서 헛짓거리를 하는 것도 상관없어요. 근데 조금이라도 우리 설씨 집안의 체면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외간 남자를 찾을 거면 이혼 먼저 하면 안 돼요? 우리 설씨 집안의 이미지를 망가뜨려놓고 그 책임을 질 수 있어요?” 민혁이 큰소리를 쳤다.민혁이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듣자, 은아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보아하니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은 역시 민혁이었다. 은아 자신과 규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민혁은 생각한 것이다.“설민혁,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 증거 있어? 나는 어젯밤 8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어!” 은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엄마랑 유아 모두 집에 있었으니까,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봐.”“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누나 가족이니까 한통속이겠죠. 그 둘의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요?” 민혁이 반문했다.규천이 은아를 손에 넣은 이상, 그녀가 다치지 않고 그곳
"백범 씨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 설씨 집안은 항상 백범 씨를 존경해왔고, 감히 대접을 소홀히 할 엄두가 없습니다.” 설 씨 어르신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 상대방이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를 묻는 태도는 설 씨 어르신을 바짝 긴장하게 했다.오늘 자칫하다가 설씨 집안에서 어마무시한 양의 돈이 또 빠져나갈까 봐 걱정이다.“존경? 존경이라는 게 당신 설 씨들이 나를 속일 수 있게 하는 겁니까?” 백범은 코웃음을 치고 테이블 위에 있던 사람의 마대자루를 한손으로 휙 벗겼다.민혁이 그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보자 낯빛이 순식간에 극도로 창백해졌다. 이건 조규천 아닌가? 이래 봬도 길바닥 대장인데, 어떻게 백범이 그를 손에 넣게 된 걸까?백범은 규천을 발로 걷어차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감히 내 동생을 이용해서 하엔 그룹에 문제를 일으키게 해요? 당신들이 살기 싫다고 해도 나 변백범은 아직 살고 싶어요!”설 씨 어르신은 온몸을 살짝 떨며 말했다. “백범 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네가 말해!” 백범이 또 한 번 발로 찼다.규천은 어젯밤 내내 백범과 있었기에 이제 자신이 백범의 부하라는 걸 인정했다.그는 재빨리 말했다. “형님, 어르신, 최근 이틀 동안 SL 그룹 쇼핑몰 프로젝트를 방해한 사람은 접니다. 하지만 저도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설민혁이 3억 원을 주면서 저한테 시킨 겁니다!”“이상한 소리 하시네!” 민혁이 세차게 일어서서 규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남을 함부로 모독하지 마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몰라요!”규천이 고개를 들었고 그의 흉악한 얼굴은 증오로 가득 찼다. 설민혁 이 자식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런 결말을 맞이했을까? 백범의 배후 세력이 얼마나 강한 지는 모르지만, 이런 끝을 보게 되었는데도 자신의 배후 세력은 나서지도 않았으니 아주 많은 문제점들을 대변해주었다.살고 싶다면, 한때 거물이었던 자신도 백범의 부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설민혁, 너무했다. 모두 한 가족인데 어떻게 그런 비열한 짓을 할 수가 있어?”“은아가 힘들게 설씨 집안의 프로젝트를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은아한테 해를 끼칠 수가 있어?”“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 모든 게 다 네가 꾸민 짓이었다니!”“정말 실망이야!”아까 먼저 뛰쳐나와 은아를 헐뜯은 지연도 이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일에 그녀가 앞장섰는데, 만약 어르신이 나중에 책임을 묻는다면 그녀 역시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할아버지, 저는 이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저랑 아무 상관없어요!” 지연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 일은 민혁이 잠시 어떻게 되었던 거니까 화내지 마세요. 지금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제가 꼭 돌아가서 민혁이를 제대로 혼내겠습니다.” 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민혁을 대변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친아들이기에 동수는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정말 이것 때문에 설씨 집안에서 쫓겨나면 그에게도 좋은 날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설 씨 어르신의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이 일이 커지면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까?한편으로는 은아에게 해명을 해야 했다. 만약 해명조차 없다면,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민혁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내정된 후계자를 설씨 집안에서 내쫓을 수는 없지 않나? 어르신은 이 돈이 많이 드는 계집애 하나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이외에도 백범에게 해명을 해야 한다. 민혁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설씨 집안을 건드린 건 별 거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건 하엔 그룹의 투자 안건과 관련된 일이다. 잘못해서 백범이 미쳐 날뛰기라도 하면 설씨 집안은 그 뒷감당을 못할 것이다.그러나 설 씨 어르신의 마음 속에 민혁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고, 그가 보기에 그 세대의 아이 중에 민혁만이 쓸모있었다. 은아도 설 씨 집안에 큰 이익을 불러들였지만, 그녀는 돈이 많이 드는 여자였을 뿐이니 가업을 물려받게
이 순간, 민혁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그가 이번에 친 사고가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렇다 한들 그는 그저 반성하라는 목적으로 반년 동안 월급을 못 받을 뿐이었다.이 일을 겪고 나니, 설씨 집안 내에서 그의 위치는 여전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설은아 이 썩을 계집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림없지!’ 민혁이 마음 속으로 욕을 퍼부은 후, 비위를 맞추고 후회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잠시 못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그동안 꼭 진심으로 반성해서 나중에 돌아와 설씨 집안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그런 태도를 보이니 안심이 되는구나.” 설 씨 어르신이 덤덤하게 말했다.“이 일은 우리 설씨 집안의 수치이니, 퍼지기라도 하면 소식이 계속 와전되면서 우리 설씨 집안에게 좋을 게 없을 거야. 그러니 오늘 일은 모두 뱃속으로 집어삼켜야 해. 한마디라도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설 씨 어르신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은 다음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적나라한 편애였다. 일말의 숨김도 없는.은아는 깊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어금니를 깨질세라 악물었다. 어르신을 보고 있는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억울함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내비칠 수 없었다.설 씨 어르신이 뒷짐 진 채 회의실을 떠나고 나서야 나머지 사람들도 잇달아 환심을 사려는 미소를 지었다.“민혁아, 아까 우리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였어. 그런 상황에서 네 편을 들어주면 어르신께서 더 화나셨을 지도 몰라!”“맞아, 어르신은 그런 분이셔. 너를 도와줄수록 어르신께서 체면이 깎일까 봐 너를 봐주지 못했을 거야!”“절대 우리 탓하면 안 돼!”민혁은 웃어 보이더니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나서 그는 일어서서 득의양양한 얼굴로 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이번에 운이 좋았어서 잘 빠
이 말을 듣자, 하현은 이마를 살며시 찌푸리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민혁이가 그렇게 심각한 일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해서든 좌천시켜야죠. 최소한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한테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큰일에 반성만 하라니, 웃기지 않나요?”“게다가 단순히 어르신이 민혁이를 편애하는 정도로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은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아를 아예 눈에도 담지 않은 셈이잖아요…”“얼씨구? 심리분석가야? 아주 논리적으로 분석하시네? 문제는 소용이 있냐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희정이 따지면서 물었다. “오늘은 뭘 하러 나갔어? 왜 은아랑 같이 회사에 안 갔어? 그랬으면 최소한 은아를 대변할 수 있었잖아! 이 쓰레기야!”하현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희정의 성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안타까워하는 것은 설 씨 어르신이 은아를 잡아먹으려고 한 듯하다.어르신은 은아가 절대 설씨 집안과 얼굴을 붉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됐어요, 이 일은 그만 얘기해요.” 은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일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 맞다, 어젯밤에 당신을 오해했어…”“오해? 오해한 게 뭐가 있다고? 이 쓰레기가 음모를 꾸민 게 아니었다고 해도 이놈이 머저리여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안 그랬으면 설민혁 그 멍청이가 어딜 감히 널 때릴 생각을 했겠어!”희정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만약 자신의 사위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의 딸이 이런 곤경에 처했을까? 지금 설씨 집안 사람들이 그렇게나 은아를 괴롭히는데, 희정이 보기에 제일 큰 원인은 바로 하현이 너무 쓰잘데기 없었기 때문이다.시집을 잘 가는 것은 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엄마, 하현을 비난하지 말아요. 어제 저를 구해주기까지 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결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은아는 이 말을 하면서도 온몸에 소름
이튿날 아침, 은아가 서재에서 자고 있던 하현을 깨웠다. “하현, 할아버지 쪽에서 설씨 집안 사람들을 긴급 모집했어. 당신도 가야 해!”“알았어.”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 그토록 신신당부했으니, 슬기의 일처리 스타일대로라면 어젯밤에 설씨 집안 측은 아마 하엔 그룹의 경고장을 받았겠지?오전 9시, 설씨 집안 사람들은 빌라 홀에 속속이 모여들었다. 설 씨 어르신은 상석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웠다.어제 한밤중에 하엔 그룹이 보낸 경고장을 받았는데 그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설씨 집안 쪽에서 감히 사람을 구해 설씨 집안과 하엔의 투자 안건을 망친다면, 하엔은 설씨 집안이 이 틈을 타 하엔의 돈을 갖고 장난질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엔은 지금 설씨 집안의 해명을 원했고, 이전에 투자한 금액의 10배인 5000억 원의 배상을 요구했다.이번에 하엔 측에서 아무런 고위직 관리도 오지 않았지만, 이런 차가운 태도는 오히려 하엔의 그 신비로운 대표가 미쳐 날뛰었을 거라는 것을 대변해주었다.하지만 이것 또한 정상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2류 가문이 감히 자신의 돈을 갖고 장난 친다면 하엔 같은 대기업은 분명 미쳐 날뛸 것이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어본 뒤, 설 씨 어르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어제 내가 이미 말했지, 아무도 절대 그 일을 바깥에 알릴 수 없다고. 그런데 하엔 그룹 쪽에서 알게 돼서 지금 벌써 우리한테 경고장을 보냈어. 다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말을 하던 중, 설 씨 어르신은 경고장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았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경고장을 들고 가 다 읽어보더니 낯빛이 어두워졌다.경고장 내용은 간단했다. 설씨 집안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약 조건대로 5000억 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하지만 문제는, 설씨 집안이 어디서 이런 큰 돈을 구해오겠나?“할아버지, 분명 누군가 일부러 그 일을 퍼뜨린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맞아, 은아야. 이전에 우리 설씨 집안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네가 그래도 제일 능력 있으니까 네가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너는 쇼핑몰 프로젝트 담당자야.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지?”“은아야, 나는 이 의견이 좋은 것 같아. 네가 하엔 그룹에 가서 한번 가보지 않을래?”화살은 순식간에 은아에게로 향했다. 이 순간, 모두 은아가 설씨 집안 대신 이 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설씨 집안이 파산해서 그들이 편안히 지낼 날이 없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은아는 어이가 없었다. 어젯밤의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제일 중요한 것은, 어제 이 사람들은 민혁이야말로 설 씨 집안의 희망이라고 구구절절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은아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언니,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 쇼핑몰 프로젝트도 나름 언니 거야. 지금 언니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 설씨 집안이 전무후무한 위기에 닥쳤는데,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지?” 지연의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 어제의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오늘 어떻게든 은아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아주 귀찮아질 것이다.희정은 은아 옆에 앉아있었지만, 그녀도 약간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아를 대변할 마음이 없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정말 파산하기라도 하면, 희정 역시 편히 지낼 날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은아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희정이 유일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은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막대한 일은 은아의 책임이 될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아무리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 이 제안이 은아에게 아주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르신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은아야, 이번에 네가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면, 쇼핑몰 프로젝트의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