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민혁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그가 이번에 친 사고가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렇다 한들 그는 그저 반성하라는 목적으로 반년 동안 월급을 못 받을 뿐이었다.이 일을 겪고 나니, 설씨 집안 내에서 그의 위치는 여전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설은아 이 썩을 계집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림없지!’ 민혁이 마음 속으로 욕을 퍼부은 후, 비위를 맞추고 후회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잠시 못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그동안 꼭 진심으로 반성해서 나중에 돌아와 설씨 집안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그런 태도를 보이니 안심이 되는구나.” 설 씨 어르신이 덤덤하게 말했다.“이 일은 우리 설씨 집안의 수치이니, 퍼지기라도 하면 소식이 계속 와전되면서 우리 설씨 집안에게 좋을 게 없을 거야. 그러니 오늘 일은 모두 뱃속으로 집어삼켜야 해. 한마디라도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설 씨 어르신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은 다음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적나라한 편애였다. 일말의 숨김도 없는.은아는 깊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어금니를 깨질세라 악물었다. 어르신을 보고 있는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억울함이 잔뜩 쌓여 있었지만,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내비칠 수 없었다.설 씨 어르신이 뒷짐 진 채 회의실을 떠나고 나서야 나머지 사람들도 잇달아 환심을 사려는 미소를 지었다.“민혁아, 아까 우리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였어. 그런 상황에서 네 편을 들어주면 어르신께서 더 화나셨을 지도 몰라!”“맞아, 어르신은 그런 분이셔. 너를 도와줄수록 어르신께서 체면이 깎일까 봐 너를 봐주지 못했을 거야!”“절대 우리 탓하면 안 돼!”민혁은 웃어 보이더니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나서 그는 일어서서 득의양양한 얼굴로 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이번에 운이 좋았어서 잘 빠
이 말을 듣자, 하현은 이마를 살며시 찌푸리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민혁이가 그렇게 심각한 일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해서든 좌천시켜야죠. 최소한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한테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큰일에 반성만 하라니, 웃기지 않나요?”“게다가 단순히 어르신이 민혁이를 편애하는 정도로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은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아를 아예 눈에도 담지 않은 셈이잖아요…”“얼씨구? 심리분석가야? 아주 논리적으로 분석하시네? 문제는 소용이 있냐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희정이 따지면서 물었다. “오늘은 뭘 하러 나갔어? 왜 은아랑 같이 회사에 안 갔어? 그랬으면 최소한 은아를 대변할 수 있었잖아! 이 쓰레기야!”하현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희정의 성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안타까워하는 것은 설 씨 어르신이 은아를 잡아먹으려고 한 듯하다.어르신은 은아가 절대 설씨 집안과 얼굴을 붉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됐어요, 이 일은 그만 얘기해요.” 은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일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 맞다, 어젯밤에 당신을 오해했어…”“오해? 오해한 게 뭐가 있다고? 이 쓰레기가 음모를 꾸민 게 아니었다고 해도 이놈이 머저리여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안 그랬으면 설민혁 그 멍청이가 어딜 감히 널 때릴 생각을 했겠어!”희정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만약 자신의 사위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의 딸이 이런 곤경에 처했을까? 지금 설씨 집안 사람들이 그렇게나 은아를 괴롭히는데, 희정이 보기에 제일 큰 원인은 바로 하현이 너무 쓰잘데기 없었기 때문이다.시집을 잘 가는 것은 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엄마, 하현을 비난하지 말아요. 어제 저를 구해주기까지 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결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은아는 이 말을 하면서도 온몸에 소름
이튿날 아침, 은아가 서재에서 자고 있던 하현을 깨웠다. “하현, 할아버지 쪽에서 설씨 집안 사람들을 긴급 모집했어. 당신도 가야 해!”“알았어.”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 그토록 신신당부했으니, 슬기의 일처리 스타일대로라면 어젯밤에 설씨 집안 측은 아마 하엔 그룹의 경고장을 받았겠지?오전 9시, 설씨 집안 사람들은 빌라 홀에 속속이 모여들었다. 설 씨 어르신은 상석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웠다.어제 한밤중에 하엔 그룹이 보낸 경고장을 받았는데 그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설씨 집안 쪽에서 감히 사람을 구해 설씨 집안과 하엔의 투자 안건을 망친다면, 하엔은 설씨 집안이 이 틈을 타 하엔의 돈을 갖고 장난질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엔은 지금 설씨 집안의 해명을 원했고, 이전에 투자한 금액의 10배인 5000억 원의 배상을 요구했다.이번에 하엔 측에서 아무런 고위직 관리도 오지 않았지만, 이런 차가운 태도는 오히려 하엔의 그 신비로운 대표가 미쳐 날뛰었을 거라는 것을 대변해주었다.하지만 이것 또한 정상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2류 가문이 감히 자신의 돈을 갖고 장난 친다면 하엔 같은 대기업은 분명 미쳐 날뛸 것이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어본 뒤, 설 씨 어르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어제 내가 이미 말했지, 아무도 절대 그 일을 바깥에 알릴 수 없다고. 그런데 하엔 그룹 쪽에서 알게 돼서 지금 벌써 우리한테 경고장을 보냈어. 다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말을 하던 중, 설 씨 어르신은 경고장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았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경고장을 들고 가 다 읽어보더니 낯빛이 어두워졌다.경고장 내용은 간단했다. 설씨 집안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약 조건대로 5000억 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하지만 문제는, 설씨 집안이 어디서 이런 큰 돈을 구해오겠나?“할아버지, 분명 누군가 일부러 그 일을 퍼뜨린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맞아, 은아야. 이전에 우리 설씨 집안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네가 그래도 제일 능력 있으니까 네가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너는 쇼핑몰 프로젝트 담당자야.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지?”“은아야, 나는 이 의견이 좋은 것 같아. 네가 하엔 그룹에 가서 한번 가보지 않을래?”화살은 순식간에 은아에게로 향했다. 이 순간, 모두 은아가 설씨 집안 대신 이 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설씨 집안이 파산해서 그들이 편안히 지낼 날이 없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은아는 어이가 없었다. 어젯밤의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제일 중요한 것은, 어제 이 사람들은 민혁이야말로 설 씨 집안의 희망이라고 구구절절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은아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언니,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 쇼핑몰 프로젝트도 나름 언니 거야. 지금 언니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 설씨 집안이 전무후무한 위기에 닥쳤는데,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지?” 지연의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 어제의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오늘 어떻게든 은아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아주 귀찮아질 것이다.희정은 은아 옆에 앉아있었지만, 그녀도 약간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아를 대변할 마음이 없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정말 파산하기라도 하면, 희정 역시 편히 지낼 날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은아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희정이 유일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은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막대한 일은 은아의 책임이 될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아무리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 이 제안이 은아에게 아주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르신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은아야, 이번에 네가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면, 쇼핑몰 프로젝트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이럴 때 어르신의 기분을 좋게 할 말 몇 마디를 하는 게 마땅했다.은아는 얼굴이 사색이 되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민혁은 정말 뻔뻔했다. 애초에 그가 문제를 일으켰으면서 수습하지도 못하고 정의로운 척을 하니, 아주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럼 우리 설씨 집안의 후계자에게 부탁하죠. 이 사태를 수습해주세요.” 은아가 냉랭하게 말했다.“쳇, 내가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도 아닌데 참견할 일인가! 누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5000억 원의 빚은 전부 누나 거예요!” 민혁이 흉악한 얼굴로 말했다.하엔 그룹의 문제를 그가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빚을 은아에게 넘기는 것이다.이게 바로 큰일을 이루기 위해 조그마한 희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민혁은 조금 자신만만해졌으며 자신의 총명함에 감탄했다. “이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맞아요! 우리 설 씨 집안에만 빚이 없으면 되잖아요!”“차라리 쇼핑몰 프로젝트를 관두고 은아한테 돈이나 갚으라고 해요! 이게 바로 은아의 책임이에요!”“동의합니다! 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은아니까 은아가 당연히 책임져야죠!”이 순간, 거의 모든 설씨 집안 사람들의 눈앞이 반짝였다.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은아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쇼핑몰 프로젝트를 잃고 설씨 집안도 1류 가문이 될 기회를 잃을 것이다.하지만 설씨 집안이 파산하지만 않으면, 그들은 계속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조그마한 희생이 대수인가? 큰 문제라도 되나?설 씨 어르신도 눈빛이 반짝였다. 만약에 은아가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민혁이 말한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쨍그랑!”이때, 앉은 채로 입을 다물고만 있던 하현이 갑자기 재떨이를 만지작거리더니 세차게 내리쳤다.“악! 하현 이 빌어먹을…” 민혁이 얼굴을 부여잡으며 울먹거렸다. 이 데릴사위가 미친 거 아닌가? 난데없이 사람을 때리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쏘아보았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하현이 아무 말도 없이 민혁의 얼굴을 내리칠 줄 생각지도 못했다.민혁이 매우 재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데, 매번 피하지 못했다.그런데 하현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언제 물건을 휘두를지 어떻게 아나? 이 가족회의에 그를 부르면 안 됐다!“하현, 내가 빌어먹을 당신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요? 믿거나 말거나, 내가 사람을 불러서 당신을 없앨 수도 있어요!” 민혁이 코를 부여잡으며 펄쩍펄쩍 뛰었다.“조규천이라도 부르게?”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그래요, 규천 형님을 부르려고요. 나랑 규천 형님은 의형제예요. 형님이…” 우레와 같이 화를 내던 민혁은 다급하여 거의 말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규천 형님이라, 아주 친근하네.”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잊지 마, 설 씨 집안이 이런 문제에 부딪힌 건 너랑 네 규천 형님 때문이야. 네가 먼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지도 않고, 설씨 집안이 쇼핑몰 프로젝트를 버리게 하려고 하다니. 설마 하엔 그룹이 우리 설씨 집안에 심어놓은 스파이는 아니지?”“제기랄, 당신이야말로 스파이지! 당신 온 가족이 스파이야!” 민혁이 욕을 퍼부었다.“아니라면 제일 좋고.” 하현은 민혁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설 씨 어르신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르신, 사실 경고장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셨어요. 이 문제는 다른 해결 방안이 있어요. 꼭 돈으로 배상해야 할 필요 없습니다.”말을 하던 하현은 그의 손에 전해진 경고장을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내비쳤다.“무슨 방법이 있는데, 말해봐 봐! 돈만 쓸 필요 없다면 뭐든지 가능해.” 설 씨 어르신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흥분한 듯했다.사실 어르신도 쇼핑몰을 지을 그 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그도 민혁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은아에게로 집중되었고, 은아의 분노심이 활활 타고 있었다.한편, 하현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설 씨 어르신은 어떤 이유든 간에 쇼핑몰 사건 때문에 민혁을 처벌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하현은 알아차렸다.그의 눈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이렇게나 컸다.일이 이 지경까지 다다른 가운데, 하현은 적당한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아내가 처한 상황이 더 복잡해질지도 모른다.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하현은 은아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몸을 살짝 떨었다. 하현이 그녀에게 이 사태를 직접 해결하는데 동의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건을 걸어야 한다.은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자, 하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날 믿어.”은아는 그저께 일어난 일을 떠올리더니 그를 믿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 일어서서 말했다. “할아버지,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들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제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한 번 하엔 그룹에 갔다오겠습니다…”이 말이 들리자, 민혁은 연이어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설은아 네가 무슨 하엔 그룹을 창립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네가 간다고 소용이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한 방에 내쫓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비록 손실이 막대하겠지만, 향후에 은아가 자신의 후계자 신분을 빼앗으려 하는 것에 비하면, 민혁은 오히려 이 손실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네가 가겠다고?” 설 씨 어르신이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지만 여전히 걱정했다. 이번 일이 아주 심각했기 때문이다.“할아버지도 아실 거예요. 정이라는 패를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시도를 해볼 수는 있으나, 제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는 장담 못합니다.” 은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쳇, 그런 말을 누가 못해요? 해
솔직히 말하면, 설 씨 어르신도 회사의 재무를 은아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설씨 집안 내에서 은아의 위치는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올라갈 것이고, 민혁의 위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선택사항이 없는 듯했다. 은아가 선뜻 나서서 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설씨 집안은 파산의 변두리에 놓일 것이다.“할아버지, 절대 누나를 믿지 마세요! 어떻게 누나가 이런 큰일을 해결하겠어요? 하엔 그룹은 경고장까지 보내왔다고요! 저는 이 여자가 애초에 하엔 그룹과 손잡고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설씨 집안의 권력을 빼앗아가려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민혁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얼마 전에 은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지금 설 씨 어르신이 또 은아의 요구사항을 들어줄까 봐 겁이 났다.은아가 재무를 관리하게 된다면, 민혁은 설씨 집안에서 일어서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후계자 자리도 불안정해질 것이다.“언니, 그런 꼼수로 감히 할아버지 앞에서 장난을 쳐? 정말 할아버지가 그렇게 잘 속을 것 같아?” 지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제법이네. SL 그룹의 재무를 관리하고 싶으면 적어도 이건 말해야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건데?” 동수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아가 재무 관리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은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해요. 제가 슬기한테 전화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요…”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놀랍게도 하현이 말하고 있었다.“하현, 당신이 대화에 낄 자리가 있나? 슬기 씨랑 동창이라고 이런 큰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5000억이 뭔지는 알아? 50만 원도 얼마인지 모르지? 맨날 내 앞에서 허세나 부리면서, 벼락 맞을까 봐 무섭지 않아?!” 민혁이 하현을 노려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5000억은 하엔 그룹한테도 작은 숫자가 아니야. 슬기 씨가 대표님의 비서이긴 하지만, 이런 중대한 사항의 결정권은 없을 걸?”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