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언니는 정말 끝이야. 그 뭣도 아닌 능력으로 어떻게 하엔 그룹을 상대하겠어? 내가 알아본 적이 있는데, 하엔 그룹의 신임 대표는 겸손하고 신비로워서 아무도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대.”설씨 집안 가족회의가 끝난 후, 지연과 민혁 두 사람은 같이 그곳을 떠났다. 지연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원래라면 누나는 분명 이 일을 해결하지 못했을 거야. 근데 문제는, 이전에 몇 번씩이나 투자 안건을 처리한 건 누나야. 무슨 변수라도 생겨서 누나가 SL 그룹의 재정권을 갖게 될까 봐 걱정되네. 그럼 우리 둘은 앞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거야.” 민혁이 매우 걱정했다.“걱정할 게 뭐가 있어? 하엔 그룹 대표랑 잤다면 모를까. 근데 머저리 남편을 둔 꼴에 부잣집 도련님이 그렇게 하길 원하겠어? 언니를 만지는 것도 재수 없어!” 지연은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이미 민혁과 한배에 탔다. 만약 은아가 권력을 쥐게 된다면, 그녀의 하루하루 역시 순탄치 못할 것이다.“그렇길 바라야지.” 민혁이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의 눈빛은 매우 음험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게 되면, 그는 다른 준비를 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한편, 은아의 포르쉐 안.은아는 살짝 얼떨떨했다. 아까 하현이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말하라고 하고 조건도 걸으라고 했다. 조금 전에 그녀는 매우 강하게 대응했지만, 그곳에서 걸어 나오니 조금 어질어질했다.“하현, 슬기 씨한테 전화 한 통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야?” 차 시동을 건 후, 은아는 불안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뭐? 네가 은아한테 제안을 수락하라고 꼬드긴 거야? 이 불운덩어리야, 은아가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5000억 원의 빚을 감당해야 해! 그게 무슨 개념인지 알아? 너를 판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은 못 받아!” 희정은 원래 은아에게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비밀병기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하현이 시킨 거라니? 지금 그녀는 온몸에
잠시 후, 은아는 심호흡을 했다. “이 비서님께서 말씀하신 상황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주시길 바라요. 저희 설씨 집안은 절대 고의적으로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닙니다. 이 쇼핑몰 프로젝트는 저희 설씨 집안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슬기는 잠깐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와서 이러한 부탁을 했다면, 저는 지금 이미 경호원을 불러서 그 사람을 끌어냈을 겁니다.”“그렇지만 제가 오기 전에 대표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전에 받은 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이 점을 봐서라도 설은아 씨의 체면을 세워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설씨 집안이 한 수 배워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다음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는 아마 체면을 세워주지 않으실 겁니다.”일이 이렇게 풀린다고?대표님께서 체면을 세워주신다고?하현이 이전에 대충 언급한 적이 있었고, 은아는 그를 믿었지만 내심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엔 그룹 측에서 정말 때문에 이 일을 무마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이 비서님,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은아가 말했다.“당연히 아닙니다. 이건 대표님께서 분부하신 거라 제가 감히 뭐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후에 제가 사람을 보내서 경고장을 회수하겠습니다. 설은아 씨는 안심하시고 쇼핑몰 프로젝트 일을 보세요. 저희 회사는 쇼핑몰이 다 지어질 날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슬기가 웃으며 말했다.슬기는 지금 매우 어지러웠고, 뭔가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래 봬도 5000억 원의 배상금이다. 이렇게 막대한 일을 그냥 이렇게 마무리한다고? 어떻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이 비서님, 그 가 정말 이렇게 큰 값어치를 하나요?” 은아가 소심하게 물었다.“물론이죠…” 슬기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래 봬도 세기의 명화입니다. 대표님께서는 그런 보물을 잘 간직하고 다른 나라로 유실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다행으로
이런 중요한 순간에, 지연은 갑자기 당황한 얼굴로 민혁의 사무실로 달려왔다. 그녀의 화장이 다 번질 정도였다.“설민혁, 큰일 났어! 소식 들었어?!”“귀신이라도 봤나 봐, 뭐가 그리 급해?” 민혁이 무심하게 말했다.“내가 아까 법무부에 갔다 왔는데, 하엔 그룹 측에서 이미 그 경고장을 회수했대!” 지연을 충격 받은 듯했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이런 큰일이 일어난 건가?민혁은 이 말을 듣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니야? 하엔 그룹 같이 큰 회사가 어떻게 이랬다저랬다 해? 그저께 보낸 경고장을 오늘 아침 일찍 회수했다고? 농담처럼 들리지 않아?”“진짜야, 지금 회사에서 모두 이 얘기를 하고 있어. 게다가 그 변호사가 굉장히 공손하게 굴었다던데, 이전에 거만한 태도랑은 완전 딴판이야!” 지연이 겁먹었다.“뭐?” 민혁이 흥분하여 의자 위에서 떨어졌다. 그는 허둥대며 일어서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럴 리가? 내가 어젯밤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하엔 그룹 간부 쪽의 소식을 알아봤는데, 하엔 그룹 고위층이 다 화났다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오늘 경고장을 회수해? 말이 안 되잖아!”“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법무부 쪽에서 틀릴 리가 없어.” 지연은 어제 은아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경고장이 회수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짜이겠나?민혁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은아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또 이렇게 변수가 발생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만약 정말 은아가 회사의 재무를 관리하게 된다면, 민혁에게, 심지어 모든 설씨 집안 사람들에게 이는 악몽이 될 것이다.“가자, 법무부에 가서 그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보자!” 민혁이 말을 끝마치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끊은 뒤, 민혁의 낯빛은 하수구 마냥 새까맣게 변했다.지연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왜?”“할아버지가 모두 회의실로 모여서 회의를 하재.” 민혁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
설 씨 어르신은 덤덤하게 웃었다. 그는 민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말을 계속했다. “은아는 우리 설씨 집안의 기둥감이야.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와 재무팀장 두 직위를 겸임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 은아에게 짊어진 부담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짐을 덜어줄 사람을 찾기로 했어.”“민혁아,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 자리는 역시 네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구나. 오늘부터 너는 우리 SL 그룹의 부회장이다. 온 힘을 다해 은아가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알겠지?”이 말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빛을 교환하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 씨 어르신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민혁을 승진시킬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문제는, 민혁이 최근에 눈에 띄는 업적을 달성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설 씨 집안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설 씨 집안은 민혁 때문에 여러 번 파산 위기에 처했는데, 그러고도 부회장이 될 수가 있나?보아하니, 설 씨 어르신은 민혁을 승진시키려고 작정했나 보다.왜냐하면 민혁이 은아를 도와주라고 했지만, 사실상 은아를 감시하고 제한하는 거였다. 재무이든 쇼핑몰 프로젝트이든, 나중에 서로 싸울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다.은아는 살며시 어금니를 깨물었다.설 씨 어르신의 말은 너무 달콤했고,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어르신의 표정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진실은? 그는 여전히 은아 자신을 믿지 못했고, 회사의 권력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까 봐 두려워했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 민혁이 회장이 될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했다.자신이 설씨 집안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 간에, 설 씨 어르신의 눈에는 자신이 민혁보다도 못했다!설씨 집안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미소를 드러냈다.그들은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이게 바로 교묘하게 구실을 만들어 설씨 집안 내에서 은아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드
“할아버지가 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핑계로 민혁한테 SL 그룹 부회장 자리를 넘겨줬어. 게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민혁이랑 상의하래.” 은아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그랬구나. 어르신이 당신이 설씨 집안에서 권력을 쥐게 하지 못하려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지는 생각도 못했어.” 하현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근데 이전에 분명히 말했었어. 내가 이번 일을 해결하기만 한다면, 설씨 집안 쇼핑몰 프로젝트와 재정권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은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아주 간단해. 어르신은 당신이 SL 그룹에서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져서 민혁이의 지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어르신이 보기에는 설민혁만이 설 씨 집안의 후계자니까!” 하현이 말했다.“무슨 근거로? 내가 손 놓고 있을까 봐 걱정되지 않으신가?” 은아가 불만 가득한 얼굴을 내비쳤다.“내가 손 놓고만 있다면, 하엔 그룹 측에서 또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까? 내가 설씨 집안의 일을 신경 쓰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얼마나 더 버틸까?”“하엔 그룹이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어. 근데 이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야. 핵심은 바로 당신이 설씨 집안을 떠날 것인가? 설씨 집안을 버릴 것인가?” 하현이 물었다.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족이었다. 그녀는 그저 성과를 내고 싶어서 겨우겨우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포기하겠다고 정말 포기하나?“이것 봐, 이게 바로 어르신이 당신을 잡아먹을 엄두가 있는 이유야. 어르신은 알거든, 당신이 절대 설씨 집안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설씨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반드시 해결 방안을 찾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끔 은아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속이 여리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하현이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특징이었다.은아가 마지막에 무슨 결정을 하든 하현은 간섭하지 않을
그도 그저 제3자일뿐이었기에, 중요한 순간에만 약간의 주의를 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설 씨 어르신이 결정한 일은 일반인이 함부로 건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게다가 어르신이 보기에 은아는 헛짓거리를 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그녀도 설씨 집안이 있어야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설씨 집안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그녀에게도 좋은 날이 거의 없을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사실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오히려 은아의 공이 점점 더 커지는 거야…”“은아도 여자인데, 계집애인데, 만약 정말 공이 너무 커서 곧바로 회장이라도 된다면, 대체 우리 설씨 집안은 앞으로 설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 아니면 하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설씨 집안은 절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번에 비서는 진심으로 동의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회장님의 비서인 자신도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서울 보행자 거리의 한 고급 카페 안.하현과 은아는 같이 앉아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세리와 소은 두 사람이 있었다.카페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셋이 같이 앉아있으니, 많은 남자의 시선이 이리로 집중되었다.반면,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거지꼴의 하현은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하지만 하현은 눈을 내리깐 채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었는데, 세리가 그의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고 있는 다리가 마치 죽은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흥!”자신이 하현을 도발해서 그가 망신당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자, 세리는 참지 못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지난번 경매 행사 사건 이후로, 세리는 하현이 뼛속까지 미웠다. 그 일 때문에 진우는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오늘 세리가 이렇게 섹시하게 옷을 입은 것도 다 하현이 망신당하게 하려고 그런 건데, 이 남자는 자신을 몇 번 더
“당연하지, 내 남편인데.” 은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근데 전에는 안 데리고 갔잖아?” 소은이 호기심에 물었다.“신경 꺼, 너도 능력 있으면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든가?”소은이 쳇하고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내가 뭐라 하려는 게 아니라, 하현 이 머저리를 데리고 가면 나중에 네가 망신만 당할 뿐이야.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누구?’ 은아는 어리둥절했다.“주민영! 잊었어? 대학 다닐 때, 걔가 좋아하던 남자들이 다 너를 짝사랑해서 개가 고백하는 족족 실패했잖아. 그래서 너를 죽이고 싶어 안달 났잖아.”“듣기로는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 가서 나름 잘 살고 있던 것 같던데. 게다가 아주 천사처럼 성형을 했다고 하더라. 이번에 동창회 때문에 귀국한다던데, 80%는 널 잡으려고 오는 거야! 은아야, 조심 좀 해!” 소은이 거듭 충고했다.“주민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도 운이 꽤 나쁘지 않아. 인터넷에서 사진을 도용해서 재벌 2세랑 랜선 연애를 했다고 하던데, 그 재벌 2세가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돈을 보내줬대.”“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 둘이 만나기 전에 주민영이 단번에 그 돈을 들고 가서 성형을 했는데, 둘이 만난 이후에는 남편을 꽉 붙잡고 있대. 들은 바로는 요즘 아주 잘 지내고 있다더라. 맨날 동기들 단톡방에 가방 자랑을 하지 않나, 빌라랑 스포츠카 자랑을 하지 않나.”세리도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녀는 민영을 좋게 보지는 않았고 성형한 얼굴을 깔봤지만, 문제는 민영이 일반인이 아예 비비지도 못할 정도로 출세했다는 것이다.“결혼을 했어?” 은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이것밖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결혼했어. 우리 셋도 결혼식에 초대했었잖아, 우리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잊었어?” 소은이 말했다.“에휴…” 소은이 또 한숨을 내쉬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말했다. “이봐요 머저리, 당신이 그래도 남자라면 이번에 은아 따라 동창회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은아
“이건 당신 사촌오빠가 선물해준 거예요.”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한결 오빠가요? 그럴 리가요? 이 차는 최소 3억 원은 하는데, 당신한테 선물해줄 리가 있나요?” 소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하현 이 자식은 허세 부리는 걸 너무 좋아한다. 어디서 렌트해온 지도 모르는 차를 갖고 뻔뻔하게 다른 사람이 선물해줬다고 하다니.동창회에 갈 때 고급 차량을 렌트해서 잘난 척 좀 하는 건 정상이었지만, 이 자식은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나? 그렇게 가난해 보이는 옷을 입었으면서, 이따가 다른 사람한테 이 차가 자기 거라고 말한다고 해도 누가 믿겠나?하현은 운전하면서 설명하기 귀찮았다. 자신은 곧이곧대로 말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포르쉐는 교외에 있는 온천 리조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이 온천 리조트는 서울에서도 매우 유명했고, 피로를 풀어주며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도 이곳에 방을 잡으러 온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온천에 몸을 담그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곳에 와서 온천 요리 한번 먹는 데도 오래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대기 번호조차 받지 못했다.“소은아, 이 온천 리조트의 VIP 레스토랑은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던데, 누가 오늘 그렇게 대단하게 우리 동창회를 여기로 준비했대?” 은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은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주민영의 남자. 듣기로는 주민영 남편이 이 업계에 지분이 좀 있다던데, 그 회장이 그 남자 외삼촌이야.”은아는 깜짝 놀랐다. 민영의 남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 이 온천 리조트의 주식도 가지고 있고, 그는 아주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온천 리조트 사장은 아마 백재욱이겠죠? 서울 백씨 집안 사람. 이것도 백씨 집안의 재산이니.” 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어쭈, 이게 백 씨 집안 재산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럼 백재욱이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
곧이어 사복을 입은 여자 경찰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와 여자의 온몸을 뒤졌다.잠시 후 여자 경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여자의 몸을 수색했지만 지갑과 핸드폰 외에는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고 이상한 단서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여자 경찰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또 한 번 빠르게 수색했다.이번엔 여자의 발바닥까지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여자 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년의 사복 경찰을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중년의 경찰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일등석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다송, 양효리. 당신들 둘 다 죽고 싶어?”“이 여자한테서 C4 총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어?”“당신들 말 때문에 귀한 일등석 손님들한테 피해를 줬잖아? 이제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양효리와 이다송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그늘진 그녀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보통 이런 일을 발견하면 공을 세운 만큼 큰 보상을 받게 된다.그것이 적어도 수천만 원이나 된다.하지만 지금은?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녀들은 웃음거리가 되었다.경찰서에서든 회사에서든 피해를 일으킨 것에 배상하기 위해 본보기로 두 사람을 해고할 것이다.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떠넘기는 셈이다.“수사대장님, 죄송합니다. 저희도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승객 한 분이 이 여자한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저희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이다송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중년 경찰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승객이 그따위 소리를 해? 누구야?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좀 가 줘야겠어!”“그 사람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책임을 져야지!”“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말을 하면서 중년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여자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고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제대로 처리하겠다고요?”여자는
하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나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냄새를 맡았다구요!”“냄새요?”“당신이 무슨 개코인 줄 아세요?”“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구요?!”두 스튜어디스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가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분명 여기저기서 허세나 부리며 날뛰는 미친놈이라 생각한 듯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어서 지금 바로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 당신을 잡아가라고 할 겁니다!”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거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이 안입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라구요!”“당신이 아무리 일등석 고객이라도 소용없어요!”스튜어디스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당신 코가 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니 그럼 이것도 좀 맡아 보세요? 내가 무슨 향수를 썼는지 알아맞춰 보시라구요!”하현은 눈앞에 곱게 화장한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에서 그녀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로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양효리, 당신은 어젯밤에 우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샤넬 5호 향수를 뿌렸어요. 그런데 평소 근검절약하는 습성 때문에 아끼고 아끼던 향수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려서 지금은 거의 베이스 향만 남았군요.”“그리고 이다송, 당신은 어젯밤에 두 명의 남자랑 함께 보냈군요. 한 명은 값싼 향수를 쓰는 한량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좀 신분이 있는 남자였을 겁니다. 에르메스 향수를 쓴 것 보니...”“두 가지 향수가 당신 몸에 섞여 있어요. 아마도 어젯밤 당신은 너무 피곤해서 샤워할 틈도 없이 바로 오늘 아침 출근한 것이 틀림없어요...”하현의 말을 듣고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이 갑자기 추위에 얼어붙은 고목처럼 얼어붙었다.이다송은 하현이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아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바로 기장을 찾아 허둥지둥 뒷걸음질쳤다.두 사람이
이 모습을 본 일등석의 스튜어디스가 열정적으로 다가와 그녀를 도와주었다.여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자리에 앉았다.주변 승객들은 힐끔 쳐다볼 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은 살짝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깁스를 한 그녀의 손에 자꾸 시선이 갔던 것이다.뭔가 미심쩍은 냄새가 진동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현은 수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러온 사람이라 이런 낌새에 기가 막히게 촉각이 발달해 있었다.순간 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곧장 몸을 돌려 일등석을 떠났고 힐끔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 여자는 하현의 움직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순간 하현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이때 아리따운 용모의 스튜어디스가 하현에게 다가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손님,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죄송하지만 자리로 돌아가 앉아 주시겠어요?”또 다른 스튜어디스가 거들며 나섰다.“화장실에 가실 거면 이륙 후에 이용해 주십시오.”하현이 일등석에서 나왔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들은 불만이 있어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했다.만약 다른 손님이 비행기 이륙에 방해를 했다면 아마 호되게 창피를 당했을 것이다.하현은 앞으로 나와 일등석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장님께 연락 좀 해 주십시오. 제가 기장님을 만나야 합니다.”하현의 표정을 본 스튜어디스는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손님, 아무리 일등석 손님이어도 마음대로 기장님을 볼 수 있는 없습니다.”“비행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따로 등록을 해 드릴 수는 있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스튜어디스는 하현을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소위 인플루언서쯤으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기장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