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핑계로 민혁한테 SL 그룹 부회장 자리를 넘겨줬어. 게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민혁이랑 상의하래.” 은아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그랬구나. 어르신이 당신이 설씨 집안에서 권력을 쥐게 하지 못하려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지는 생각도 못했어.” 하현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근데 이전에 분명히 말했었어. 내가 이번 일을 해결하기만 한다면, 설씨 집안 쇼핑몰 프로젝트와 재정권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은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아주 간단해. 어르신은 당신이 SL 그룹에서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져서 민혁이의 지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어르신이 보기에는 설민혁만이 설 씨 집안의 후계자니까!” 하현이 말했다.“무슨 근거로? 내가 손 놓고 있을까 봐 걱정되지 않으신가?” 은아가 불만 가득한 얼굴을 내비쳤다.“내가 손 놓고만 있다면, 하엔 그룹 측에서 또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까? 내가 설씨 집안의 일을 신경 쓰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얼마나 더 버틸까?”“하엔 그룹이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어. 근데 이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야. 핵심은 바로 당신이 설씨 집안을 떠날 것인가? 설씨 집안을 버릴 것인가?” 하현이 물었다.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족이었다. 그녀는 그저 성과를 내고 싶어서 겨우겨우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포기하겠다고 정말 포기하나?“이것 봐, 이게 바로 어르신이 당신을 잡아먹을 엄두가 있는 이유야. 어르신은 알거든, 당신이 절대 설씨 집안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설씨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반드시 해결 방안을 찾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끔 은아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속이 여리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하현이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특징이었다.은아가 마지막에 무슨 결정을 하든 하현은 간섭하지 않을
그도 그저 제3자일뿐이었기에, 중요한 순간에만 약간의 주의를 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설 씨 어르신이 결정한 일은 일반인이 함부로 건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게다가 어르신이 보기에 은아는 헛짓거리를 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그녀도 설씨 집안이 있어야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설씨 집안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그녀에게도 좋은 날이 거의 없을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사실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오히려 은아의 공이 점점 더 커지는 거야…”“은아도 여자인데, 계집애인데, 만약 정말 공이 너무 커서 곧바로 회장이라도 된다면, 대체 우리 설씨 집안은 앞으로 설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 아니면 하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설씨 집안은 절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번에 비서는 진심으로 동의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회장님의 비서인 자신도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서울 보행자 거리의 한 고급 카페 안.하현과 은아는 같이 앉아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세리와 소은 두 사람이 있었다.카페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셋이 같이 앉아있으니, 많은 남자의 시선이 이리로 집중되었다.반면,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거지꼴의 하현은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하지만 하현은 눈을 내리깐 채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었는데, 세리가 그의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고 있는 다리가 마치 죽은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흥!”자신이 하현을 도발해서 그가 망신당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자, 세리는 참지 못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지난번 경매 행사 사건 이후로, 세리는 하현이 뼛속까지 미웠다. 그 일 때문에 진우는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오늘 세리가 이렇게 섹시하게 옷을 입은 것도 다 하현이 망신당하게 하려고 그런 건데, 이 남자는 자신을 몇 번 더
“당연하지, 내 남편인데.” 은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근데 전에는 안 데리고 갔잖아?” 소은이 호기심에 물었다.“신경 꺼, 너도 능력 있으면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든가?”소은이 쳇하고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내가 뭐라 하려는 게 아니라, 하현 이 머저리를 데리고 가면 나중에 네가 망신만 당할 뿐이야.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누구?’ 은아는 어리둥절했다.“주민영! 잊었어? 대학 다닐 때, 걔가 좋아하던 남자들이 다 너를 짝사랑해서 개가 고백하는 족족 실패했잖아. 그래서 너를 죽이고 싶어 안달 났잖아.”“듣기로는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 가서 나름 잘 살고 있던 것 같던데. 게다가 아주 천사처럼 성형을 했다고 하더라. 이번에 동창회 때문에 귀국한다던데, 80%는 널 잡으려고 오는 거야! 은아야, 조심 좀 해!” 소은이 거듭 충고했다.“주민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도 운이 꽤 나쁘지 않아. 인터넷에서 사진을 도용해서 재벌 2세랑 랜선 연애를 했다고 하던데, 그 재벌 2세가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돈을 보내줬대.”“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 둘이 만나기 전에 주민영이 단번에 그 돈을 들고 가서 성형을 했는데, 둘이 만난 이후에는 남편을 꽉 붙잡고 있대. 들은 바로는 요즘 아주 잘 지내고 있다더라. 맨날 동기들 단톡방에 가방 자랑을 하지 않나, 빌라랑 스포츠카 자랑을 하지 않나.”세리도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녀는 민영을 좋게 보지는 않았고 성형한 얼굴을 깔봤지만, 문제는 민영이 일반인이 아예 비비지도 못할 정도로 출세했다는 것이다.“결혼을 했어?” 은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이것밖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결혼했어. 우리 셋도 결혼식에 초대했었잖아, 우리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잊었어?” 소은이 말했다.“에휴…” 소은이 또 한숨을 내쉬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말했다. “이봐요 머저리, 당신이 그래도 남자라면 이번에 은아 따라 동창회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은아
“이건 당신 사촌오빠가 선물해준 거예요.”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한결 오빠가요? 그럴 리가요? 이 차는 최소 3억 원은 하는데, 당신한테 선물해줄 리가 있나요?” 소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하현 이 자식은 허세 부리는 걸 너무 좋아한다. 어디서 렌트해온 지도 모르는 차를 갖고 뻔뻔하게 다른 사람이 선물해줬다고 하다니.동창회에 갈 때 고급 차량을 렌트해서 잘난 척 좀 하는 건 정상이었지만, 이 자식은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나? 그렇게 가난해 보이는 옷을 입었으면서, 이따가 다른 사람한테 이 차가 자기 거라고 말한다고 해도 누가 믿겠나?하현은 운전하면서 설명하기 귀찮았다. 자신은 곧이곧대로 말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포르쉐는 교외에 있는 온천 리조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이 온천 리조트는 서울에서도 매우 유명했고, 피로를 풀어주며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도 이곳에 방을 잡으러 온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온천에 몸을 담그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곳에 와서 온천 요리 한번 먹는 데도 오래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대기 번호조차 받지 못했다.“소은아, 이 온천 리조트의 VIP 레스토랑은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던데, 누가 오늘 그렇게 대단하게 우리 동창회를 여기로 준비했대?” 은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은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주민영의 남자. 듣기로는 주민영 남편이 이 업계에 지분이 좀 있다던데, 그 회장이 그 남자 외삼촌이야.”은아는 깜짝 놀랐다. 민영의 남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 이 온천 리조트의 주식도 가지고 있고, 그는 아주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온천 리조트 사장은 아마 백재욱이겠죠? 서울 백씨 집안 사람. 이것도 백씨 집안의 재산이니.” 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어쭈, 이게 백 씨 집안 재산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럼 백재욱이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우와! 포르쉐!”동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포르쉐 브랜드 자체의 수준이 페라리만큼 높지는 않지만 인지도는 더 높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눈에 포르쉐와 페라리 둘 다 급이 달랐다.민영은 순간 기분이 안 좋아져 무심하게 말했다. “포르쉐일 뿐이잖아. 그래봤자 몇 억 정도 밖에 안 할 텐데, 우리 페라리랑 비교도 안 되지. 페라리는 적어도 9억 가까이 돼!”“뭐?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고?”“민영아, 네 남편이 진짜 돈이 많구나!”이 시각, 동기들은 더 큰 부러움을 느꼈다. 역시 비교를 해봐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포르쉐는 이미 나쁘지 않은 편인데, 페라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모두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집중된 걸 보자, 민영은 일부러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 남편도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대단하지 않아. 그때 나를 쫓아다녔을 때 내가 그래도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어. 반 년 동안 만나주지도 않았는데, 뭘! 마지막에 나한테 이 다이아 반지를 선물해준 게 아니었으면, 내 눈에 차지도 않았을 거야!”말을 끝마치고 민영은 일부러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약지에 커다란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고, 햇빛에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헐! 1캐럿은 하겠지? 싸지는 않겠지?” 여자 동기 한 명이 부러운 얼굴로 물었다.“천만 원 정도 밖에 안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올해 결혼기념일에 더 큰 걸로 바꿔 달라고 하려고.” 민영이 웃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오늘 당신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결혼기념일에 말하려고 그랬지만, 오늘 동기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까 그냥 말할게. 내가 당신을 위해 티파니앤코 다이아 반지를 맞췄어!” 홍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와, 티파니야. 명품이잖아!”“티파니 다이아 반지의 컷팅, 밝기, 광택은 다른 브랜드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라고 하더라!”“게다가 톱스타들이 결혼할 때 대부분 티파니앤코 반지
"여보, 다 같은 동기잖아. 까놓고 말하면 자기 사람인데 뭐 하러 그렇게 따져? 그렇게 하면 당신이 옹졸해 보여." 이때, 뒤에 서 있던 홍빈이 걸어와 민영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이와 동시에 그의 시선이 은아의 몸 위에서 한바퀴 돌더니 눈이 반짝였다. 외모와 몸매만 말하자면 민영은 은아를 따라잡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건, 민영은 너무 싼티 나 보였고 기품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그런데 은아는 외모이든 분위기이든 모두 최고였다. 단 하나 아쉬운 건 그녀가 머저리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 처가살이 남편을 구했다는 거다. 은아가 너무 아깝다!이때, 하현이 차를 주차하고 걸어왔다.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가 하현을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내 남편이야. 이름은 다들 알고 있지? 그럼 굳이 말하지 않을게."서울에 사는 사람은 모두 하현과 은아의 혼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아의 동기들 역시 자연스레 그가 전설의 데릴사위 하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 순간, 하현을 바라보는 시선들 중 어떤 이는 경멸감이 가득했고, 어떤 이는 약간의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였다.사람들에게 머저리라고 불리지만, 이러한 인간계 요정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가 있었다.어쨌거나 현장에 있던 모든 남자 동기들은 사실 대부분 은아를 짝사랑하거나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외모는 분명 괜찮게 생겼는데, 이렇게 쓸모 없을 수가 있나?""누가 알겠어? 이렇게 생긴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한테 빌붙어먹을 운명일지도 몰라!""저 몸이 너무 아깝다!""근데 내가 만약에 돈이 있었다면, 이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을 거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하현은 이런 말들을 무시했다. 그는 사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당신이 바로 그 소문의 데릴사위예요? 실물이 낫네요. 여자한테 빌붙을 밑천이 있어요." 홍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는 일찍이 은아를 제대로 혼쭐내라
은아도 조금 놀라 멍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홍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눈이 갔다.원래 은아의 상상 속 자신의 미래의 남편은 재능과 외모를 두루 갖추고 유일무이해야 했다.한편, 세리는 하현을 쓱 훑어보더니 탄식을 내뱉었다.전에 은아가 하현을 데리고 오지 않게 말렸는데, 이제 알겠지? 체면이 확확 무너졌겠지?이때, 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미안해, 얘들아. 우리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었는데 실력도 나쁘지 않아서 아까 피아노를 보니까 손이 간지러웠나 봐. 절대 잘난 척하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모두 기분 나빠하지 마.”민영은 잘난 척한 게 아니고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했으나, 문제는 그녀가 ‘잘난 척’ 세 글자를 거의 자신의 이마에 붙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명백히도 민영은 자신에 대한 동기들의 주접을 매우 즐겼다.“민영아, 너는 너무 운이 좋다! 이런 신급 남편은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거야!”“맞아, 유럽에서 피아노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야. 너희 남편은 우리 서울의 귀족이야!”“돈도 많고 잘생겼는데 재능까지 있다니, 이런 남자는 하늘에만 있어!”“...”한 무리의 여자 동기들은 팬들로 변했다. 특히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나서 홍빈이 신사적으로 허리 굽혀 인사하자, 사람들은 그의 매너에 더더욱 반했다.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홀린 듯이 홍빈을 바라보며 자신이 홍빈의 아내이길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백홍빈, 여기저기서 자기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전히 내 말은 안 듣지. 모르는 얘들은 우리가 허세 부리는 줄 알겠어!” 민영이 미소를 머금고 홍빈 곁으로 가 불만스럽게 말했다.불만스러운 말투였지만, 민영의 우쭐한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어쩔 수 없어, 매번 피아노를 볼 때마다 손이 간질간질해져. 이건 내 탓 하면 안 돼. 내 몸 속에 있는 예술적 감각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홍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민영은 거의 체념한 듯한 한
“주민영, 너 정말 뻔뻔하구나. 잘난 척하고 싶으면 잘난 척해, 아무도 너를 안 막아. 근데 굳이 은아를 끌어들이는 게 재미 있니?” 소은은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긴 동창회야, 네가 폭풍연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참나! 왜 그렇게 화난 건데? 설마 우리 집 백홍빈한테 반하고 나한테 이런 신급 남편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거야? 그래서 참지 못하고 툭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거야?” 민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홍빈에게 기댔다.“너…” 소은은 분노에 가득 차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뻔했다.은아는 자신의 절친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자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와 느긋하게 말했다. “주민영, 우리 모두 같은 동기야. 그리고 오늘은 동창회인데, 굳이 그런 말을 해야겠어?”민영은 은아를 힐끗 보더니 웃을락 말락 말했다. “설은아, 내가 너무 싫어서 네 개한테 나를 물라고 한 거야? 그럼 네 처가살이 남편한테 연주 한 번 하라고 하든가! 한 곡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네 개한테 사과할게!”“근데 말이야, 네 데릴 남편은 피아노 치는 것 말고 밀가루 반죽을 치는 게 더 좋겠다…”“하하하…”사람들 모두 큰소리로 하하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머저리 데릴사위가 피아노를 친다고? 웃기지 마라.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레슨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 한 곡을 완곡할 수 없다.“주민영, 선 넘지 마!” 은아는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화가 났다. 민영이 감히 자신의 절친을 개라고 부르다니, 정말 너무했다.“왜? 불쾌해? 불쾌하면 네 데릴 남편한테 좀 보여주라고 하든가? 아님 억지 부리지 말고! 미래의 남편이 꼭 피아노 잘 치는 왕자님이어야 한다고? 꿈을 꿔도 그런 꿈은 아니지!” 민영이 비웃었다.“너…” 은아는 너무 화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남편이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