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씨 어르신은 덤덤하게 웃었다. 그는 민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말을 계속했다. “은아는 우리 설씨 집안의 기둥감이야.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와 재무팀장 두 직위를 겸임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 은아에게 짊어진 부담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짐을 덜어줄 사람을 찾기로 했어.”“민혁아,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 자리는 역시 네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구나. 오늘부터 너는 우리 SL 그룹의 부회장이다. 온 힘을 다해 은아가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알겠지?”이 말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빛을 교환하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 씨 어르신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민혁을 승진시킬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문제는, 민혁이 최근에 눈에 띄는 업적을 달성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설 씨 집안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설 씨 집안은 민혁 때문에 여러 번 파산 위기에 처했는데, 그러고도 부회장이 될 수가 있나?보아하니, 설 씨 어르신은 민혁을 승진시키려고 작정했나 보다.왜냐하면 민혁이 은아를 도와주라고 했지만, 사실상 은아를 감시하고 제한하는 거였다. 재무이든 쇼핑몰 프로젝트이든, 나중에 서로 싸울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다.은아는 살며시 어금니를 깨물었다.설 씨 어르신의 말은 너무 달콤했고,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어르신의 표정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진실은? 그는 여전히 은아 자신을 믿지 못했고, 회사의 권력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까 봐 두려워했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 민혁이 회장이 될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했다.자신이 설씨 집안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 간에, 설 씨 어르신의 눈에는 자신이 민혁보다도 못했다!설씨 집안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미소를 드러냈다.그들은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이게 바로 교묘하게 구실을 만들어 설씨 집안 내에서 은아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드
“할아버지가 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핑계로 민혁한테 SL 그룹 부회장 자리를 넘겨줬어. 게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민혁이랑 상의하래.” 은아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그랬구나. 어르신이 당신이 설씨 집안에서 권력을 쥐게 하지 못하려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지는 생각도 못했어.” 하현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근데 이전에 분명히 말했었어. 내가 이번 일을 해결하기만 한다면, 설씨 집안 쇼핑몰 프로젝트와 재정권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은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아주 간단해. 어르신은 당신이 SL 그룹에서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져서 민혁이의 지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어르신이 보기에는 설민혁만이 설 씨 집안의 후계자니까!” 하현이 말했다.“무슨 근거로? 내가 손 놓고 있을까 봐 걱정되지 않으신가?” 은아가 불만 가득한 얼굴을 내비쳤다.“내가 손 놓고만 있다면, 하엔 그룹 측에서 또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까? 내가 설씨 집안의 일을 신경 쓰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얼마나 더 버틸까?”“하엔 그룹이 설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줄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어. 근데 이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야. 핵심은 바로 당신이 설씨 집안을 떠날 것인가? 설씨 집안을 버릴 것인가?” 하현이 물었다.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족이었다. 그녀는 그저 성과를 내고 싶어서 겨우겨우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포기하겠다고 정말 포기하나?“이것 봐, 이게 바로 어르신이 당신을 잡아먹을 엄두가 있는 이유야. 어르신은 알거든, 당신이 절대 설씨 집안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설씨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반드시 해결 방안을 찾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끔 은아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속이 여리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하현이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특징이었다.은아가 마지막에 무슨 결정을 하든 하현은 간섭하지 않을
그도 그저 제3자일뿐이었기에, 중요한 순간에만 약간의 주의를 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설 씨 어르신이 결정한 일은 일반인이 함부로 건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게다가 어르신이 보기에 은아는 헛짓거리를 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그녀도 설씨 집안이 있어야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설씨 집안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그녀에게도 좋은 날이 거의 없을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사실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오히려 은아의 공이 점점 더 커지는 거야…”“은아도 여자인데, 계집애인데, 만약 정말 공이 너무 커서 곧바로 회장이라도 된다면, 대체 우리 설씨 집안은 앞으로 설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 아니면 하씨 성을 따라야하는 거야!”“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설씨 집안은 절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번에 비서는 진심으로 동의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면, 회장님의 비서인 자신도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서울 보행자 거리의 한 고급 카페 안.하현과 은아는 같이 앉아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세리와 소은 두 사람이 있었다.카페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셋이 같이 앉아있으니, 많은 남자의 시선이 이리로 집중되었다.반면,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거지꼴의 하현은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하지만 하현은 눈을 내리깐 채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었는데, 세리가 그의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고 있는 다리가 마치 죽은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흥!”자신이 하현을 도발해서 그가 망신당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자, 세리는 참지 못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지난번 경매 행사 사건 이후로, 세리는 하현이 뼛속까지 미웠다. 그 일 때문에 진우는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오늘 세리가 이렇게 섹시하게 옷을 입은 것도 다 하현이 망신당하게 하려고 그런 건데, 이 남자는 자신을 몇 번 더
“당연하지, 내 남편인데.” 은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근데 전에는 안 데리고 갔잖아?” 소은이 호기심에 물었다.“신경 꺼, 너도 능력 있으면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든가?”소은이 쳇하고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내가 뭐라 하려는 게 아니라, 하현 이 머저리를 데리고 가면 나중에 네가 망신만 당할 뿐이야.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누구?’ 은아는 어리둥절했다.“주민영! 잊었어? 대학 다닐 때, 걔가 좋아하던 남자들이 다 너를 짝사랑해서 개가 고백하는 족족 실패했잖아. 그래서 너를 죽이고 싶어 안달 났잖아.”“듣기로는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 가서 나름 잘 살고 있던 것 같던데. 게다가 아주 천사처럼 성형을 했다고 하더라. 이번에 동창회 때문에 귀국한다던데, 80%는 널 잡으려고 오는 거야! 은아야, 조심 좀 해!” 소은이 거듭 충고했다.“주민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도 운이 꽤 나쁘지 않아. 인터넷에서 사진을 도용해서 재벌 2세랑 랜선 연애를 했다고 하던데, 그 재벌 2세가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돈을 보내줬대.”“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 둘이 만나기 전에 주민영이 단번에 그 돈을 들고 가서 성형을 했는데, 둘이 만난 이후에는 남편을 꽉 붙잡고 있대. 들은 바로는 요즘 아주 잘 지내고 있다더라. 맨날 동기들 단톡방에 가방 자랑을 하지 않나, 빌라랑 스포츠카 자랑을 하지 않나.”세리도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녀는 민영을 좋게 보지는 않았고 성형한 얼굴을 깔봤지만, 문제는 민영이 일반인이 아예 비비지도 못할 정도로 출세했다는 것이다.“결혼을 했어?” 은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이것밖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결혼했어. 우리 셋도 결혼식에 초대했었잖아, 우리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잊었어?” 소은이 말했다.“에휴…” 소은이 또 한숨을 내쉬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말했다. “이봐요 머저리, 당신이 그래도 남자라면 이번에 은아 따라 동창회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은아
“이건 당신 사촌오빠가 선물해준 거예요.”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한결 오빠가요? 그럴 리가요? 이 차는 최소 3억 원은 하는데, 당신한테 선물해줄 리가 있나요?” 소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하현 이 자식은 허세 부리는 걸 너무 좋아한다. 어디서 렌트해온 지도 모르는 차를 갖고 뻔뻔하게 다른 사람이 선물해줬다고 하다니.동창회에 갈 때 고급 차량을 렌트해서 잘난 척 좀 하는 건 정상이었지만, 이 자식은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나? 그렇게 가난해 보이는 옷을 입었으면서, 이따가 다른 사람한테 이 차가 자기 거라고 말한다고 해도 누가 믿겠나?하현은 운전하면서 설명하기 귀찮았다. 자신은 곧이곧대로 말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포르쉐는 교외에 있는 온천 리조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이 온천 리조트는 서울에서도 매우 유명했고, 피로를 풀어주며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평상시에도 이곳에 방을 잡으러 온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온천에 몸을 담그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곳에 와서 온천 요리 한번 먹는 데도 오래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대기 번호조차 받지 못했다.“소은아, 이 온천 리조트의 VIP 레스토랑은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던데, 누가 오늘 그렇게 대단하게 우리 동창회를 여기로 준비했대?” 은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은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주민영의 남자. 듣기로는 주민영 남편이 이 업계에 지분이 좀 있다던데, 그 회장이 그 남자 외삼촌이야.”은아는 깜짝 놀랐다. 민영의 남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 이 온천 리조트의 주식도 가지고 있고, 그는 아주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온천 리조트 사장은 아마 백재욱이겠죠? 서울 백씨 집안 사람. 이것도 백씨 집안의 재산이니.” 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어쭈, 이게 백 씨 집안 재산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럼 백재욱이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우와! 포르쉐!”동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포르쉐 브랜드 자체의 수준이 페라리만큼 높지는 않지만 인지도는 더 높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눈에 포르쉐와 페라리 둘 다 급이 달랐다.민영은 순간 기분이 안 좋아져 무심하게 말했다. “포르쉐일 뿐이잖아. 그래봤자 몇 억 정도 밖에 안 할 텐데, 우리 페라리랑 비교도 안 되지. 페라리는 적어도 9억 가까이 돼!”“뭐?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고?”“민영아, 네 남편이 진짜 돈이 많구나!”이 시각, 동기들은 더 큰 부러움을 느꼈다. 역시 비교를 해봐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포르쉐는 이미 나쁘지 않은 편인데, 페라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모두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집중된 걸 보자, 민영은 일부러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 남편도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대단하지 않아. 그때 나를 쫓아다녔을 때 내가 그래도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어. 반 년 동안 만나주지도 않았는데, 뭘! 마지막에 나한테 이 다이아 반지를 선물해준 게 아니었으면, 내 눈에 차지도 않았을 거야!”말을 끝마치고 민영은 일부러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약지에 커다란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고, 햇빛에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헐! 1캐럿은 하겠지? 싸지는 않겠지?” 여자 동기 한 명이 부러운 얼굴로 물었다.“천만 원 정도 밖에 안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올해 결혼기념일에 더 큰 걸로 바꿔 달라고 하려고.” 민영이 웃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오늘 당신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결혼기념일에 말하려고 그랬지만, 오늘 동기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까 그냥 말할게. 내가 당신을 위해 티파니앤코 다이아 반지를 맞췄어!” 홍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와, 티파니야. 명품이잖아!”“티파니 다이아 반지의 컷팅, 밝기, 광택은 다른 브랜드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라고 하더라!”“게다가 톱스타들이 결혼할 때 대부분 티파니앤코 반지
"여보, 다 같은 동기잖아. 까놓고 말하면 자기 사람인데 뭐 하러 그렇게 따져? 그렇게 하면 당신이 옹졸해 보여." 이때, 뒤에 서 있던 홍빈이 걸어와 민영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이와 동시에 그의 시선이 은아의 몸 위에서 한바퀴 돌더니 눈이 반짝였다. 외모와 몸매만 말하자면 민영은 은아를 따라잡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건, 민영은 너무 싼티 나 보였고 기품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그런데 은아는 외모이든 분위기이든 모두 최고였다. 단 하나 아쉬운 건 그녀가 머저리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 처가살이 남편을 구했다는 거다. 은아가 너무 아깝다!이때, 하현이 차를 주차하고 걸어왔다.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가 하현을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내 남편이야. 이름은 다들 알고 있지? 그럼 굳이 말하지 않을게."서울에 사는 사람은 모두 하현과 은아의 혼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아의 동기들 역시 자연스레 그가 전설의 데릴사위 하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 순간, 하현을 바라보는 시선들 중 어떤 이는 경멸감이 가득했고, 어떤 이는 약간의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였다.사람들에게 머저리라고 불리지만, 이러한 인간계 요정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가 있었다.어쨌거나 현장에 있던 모든 남자 동기들은 사실 대부분 은아를 짝사랑하거나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외모는 분명 괜찮게 생겼는데, 이렇게 쓸모 없을 수가 있나?""누가 알겠어? 이렇게 생긴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한테 빌붙어먹을 운명일지도 몰라!""저 몸이 너무 아깝다!""근데 내가 만약에 돈이 있었다면, 이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을 거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하현은 이런 말들을 무시했다. 그는 사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당신이 바로 그 소문의 데릴사위예요? 실물이 낫네요. 여자한테 빌붙을 밑천이 있어요." 홍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는 일찍이 은아를 제대로 혼쭐내라
은아도 조금 놀라 멍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홍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눈이 갔다.원래 은아의 상상 속 자신의 미래의 남편은 재능과 외모를 두루 갖추고 유일무이해야 했다.한편, 세리는 하현을 쓱 훑어보더니 탄식을 내뱉었다.전에 은아가 하현을 데리고 오지 않게 말렸는데, 이제 알겠지? 체면이 확확 무너졌겠지?이때, 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미안해, 얘들아. 우리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었는데 실력도 나쁘지 않아서 아까 피아노를 보니까 손이 간지러웠나 봐. 절대 잘난 척하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모두 기분 나빠하지 마.”민영은 잘난 척한 게 아니고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했으나, 문제는 그녀가 ‘잘난 척’ 세 글자를 거의 자신의 이마에 붙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명백히도 민영은 자신에 대한 동기들의 주접을 매우 즐겼다.“민영아, 너는 너무 운이 좋다! 이런 신급 남편은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거야!”“맞아, 유럽에서 피아노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야. 너희 남편은 우리 서울의 귀족이야!”“돈도 많고 잘생겼는데 재능까지 있다니, 이런 남자는 하늘에만 있어!”“...”한 무리의 여자 동기들은 팬들로 변했다. 특히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나서 홍빈이 신사적으로 허리 굽혀 인사하자, 사람들은 그의 매너에 더더욱 반했다.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홀린 듯이 홍빈을 바라보며 자신이 홍빈의 아내이길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백홍빈, 여기저기서 자기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전히 내 말은 안 듣지. 모르는 얘들은 우리가 허세 부리는 줄 알겠어!” 민영이 미소를 머금고 홍빈 곁으로 가 불만스럽게 말했다.불만스러운 말투였지만, 민영의 우쭐한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어쩔 수 없어, 매번 피아노를 볼 때마다 손이 간질간질해져. 이건 내 탓 하면 안 돼. 내 몸 속에 있는 예술적 감각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홍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민영은 거의 체념한 듯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