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영, 너 정말 뻔뻔하구나. 잘난 척하고 싶으면 잘난 척해, 아무도 너를 안 막아. 근데 굳이 은아를 끌어들이는 게 재미 있니?” 소은은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긴 동창회야, 네가 폭풍연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참나! 왜 그렇게 화난 건데? 설마 우리 집 백홍빈한테 반하고 나한테 이런 신급 남편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거야? 그래서 참지 못하고 툭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거야?” 민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홍빈에게 기댔다.“너…” 소은은 분노에 가득 차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뻔했다.은아는 자신의 절친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자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와 느긋하게 말했다. “주민영, 우리 모두 같은 동기야. 그리고 오늘은 동창회인데, 굳이 그런 말을 해야겠어?”민영은 은아를 힐끗 보더니 웃을락 말락 말했다. “설은아, 내가 너무 싫어서 네 개한테 나를 물라고 한 거야? 그럼 네 처가살이 남편한테 연주 한 번 하라고 하든가! 한 곡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네 개한테 사과할게!”“근데 말이야, 네 데릴 남편은 피아노 치는 것 말고 밀가루 반죽을 치는 게 더 좋겠다…”“하하하…”사람들 모두 큰소리로 하하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머저리 데릴사위가 피아노를 친다고? 웃기지 마라.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레슨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 한 곡을 완곡할 수 없다.“주민영, 선 넘지 마!” 은아는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화가 났다. 민영이 감히 자신의 절친을 개라고 부르다니, 정말 너무했다.“왜? 불쾌해? 불쾌하면 네 데릴 남편한테 좀 보여주라고 하든가? 아님 억지 부리지 말고! 미래의 남편이 꼭 피아노 잘 치는 왕자님이어야 한다고? 꿈을 꿔도 그런 꿈은 아니지!” 민영이 비웃었다.“너…” 은아는 너무 화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남편이
동기들이 모두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게 들리자, 민영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만약 이 일이 들통난다면, 그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하현 이 데릴사위를 믿지 않았다.“이봐 머저리, 그럴 필요가 있나요? 아내 대신 나서고 싶다 한들 자기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봐야하지 않나요?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헛소리를 지껄이면 사람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당신은 3년 동안 데릴사위로 살았다고 들었어요. 장모님한테 족욕할 물을 갖다주질 않나, 화장실 청소를 하질 않나, 3년 동안 당신 아내 손도 안 잡아봤으면서 그럴 필요가 있나요? 사내대장부가 당신 같은 지경에 이르다니, 정말 남자들의 망신이에요!” 민영이 조롱했다.“주민영 씨, 지금 당장 우리 아내랑 아내 절친한테 사과하시죠. 그러면 없던 일로 할게요, 어때요?” 하현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민영의 신랄한 비웃음은 그의 기분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설은아, 네 남편 뇌에 물 들어간 거 아니지? 남편 안 챙겨?” 민영이 이마를 찌푸리며 은아에게 말했다.“이 사람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 지금 당장 소은한테 사과하고 없던 일로 하자.” 은아가 차갑게 말했다.“푸하하…” 민영은 몸을 앞뒤로 움직이며 웃어댔다. “유소은한테 사과하라고? 네가 키운 개한테 사과하라고? 사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감당할 수 있겠어?”“은아야, 네 남편만 뇌에 물 들어간 줄 알았는데, 너도 뇌가 안 좋나 보네. 근데 그것도 정상이야. 뇌가 좋은 사람이 데릴 남편을 구하겠어? 하하하!”이 순간, 민영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폭소를 터뜨렸다.너무 웃긴 거 아닌가? 이 데릴사위는 매일 화장실 청소 아니면 족욕물을 갖다주는 머저리인데, 감히 민영한테 그런 말을 해?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지!자기가 무슨 꼴인지 거울 안 보나? 집이 너무 가난해서 거울도 못 사겠으면, 오줌을 누는 것도 좋다."은아야, 어렵게 동창회에 왔는데 너무 망신 당하지 마
하현의 손바닥이 계속해서 피아노를 스치더니, 이내 팍하고 덮개를 열었다. 그러고나서 그는 손을 내밀어 가볍게 건반을 눌렀다.비록 하현은 그저 거기에 서서 한 손으로 건반을 눌렀을 뿐이지만, 이 순간 우아한 선율이 순식간에 홀 안에 울려퍼졌다. 게다가 하현의 손가락 놀림에 따라 음악이 때로는 격앙되었고, 때로는 우울했고, 때로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매끄러운 연주, 최고의 경지에 이른 박자, 여기다가 자유로운 연주까지 더해지니, 현장에 음악을 아는 사람은 몇 안됐지만 모두 희미하게 느꼈다. 하현의 연주는 홍빈보다 몇 배는 훌륭했다.민영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녀는 순식간에 마치 10킬로그램의 고구마를 삼킨 것과 같았다. 원래 민영은 이 일을 이용해 홍빈의 대단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은아의 데릴 남편이 피아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홍빈이 직접 연주한 척한 사실을 알아차렸다니, 이 순간 민영은 자신의 체면을 잃은 것만 같았다.연주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연주에 빠져 여운을 느끼며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 사람이… 정말 그 소문의 데릴사위라고?” 어떤 여자 동기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현을 신랄하게 조롱했지만, 하현이 보여준 것은 자신들의 남편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다.“그럴 리가? 이 사람이 어떻게 그 머저리야?” 세리의 매혹적인 몸이 살며시 떨더니 믿기지 않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소은의 작고 귀여운 입도 살짝 벌어졌고,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이러한 표정은 마치 오늘 하현을 처음 알게 된 것과 같았다.눈앞에 있는 하현은 그녀의 기억 속 머저리 데릴사위와 완전히 달랐다. 비록 그는 여전히 가난해 보였지만, 분위기든 기세든, 완전 딴판이었다…“반죽을 치는 것도 이거랑 비슷하겠죠…” 하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그는 아까 어떠한 곡도 연주하지 않았고 그저 손가락을 마음대로 놀렸을 뿐이다.
홍빈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홀을 빠져나가 얼른 재욱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백재욱, 서울 백씨 집안의 후계자, 백 씨 어르신의 친아들.그는 30살쯤 되는 젊은이에 외모도 잘생겼지만, 얼굴이 매우 창백해 아파 보였다. 백 씨 집안은 어두운 곳과 밝은 곳에 모두 몸담고 있었다. 그들의 길바닥 세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지용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하지만 그들은 소식에 정통하지 않아 요 며칠간 지용이 이미 백범의 부하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삼촌.” 홍빈이 사무실로 들어와 공손하게 말했다.“왔어?” 여자 비서의 정교한 얼굴을 갖고 놀던 재욱이 웃어 보였다.그는 자신의 조카에게 꽤 잘해줬는데, 그 이유는 이 조카가 그의 비위를 잘 맞췄기 때문이다.재욱은 자기 사람도 내치는 이런 독한 사람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재욱이 여자 비서에게 나가라고 손짓한 후,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이 자식이 날 보러 올 줄도 알고?”“삼촌, 무슨 말씀이세요. 온천 리조트에 왔는데 당연히 제일 먼저 삼촌을 찾아 봬야죠.” 홍빈이 정중하게 말했다.“아, 네 와이프는 그 차가 마음에 들었대? 마음에 들었다면 선물해줄게. 시간 날 때 또 한 번 그렇게 해…” 재욱은 음흉한 얼굴을 내비치며 암시했다.홍빈은 기뻐했다. 다시 한 번 자기 아내에게 약을 먹이면 페라리 한 대를 얻을 수 있다고? 밑지는 장사가 아니잖아!“삼촌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시간 봐서 제 집에 오셔서 한 잔 하시죠. 제가 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홍빈은 가슴팍을 두드렸다. “삼촌께서 민영한테 이렇게나 잘해주는 걸 민영이가 알면 분명 감사해할 거예요.”“다 같은 집안 사람인데 스스럼없이 대해야지. 내가 집안 어르신이 되면 온천 리조트는 너한테 맡길게.” 재욱이 웃으며 말했다.이 온천 리조트의 수익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순월수익은 수천만 원 했고, 만약 관리를 잘한다면 돈 쓰는 데 거의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홍빈은 흥분했다.
식사하는 도중에 하현은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밖에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그는 민영 같은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피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에 민영이 굳이 와서 자신들을 협박했으니, 곧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게 뻔했다.하현은 겁먹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그의 구역이 아니니, 만일 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물론, 하현은 백씨 집안 사람들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백 씨 집안을 짓누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지용이었다.지용은 이제 백범의 부하이니, 이런 일을 처리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 잘못을 씻어내고 새롭게 태어날 기회와 마찬가지였다.하현이 아까 홀에서 나와 통화를 하러 갔을 때, 때마침 불량배 같아 보이는 자들 몇명이 담배를 입에 문 채 홀 안으로 들어갔다.그 사람들을 보자, 민영은 더욱 악독한 눈빛으로 홍빈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설은아가 결혼하긴 했지만, 3년 동안 그 머저리는 은아의 손끝 하나 만져보지 못했어. 그래서 이 하찮은 남자얘들은 은아를 잊지 못하는 거야. 이 녀석들이 은아를 더럽히게 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순진한 척할 수 있는 보자고!”“그건…” 홍빈은 멍해졌다. 빌어먹을 이 좋은 기회를 왜 자신이 차지할 생각을 못 했을까?이 생각을 하자, 홍빈은 재빠르게 말했다. “설은아도 결국엔 설씨 집안 사람이야. 설씨 집안이 2류 가문이지만 그 사람들 앞에서 모두 고개를 조아린다고. 그러는 건 별로 안 좋지 않을까?”“흥!” 민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안 좋을 게 뭐가 있어? 이 천한 인간이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해야겠어! 그리고 당신은 설씨 집안이 우리 백씨 집안 안중에 있을 것 같아?”홍빈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옛날의 설씨 집안이라면, 백씨 집안은 분명 안중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 전체가 설씨 집안이 맡고 있는 쇼핑몰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다. 이런 발판이 있으면 설씨 집안은 한순간에
“어이구, 피부도 참 뽀얗지. 오빠가 미끄러운지 한번 만져볼게!”“조그마한 얼굴이 예쁘기도 해라. 오빠가 이런 얼굴을 제일 좋아해!”“이런 미인 옆에 남자가 없다니, 너무 아깝다!”불량배 몇 명은 은아, 소은과 세리 옆으로 가 집적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쫓아냈다.그러나 이곳에는 적지 않은 은아의 팬들이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들은 모두 화가 났다!“당신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어떻게 여기를 들어왔어? 여기는 우리가 예약해 놓은 곳인 거 몰라?”“우리 동기를 희롱하다니,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 같아?!”“그래, 얼른 나가. 이곳은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아!”“...”남자 동기 몇몇이 정의감에 가득 찼다. 이런 영웅이 미녀를 구할 기회를 어떻게든 놓쳐서는 안 된다.“퍽!”불량배 무리 속에 있던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와 말을 하고 있던 남자 동기의 뺨을 내리쳤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넌 뭐야? 감히 내 앞에서 허세를 부려? 영웅이 미녀를 구하기라도 하게?”얻어맞은 남자 동기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차갑게 말했다. “감히 우리를 때려? 누가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온 지 모르나 보지? 그 사람은 백씨 집안의 백홍빈이야.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반면, 홍빈은 두 귀를 막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자기 밥을 먹었다.그 불량배는 발을 쭉 뻗어 그 남자 동기를 바닥으로 걷어찬 다음 쌀쌀맞게 말했다. “이 대가리에 물 들어간 쓰레기야, 그 사람이 누군지 나는 모르겠는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자가 뭐더라…”“똑똑한 사람입니다…” 다른 불량배 한 명이 말을 이었다.“그래, 그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하지도 못하는데, 너는 무슨 간덩어리로 내 앞에서 방귀를 뀌냐? 네가 뭔데?!”
그 남자 동기는 바닥에 나뒹굴며 끊임없이 온몸을 떨었다. 그는 배를 부여잡으며 일어서지도 못했다. 다른 불량배 몇 명도 곧장 앞으로 나와 한 명씩 걷어차며 그 남자 동기가 맥을 못 추게 했다.이 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홍빈과 민영 둘 다 나 몰라라 하며 무관심한 표정을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원래대로라면, 홍빈과 민영 같이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구역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걸 용납하겠나? 지금 이 불량배들은 설마 민영과 홍빈 부부가 일부러 준비시킨 게 아니겠지?“민영아, 우리 다 같은 동기인데 이렇게 독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은아의 팬 한 명이 화난 얼굴로 말했다.“개자식아!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망할 놈들이 스스로 문제를 자초했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미쳤어 진짜!” 민영이 일어서서 고함을 질렀다.문제는 이 온천 리조트는 백씨 집안의 구역이었고, 홍빈은 백씨 집안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백씨 집안의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지? 홍빈의 체면을 안 세워주나?비록 민영이 그렇게 말했지만, 현장에 있던 동기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일은 분명 그녀와 연관이 있었다.단지 많은 이들은 민영에게 약점 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난 남자 동기들 몇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남자 동기들도 쉽사리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방금 한 명이 이미 바닥에서 죽도록 얻어맞았기 때문이다.“은아야, 하현은? 왜 아직도 안 와?” 소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평소에 하현이 머저리라고 말했지만, 이런 위급한 순간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머저리가 이 자리에 있길 바랐다.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은 그녀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그 머저리는 신경을 써야하지 않겠나?세리는 몸을 떨고 있었지만 깔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올 간댕이가 있겠어? 이 장면을 보면 무서워서 바
“얼씨구? 미인 몇 분께서 귓속말을 하시네? 누가 먼저 올 지 의논하고 있나? 걱정하지 마, 오빠들은 공평함을 중요시해서 편애하지 않을 거야…” 불량배 한 명이 세리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변태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세리의 몸매가 매우 좋긴 했다.세리는 황급하게 몸을 돌리고 화난 채 말했다.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지 마!”“참나, 오빠가 더럽다고 생각해? 괜찮아, 이따가 너는 오빠보다 더 더러워질 거야. 그렇다고 이 오빠가 널 버리지는 않을게!” 불량배는 턱을 만지며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사나운 말에 항복한다.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세리는 조그마한 얼굴이 창백해진 채 은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너무 무서워 거의 울려고 했다.은아는 세리를 감싸 안으며 일어났다. 그녀는 이 사건의 주범이 분명 민영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민영아, 우리 사이에 갈등은 있으니 내가 사과할게.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은아가 이마를 찌푸렸다.“설은아, 네가 밖에서 남자를 몇 명이나 만나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저 사람들이 너랑 무슨 사이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게다가 나도 지금 무서워! 여보, 날 지켜줘!” 민영은 ‘겁먹은’ 표정을 보였다.홍빈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여보, 걱정하지 마. 나는 어떤 머저리랑은 달라! 나는 내 아내를 지킬 수 있어. 내가 있는 한, 당신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리는 자식은 무릎을 꿇게 할 거야!”“여보, 당신은 상남자야!”“그럼! 그럼!”홍빈과 민영 두 사람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들은 거만할 대로 거만했다.“아가씨, 설마 어젯밤에 우리가 어떤 로맨틱한 밤을 보냈는지 잊었어? 어떻게 나를 외면할 수가 있어? 나를 책임져야지!” 불량배는 웃으며 은아에게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만지려 했다.“내가 언제 당신을 알고 지냈는데! 명예 회손으로 고소할 거야!” 은아는 황급히 피했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날 고소한다고? 그래!” 불량배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럼 우리 둘은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
곧이어 사복을 입은 여자 경찰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와 여자의 온몸을 뒤졌다.잠시 후 여자 경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여자의 몸을 수색했지만 지갑과 핸드폰 외에는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고 이상한 단서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여자 경찰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또 한 번 빠르게 수색했다.이번엔 여자의 발바닥까지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여자 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년의 사복 경찰을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중년의 경찰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일등석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다송, 양효리. 당신들 둘 다 죽고 싶어?”“이 여자한테서 C4 총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어?”“당신들 말 때문에 귀한 일등석 손님들한테 피해를 줬잖아? 이제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양효리와 이다송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그늘진 그녀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보통 이런 일을 발견하면 공을 세운 만큼 큰 보상을 받게 된다.그것이 적어도 수천만 원이나 된다.하지만 지금은?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녀들은 웃음거리가 되었다.경찰서에서든 회사에서든 피해를 일으킨 것에 배상하기 위해 본보기로 두 사람을 해고할 것이다.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떠넘기는 셈이다.“수사대장님, 죄송합니다. 저희도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승객 한 분이 이 여자한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저희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이다송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중년 경찰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승객이 그따위 소리를 해? 누구야?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좀 가 줘야겠어!”“그 사람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책임을 져야지!”“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말을 하면서 중년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여자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고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제대로 처리하겠다고요?”여자는
하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나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냄새를 맡았다구요!”“냄새요?”“당신이 무슨 개코인 줄 아세요?”“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구요?!”두 스튜어디스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가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분명 여기저기서 허세나 부리며 날뛰는 미친놈이라 생각한 듯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어서 지금 바로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 당신을 잡아가라고 할 겁니다!”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거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이 안입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라구요!”“당신이 아무리 일등석 고객이라도 소용없어요!”스튜어디스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당신 코가 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니 그럼 이것도 좀 맡아 보세요? 내가 무슨 향수를 썼는지 알아맞춰 보시라구요!”하현은 눈앞에 곱게 화장한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에서 그녀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로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양효리, 당신은 어젯밤에 우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샤넬 5호 향수를 뿌렸어요. 그런데 평소 근검절약하는 습성 때문에 아끼고 아끼던 향수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려서 지금은 거의 베이스 향만 남았군요.”“그리고 이다송, 당신은 어젯밤에 두 명의 남자랑 함께 보냈군요. 한 명은 값싼 향수를 쓰는 한량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좀 신분이 있는 남자였을 겁니다. 에르메스 향수를 쓴 것 보니...”“두 가지 향수가 당신 몸에 섞여 있어요. 아마도 어젯밤 당신은 너무 피곤해서 샤워할 틈도 없이 바로 오늘 아침 출근한 것이 틀림없어요...”하현의 말을 듣고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이 갑자기 추위에 얼어붙은 고목처럼 얼어붙었다.이다송은 하현이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아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바로 기장을 찾아 허둥지둥 뒷걸음질쳤다.두 사람이
이 모습을 본 일등석의 스튜어디스가 열정적으로 다가와 그녀를 도와주었다.여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자리에 앉았다.주변 승객들은 힐끔 쳐다볼 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은 살짝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깁스를 한 그녀의 손에 자꾸 시선이 갔던 것이다.뭔가 미심쩍은 냄새가 진동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현은 수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러온 사람이라 이런 낌새에 기가 막히게 촉각이 발달해 있었다.순간 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곧장 몸을 돌려 일등석을 떠났고 힐끔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 여자는 하현의 움직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순간 하현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이때 아리따운 용모의 스튜어디스가 하현에게 다가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손님,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죄송하지만 자리로 돌아가 앉아 주시겠어요?”또 다른 스튜어디스가 거들며 나섰다.“화장실에 가실 거면 이륙 후에 이용해 주십시오.”하현이 일등석에서 나왔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들은 불만이 있어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했다.만약 다른 손님이 비행기 이륙에 방해를 했다면 아마 호되게 창피를 당했을 것이다.하현은 앞으로 나와 일등석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장님께 연락 좀 해 주십시오. 제가 기장님을 만나야 합니다.”하현의 표정을 본 스튜어디스는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손님, 아무리 일등석 손님이어도 마음대로 기장님을 볼 수 있는 없습니다.”“비행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따로 등록을 해 드릴 수는 있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스튜어디스는 하현을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소위 인플루언서쯤으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기장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