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은아가 서재에서 자고 있던 하현을 깨웠다. “하현, 할아버지 쪽에서 설씨 집안 사람들을 긴급 모집했어. 당신도 가야 해!”“알았어.” 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 그토록 신신당부했으니, 슬기의 일처리 스타일대로라면 어젯밤에 설씨 집안 측은 아마 하엔 그룹의 경고장을 받았겠지?오전 9시, 설씨 집안 사람들은 빌라 홀에 속속이 모여들었다. 설 씨 어르신은 상석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웠다.어제 한밤중에 하엔 그룹이 보낸 경고장을 받았는데 그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설씨 집안 쪽에서 감히 사람을 구해 설씨 집안과 하엔의 투자 안건을 망친다면, 하엔은 설씨 집안이 이 틈을 타 하엔의 돈을 갖고 장난질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엔은 지금 설씨 집안의 해명을 원했고, 이전에 투자한 금액의 10배인 5000억 원의 배상을 요구했다.이번에 하엔 측에서 아무런 고위직 관리도 오지 않았지만, 이런 차가운 태도는 오히려 하엔의 그 신비로운 대표가 미쳐 날뛰었을 거라는 것을 대변해주었다.하지만 이것 또한 정상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2류 가문이 감히 자신의 돈을 갖고 장난 친다면 하엔 같은 대기업은 분명 미쳐 날뛸 것이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어본 뒤, 설 씨 어르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어제 내가 이미 말했지, 아무도 절대 그 일을 바깥에 알릴 수 없다고. 그런데 하엔 그룹 쪽에서 알게 돼서 지금 벌써 우리한테 경고장을 보냈어. 다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말을 하던 중, 설 씨 어르신은 경고장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았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경고장을 들고 가 다 읽어보더니 낯빛이 어두워졌다.경고장 내용은 간단했다. 설씨 집안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약 조건대로 5000억 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하지만 문제는, 설씨 집안이 어디서 이런 큰 돈을 구해오겠나?“할아버지, 분명 누군가 일부러 그 일을 퍼뜨린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맞아, 은아야. 이전에 우리 설씨 집안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네가 그래도 제일 능력 있으니까 네가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너는 쇼핑몰 프로젝트 담당자야.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지?”“은아야, 나는 이 의견이 좋은 것 같아. 네가 하엔 그룹에 가서 한번 가보지 않을래?”화살은 순식간에 은아에게로 향했다. 이 순간, 모두 은아가 설씨 집안 대신 이 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설씨 집안이 파산해서 그들이 편안히 지낼 날이 없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은아는 어이가 없었다. 어젯밤의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제일 중요한 것은, 어제 이 사람들은 민혁이야말로 설 씨 집안의 희망이라고 구구절절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은아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언니,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 쇼핑몰 프로젝트도 나름 언니 거야. 지금 언니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 설씨 집안이 전무후무한 위기에 닥쳤는데,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지?” 지연의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 어제의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오늘 어떻게든 은아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아주 귀찮아질 것이다.희정은 은아 옆에 앉아있었지만, 그녀도 약간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아를 대변할 마음이 없었다. 만약 설씨 집안이 정말 파산하기라도 하면, 희정 역시 편히 지낼 날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은아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희정이 유일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은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막대한 일은 은아의 책임이 될 것이다.설 씨 어르신은 아무리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 이 제안이 은아에게 아주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르신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은아야, 이번에 네가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면, 쇼핑몰 프로젝트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이럴 때 어르신의 기분을 좋게 할 말 몇 마디를 하는 게 마땅했다.은아는 얼굴이 사색이 되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민혁은 정말 뻔뻔했다. 애초에 그가 문제를 일으켰으면서 수습하지도 못하고 정의로운 척을 하니, 아주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럼 우리 설씨 집안의 후계자에게 부탁하죠. 이 사태를 수습해주세요.” 은아가 냉랭하게 말했다.“쳇, 내가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도 아닌데 참견할 일인가! 누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5000억 원의 빚은 전부 누나 거예요!” 민혁이 흉악한 얼굴로 말했다.하엔 그룹의 문제를 그가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빚을 은아에게 넘기는 것이다.이게 바로 큰일을 이루기 위해 조그마한 희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민혁은 조금 자신만만해졌으며 자신의 총명함에 감탄했다. “이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맞아요! 우리 설 씨 집안에만 빚이 없으면 되잖아요!”“차라리 쇼핑몰 프로젝트를 관두고 은아한테 돈이나 갚으라고 해요! 이게 바로 은아의 책임이에요!”“동의합니다! 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은아니까 은아가 당연히 책임져야죠!”이 순간, 거의 모든 설씨 집안 사람들의 눈앞이 반짝였다.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은아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쇼핑몰 프로젝트를 잃고 설씨 집안도 1류 가문이 될 기회를 잃을 것이다.하지만 설씨 집안이 파산하지만 않으면, 그들은 계속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조그마한 희생이 대수인가? 큰 문제라도 되나?설 씨 어르신도 눈빛이 반짝였다. 만약에 은아가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민혁이 말한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쨍그랑!”이때, 앉은 채로 입을 다물고만 있던 하현이 갑자기 재떨이를 만지작거리더니 세차게 내리쳤다.“악! 하현 이 빌어먹을…” 민혁이 얼굴을 부여잡으며 울먹거렸다. 이 데릴사위가 미친 거 아닌가? 난데없이 사람을 때리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쏘아보았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하현이 아무 말도 없이 민혁의 얼굴을 내리칠 줄 생각지도 못했다.민혁이 매우 재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데, 매번 피하지 못했다.그런데 하현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언제 물건을 휘두를지 어떻게 아나? 이 가족회의에 그를 부르면 안 됐다!“하현, 내가 빌어먹을 당신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요? 믿거나 말거나, 내가 사람을 불러서 당신을 없앨 수도 있어요!” 민혁이 코를 부여잡으며 펄쩍펄쩍 뛰었다.“조규천이라도 부르게?”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그래요, 규천 형님을 부르려고요. 나랑 규천 형님은 의형제예요. 형님이…” 우레와 같이 화를 내던 민혁은 다급하여 거의 말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규천 형님이라, 아주 친근하네.”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잊지 마, 설 씨 집안이 이런 문제에 부딪힌 건 너랑 네 규천 형님 때문이야. 네가 먼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지도 않고, 설씨 집안이 쇼핑몰 프로젝트를 버리게 하려고 하다니. 설마 하엔 그룹이 우리 설씨 집안에 심어놓은 스파이는 아니지?”“제기랄, 당신이야말로 스파이지! 당신 온 가족이 스파이야!” 민혁이 욕을 퍼부었다.“아니라면 제일 좋고.” 하현은 민혁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설 씨 어르신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르신, 사실 경고장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셨어요. 이 문제는 다른 해결 방안이 있어요. 꼭 돈으로 배상해야 할 필요 없습니다.”말을 하던 하현은 그의 손에 전해진 경고장을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내비쳤다.“무슨 방법이 있는데, 말해봐 봐! 돈만 쓸 필요 없다면 뭐든지 가능해.” 설 씨 어르신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흥분한 듯했다.사실 어르신도 쇼핑몰을 지을 그 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그도 민혁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은아에게로 집중되었고, 은아의 분노심이 활활 타고 있었다.한편, 하현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설 씨 어르신은 어떤 이유든 간에 쇼핑몰 사건 때문에 민혁을 처벌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하현은 알아차렸다.그의 눈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이렇게나 컸다.일이 이 지경까지 다다른 가운데, 하현은 적당한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아내가 처한 상황이 더 복잡해질지도 모른다.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하현은 은아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몸을 살짝 떨었다. 하현이 그녀에게 이 사태를 직접 해결하는데 동의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건을 걸어야 한다.은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자, 하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날 믿어.”은아는 그저께 일어난 일을 떠올리더니 그를 믿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 일어서서 말했다. “할아버지,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들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제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한 번 하엔 그룹에 갔다오겠습니다…”이 말이 들리자, 민혁은 연이어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설은아 네가 무슨 하엔 그룹을 창립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네가 간다고 소용이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은아를 설씨 집안에서 한 방에 내쫓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비록 손실이 막대하겠지만, 향후에 은아가 자신의 후계자 신분을 빼앗으려 하는 것에 비하면, 민혁은 오히려 이 손실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네가 가겠다고?” 설 씨 어르신이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지만 여전히 걱정했다. 이번 일이 아주 심각했기 때문이다.“할아버지도 아실 거예요. 정이라는 패를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시도를 해볼 수는 있으나, 제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는 장담 못합니다.” 은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쳇, 그런 말을 누가 못해요? 해
솔직히 말하면, 설 씨 어르신도 회사의 재무를 은아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설씨 집안 내에서 은아의 위치는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올라갈 것이고, 민혁의 위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선택사항이 없는 듯했다. 은아가 선뜻 나서서 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설씨 집안은 파산의 변두리에 놓일 것이다.“할아버지, 절대 누나를 믿지 마세요! 어떻게 누나가 이런 큰일을 해결하겠어요? 하엔 그룹은 경고장까지 보내왔다고요! 저는 이 여자가 애초에 하엔 그룹과 손잡고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설씨 집안의 권력을 빼앗아가려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민혁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얼마 전에 은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지금 설 씨 어르신이 또 은아의 요구사항을 들어줄까 봐 겁이 났다.은아가 재무를 관리하게 된다면, 민혁은 설씨 집안에서 일어서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후계자 자리도 불안정해질 것이다.“언니, 그런 꼼수로 감히 할아버지 앞에서 장난을 쳐? 정말 할아버지가 그렇게 잘 속을 것 같아?” 지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제법이네. SL 그룹의 재무를 관리하고 싶으면 적어도 이건 말해야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건데?” 동수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아가 재무 관리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은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해요. 제가 슬기한테 전화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요…”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놀랍게도 하현이 말하고 있었다.“하현, 당신이 대화에 낄 자리가 있나? 슬기 씨랑 동창이라고 이런 큰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5000억이 뭔지는 알아? 50만 원도 얼마인지 모르지? 맨날 내 앞에서 허세나 부리면서, 벼락 맞을까 봐 무섭지 않아?!” 민혁이 하현을 노려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5000억은 하엔 그룹한테도 작은 숫자가 아니야. 슬기 씨가 대표님의 비서이긴 하지만, 이런 중대한 사항의 결정권은 없을 걸?”
“이번에 언니는 정말 끝이야. 그 뭣도 아닌 능력으로 어떻게 하엔 그룹을 상대하겠어? 내가 알아본 적이 있는데, 하엔 그룹의 신임 대표는 겸손하고 신비로워서 아무도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대.”설씨 집안 가족회의가 끝난 후, 지연과 민혁 두 사람은 같이 그곳을 떠났다. 지연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원래라면 누나는 분명 이 일을 해결하지 못했을 거야. 근데 문제는, 이전에 몇 번씩이나 투자 안건을 처리한 건 누나야. 무슨 변수라도 생겨서 누나가 SL 그룹의 재정권을 갖게 될까 봐 걱정되네. 그럼 우리 둘은 앞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거야.” 민혁이 매우 걱정했다.“걱정할 게 뭐가 있어? 하엔 그룹 대표랑 잤다면 모를까. 근데 머저리 남편을 둔 꼴에 부잣집 도련님이 그렇게 하길 원하겠어? 언니를 만지는 것도 재수 없어!” 지연은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이미 민혁과 한배에 탔다. 만약 은아가 권력을 쥐게 된다면, 그녀의 하루하루 역시 순탄치 못할 것이다.“그렇길 바라야지.” 민혁이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의 눈빛은 매우 음험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게 되면, 그는 다른 준비를 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한편, 은아의 포르쉐 안.은아는 살짝 얼떨떨했다. 아까 하현이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말하라고 하고 조건도 걸으라고 했다. 조금 전에 그녀는 매우 강하게 대응했지만, 그곳에서 걸어 나오니 조금 어질어질했다.“하현, 슬기 씨한테 전화 한 통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야?” 차 시동을 건 후, 은아는 불안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뭐? 네가 은아한테 제안을 수락하라고 꼬드긴 거야? 이 불운덩어리야, 은아가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5000억 원의 빚을 감당해야 해! 그게 무슨 개념인지 알아? 너를 판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은 못 받아!” 희정은 원래 은아에게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비밀병기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하현이 시킨 거라니? 지금 그녀는 온몸에
잠시 후, 은아는 심호흡을 했다. “이 비서님께서 말씀하신 상황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주시길 바라요. 저희 설씨 집안은 절대 고의적으로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닙니다. 이 쇼핑몰 프로젝트는 저희 설씨 집안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슬기는 잠깐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와서 이러한 부탁을 했다면, 저는 지금 이미 경호원을 불러서 그 사람을 끌어냈을 겁니다.”“그렇지만 제가 오기 전에 대표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전에 받은 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이 점을 봐서라도 설은아 씨의 체면을 세워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설씨 집안이 한 수 배워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다음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는 아마 체면을 세워주지 않으실 겁니다.”일이 이렇게 풀린다고?대표님께서 체면을 세워주신다고?하현이 이전에 대충 언급한 적이 있었고, 은아는 그를 믿었지만 내심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엔 그룹 측에서 정말 때문에 이 일을 무마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이 비서님,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은아가 말했다.“당연히 아닙니다. 이건 대표님께서 분부하신 거라 제가 감히 뭐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후에 제가 사람을 보내서 경고장을 회수하겠습니다. 설은아 씨는 안심하시고 쇼핑몰 프로젝트 일을 보세요. 저희 회사는 쇼핑몰이 다 지어질 날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슬기가 웃으며 말했다.슬기는 지금 매우 어지러웠고, 뭔가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래 봬도 5000억 원의 배상금이다. 이렇게 막대한 일을 그냥 이렇게 마무리한다고? 어떻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이 비서님, 그 가 정말 이렇게 큰 값어치를 하나요?” 은아가 소심하게 물었다.“물론이죠…” 슬기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래 봬도 세기의 명화입니다. 대표님께서는 그런 보물을 잘 간직하고 다른 나라로 유실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다행으로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