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유홍민은 서류를 들고 대구 관청 2호 사무실 대문을 두드린 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심재철은 유홍민이 손에 서류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너 뭐 하러 왔어?”“하현이 부탁했어?”“내가 분명히 말하는 데 난 오늘 임복원의 전화를 열 통이나 끊었어!” “하현을 풀어주려는 생각은 절대 안돼!”“지금 얼마나 많은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지 몰라. 만약 내가 내 이익을 챙기려고 법을 어기면 대구 관청의 명성만 훼손될 뿐 아니라 네 감투까지 포함해 임복원과 나까지 해임될 수 있어!” “그러니까 나가!”심재철은 냉담한 기색으로 대문을 가리켰다. 유홍민은 웃으며 말했다. “심 선생님, 저는 오늘 사정하러 온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익명으로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어요. 분명 관심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자료에 따르면 후지와라 미우는 이미 AIDS 말기여서 며칠 살 날이 없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오경미가 남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계획을 짜고 하현을 생매장시키려고 한 거예요!”“그녀가 계획한 첫 번째 단계는 하현을 AIDS에 감염시키려는 거였어요. 그래서 하현을 알게 되고 그의 방에 가서 욕실을 빌린 거예요.” “그런데 계획이 실패하자 그녀는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갔어요. 자신의 죽음으로 하현을 죽음에 몰아 넣은 거죠!”“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전의 모든 증거 사슬은 허위에요. 하현은 무죄로 석방을 시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 경찰서 쯕에서 반드시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해명 하고 사과를 해야 해요……”말을 하면서 유홍민은 보이스펜을 꺼내 심재철 앞에 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 외에도 사신과 친필 편지를 심재철 앞에 올려 놓았다. 심재철은 이것들을 보며 안색이 변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물건의 진위여부는 확인했어? 이것들은 원본이야? 외부에 공개 된 거야?”유홍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대구 경찰서 제 1지국.하현이 변광섭과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돼지고기 요리를 마구 퍼먹고 있는 동안 수속이 끝났다. 변광섭과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지국 대문 입구까지 깍듯이 배웅해주었다. 하현이 경찰서에 들어온 지 48시간도 안돼서 모든 증거 사실이 뒤집힐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일 경찰서 측에서는 아마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을 해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사건은 뒷처리로 더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하현은 이미 무죄로 결론이 났다. 이때 변광섭과 사람들이 다행인 것은 오직 한 가지, 하현에게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르쉐 918 한 대가 하현 앞에 멈추자 차창이 내려가더니 슬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고, 변광섭과 사람들은 부러워하며 질투어린 시선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때 슬기는 차에서 내려 하현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회장님, 억울한 일을 당하셨네요.”하현은 변광섭과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조수석에 올라타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결한 거야?”슬기는 핸들을 돌리며 가볍게 말했다. “후지와라 쪽은 허점이 많진 않았지만 방향을 잡으니 상황을 돌파하기가 어렵지 않더라고요.” “사실 오경미에게 며칠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아마 진작에 떠났을 거예요. 그럼 상황을 타개하려는 우리의 모든 희망은 사라졌을 거고요.” “그런데 배후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황급히 손을 써서 완벽해야 할 사건에 허점이 조금 생겼어요.” “게다가 그들은 우리 삼촌을 물 속으로 끌어내릴 수가 없어요. 왜냐면 우리 삼촌은 사심 없이 너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거든요.” “만약 그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 사이에 아마 누군가가 회장님께 더러운 물을 몇 통 더 뿌렸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상대방은 정밀하게 배치를 해 두었지만 몇 가지 명백한 허점이 있어 회장님을 건져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하현은 차창을
“그럼 회장님 말씀은……”슬기는 생각에 잠겼다. “섬나라 사람들을 해결하고 방현진을 해결하면 심가의 문제는 자연히 없어진다는 말씀이시죠?”하현은 한숨을 쉬었다. “다만 우리들이 이 점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상대방도 반드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야.”“그러니 방현진이든 미야모토는 내가 살아서 떠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는 없어.” 곧이어 하현과 슬기 두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하현은 왼손으로 슬기의 허벅지를 세게 눌렀는데 섬세한 손길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신호등에 멈춰서 있던 포르쉐가 갑자기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달려 나갔다. “펑______”거의 동시에 총알 하나가 차 뒷좌석 유리창을 깼고 유리알들이 시트에 떨어졌다. 방금 하현의 속도가 조금만 느렸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저격수!” 하현은 얼굴빛이 굳어졌다. 방현진이 저격수까지 보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은 이미 대하의 규정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슬기의 안색도 순간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들을 세게 돌렸다. 포르쉐 918은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 방향으로 표류했다. “펑______”거의 동시에 또 한 발의 총알이 날아와 맞은편 화물차에 떨어졌다. 화물차 운전자는 비명을 질렀고 차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신호등에 부딪혔다! 사방에서 몰려오던 차들로 갑자기 막히는 바람에 많은 운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아무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때 누군가가 제일 먼저 신고를 했고 멀리서 경찰차가 왔다. 하현과 슬기는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하현이 고개를 돌려 한 쪽을 쳐다보니 멀리 폐허가 된 오피스텔에서 붉은 점이 반짝였다. 분명 누군가가 적외선으로 이쪽을 겨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면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채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래서 얼굴만 알아
하현은 냉담한 기색이었다. 상대방이 날뛰는 것에 화를 내지 않고 재빨리 피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해 버려진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와, 재미있네!”오피스텔에서 넓은 두루마기를 걸친 저격수가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로 보아 여자인 것 같았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가면을 벗고 의아한 기색으로 낯선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탄약을 채우기 시작했고, 동시에 하현이 계단을 오를 때 반드시 지나야 할 곳을 향해 저격용 화기를 설치하고는 천둥 같은 일격을 준비했다. 막 머리를 내밀었던 하현은 총탄이 날아와 뒤로 물러났는데 머리 위의 자갈이 깨지면서 하마터면 직격탄을 맞을 뻔했다. 자신의 필살의 한 방이 또 실패하자 저격수는 표정이 굳어졌고 하현에 대해 조금 더 신중을 기했다. 그녀는 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킬러로 항상 한 방으로 케이오를 시켰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하현은 계속해서 그녀의 흐름을 깨뜨렸다. 이것은 그녀를 두렵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전의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 이 순간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냉정을 되찾았고, 손에 든 저격용 화기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다른 방향으로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펑’하고 또 큰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자신이 또 다른 방향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하현을 맞출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은 외투 한 벌만 그 자리에 나타났고 외투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하현은 이미 사라졌고 방금 다급했던 발자국 소리도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 “제기랄!”저격수는 안색이 다시 변했다. 하현의 몸놀림이 이 정도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짧은 거리에서 총을 쏘면 아무도 그녀의 일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냥감이 이렇게 잡기 어려울 줄은 몰랐다.그러나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격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휴대용 수류탄을 꺼내 깔끔하게 앞을 향해 내던졌다. “쾅______”큰 소리가 나더니 건물에 큰 구멍이 뚫렸다
하현은 뒷짐을 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의 움직임은 빨라 보이지 않았지만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거리가 좁혀지더니 세 걸음 만에 저격수의 안색이 일변했다. 하현은 아주 가뿐하게 세 걸음으로 양측의 거리를 최대치로 좁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저격수가 허술한 틈을 타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네가 졌어.”하현은 담담한 기색이었다.“저격수가 상대를 가까이 오게 했다는 건 죽음이 이미 코 앞에 있다는 뜻이야. 만약 나라면 이럴 때 손에 들고 있는 총은 내려놓고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했을 거야.” “이렇게 하면 내가 너를 죽이지 않고 법정으로 보낼지도 모르잖아. 그럼 넌 목숨은 건질 수도 있어.”하현이 웃는 모습을 보고 저격수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난 후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다만 총이 떨어지는 순간 그녀의 오른손에 비수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하현은 물러서지 않았고, 방금 길에서 닥치는 대로 주워 든 쇠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큰 소리가 나더니 양측의 무기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저격수는 끙끙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생겼다. 하현은 별 다른 기색 없이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놀고 있었다. “저격수가 저격을 실패한 후에도 나와 가까이서 싸우려고 하다니 네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저격수는 입을 열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보니까 너를 손 좀 봐줘야 나랑 대화할 마음이 생길 것 같네.” 하현은 웃음을 거두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안색이 변하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다만 물러나는 동시에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고 넓은 두루마기 속에서 푸른 빛을 띤 칼 십여 자루가 날아갔다. 하현은 손에 든 쇠파이프를 휘두르더니 순식간에 칼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광경을 본 저격수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욕을
뺨 한 대로 이 저격수는 십여 미터나 날아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풉!”저격수는 피를 마구 뿜어댔고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그녀의 옷은 산산조각이 났고 아래 부분에 문신이 드러났다. 하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표정이 좀 이상해졌다. 신당류!?……두 시간 후 대구 교외의 한 산장. 이곳은 변백범과 사람들이 찾은 터전 중에 하나인데 조금 낡았지만 외지고 조용했다. 하현이 야식을 먹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뒤뜰에 있던 조남헌이 걸어 나오더니 두 손을 닦으며 빠르게 말했다. “지회장님, 그 섬나라 여편네가 이미 자백을 했습니다.”“야마구치 카즈코는 섬나라 신당류 킬러 중 한 사람인데 화기를 아주 잘 다루고 특히 저격 화기를 잘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격술은 전 세계 10위 안에 들고요.”“그녀는 최근에 대구로 파견돼서 오게 됐고, 그녀와 함께 온 섬나라 신당류 고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서로 신분을 모르기 때문에 그녀도 누가 왔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그녀는 미야모토의 명령을 따르고 있어요.”“이번에 길에서 지회장님을 죽이려고 한 건 미야모토의 명령이었어요.”“지회장님이 경매장에서 방현진의 체면을 구기셨잖아요.”“거기다 미야모토가 뱀에 다리를 그려 넣어 지회장님이 경찰서에서 무사히 나오게 되니 얼마나 웃음거리가 됐는지 몰라요.” “그래서 지회장님이 경찰서에서 떠난 후 제일 먼저 지회장님을 죽이려고 한 거예요. 이건 미야모토가 방현진에게 해명하려는 것이었어요.”“물론 현재로서는 이 해명은 벌써 실패했습니다.”하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직접 차 한 잔을 따라 조남헌 앞으로 가져다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밝혀 내다니 정말 수고 많았네.”사건이 발생한 지 지금 두 시간도 안됐는데 조남헌이 이렇게 많은 비밀을 끄집어내려면 분명 있는 힘을 다했을 것이다. 조남헌은 공손히 찻잔을 받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마셨다. 하현이
이 생각에 미치자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너 진주희한테 가서 네가 대구 내에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협조 하라고 전해.”“저격수를 더 심문해서 더 많은 단서, 더 많은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살펴봐.”“그리고 반드시 빨리 처리해야 해.”“네!” 조남헌은 숙연한 기색이었다. 그는 하현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는 몰랐지만 기왕 하현이 죽으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그는 단지 완수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현은 마음 속으로 섬나라 사람들을 좀 더 경계했다. 임복원을 처음 만났던 일이든, 용문에서 일어난 일이든, 심가의 일이든 이 모든 일에는 섬나라 신당류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만약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신당류의 목적을 파악하지 못하면 아마 나중에 큰 손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쾅______”하현이 다른 일을 시키려고 할 때 밖에서 갑자기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요타와 부딪혀 산장 철문이 열린 것이다. 이 사람들은 찰나였을 뿐이었지만 산장을 에워쌌다. 그 중 검은 양복을 입은 키 큰 남자가 앞장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살을 에는 듯 차가운 기색으로 말했다. “하씨, 나는 신당류 마루야마야!”“네가 내 후배 야마구치 카즈코를 잡아 갔다고 하던데!”“내가 1분의 시간을 줄게. 당장 사람을 풀어줘!”“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이곳을 초토화 시키고 너를 산산조각 낼 거야.”이곳은 황량한 교외 지역이라 신당류는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이곳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밀입국 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처럼 소위 신당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기세가 무섭기 그지없었다. 용문 대구 지회의 자제들도 한번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모으기는 아주 어려웠다.순간 긴장된 분위기가 되었다. 조남헌은 눈에 경련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회장님, 사람을 부를까요?”조남헌은 대구에서 오랫동안 지냈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한 눈에 알아차렸다. 양쪽 모두 죽지 않으면
이를 지켜보던 조남헌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지회장님, 저는 백범 형님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근데 상대는 몇 백 명이에요!”“두 주먹으로는 네 손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나이라도 많은 사람은 당해내지 못해요.”“백범 형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덤벼들면 버틸 수 없을 겁니다!”조남헌도 변백범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혼자 싸우는 거라면 마루야마는 그의 칼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마루야마는 보기에 허풍이 좀 있어 보였다.수십 명이 함께 덤벼들어도 변백범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수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한 사람에 한 번씩 침을 뱉는다고 해도 익사할 수 있었다. 변백범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는 것은 죽으려고 하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6대 분파가 광명정 꼭대기를 포위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장무기가 그렇게 대단했는데도 전차 수레바퀴에 치여 죽을 뻔 하지 않았는가?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섬나라 사람들은 무슨 사람들의 도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함께 덤벼들 것이다. “침착해, 정말 작은 일일 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범이는 내 곁에 오래 있었고 전에 링에서 벌인 일련의 치열한 전투까지 더해져 이제는 거의 돌파하기 직전에 있어.” “오늘 밤 만약 몸을 던지면 돌파할 수 있을 거야.”“이때부터 병광급 고수가 되는 거지.”“동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셈이지.”하현의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변백범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현의 정체를 잘 모르지만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대장이 이번 판에서 돌파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럼 반드시 돌파하게 될 것이다. 이기면 그는 병왕이 될 것이다! 이로써 오랜 숙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진다면 그저 죽는 것뿐이니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변백범이 침착한 얼굴로 나가는 것을 보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