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상황이 발전함에 따라서 왕화천과 정용이 더 미쳐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 두 사람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 한 주아는 위험해 처할 것이다. 자신은 또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진주희도 자신의 임무가 있었다. 이때 주변에 확실히 왕주아를 지켜줄 사람이 부족했다. 사종국은 비록 실력은 보통이었지만 적어도 일반 사람들보다는 나았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구조를 요청할 능력은 있지 않겠는가?사종국은 안색이 변하더니 잠시 후 말했다. “하 도련님, 제가 남아 있겠다고 약속드릴 수는 있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말해봐.”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진주희에게 전해준 수법을 저에게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사종국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하현은 방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뺨을 날렸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부수지 못할 것이 없는 천하 무술이어도 속도는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실제로 발휘되었다. 그는 정말 배우고 싶었다. 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남아서 주아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이 수법을 전수해주지.”“하지만 천천히 가르쳐 줄 시간은 없어. 진주희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봐. 진주희가 이미 깨달았으니까.”“네!”사종국은 감히 하현에게 직접 가르쳐 달라고 강요하지 못했다. 사실 하현이 이 조건을 수락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뜻밖의 기쁨이었다. 왕주아의 일을 처리하고 몇 마디 말로 그녀를 위로한 후 하현은 지하실로 갔다. 원래 헬스장으로 쓰던 지하실이 지금은 취조실로 바뀌었다. 진주희는 이런 방면에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반나절이 되도록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폐인이 된 양성호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이미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무 말도 안 할 거야?”하현은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진주희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 도련님, 부하들이 무능합니다
하현의 질문을 듣고 있자니 양성호의 안색이 변하고 또 변했다. 잠시 후 그의 눈빛은 더없이 무거워졌다. “하현, 너 도대체 누구야?”“너 왜 이렇게 용문과 정 세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거야?”“이 일들이 너랑 관련이 있는 거야?”원래 양성호가 보기에 하현은 시시비비를 가릴 줄 모르고 정용을 질투해 그저 다투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하현의 목적은 분명했다. 그는 용문을 겨냥해 온 것이다. 심지어 정용과 왕화천 두 사람이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그들은 이미 하현의 눈에 들어있었다. “내가 누군지는 꼬치꼬치 캐묻지 마.”“네가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너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려주면 돼.”“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섬나라 신당류에도 관심이 많아. 만약 네가 신당류에 대한 정보를 나한테 줄 수 있다면 아마 너를 살려줄지도 몰라.”‘섬나라 신당류’라는 여섯 글자를 듣고 양성호의 안색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그도 똑똑한 사람이라 이때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말했다. “알겠다!”“너 임복원 부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그러는 구나!”“정호준도 네가 죽였지?”“네가 벨라루스에 가서 종민우를 건드린 것도 일부러 그런 거고!”한 가지 문제를 이해한 후 양성호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발견했다.하현은 양성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반문하며 말했다. “그럼 임복원 부부의 경우도 섬나라 신당류와 관련이 있는 거야?”“섬나라 신당류가 정용과도 관계가 있는 거고?”“내가 추측한 게 맞지?”양성호는 안색이 변했지만 이때 그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 도령, 나는 도대체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겠고!”“뭘 하고 싶어하는 지는 더더욱 모르겠어!”“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섬나라 신당류의 일과 정 세자의 일 모두 수심이 더없이 깊다는 거야!”“네가 어떤 신분이든 알 자격이 없어!”“내가 조언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정용의 1호 킬러잖아.”“근데 문제는 네가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는 단지 그의 돈에게만 충성할 뿐이야.”“너 같은 사람은 언제든지 무사히 물러날 수 있도록 분명 몇 가지 수는 남겨뒀을 거야.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이런 일들이 숨겨져 있었다 하더라도 너의 신분으로는 대개 다 알고 있을 거야.” “하현,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양성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뭔가를 파악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야. 정말 중요한 것은 정 세자가 나에게 알려 줄 리가 없잖아.”“그러니 나 때문에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네.”하현은 웃었다. “그래? 그럼 우리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한 가지만 물을게. 만약 네가 죽으면 네 아내와 네 가족은 어떻게 될까?”“네가 해외에 계좌를 가지고 있고 안에는 그들이 수 백 년 동안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다고 나한테 말해줄 필요 없어.” “지금 이 계좌는 이미 없어졌으니까.”말을 마치고 하현은 핸드폰에서 캡처한 사진을 열어 양성호에게 보여주었다. 양성호의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캡처한 계좌 번호는 더없이 익숙한 번호였다. 바로 그가 해외에서 개설한 계좌번호였다. 하현이 계좌 번호를 얻었으니 그의 능력으로 자신의 계좌를 지금부터 동결시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두려워 할 수 있겠는가? 양성호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죽을 사람인데 네가 내 계좌 번호를 동결하면 또 뭐 어때? 어차피 쓸 수도 없을 텐데.”“그래? 그럼 그들은 쓸모가 있을까?”하현은 또 한 장의 캡처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북유럽 스타일의 별장에서 한 백인 여성과 어린 소녀가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영구한 중립국은 안전하지만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현지 경찰서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현이 양성호를 처리하고 있을 때. 대구 보배 병원에서 안 좋은 기색으로 왕화천은 중환자실 밖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뇌외과의 명수, 심장내과의 자존심 등등 대구에서 덕성과 명망 높은 의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양쪽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왕화천은 이 장면을 보며 안색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박 교수님, 방안이 나왔나요?”“벌써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계속 미루다가는 아내가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왕화천의 안색은 극도로 안 좋아졌다.김애선은 몇 시간 동안 병세가 조금 호전돼 약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소위 호전이라는 것은 여름의 반딧불처럼 모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절망스러울 뿐이었다. “왕 회장님, 제가 방안을 내놓기 싫은 것이 아니라 부인의 병소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딱 보기에 50대로 보이는 의사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병소를 찾지 못하면 수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지 근본 원인은 치료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12시간 후에는 부인이……”“완전 식물인간이 될 겁니다!”“그때가 되면 생각마저 굳어져 링거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산 죽은 사람이 될 겁니다.”“그러니 왕 회장님, 남은 몇 시간 동안 부인과 잘 상의해 보세요.”“때로는 안락사가 평생 살아있는 시체로 지내는 것보다 서로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지 않고 더 깔끔할 수도 있습니다.”박 교수는 말을 마치고 탄식하는 기색이었다. 의사는 부모의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는 김애선을 치료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정말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함부로 수술을 해서 김애선이 죽는다면 박 교수는 왕화천이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 봐 두
장북산 세 글자를 듣자 왕화천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듣기로 장 선생님은 연경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박 교수님, 자신 있어요?”“네. 저는 어쨌든 장 선생님과 오랜 친분이 있고 제 체면을 세워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모시고 올 수 있을 겁니다.”박 교수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았다. “다만……”“다만 뭐요?”왕화천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제가 방금 그의 조수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수가 말하길 장 선생님이 지금 큰 수술을 하고 있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합니다.”“장 선생님의 수술 과정에서는 누구도 방해를 해서는 안 되거든요.”“그래서 장 선생님을 모셔올 자신은 있는데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기 때문에 최상의 경우라고 해도 24시간 후에 도착을 하게 될 거예요.”“근데 부인께서 24시간을 버티리라고는 보장할 수가 없어요.”박 교수의 안색은 매우 나빴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그는 빨리 오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사람은 국수 장북산이었다. 이런 인물은 그뿐만 아니라 연경의 세자라고 해도 결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아직 수술 중이었다. 만약 강제로 장북산의 수술을 강제로 중단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왕화천의 얼굴은 순간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는 대구에서 약간의 권세가 있긴 했지만 연경에서는 이런 권세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 교수는 장북산은 강제로 데려올 수 없었고 왕화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왕화천은 분노를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박 교수, 이번 일을 잘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장 선생님을 모셔와 주세요.”“그리고 제 부인의 증상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세요.”“약은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왕화천은 맨 마지막 말을 할 때 조금 이를 갈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김애선이 만약 식물인간이 된다면 금정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왕화천은 앞으로 나와 김애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 교수가 이미 장북산 선생을 초청했어.”“장 선생님 쪽에서 수술이 끝나기만 하면 제일 먼저 올 거야.”“그러니까 당신은 꼭 버텨야 해!”김애선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방금 당신들이 한 말 다 들었어요.”“만약 장북산이 3일 내내 수술을 한다면요? 수술 후에 환자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떠날 수 없다면요?”“아니면 그가 기꺼이 오긴 했지만 내가 이미 식물인간으로 변해 있으면요?”“왕 어르신, 우리는 기다릴 수 없어요! 반드시 나를 구해야 해요!”왕화천은 눈꺼풀이 살짝 뛰었다. 그가 어떻게 김애선이 말한 이런 일들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때 여전히 위로하며 말했다. “안심해. 장 선생님이 반드시 제때에 나타날 거니까.”김애선은 처량하게 웃었다.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요?”“나는 이 병으로 일찍이 수많은 연줄로 그를 찾았어요. 하지만 그의 답장은 항상 똑같았어요. 번호를 매겨야 한다고요. 모든 환자들이 다 그를 필요로 하니까요!”“그가 있는 곳에는 번호가 벌써 5년까지 걸려 있어요. 우리가 5년까지 기다릴 수 있겠어요?”“게다가 우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장북산이 나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요?”“만약 그가 수술에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해요? 그냥 식물인간으로 살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이런 해결책을 생각해 내면서 김애선은 몸서리를 쳤다. 이전에 줄곧 왕주아의 어머니가 이렇게 죽기 보다 못한 최후를 맞았다고 비웃어 왔다. 하지만 자신도 이런 최후를 맞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인과응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장북산이 안되면 우리는 다른 전문가도 찾아 볼 거야!”왕화천은 한 마디 한 마디 입을 열었다. “나는 재주 좋은 의사 한 사람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이 그렇게
밤 자정 12시. 야식 먹을 시간. 이 시간 용문회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이 왔을 때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왕화천이 용문회를 통째로 빌렸다. 왕화천은 이번에 홀 중앙에 앉아 피 묻은 스테이크를 정성스럽게 자르고 있었다. 그는 입안에서 피비린내를 맛보듯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또한 그의 곁에는 선풍도골의 분위기를 풍기는 어르신이 손에 먼지떨이를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을 들고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핸드폰 화면이 간간이 켜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인간 세상과는 관계없는 신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현은 왕화천 맞은편의 의자를 아무렇게나 당겨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국수를 가져다 준 후에야 하현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왕 선생님, 이 한밤중에 또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왕화천은 지난번 만났을 때 보다 지금 훨씬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하현이 국수 한 그릇만 주문한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자 종업원이 미리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음식이 다 준비되자 왕화천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도령,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이런 것들이 입맛에 맞는 지 한 번 먹어봐.”“만약 입맛에 안 맞으면 얼마든지 말 해. 생각나는 건 뭐든지 요리사가 다 만들 수 있을 테니까.”열정은 대단했지만 수수한 옷을 입고 있는 도인의 신분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하현은 젓가락을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다른 건 관심 없어요. 국수 한 그릇이면 돼요.”“제가 가장 두려운 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2만 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는데 이것은 직접 계산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장면은 왕화천의 눈동자를 약간 움츠리게 했다. 을 보고 있던 수수한 옷차림의 도인은 이때 하현을 올려다 보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현 이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하현의 감춰진 말에 왕화천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살짝 굳어졌다. 하현 이 놈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여지원은 이때 무거운 기색으로 하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서로 여러 번 만나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현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상복 차림의 도인은 옆에서 실눈으로 하현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눈동자에 경멸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현은 이때도 왕화천에게 계속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고 실눈을 뜨고 말했다. “자, 왕 부회장님 잡담은 이제 그만하시죠.”“한밤중에 야식이나 먹자고 불러내신 건 아니겠죠?”“일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하세요!”“일이 없으면 저는 가볼게요. 당신 딸이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올 때부터 이미 왕화천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계속해서 왕화천을 자극했다. 이 생각이 깊은 부회장이 얼마나 기량이 있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왕화천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뒷말은 무시한 뒤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하 도령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을 하니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지.”“처음에 김애선의 문제를 한 눈에 알아봤다고 들었어. 그리고 올해 병이 도지면 온몸이 굳어져 식물인간이 된다고 단정했다면서.”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요. 증상이 뚜렷해요. 대구의 전문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북산 선생님을 모셔온다고 해도 김애선을 구할 수 없을 거예요.”왕화천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김애선은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무술을 연마하다가 잘못된 기를 흡수했기 때문에 그래요.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주화입마라고 해요.”왕화천의 말투는 더욱 다급해졌다. “그럼 네가 이 소위 주화입마라는 증상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 거야?”“있지요. 심지어 아주 간단해요.”하현은 담담한 기색이었다.“내가 손을 쓰면 30분만에 그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그리고 저는 그녀가 앞으로 발병하지
관공서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문밖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주택건설부 수장 주광록이었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의 친동생이자 경찰서 수장인 주향무가 함께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 모이니 더욱 살벌하고 근엄한 분위기가 풍겼다.“주 부장님...”황택호와 이홍파는 모두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오늘 무슨 일로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오셨습니까?”“무슨 일이 있으시면 부하들한테 전화 한 통만 하시면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직접 오셨어요?!”주광록은 두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곧바로 하현에게 달려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하 대사님! 이렇게 또 뵙네요!”“덕으로 원한을 대신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이 주광록이 눈이 멀었어요!”“제발 대인배의 도량으로 너그러이 봐주시고 더 이상 그 일은 따지지 말아 주십시오.”“제발 저를 좀 살펴봐 주세요!”주광록은 겁먹은 표정으로 아우디 차량 열쇠를 꺼냈다.혹시라도 하현이 거절할까 봐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주 부장님, 제가 도와드리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문제는 저의 증명서가 가짜라고, 다 무효라고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법 풍수 관상 및 무면허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만약 제가 저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부장님한테 뭐라고 말한다면 저들이 주장하는 죄목의 증거가 눈앞에 존재하는 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요?”“그러면 원죄에 죄가 더해져서 더 무거운 벌을 받겠죠. 저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개자식!”하현의 말을 듣고 주광록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순간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관청 직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힘쓰기는커녕 권력을 믿고 함부로 남을 괴롭히고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다니!이런 무법천지를 봤나!주광록의 얼굴에는 분노로 차올랐다.“오늘 당신들은
한바탕 자신의 부하에게 화풀이를 한 황택호의 시선이 이 사건의 장본인인 이홍파에게 떨어졌다.이홍파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흐린 낯빛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하현이 데릴사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떻게 데릴사위 주변에 이렇게 대단한 거물들이 몰려들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있는가?이건 정상이 아니다!“두 분, 머리가 좀 어지럽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온몸에선 약간 오한도 느껴지시죠?”이때 하현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고 눈동자에는 냉소가 가득 차 있었다.지금껏 있었던 일은 하현에게 있어 재미난 연극 한 편이나 마찬가지였다.“이제야 두려움을 알았다니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차갑게 비꼬는 하현의 말에 이홍파는 참을 수가 없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그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하현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개자식! 너 지금 뭐라고 했어?”“부자 몇 명 안다고 지금 유세 떠는 거야?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잘 들어!”“당신은 불법으로 풍수 관상을 봐주다가 이제 우리 손에 넘어왔어. 천왕 노자가 와도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을 거야!”“내가 말하는 거 똑똑히 기억해!”“지금 당장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게 좋을 거야! 나중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이홍파는 자신의 뒤에 있는 그분이 금정에서는 안 될 것이 없는 무적의 존재라는 것을 확신했다.하현의 주변에 있는 부자들이 얼핏 무서워 보이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하현을 몰아붙이는 조직들과 그가 이미 한배를 탔다는 것이다.그래서 이제 와 기세를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내가 불법으로 풍수 관상을 봤는지, 내 증명서들이 가짜인지 아닌지, 당신들 보고도 전혀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이홍파와 황택호는 이 말을 듣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불안한 기색이 눈동자를 스쳐 지나갔다.순간 하현의 증명서가 완벽했다는 사실
”개자식! 이게 무슨 태도야?!”“어?!”하현의 모습을 보고 이홍파는 분노가 치밀었다.“내가 당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홍파가 손을 쓰려고 했을 때 취조실 바깥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빠르게 노크를 했고 곧이어 잔뜩 긴장한 얼굴의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황택호는 침착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이홍파의 행동을 제지하며 옆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자식의 동료들이 입을 열었어?”부하 형사가 빠르게 말했다.“반장님, 이놈의 공범들의 신원을 모두 다 파악했습니다!”“잘 됐군. 요즘 놈들은 관뚜껑을 보기 전까진 정신을 못 차리거든...”황택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일부로 하현을 힐끔 쳐다보며 보이지 않는 압박을 주었다.그러나 하현은 그의 눈빛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눈동자에는 미동이 없었다.“말해 봐! 그 패거리들이 어떤 신분이야? 하 씨 이놈이 잘 이해하도록 보고해 봐!”“반장님, 그게...”부하 형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사람은 바로 신사 상인 연합회 수장이라고 합니다. 수하에 몇십 명의 건달들을 거느리고 있고요...”황택호는 부하의 말을 듣고 희미하게 눈을 흘기며 냉랭하게 말했다.“신사 상인 연합회? 그 사람들이 이런 막노동을 할 줄은 몰랐군. 보아하니 엄도훈도 요즘 할 일이 없는 모양이야...”비록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황택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신사 상인 연합회가 꽤나 힘이 있는 집단이었지만 그가 관리하고 상대하는 조직이었다.엄도훈같이 똑똑한 사람이 이런 조무래기들 때문에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자 황택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래, 조사한 걸 계속 말해 봐. 무슨 죄가 있는지, 하현과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쓸모없는 것들!”황택호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다른 놈들의 신분은?”“놈들?”이
하현 일행은 모두 공무 차량에 탑승했다.심지어 핸드폰도 모두 압수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되었다.“웅! 웅! 웅!”차가 중간쯤 도착했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 위에는 낯선 전화번호가 표시되었다.황택호는 불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맞은편에서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저기 하 대사님 맞으시죠? 저는 일전에...”황택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 대사는 무슨 하 대사! 하현은 무면허로 관상을 보고 불법적으로 영업을 해서 우리한테 잡혔어!”“내가 좋은 마음으로 충고하는데, 앞으로 이 사기꾼 찾지 마!”“곧 감옥에 처박힐 테니까!”상대는 잠시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주광록인데, 당신은 누구야?”“내가 누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상대방의 말투에 황택호는 화가 났다.“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면 당신도 같이 잡아넣을 거야! 알았어?”“알았냐고?!”말을 마친 후 황택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었다....공무 차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정 경찰서 제6지서에 도착했다.취조실 안은 에어컨이 강하게 켜져 있어 방 전체가 싸늘했다.하현 앞에는 싸구려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커피라고 하기엔 너무나 구역질 나는 냄새가 풍겼다.그의 맞은편에는 황택호와 이홍파 두 사람이 다리를 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노려보며 건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이름!”“성별!”“직업!”“돈이 어디서 나서 이 풍수관을 산 거야?!”“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였어?”“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냔 말이야?!”“어서 말해!”두 사람은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칼날 같은 말투로 하현을 몰아붙였다.분명 그들은 심문 경험이 매우 풍부한 것 같았다.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여 하현을 단죄하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
하현에게 서류로 얼굴을 두드려 맞은 듯한 이홍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화를 내고 싶어도 더 이상 핑곗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때 나박하는 이러다 둘 사이에 충돌이라도 일어날까 봐 서둘러 억지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와 화해를 시도했다.“이 팀장님! 오해예요! 오늘 오해하셔서 이렇게 헛걸음을 하셨네요!”“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만났는데 헛걸음만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제가 점심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오해로 시작되었지만 모두 좋게 끝나야지요!”“오해? 뭐가 오해야? 내가 당신을 오해한 모양이군!”이홍파는 나박하를 발로 걷어차며 악랄하게 입을 열었다.“당신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우리한테 밥을 사네 마네 이런 식으로 뇌물을 주려고 시도한다면 공무집행 방해로 당장 고발할 거야!”“감옥에 당장 처넣을 거라고!”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려다 실패로 돌아가자 엄한 사람한테 적반하장격으로 화풀이를 하는 이홍파를 보고 나박하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나박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 때 하현이 급히 손짓을 하며 그를 말렸다.그러고 나서 하현은 웃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자, 두 분. 우리 집복당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아셨죠? 난 자격증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조사가 끝났고 이번에는 당신들이 해명할 차례입니다.”“어서 설명해 보시죠!”이홍파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지금까지 함부로 횡포를 부리던 그의 성정으로 봤을 때 어떻게 평범한 시민한테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해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그건 너무나 창피스러운 일이었다!이때 한쪽에 서 있던 황택호가 갑자기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이런 조그만 풍수관이 모든 증명서를 다 갖추고 있다고?”“흥! 난 믿지 않아!”“설마 가짜 증명서를 만든 건 아니겠지?”“어디 한번 보자고!”말을 마치자마자 황택호는 이홍파
”불법적인 일?”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던 손님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형사님, 뭔가 잘못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맞아요. 이곳 집복당은 오랫동안 운영되어 오던 풍수관이에요. 이웃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 단골이고요!”“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결코 함부로 부당한 요금을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그런데 불법적인 일이라니요? 수상한 일이라니요?”“맞아요. 집복당은 왕조 시대 때부터 있었는데 어떻게 절차상 미비한 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설마 두 분 머리를 다치신 건 아닙니까? 컨디션이 좀 안 좋으신 건 아닌지요?”이웃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이홍파와 황택호는 이 모습을 보고 흰자위를 가득 드러내며 버럭 했다.“우리는 관청을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고 있어요.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까?”“이 집복당은 사이비 집단입니다!”“그걸 왜 모르는 거예요?”이홍파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어서 물러들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도 다 잡아서 조사할 겁니다!”“잘못이 있든 어떻든, 그것은 당신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풍수관이란 곳은 원래 민간이 하는 작은 소일거리 장사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믿고 있어요!”“왜냐하면 우린 여기서 많은 일들을 해결했거든요. 우리 딸이 결혼했을 때도 여기서 날을 잡아 결혼했어요. 그래서 지금 아주 화목하게 잘 삽니다!”“특히 하 대사는 우리들의 구세주입니다!”“경찰서와 주택건설부 사람들이 쓸데없이 여기 와서 조사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폐유 처리 업체나 두부 공장 공정이나 조사하세요! 괜히 우리 하 대사 귀찮게 하지 말고요!”“점점 더 많은 손님들과 이웃들이 몰려들었다.합동 단속반이 집복당 간판을 철거하고 집복당을 봉쇄한다고 하니 다들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합동 단속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닥쳐! 모두 닥쳐요!”황택호는 일순 안색이 험상궂게 변했고 손을 세차게 흔들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