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퉤!”양성호는 핏물을 토해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하씨, 사내 대장부는 차라리 죽더라도 모욕을 당할 수는 없어!”“날 죽여!”“난 굴복하지 않을 거야.”“좋아.”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성호의 왼쪽 손목을 밟았다. ‘털컥’하는 소리와 함께 양성호는 비명을 질렀고 안색은 창백함이 극에 달했다. 그는 총잡이로 손에 의지해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지금 하현에게 왼손이 부러졌으니 반은 폐기가 된 셈이었다. “어떻게? 지금 말할 생각이 들었어?”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하현, 네가 배짱이 있으면 날 죽여 봐. 나한테 이렇게 무슨 영웅호걸이라고. 너는……”“털컥______”양성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그의 오른손을 밟아 부러뜨렸다.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는 양성호를 보며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하실로 데리고 가. 천천히 심문하면 그가 우리에게 협조할 거야.”“그리고 이 곳은 사람을 불러서 수리해.”하현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간신히 별장을 가지게 되었는데 결국 매일 사람들이 와서 때리고 부수니 다시 보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진주희는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빨랐다. 한편으로 그녀는 직접 양성호를 심문하러 갔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녀의 심복들은 현장을 치우기 시작했고, 그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도 모두 끌려가 처리되었다. 난장판이었던 현장을 다 치우고 목욕을 한 뒤 하현은 다시 배달 음식을 몇 개 주문했다. 왕주아에게 배달한 음식을 나눠준 뒤에야 하현은 음식을 들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형님, 한 입 드실래요?”사종국은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방금 전의 하현의 수법이 떠오르자 그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죄송합니다!”이때 사종국은 더 이상 청허 도관의 제자인 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비굴함이 극에 달했다. “하 도련님, 제가 눈이 있었음에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네요!”“큰 소리를 쳤습니다!”“
하현은 상황이 발전함에 따라서 왕화천과 정용이 더 미쳐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 두 사람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 한 주아는 위험해 처할 것이다. 자신은 또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진주희도 자신의 임무가 있었다. 이때 주변에 확실히 왕주아를 지켜줄 사람이 부족했다. 사종국은 비록 실력은 보통이었지만 적어도 일반 사람들보다는 나았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구조를 요청할 능력은 있지 않겠는가?사종국은 안색이 변하더니 잠시 후 말했다. “하 도련님, 제가 남아 있겠다고 약속드릴 수는 있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말해봐.”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진주희에게 전해준 수법을 저에게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사종국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하현은 방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뺨을 날렸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부수지 못할 것이 없는 천하 무술이어도 속도는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실제로 발휘되었다. 그는 정말 배우고 싶었다. 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남아서 주아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이 수법을 전수해주지.”“하지만 천천히 가르쳐 줄 시간은 없어. 진주희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봐. 진주희가 이미 깨달았으니까.”“네!”사종국은 감히 하현에게 직접 가르쳐 달라고 강요하지 못했다. 사실 하현이 이 조건을 수락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뜻밖의 기쁨이었다. 왕주아의 일을 처리하고 몇 마디 말로 그녀를 위로한 후 하현은 지하실로 갔다. 원래 헬스장으로 쓰던 지하실이 지금은 취조실로 바뀌었다. 진주희는 이런 방면에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반나절이 되도록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폐인이 된 양성호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이미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무 말도 안 할 거야?”하현은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진주희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 도련님, 부하들이 무능합니다
하현의 질문을 듣고 있자니 양성호의 안색이 변하고 또 변했다. 잠시 후 그의 눈빛은 더없이 무거워졌다. “하현, 너 도대체 누구야?”“너 왜 이렇게 용문과 정 세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거야?”“이 일들이 너랑 관련이 있는 거야?”원래 양성호가 보기에 하현은 시시비비를 가릴 줄 모르고 정용을 질투해 그저 다투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하현의 목적은 분명했다. 그는 용문을 겨냥해 온 것이다. 심지어 정용과 왕화천 두 사람이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그들은 이미 하현의 눈에 들어있었다. “내가 누군지는 꼬치꼬치 캐묻지 마.”“네가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너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려주면 돼.”“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섬나라 신당류에도 관심이 많아. 만약 네가 신당류에 대한 정보를 나한테 줄 수 있다면 아마 너를 살려줄지도 몰라.”‘섬나라 신당류’라는 여섯 글자를 듣고 양성호의 안색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그도 똑똑한 사람이라 이때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말했다. “알겠다!”“너 임복원 부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그러는 구나!”“정호준도 네가 죽였지?”“네가 벨라루스에 가서 종민우를 건드린 것도 일부러 그런 거고!”한 가지 문제를 이해한 후 양성호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발견했다.하현은 양성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반문하며 말했다. “그럼 임복원 부부의 경우도 섬나라 신당류와 관련이 있는 거야?”“섬나라 신당류가 정용과도 관계가 있는 거고?”“내가 추측한 게 맞지?”양성호는 안색이 변했지만 이때 그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 도령, 나는 도대체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겠고!”“뭘 하고 싶어하는 지는 더더욱 모르겠어!”“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섬나라 신당류의 일과 정 세자의 일 모두 수심이 더없이 깊다는 거야!”“네가 어떤 신분이든 알 자격이 없어!”“내가 조언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정용의 1호 킬러잖아.”“근데 문제는 네가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는 단지 그의 돈에게만 충성할 뿐이야.”“너 같은 사람은 언제든지 무사히 물러날 수 있도록 분명 몇 가지 수는 남겨뒀을 거야.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이런 일들이 숨겨져 있었다 하더라도 너의 신분으로는 대개 다 알고 있을 거야.” “하현,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양성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뭔가를 파악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야. 정말 중요한 것은 정 세자가 나에게 알려 줄 리가 없잖아.”“그러니 나 때문에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네.”하현은 웃었다. “그래? 그럼 우리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한 가지만 물을게. 만약 네가 죽으면 네 아내와 네 가족은 어떻게 될까?”“네가 해외에 계좌를 가지고 있고 안에는 그들이 수 백 년 동안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다고 나한테 말해줄 필요 없어.” “지금 이 계좌는 이미 없어졌으니까.”말을 마치고 하현은 핸드폰에서 캡처한 사진을 열어 양성호에게 보여주었다. 양성호의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캡처한 계좌 번호는 더없이 익숙한 번호였다. 바로 그가 해외에서 개설한 계좌번호였다. 하현이 계좌 번호를 얻었으니 그의 능력으로 자신의 계좌를 지금부터 동결시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두려워 할 수 있겠는가? 양성호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죽을 사람인데 네가 내 계좌 번호를 동결하면 또 뭐 어때? 어차피 쓸 수도 없을 텐데.”“그래? 그럼 그들은 쓸모가 있을까?”하현은 또 한 장의 캡처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북유럽 스타일의 별장에서 한 백인 여성과 어린 소녀가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영구한 중립국은 안전하지만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현지 경찰서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현이 양성호를 처리하고 있을 때. 대구 보배 병원에서 안 좋은 기색으로 왕화천은 중환자실 밖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뇌외과의 명수, 심장내과의 자존심 등등 대구에서 덕성과 명망 높은 의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양쪽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왕화천은 이 장면을 보며 안색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박 교수님, 방안이 나왔나요?”“벌써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계속 미루다가는 아내가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왕화천의 안색은 극도로 안 좋아졌다.김애선은 몇 시간 동안 병세가 조금 호전돼 약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소위 호전이라는 것은 여름의 반딧불처럼 모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절망스러울 뿐이었다. “왕 회장님, 제가 방안을 내놓기 싫은 것이 아니라 부인의 병소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딱 보기에 50대로 보이는 의사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병소를 찾지 못하면 수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지 근본 원인은 치료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12시간 후에는 부인이……”“완전 식물인간이 될 겁니다!”“그때가 되면 생각마저 굳어져 링거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산 죽은 사람이 될 겁니다.”“그러니 왕 회장님, 남은 몇 시간 동안 부인과 잘 상의해 보세요.”“때로는 안락사가 평생 살아있는 시체로 지내는 것보다 서로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지 않고 더 깔끔할 수도 있습니다.”박 교수는 말을 마치고 탄식하는 기색이었다. 의사는 부모의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는 김애선을 치료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정말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함부로 수술을 해서 김애선이 죽는다면 박 교수는 왕화천이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 봐 두
장북산 세 글자를 듣자 왕화천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듣기로 장 선생님은 연경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박 교수님, 자신 있어요?”“네. 저는 어쨌든 장 선생님과 오랜 친분이 있고 제 체면을 세워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모시고 올 수 있을 겁니다.”박 교수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았다. “다만……”“다만 뭐요?”왕화천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제가 방금 그의 조수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수가 말하길 장 선생님이 지금 큰 수술을 하고 있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합니다.”“장 선생님의 수술 과정에서는 누구도 방해를 해서는 안 되거든요.”“그래서 장 선생님을 모셔올 자신은 있는데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기 때문에 최상의 경우라고 해도 24시간 후에 도착을 하게 될 거예요.”“근데 부인께서 24시간을 버티리라고는 보장할 수가 없어요.”박 교수의 안색은 매우 나빴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그는 빨리 오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사람은 국수 장북산이었다. 이런 인물은 그뿐만 아니라 연경의 세자라고 해도 결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아직 수술 중이었다. 만약 강제로 장북산의 수술을 강제로 중단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왕화천의 얼굴은 순간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는 대구에서 약간의 권세가 있긴 했지만 연경에서는 이런 권세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 교수는 장북산은 강제로 데려올 수 없었고 왕화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왕화천은 분노를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박 교수, 이번 일을 잘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장 선생님을 모셔와 주세요.”“그리고 제 부인의 증상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세요.”“약은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왕화천은 맨 마지막 말을 할 때 조금 이를 갈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김애선이 만약 식물인간이 된다면 금정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왕화천은 앞으로 나와 김애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 교수가 이미 장북산 선생을 초청했어.”“장 선생님 쪽에서 수술이 끝나기만 하면 제일 먼저 올 거야.”“그러니까 당신은 꼭 버텨야 해!”김애선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방금 당신들이 한 말 다 들었어요.”“만약 장북산이 3일 내내 수술을 한다면요? 수술 후에 환자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떠날 수 없다면요?”“아니면 그가 기꺼이 오긴 했지만 내가 이미 식물인간으로 변해 있으면요?”“왕 어르신, 우리는 기다릴 수 없어요! 반드시 나를 구해야 해요!”왕화천은 눈꺼풀이 살짝 뛰었다. 그가 어떻게 김애선이 말한 이런 일들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때 여전히 위로하며 말했다. “안심해. 장 선생님이 반드시 제때에 나타날 거니까.”김애선은 처량하게 웃었다.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요?”“나는 이 병으로 일찍이 수많은 연줄로 그를 찾았어요. 하지만 그의 답장은 항상 똑같았어요. 번호를 매겨야 한다고요. 모든 환자들이 다 그를 필요로 하니까요!”“그가 있는 곳에는 번호가 벌써 5년까지 걸려 있어요. 우리가 5년까지 기다릴 수 있겠어요?”“게다가 우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장북산이 나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요?”“만약 그가 수술에 실패하면 나는 어떻게 해요? 그냥 식물인간으로 살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이런 해결책을 생각해 내면서 김애선은 몸서리를 쳤다. 이전에 줄곧 왕주아의 어머니가 이렇게 죽기 보다 못한 최후를 맞았다고 비웃어 왔다. 하지만 자신도 이런 최후를 맞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인과응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장북산이 안되면 우리는 다른 전문가도 찾아 볼 거야!”왕화천은 한 마디 한 마디 입을 열었다. “나는 재주 좋은 의사 한 사람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이 그렇게
밤 자정 12시. 야식 먹을 시간. 이 시간 용문회는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현이 왔을 때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왕화천이 용문회를 통째로 빌렸다. 왕화천은 이번에 홀 중앙에 앉아 피 묻은 스테이크를 정성스럽게 자르고 있었다. 그는 입안에서 피비린내를 맛보듯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또한 그의 곁에는 선풍도골의 분위기를 풍기는 어르신이 손에 먼지떨이를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을 들고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핸드폰 화면이 간간이 켜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인간 세상과는 관계없는 신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현은 왕화천 맞은편의 의자를 아무렇게나 당겨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국수를 가져다 준 후에야 하현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왕 선생님, 이 한밤중에 또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왕화천은 지난번 만났을 때 보다 지금 훨씬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하현이 국수 한 그릇만 주문한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자 종업원이 미리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음식이 다 준비되자 왕화천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도령,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이런 것들이 입맛에 맞는 지 한 번 먹어봐.”“만약 입맛에 안 맞으면 얼마든지 말 해. 생각나는 건 뭐든지 요리사가 다 만들 수 있을 테니까.”열정은 대단했지만 수수한 옷을 입고 있는 도인의 신분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하현은 젓가락을 들고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다른 건 관심 없어요. 국수 한 그릇이면 돼요.”“제가 가장 두려운 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2만 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는데 이것은 직접 계산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장면은 왕화천의 눈동자를 약간 움츠리게 했다. 을 보고 있던 수수한 옷차림의 도인은 이때 하현을 올려다 보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현 이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