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건국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하현은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당시 그 계집애, 그의 딸 주시현을 생각하자 하현도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그 계집애가 계속 자기를 따라다녔었는데 지금은 분명 처녀로 자랐겠지? 그러나 하현은 조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건국 일가와 연락이 닿았으니 대구에 가면 분명 주씨 집안과 만나게 될 것이다. ……밤 9시가 되도록 설은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현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은아를 찾으러 막 설씨 집안에 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갑자기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하현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더니 우윤식이 온통 굳은 기색으로 차에서 내렸다. “회장님, 한 시간 전에 이 비서한테서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이 비서는 천일그룹의 모든 일을 저에게 넘기고 사직서 한 통을 건네 준 뒤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이 비서 말로는 떠나면 많게는 반 년, 적게는 몇 주 안에 돌아올 거라고 했어요.”“제 생각에는 이 비서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긴 것 같아요. 회장님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슬기가 갑자기 대구로 갔다고?”하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안색은 조금 굳어졌다. 전에 슬기 엄마의 일은 이미 해결되었고 자신도 다음 달 15일에 대구로 가서 심가와 한바탕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이치대로라면 심가가 무슨 일을 벌이면 슬기도 자기에게 말을 해야 맞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일이 이상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하현은 잠시 생각한 후 슬기 엄마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또 슬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고 나왔다. 하현은 안색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일반적으로 이 두 사람의 번호는 개인 번호이고 전용 통신 채널이 있어 함부로 꺼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 다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정말……하현은 눈을 가늘
다음날 아침, 우윤식과 변백범 쪽에서 슬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슬기가 소식을 전해왔는데 딱 네 글자뿐이었다. “괜찮아요.”비록 이 메시지를 받긴 했지만 하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특히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은 다시 전화를 끊었다. 결국 하현은 반드시 먼저 대구에 다녀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하현도 은아에게 무슨 설명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당인준에게 남원에 머물러 은아네 식구들의 안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 설씨 집안의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돕도록 했다. 우윤식은 남아서 천일그룹의 여러 일을 맡았다. 하현은 결국 변백범만 데리고 고속철도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변백범 곁에 있던 공해원과 대도경수 두 사람은 며칠 전 이미 대구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캐고 있었는데 하현이 대구에 온다 것을 알고 그들은 모두 힘을 합쳐 언제든지 국면을 타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속철도에서 하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번에 대구에 가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일이 너무 뒤엉켜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중얼거리더니 하현은 핸드폰을 들고 대구 전화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현이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전화 맞은 편에서 주건국의 목소리는 다소 의심스러웠다.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오늘 마침 일이 있어서 대구로 가는 길이에요. 괜찮으시면 며칠 후에 식사나 같이 하실래요? 어떠세요?”전화 맞은편에서 조건국은 어리둥절해하더니 곧이어 말했다. “비행기 타고 오는 거야? 아니면 기차 타고 오는 거야? 오늘 언제쯤 도착해?”하현은 손목에 찬 골동품 롤렉스를 들여다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점심 전쯤이요. 근데……”주건국은 하현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그럼 오늘 내 기사보고 너 마중 나가라고 할게.”“오늘 점심에 마침 모임이 있으니 같이 참석하자.”“그때 네 이모와 시현이
하현은 냉담한 기색으로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휘두르려고 했다. 바로 이때 푸드 트럭에서 온화하고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정민, 함부로 하지 마!”“푸드 트럭을 점용하고 있는 건 원래 우리가 잘못한 거야. 사람을 함부로 때리는 건 더더욱 잘못된 일이고.”임정민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거만한 기색이 사라졌고 이때 손을 드리우고 말했다. “네.”말을 마친 후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난 후에야 다소 심드렁한 얼굴로 길을 비켜주었다. 하현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푸드 트럭으로 들어갔다. 푸드 트럭 안에는 종업원이 딱 두 명뿐이었다. 맨 가운데 자리에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은 아니지만 기세가 대단하고 높은 사람의 기품이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녀들이 서 있었다. 한 중년의 남자만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열 몇 가지의 맛있는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거의 먹지 않고 젓가락만 살짝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현의 시선은 뭇사람들을 뛰어넘어 이 중년 남성의 얼굴에 떨어졌다. 아마 방금 입을 연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상대방도 이때 여유로운 얼굴로 보고 있었는데 눈동자에는 어떤 도도한 분위기는 없었고, 오히려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하현은 이 중년의 남자가 틀림없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 하현의 시선이 쓸려오는 것을 보고 중년의 남성은 웃으며 말했다. “젊은이, 우리가 잘못했네. 지체가 돼서 식사가 늦어졌네.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이해해줘. 필요한 게 있으면 빨리 가져가고 전부 내 장부로 계산해.”하현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중년 남자에게 대답을 한 셈이었다. 그는 이 중년 남자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신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누구에게도 기댈 필요가 없고 누구의 힘도 빌릴 필요가 없었다. 하현의 이런 태도를 보고 임정민은 눈
임정민이 제일 먼저 호통을 치며 말했다. “망나니 같으니라고! 네가 감히 우리 집 선생님을 저주 하다니!”말을 마치고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화기를 손에 들고 하현의 머리에 가까이 댔다. 몇몇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도 모두 허리춤을 눌렀다. 하현은 오히려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길어야 3일이에요. 당신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손을 쓸 거예요. 그때는 염라대왕이 와도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을 거예요.”“누가 감히 선생님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다고!?”임정민의 얼굴빛은 싸늘했다! “나는 네가 누구든 상관 안 해. 이런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다니 몇 분만에 너를 죽여버릴 거야.” “너 우리 집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우리 집 선생님은 대구……”여기까지 말하자 중년 남성은 임정민을 차갑게 쳐다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뚝 그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때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빨리 우리 집 선생님께 사과해. 그렇지 않고서 내가 너를 죽였다고 탓하지 마!”말을 하는 사이에 임정민은 화기를 열었고 이번에는 하현의 이마를 짚었다. “시끄러워!”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뺨을 내리쳤다. 임정민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얼굴이 너무 아파 온몸이 떨렸고 뒤쪽으로 물러섰다. 이어 ‘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푸드 트럭 벽에 부딪혀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이 장면을 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임정민 자신도 너무 놀라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날뛸 수 있지? 그녀는 대구의 젊은 세대이고 유명한 고수였다. 하지만 하현이 그녀를 뺨 한대로 날려 버렸다. 이런 나이에 이런 실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임정민은 자신이 왜 하현에게 도발을 했는지 조금 후회가 되었다. 보아하니 방금 자신이 잘못 본 것 같았다. 이 평
하현은 의아한 듯 임정민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집안일이었다. 임복원은 하현에게 앉으라고 한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 “형제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 지 모르겠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현이요.”임복원은 직접 하현에게 차를 한 잔 주며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하 형제는 의술을 아나?”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몰라요.”“그럼 풍수나 관상을 볼 줄 알아?”“아니요.”“그럼 하 형제는 왜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한 거야?”임복원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진작에 생사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사에는 익숙해질 수 있지만 자신의 생사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최근 보름 동안 최소한 세차례의 암살 시도가 있었을 거예요. 이 세 차례의 암살 시도로 적어도 열 개의 상처가 생겼을 거고요. 당신은 의사를 초청해 상처를 치료했을 테고요.”임복원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사실, 그 의사들의 의술은 모두 훌륭했고 당신의 상처를 완벽히 치료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 있는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요?”하현은 임복원의 가슴을 가리켰다. “매일 낮 12시가 되면 이곳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매일 자정 12시가 되면 불에 굽는 거처럼 뜨거워져.”“얼음과 불의 이중고 속에서도 임 선생님이 일주일을 더 버틸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의 능력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실 저는 기껏해야 사흘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임정민과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냉기가 돌았다. 하현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었다. 맨 마지막의 이 얼음과 불에 대한 얘기만 빼면 다른 일들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대하인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아마 지금쯤 임정민과
“임 선생님!?”몇몇 측근들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 숨을 헐떡이며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다. 임정민도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개 자식, 너 건방지게 구네!”하현이 소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복원을 날려 버릴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하다니 정말 생사를 모르는 것이다!“그만! 그만해!”“함부로 굴지 마!”이때 임복원은 발버둥을 치며 일어나 임정민과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 형제에게 무례하게 굴지 마!”임정민과 사람들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임 선생님, 이 놈이 선생님을 때렸잖아요……”“때려서 뭐? 하 형제가 이렇게 한 건 나를 구하려고 그런 거야!”임복원도 처음에 하현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화가 났지만 조금 완화가 된 후 그는 자신이 높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임정민과 사람들은 임복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 위의 피 덩어리가 검은색일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악취가 났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하현이 방금 발로 차서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도 할 수 있다니!?임정민과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현은 앞으로 나가더니 탁자 위에서 아무 성냥 한 상자를 꺼내 불을 붙인 후 그 검은 핏덩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불이 떨어지자 잠시 후 검은 핏줄기 속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흰 종이 인형이 불쑥 튀어나왔고 이때 몸부림을 치더니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재가 되자 그 검은 핏덩이는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악취가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본 임복원은 안색이 변했고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섬나라 음양술입니다.” “당신이 도대체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누군가 당신을 암살하려던 중 이 종이 인형을 당신 가슴의 상처에 박아 두었습니다.”“그리고 난 후 섬나라 음양사가 매일 자정과 정오에
임복원은 조심스럽게 번호를 받고 임정민을 부르며 말했다. “하 형제님, 대구에서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필요하면 정민이에게 시키세요.” “대구 3분의 1의 땅에서 우리 임씨 집안은 아직 체면이 서니 일을 잘 처리 할 수 있을 겁니다.”임복원도 하현 같은 인물이 대구에 온 이상 틀림없이 크고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현은 그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는 이때 태도를 확정했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 반드시 하현의 편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하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어쨌든 하현 같은 높은 사람은 임복원이 중시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임정민은 비록 성격이 차갑고 교활하고 제멋대로이긴 했지만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금 일부터 시작해서 임복원의 태도를 봐도 하현은 꼭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임정민은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 “하 선생님, 방금 제가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제가 눈이 멀었어요!”“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제게 분부만 해주세요!”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별말씀을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말을 하면서 그는 임정민의 명함을 받았다. 어쨌든 이 임씨 집안의 부녀는 경력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하현은 무슨 능력이나 무슨 인맥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때로 많은 친구들이 많은 길들을 열어주었다. 어쨌든 대구에서는 그의 신분을 마음대로 폭로할 수 없었다. 하현이 자신과 친구가 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것을 보고 임복원은 웃으며 누군가에게 상자 하나를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하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밖에 나가면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요.”“이건 저희가 이번에 구한 약재들인데 하수오라고 합니다. 원래 이걸로 건강 문제를 해결할 할 수 있는 지 시험해 보려고 했는데 지금 쓸모가 없어졌으니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하 형제님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작은 성의인 셈입니다.”
임정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섬나라에서 왔다면……”임복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섬나라에서 온 게 확실하다면 세 번은 도와주고 신세를 갚은 뒤 죽여.”임정민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잠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임복원은 임정민의 표정을 보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왜? 그 놈이 마음에 들어? 무슨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지?”“제 생각에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다만 우리 임씨 집안은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고 또 저는 1인자라 그래서 여러 가지로 항상 조심하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우리가 정말 그를 오해했던 것이 만에 하나라도 들키게 되면 그때 가서 선물을 두둑하게 챙겨주면 하 형제도 이해해 줄 거예요.” 임정민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선생님, 안심하세요.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임복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참, 또 다른 일이 있어. 전에 나를 암살하려고 했던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반드시 밝혀내야 해.”“이것 말고도 나는 연경에 다녀와야 해.”“최근에 내가 죽을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내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텐데 지금 내가 살아있으니 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일지 보고 싶네.”……임씨 부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한 하현은 벌써 기차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 임씨 부녀의 대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은 우연하게 등장했고 게다가 임복원의 상처와 문제점을 끄집어내 쉽게 해결해주었다. 이 모든 것은 아무리 봐도 우연이었다. 임복원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의 신분에 반드시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현도 상관 없었다. 임복원은 딱 봐도 거물이었고 자신의 신분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에게 손을 댄 사람은 거의 섬나라 사람들이니 자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
”그래, 맞아! 아들이 하는 말에 무슨 토를 달아?”최희정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을 모양이었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네, 그렇게 능력이 많아?”“그렇게 은아랑 재결합하고 싶어?”“그럼, 좋아!”“자네가 우리 은아를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면!”“나도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게!”“둘이 같이 살고 싶으면 살아도 돼. 그건 내가 허락해 줄 수 있어.”하현은 최희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나이에 비해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희정이 표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계속하다간 양측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거란 걸 잘 알았다.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설은아의 모습을 보던 하현이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대구 정 씨 가문 수장이요? 문제없죠!”“설은아를 그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그래! 알았네! 자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두고 보겠어!”최희정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하현이 식탁에 않는 걸 더는 막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어색하고 불편한 식사를 마친 뒤 이영산 부부가 떠나자 하현은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그때 발코니에 있는 설은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설은아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오늘 저녁 소항 회관에서 모임이라고?”“그래, 꼭 시간 내서 갈게.”“그런데 내가 말씀드린 그 일은 가닥이 좀 잡혔어?”하현은 이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후 내내 휴식을 취한 설은아는 저녁 6시가 되자 단장을 하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려고 했다.차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현이 불쑥 조수석 문을 열고 히죽히죽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여보, 어디 가게?”설은아는 원래 하현을 소항 회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지만 하현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걸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중요한 비즈니스 모임이 있어. 친구가
”그래요?”하현은 최희정에게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우리 처남, 어서 밥이나 먹어!”이영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아예 하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최희정은 하현이 자신의 양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향해 뺨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내놓은 수표와 계약서가 모두 사실이어서 그녀로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가짜 처남! 당신은 신분도 가짜라서 한 마디 못하고 있는 거지?”“남자가 되어서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몰라? 본인이 한 말도 수습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못한 거 아냐?”하현이 이영산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그는 자신의 아내를 무시했던 이영산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지금 간이 너무 싱거워?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끓어줄까? 그러면 당신의 입맛에 맞게 될 텐데. 어때?”“자네, 그만해!”이때 최희정이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치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아주 기고만장하군!”“오백억 돌려받고 계약 한 건 따낸 것뿐이잖아?”“뭐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게 있어?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네더러 능력 있다고 추켜세울 줄 알았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쨌든 장모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난 돈을 받아왔구요.”“그러면 이제 저는 설은아와 재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호적등본은 어딨죠?”“제가 가져가도 되는 거죠?”하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눈앞의 하현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절대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허락하지 않으면 하현의 비아냥에 더욱 설 곳이 없어져 도저히 끝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설은아, 장모님이 별로 이의가 없으신 것 같으니
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그릇을 꺼내 대문 앞에 세차게 던졌다.이어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사죄해!”“저기 가서 무릎을 꿇으란 말이야!”딸과의 재결합을 허락받기 위해 온 남자라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을 것이다.그런데 엄도훈한테서 오백억을 받아왔다고?허튼소리도 정도껏이지!이를 본 설유아는 급기야 울상이 되어 말했다.“형부, 그냥 지금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수표도 계약서도 진짜입니다.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이라구요!”하현은 설은아가 건네주는 물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제가 무슨 죄를 인정해야 합니까?”“허허! 하현! 쓴맛을 봐야 피눈물을 흘리며 단념할 모양이군!”하현이 완강한 자세를 보이자 이영산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저따위 가짜 계약서와 수표는 인터넷에 뒤져보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이걸 모른다고?”“만약에 저것이 가짜로 판명된다면!”“당장 이 집에서 나가! 절대 돌아올 생각하지 마!”설은아를 포함해 설 씨 집안의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이영산은 하현이 철저히 없어져 주길 간절히 바랐다.하현이 끼어들어서 그의 수많은 계획들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으로 관련 사이트를 열어 계약서 번호를 입력해 조회하기 시작했다.최희정은 하현이 하루아침에 오백억이라는 거금을 받아왔다는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고 계속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조회는 왜 해 보는 거야?”“거두절미하고 당장 무릎 꿇어! 무릎 꿇기 싫으면 당장 꺼지라고!”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경호원 몇 명을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어?!”순간 이영산은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이럴 리가 없는데? 이, 이게 어떻게 진짜일 수가 있어?”“믿을 수 없어!”당황한 이영산의 목소리에 최희정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그러고 나서 이영산의 핸드폰을 잡아채듯 가져와 계약서와 대조해
”탁!”“신사 상인 연합회가 SL그룹에서 빌려 간 돈 오백억이에요!”“탁!”“신사 상인 연합회와의 향후 5년 치 계약서입니다!”“탁!”“신사 상인 연합회 회장이 선불한 첫해 선입금입니다!”“선입금은 되돌려 줄 필요없이 계약은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최희정을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 오묘한 미소를 떠올렸다.“설 씨 집안을 대신해 오백억을 돌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5년 치 계약도 성사시켰고 선입금까지 받았어요.”“선입금까지 호주머니에 찔러줬으니 이젠 두 사람, 그 입 다물 수 있겠죠?”하현은 그릇을 집어 들고 이영산의 면전에서 ‘퍽’하고 깨뜨렸다.“가짜 처남! 이제 먹어도 돼. 국물도 먹어가면서 먹어. 체하지 않게.”“뭐?”하현의 말을 듣고 모두들 그가 방금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물건들을 보았다.설 씨 가족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고는 하현에게 시선을 돌려 더욱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하현은 빚을 돌려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계약서에 선입금까지 받아왔기 때문이다.이것은 결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말도 안 돼! 이건 절대 불가능해!”이영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장 먼저 벌떡 일어섰다.“신사 상인 연합회가 어떤 곳이야? 그곳은 서남 천문채의 금정 지사가 뒤를 받쳐주는 곳이야!”“호랑이 같은 그들 입에서 먹이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당신 같은 얼뜨기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지?”“가짜야! 계약서도 수표도 모두 가짜일 거야! 틀림없어!”“당신은 설은아를 얻기 위해 이런 뻔뻔한 짓을 벌인 게 분명해!”“잘 들어! 난 설은아의 의붓 오빠야! 어머니 아버지의 장자로서 절대 당신의 그런 더러운 음모가 실현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계약서와 수표를 위조하는 것은 중죄야!”“법대로라면 당신은 적어도 십몇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해!”말을 하면서 이영산은 이를 갈며 수표
”드셔보세요?”“드셔보면 알 거예요!”“여기 자리 없는 거 안 보여? 여기 이 음식들, 우리가 다 먹기에도 모자라!”“먹고 싶으면 조용히 구석에서 먹고 가. 안 그러면 그냥 가든지!”최희정은 손에 젓가락을 쥐고 설유아를 툭툭 치면서 못마땅한 듯 싸늘하게 내뱉었다.설유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엄마. 다 차려진 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일이야. 그리고 우린 한 가족이잖아!”“가족? 저놈은 우리와 한 가족이 아니야!”“이 대문을 들어서게 한 것은 그나마 알던 사이라서 체면을 봐준 거야!”“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요리들은 먹성 좋은 우리 아들이 먹기에도 모자라다는 거야!”“남는 게 어디 있어?”최희정은 하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듯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이영산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어머니는 정말 제 친어머니나 다름없어요. 아니 제 친어머니보다 더 저한테 잘해 주세요!”“제가 대식가라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맞아요. 여기 있는 음식들, 제가 먹기에도 모자랄지 몰라요.”설유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 닭찜은 형부 먹인다고 해놓고선...”“닥쳐!”설유아의 말대꾸에 최희정은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닥치지 않을 거면 너도 저 몹쓸 놈이랑 함께 꺼져!”“예전에는 상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저 얼뜨기랑 우리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내가 잘해 줘야 해?”최희정은 하현의 향해 눈을 부라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집에 와서 뻔뻔하게 재혼을 한다고 큰소리치는 걸 보니 3년 동안 밥 안 먹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어!”장리나가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저 사람은 백두산 산삼까지 먹었는걸요. 평생 밥 안 먹어도 괜찮을 거예요.”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엄마, 그리고 당신들 그만해요!”“하현은 내가 부른 거예요.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세요!”“네가 오라고 했다고?”설은아의 말을 듣고 최희정이 불쑥
엄도훈이 지금까지 무사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건달이었기 때문이다.매일 싸우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인 그의 몸에 혈기가 항상 돌고 있었던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이미 수천 번은 죽어도 더 죽었을 것이다.“곧 죽는다구요?!”엄도훈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팔괘경에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형님, 이 물건은 제가 골동품 시장에서 사 온 거예요.”“몇만 원짜리 물건인데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겁니까?”엄도훈 같은 건달들은 주먹이 곧 도리라고 믿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풍수나 관상술 같은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는 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다.정말로 풍수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해도 풍수를 이길 수 없는데 사람들이 뭐 하러 고군분투하겠는가?사실 엄도훈은 하현이 오늘 자신과 싸우고 난 뒤 살짝 겁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하현에게 밟혀 제대로 호된 맛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까지 할 뻔했다.하현은 담담하게 툭 내뱉었다.“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마음이지.”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문제가 생기면 방금 사람을 찌르려던 그 비수를 가슴에 달고 있어. 그 물건에 혈기가 있으니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줄 거야.”“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하현은 말을 마치며 돌아섰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자마자 가타부타 말이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하현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방법도 어지간해야지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현이 떠난 뒤에 엄도훈은 정형외과에 가서 뼈를 맞추려고 손을 늘어뜨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가 건물을 나와 막 대문 쪽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지붕 기와가 미끄러져 내려와서 ‘퍽’소리를 내며 그의 이마에 떨어졌다.엄도훈은 머리를 감싸고 욕을 했지
하현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엄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빚진 것은 저희 잘못입니다. 형님이 직접 가져가 주십시오.”“그리고 우리 신사 상인 연합회에서 앞으로 보상 차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번에는 절대 걱정하는 일 없을 겁니다!”“절대로 더 이상 빚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백억을 선불로 내겠습니다!”“첫해 합작하는 것에 대한 선입금입니다!”“부디 형님께서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SL그룹의 약품과 기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금정에서도 우리는 SL그룹만 계약할 겁니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수표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놓았는데 그것이 오백억이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도훈을 바라보았다.비록 그가 수려한 언변을 늘어놓은 건 아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어차피 엄도훈이 또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하현이 한 발로 밟아 죽이면 되는 일이다.“알았어. 그래 그럼 수표와 계약서는 내가 가져가지.”하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하지만 당신들과 합작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내 아내의 뜻에 달렸어.”“알겠습니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형수님 뜻에 따르겠습니다!”“형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엄도훈은 뒤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놓았다.“형님, 이것은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이번에 어떻게 하다 보니 서로 싸우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지만 성의는 해야죠. 서로 알게 된 인사치레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선물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각양각색의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여성용 시계가 있었다.프랑스산 고급 명품 브랜드 시계로 그 가치는 억 단위가 넘었다.“여자시계?”하현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이거 줘 봐야 소용없어.”“형님, 꼭 받아주십시오.”“사양하지 마시고요. 형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서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