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 엄마는 눈꺼풀이 펄쩍 뛰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일부러 하현의 존재를 무시하고 바로 슬기를 데리고 가서 어지럽게 뒤섞인 복잡한 문제를 명쾌하게 처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현이라는 놈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현은 천일그룹의 회장으로 강남 하 세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슬기 엄마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우스갯소리였다. 강남과 같은 오랑캐 땅을 어찌 대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대구 여섯 세자야 말로 진정한 세자이다. 강남 하 세자가 뭔데?그런데 이 폐물 세자가 감히 튀어 나와서 날카롭게 맞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슬기 엄마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느껴졌다. 이때 슬기 엄마는 수표 한 장을 꺼내 그 위에 쓱쓱 숫자를 적더니 하현 앞에 수표를 내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나는 네가 슬기의 회장이든, 동료든, 아니면 슬기의 남자든 상관 없어.”“한 마디로 말해 너는 슬기와 사귈 자격도 없고, 평범한 친구로 지낼 자격도 없어!”“여기 2백억이야. 이거 가지고 당장 꺼져. 앞으로 슬기 앞에 나타나지 마!”이 말을 할 때 슬기 엄마는 대단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돈으로 사람을 치는 것은 심씨 집안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슬기 엄마의 비꼬는 시선에 하현은 쭈그리고 앉아 그 수표를 주워 들고 매우 진지하게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슬기 엄마의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더해졌다. 상장 그룹 회장이면 또 뭐가 어떤가? 심씨 집안은 몇 분만에 돈으로 사람을 때려 죽일 수도 있는데?수표에 적힌 숫자를 보며 하현은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이걸로 제가 슬기씨를 떠나길 바라시는 거예요? 충분하지가 않은데요?”“충분하지가 않다고!?”슬기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더욱 비아냥거렸다. “네가 뭔데? 감히 나랑 흥정을 해?”“내 딸의 체면을 봐서 2백억을 준 거야!”“이해했으면 지금 당장 돈 가지고 썩 꺼져!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
“너!” 슬기 엄마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하현이 이렇게 그녀를 모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녀석이 그녀를 바보로 만들다니?2조 원이라고?“불구로 만들어 버려!”이 순간 슬기 엄마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이 놈아, 부인께서 좋은 말로 말씀해 주시는데 아직까지 시비를 가릴 줄 몰라? 그럼 나를 탓하지 마라!”이때 슬기 엄마 뒤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던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보내 줄 테니 다시는 함부로 건들지 마!”말이 떨어지자 화려한 복장의 노인은 손바닥으로 하현의 얼굴을 향해 압력을 가하려고 했다. “쾅______”손뼉을 치니 폭풍우 소리가 들렸다. 슬기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학범, 그만해!”슬기 엄마는 재빨리 딸을 끌어당기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이 가로막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윙!”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빠르고 맹렬했다. 후발주자가 먼저 도착했다. “퍽!”손을 댄 학범의 얼굴이 변했다. 미처 방법을 바꿀 겨를이 없었다. 다음 순간 하현의 손바닥은 이미 그의 얼굴에 박혀 있었다. “퍽!”큰 소리와 함께 학범은 날아갔고 복도 벽에 부딪혀 벽면에 거미줄을 쳤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 오른쪽 뺨이 벌겋게 부어 오르자 학범의 가슴은 섬뜩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비록 방금 손을 썼을 때 그는 50% 정도의 힘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속도와 힘은 결코 털이 자라지 않은 젊은이가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처럼 어이가 없었다. 상대방은 뺨 한대를 맞고 날아갔다! 이 자식은 강적이라고 밖에는 말 할 수 없었다!이 순간 하현을 쳐다보는 학범의 눈빛은 더 이상 무시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다소 무거웠다. 그 화
학범은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며 자신이 방금 확실히 방심했다고 생각했다. 아랫사람인줄 알고 실력의 50%만 썼다. 기왕 지금 슬기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는 분명 전심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때 학범은 조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은 그런대로 잘 생긴 편이라 이따가는 아마 시체도 다 없어질 것 같았다! 학범은 탄식하며 말했다.“임마, 너 어르신을 화나게 했어. 아가씨의 체면을 봐서 내가 최대한 네 시신은 남겨줄게……”말을 하는 동안 온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뼈에서는 콩 볶는 소리가 났다. “퍽______”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손등으로 뺨을 한대 내리쳤다. 학범은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고 안색이 굳어지며 하현의 일격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하현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무술의 세계에서 적을 없앨 수는 있어도 속도는 깰 수가 없다. 하현의 뺨치기는 절정에 다다랐다!“퍽!”학범은 허공을 몇 바퀴 돌다가 다시 복도 벽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왼쪽 얼굴에도 손바닥 자국이 새겨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자기는 고수인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일격을 막지 못하는 거지?슬기 엄마는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 “학범아, 슬기 체면 세워주지 말고 온 힘을 쏟아!”“제대로 해. 이 놈에게 한 수 가르쳐줘. 어떤 사람한테는 평생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줘!”“어떤 무리는 그가 평생 접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려줘!”학범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진작에 제대로 힘을 주었다. 방금 최소 80%의 힘을 다 쏟았다!하현은 오히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학범을 쳐다보며 말했다.“굴복하는 거야?”학범의 안색은 비할 데 없이 안 좋았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을 움직이며 어둠 속에서부터 앞으로 두 손을 모았다. “선학수!”90%의 실력!“퍽!”하현은 다시 한번 뺨을 후려갈겼다. 학범의 몸이 다시 날아가 뒤쪽 벽에 부딪혔다.
두 사람의 싸우던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슬기 엄마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남녀 몇몇은 학범의 말을 듣고 눈가가 움찔 하더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패배를 인정한다고?굴복했다고?이 사람은 학범이다! 대구 심가의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헌신된 사람, 슬기 엄마의 보디가드다! 방금 설마 슬기의 체면을 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 아니야?어떻게 갑자기 패배를 인정할 수가 있지?학범의 실력은 슬기 엄마와 사람들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심씨 집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구 전역에서도 그의 실력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하현에게 뺨 몇 대 얻어 맞고 얼굴이 돼지 머리처럼 부어 오르다니? 결국에는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빈다고?이 모든 것은 정말 터무니없고 믿기 힘들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만약 학범이 한 방만 먹었다면 방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다섯 번이나 공격을 받았다는 건 하현의 실력이 놀랍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이걸 깨닫자 슬기 엄마의 안색은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안 좋아졌다. 그녀는 학범을 차갑게 쳐다보며 원망하는 말투로 말했다. “폐물! 쓸모없는 놈!”학범의 안색은 더없이 안 좋아졌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내려 놓을 용기가 없었다. 그도 용서를 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용서를 빌지 않으면 정말 산채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하현이 손을 댈수록 힘이 더 세진다는 것을 학범은 속으로 알고 있었다. 몇 번 더 맞았다가는 자신이 죽지는 않아도 뇌성마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굴복했으면 됐어.”하현은 학범을 향해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돌려 이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슬기 엄마를 쳐다보았다. 이때 하현은 그냥 서 있었을 뿐인데 기세가 바뀌어 이미 중생을 내려다 보는 듯한 상위자의 기세가 다소 많아졌다. “아주머니, 저는 이미 제 실력으로 슬기씨를 보호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그러니 슬기씨를 곤란하게 하지
하현의 말에 슬기 엄마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잠시 후 차갑게 말했다. “젊은이, 재주가 좀 있다고 해서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아주머니가 한 가지 일러 주지. 사람은 하늘 높은 줄 알아야 해!”“네가 대구로 가보면, 연경을 가보면 그제서야 자기가 얼마나 우스운지를 알게 될 거야!”“남원 3분의 1의 땅은 물이 얕아. 하 세자라고 불린다고 너는 네가 정말 대단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해? 권세가 있다고 생각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연경에서 대구에서 이런 배경들은 다 웃음거리야!”“너 같이 시건방진 성격에 우리 심씨 집안까지 건드렸으니 너는 앞으로 힘들어질 거야.”슬기 엄마는 착한 마음으로 한 마디 귀띔을 해주었다. 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가타부타 뭐라 말하지 않았다. “권세, 배경, 인맥, 능력, 이런 것들과 오늘 일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물론 만약 기어이 이런 것들과 겨루려고 하다면, 내 자신이 가장 큰 권세, 가장 대단한 배경, 가장 강한 인맥, 가장 광적인 능력이에요……” “아줌마가 믿든 말들 이건 사실이에요!”“나를 슬기씨 곁에서 떨어지게 하고 싶으면 슬기 말고는 그럴 자격이 없어요. 아무도 그럴 자격이 없고, 그럴 힘도 없어요.”“당신이 슬기의 어머니라고 해도, 무슨 연경 네 도련님이나 대구 여섯 세자라고 해도……”“나는 슬기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하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태도였다. 슬기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슬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슬기야, 너 정말 약속을 어길 거야?”“이 놈이 날 모욕하게 내버려 둘 거야?”슬기는 얼굴빛이 여러 번 바뀌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엄마, 내가 약속한 건 꼭 지킬 거예요!”“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선을 보겠다고 했을 뿐이지 여태껏 시집을 가겠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만약 이걸 요구하면 미안하지만 나는 할 수 없어요!”“그 동안 심씨 가문은 위기 속에서도 10대 최고
아파트 안. 하현은 사직서를 꺼내 슬기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 사직서는 받지 않겠어. 너는 여전히 천일그룹 회장 비서야.”“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변백범에게 사람을 보내서 24시간 너를 지키라고 할 거야.”“필요하면 나는 당도대 쪽에서 사람을 보낼 거야.”“어쨌든 너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거야. 아무도 너에게 강요할 수 없어!”슬기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그녀는 다시금 하현의 강한 면을 보게 되었다. 강했을 뿐 아니라 슬기 엄마를 화나게 했고 오만 방자한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가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지 모르겠다. 하지만 슬기도 하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그녀는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입구를 막아서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갑자기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어요.”“무슨 방법?”하현은 눈앞이 밝아졌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할게.”“반드시 하실 수 있어요.”슬기는 신비롭게 웃으며 하현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저를 가지세요!”“퍽퍽퍽______”잠시 후 방안에서 일련의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화장실 창문이 열렸고, 하현은 창문으로 바로 뛰어 나갔다. 어렴풋이 슬기의 한숨짓는 소리가 들렸다. 하현은 땅에 떨어졌고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문질렀다. 어떤 때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집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것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내가 감히 밖에서 그랬다가는 그녀는 분명 나에게 꽃이 왜 이렇게 붉은 지 확실하게 알려줄 것이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현은 전화를 걸었고 심씨 집안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집집마다 어려운 일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구 심가, 이남 갑부. 이런 가문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20년 전 심가성은 강력한 경쟁자를 만났다. 그 경쟁자는 비즈니스적으로 심씨 집안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심씨 집안을 암살하기 위해 오래된 킬러 조직을 동원했다.
스마트 밸리. 예전부터 이곳에서 지내던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다 이사를 갔다. 설유아도 학교로 돌아갔다. 이렇게 큰 집에 설은아만 혼자 남아 있으니 좀 허전해 보였다. 티 테이블 위에는 서류뭉치가 쌓여 있었고 설은아는 이 문서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면 그 문서들은 다 반송된 계약서였고, 그 외에 지분 양도 합의서가 몇 개 있었다. 이것은 오늘 갑자기 발생한 일이다. 제호그룹이 막 시중에 유통한 주식 전부가 강남 설씨 집안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합의한 협력업체가 제호그룹과 합작하기로 한 것을 1시간만에 취소했다. 다들 제호그룹 배후에 천일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계약을 취소한 것은 이미 상대방의 기세가 등등하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다. “강남 설가……”은아의 눈가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찍이 이미 힘을 잃은 설씨 어르신이 대구 정가의 지지를 받아 다시 부상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이 외에도 대구에서 돌아온 설지연도 강세가 대단했다. 설씨 어르신은 보좌하는 사람이 있어 하루도 안 돼 많은 일들을 빠르게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 설은아에게 칼을 갈고 있는 것이다. 설씨 어르신의 요구는 한 가지였다. 설은아가 하현과 이혼하고 대구로 가서 대구 정가가 혼사를 주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현이 하 세자라고 이미 신분이 밝혀지긴 했지만, 설씨 어르신은 대구 정가를 빽으로 두고 있으니 어떻게 하현을 마음에 들어 할 수 있겠는가? 보잘것없는 천일그룹일 뿐인데? 설씨 어르신이 보기에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가와는 비교도 안되었다. 그리고 원칙이 없는 희정은 지금 이미 설씨 어르신의 수하에 완전히 들어왔다. 설재석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퍽______”바로 이때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노크도 없이 거실로 들어가 설은아 앞에 서류 한 장을 내던졌다. 몇 달 전만 해도 비할 데 없이 처참했던
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가 잠시 후 차갑게 말했다. “곽영민과 하민석, 이대성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지?”설지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설은아, 너 정말 네 그 싸구려 남편이 그렇게 인내심이 많고 능력이 많다고 생각해?”“정 세자가 벌써 다 알아냈어!”“이준태와 양정국이 그에게 플랫폼을 제공한 건 슬기와의 관계 때문이야!”“장북산이 나서서 그에게 플랫폼을 제공한 건 지난 번 신세를 졌기 때문이고!”“용문주가 나와서 그에게 플랫폼을 제공한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실력으로 따지면 그는 일찍이 항성 4대 가문과 상성재벌한테 발목 잡힌 지 오래야!”“그가 확실히 잘 싸우긴 하지만 문제는 잘 싸워 봤자 무슨 소용이야?”“배경, 인맥, 능력, 돈, 권세야 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이지. 잘 싸워봐야 기껏해야 싸움꾼일 뿐이잖아. 내 말 맞지?”“더구나 대구 정가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데 대구 정가와 사이가 틀어지면 무슨 이득이 있겠어?”“그러니까 설은아, 너 순진하게 굴지 말고 빨리 서명해!”“서명 하고 나랑 같이 대구로 가서 부귀영화를 누려보자!”설은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설지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싫다고?”설지연은 오른손으로 설은아의 턱을 치켜 세우며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싫다고 할 수도 있지. 근데 싫다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만약 네 얼굴이 값어치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뺨을 쳐서 네 얼굴을 못쓰게 만들어 놨을 거야!”“내가 마지막으로 시간을 줄게. 내일 아침 10시 전까지 이혼 합의서에 서명해. 잊지 마.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지금 우리 쪽에 있어.”“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뭔가 잘못 먹고 죽는다면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을 거야!”설지연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 염치도 없구나!”설은아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설지연, 너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넌 전에도 좀
”드셔보세요?”“드셔보면 알 거예요!”“여기 자리 없는 거 안 보여? 여기 이 음식들, 우리가 다 먹기에도 모자라!”“먹고 싶으면 조용히 구석에서 먹고 가. 안 그러면 그냥 가든지!”최희정은 손에 젓가락을 쥐고 설유아를 툭툭 치면서 못마땅한 듯 싸늘하게 내뱉었다.설유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엄마. 다 차려진 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일이야. 그리고 우린 한 가족이잖아!”“가족? 저놈은 우리와 한 가족이 아니야!”“이 대문을 들어서게 한 것은 그나마 알던 사이라서 체면을 봐준 거야!”“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요리들은 먹성 좋은 우리 아들이 먹기에도 모자라다는 거야!”“남는 게 어디 있어?”최희정은 하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듯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이영산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어머니는 정말 제 친어머니나 다름없어요. 아니 제 친어머니보다 더 저한테 잘해 주세요!”“제가 대식가라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맞아요. 여기 있는 음식들, 제가 먹기에도 모자랄지 몰라요.”설유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 닭찜은 형부 먹인다고 해놓고선...”“닥쳐!”설유아의 말대꾸에 최희정은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닥치지 않을 거면 너도 저 몹쓸 놈이랑 함께 꺼져!”“예전에는 상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저 얼뜨기랑 우리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내가 잘해 줘야 해?”최희정은 하현의 향해 눈을 부라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집에 와서 뻔뻔하게 재혼을 한다고 큰소리치는 걸 보니 3년 동안 밥 안 먹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어!”장리나가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저 사람은 백두산 산삼까지 먹었는걸요. 평생 밥 안 먹어도 괜찮을 거예요.”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엄마, 그리고 당신들 그만해요!”“하현은 내가 부른 거예요.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세요!”“네가 오라고 했다고?”설은아의 말을 듣고 최희정이 불쑥
엄도훈이 지금까지 무사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건달이었기 때문이다.매일 싸우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인 그의 몸에 혈기가 항상 돌고 있었던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이미 수천 번은 죽어도 더 죽었을 것이다.“곧 죽는다구요?!”엄도훈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팔괘경에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형님, 이 물건은 제가 골동품 시장에서 사 온 거예요.”“몇만 원짜리 물건인데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겁니까?”엄도훈 같은 건달들은 주먹이 곧 도리라고 믿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풍수나 관상술 같은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는 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다.정말로 풍수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해도 풍수를 이길 수 없는데 사람들이 뭐 하러 고군분투하겠는가?사실 엄도훈은 하현이 오늘 자신과 싸우고 난 뒤 살짝 겁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하현에게 밟혀 제대로 호된 맛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까지 할 뻔했다.하현은 담담하게 툭 내뱉었다.“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마음이지.”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문제가 생기면 방금 사람을 찌르려던 그 비수를 가슴에 달고 있어. 그 물건에 혈기가 있으니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줄 거야.”“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하현은 말을 마치며 돌아섰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자마자 가타부타 말이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하현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방법도 어지간해야지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현이 떠난 뒤에 엄도훈은 정형외과에 가서 뼈를 맞추려고 손을 늘어뜨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가 건물을 나와 막 대문 쪽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지붕 기와가 미끄러져 내려와서 ‘퍽’소리를 내며 그의 이마에 떨어졌다.엄도훈은 머리를 감싸고 욕을 했지
하현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엄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빚진 것은 저희 잘못입니다. 형님이 직접 가져가 주십시오.”“그리고 우리 신사 상인 연합회에서 앞으로 보상 차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번에는 절대 걱정하는 일 없을 겁니다!”“절대로 더 이상 빚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백억을 선불로 내겠습니다!”“첫해 합작하는 것에 대한 선입금입니다!”“부디 형님께서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SL그룹의 약품과 기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금정에서도 우리는 SL그룹만 계약할 겁니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수표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놓았는데 그것이 오백억이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도훈을 바라보았다.비록 그가 수려한 언변을 늘어놓은 건 아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어차피 엄도훈이 또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하현이 한 발로 밟아 죽이면 되는 일이다.“알았어. 그래 그럼 수표와 계약서는 내가 가져가지.”하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하지만 당신들과 합작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내 아내의 뜻에 달렸어.”“알겠습니다!”엄도훈은 하현의 말을 듣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형수님 뜻에 따르겠습니다!”“형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엄도훈은 뒤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놓았다.“형님, 이것은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이번에 어떻게 하다 보니 서로 싸우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지만 성의는 해야죠. 서로 알게 된 인사치레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선물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각양각색의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여성용 시계가 있었다.프랑스산 고급 명품 브랜드 시계로 그 가치는 억 단위가 넘었다.“여자시계?”하현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이거 줘 봐야 소용없어.”“형님, 꼭 받아주십시오.”“사양하지 마시고요. 형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서 형님
낮 12시.신사 상인 연합회 3층, 회장 사무실.하현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질 좋은 찻잎을 우려낸 차를 홀짝이며 주위를 한가로이 두리번거렸다.엄도훈은 쓰디쓴 표정으로 그런 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사무실은 촌스럽지 않은 적절한 고풍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그리고 하현의 맞은편에는 신사 상인 연합회의 여비서들이 서 있었는데 그녀들은 차를 끓이고 하현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하현이 거절하지 않았다면 여비서들은 하현을 위해 마사지라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녀들은 하현이 엄도훈 일행을 상대하는 모든 과정을 다 목격했기 때문이다.처음에는 그들도 경멸과 멸시에 가득한 눈으로 하현을 쳐다보았지만 결국 엄도훈이 하현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지금 그녀들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무한한 숭배와 흠모뿐이었다.필요하다면 옷이라도 벗고 하현의 품에 얼른 안길 수도 있다.아쉽게도 하현은 그녀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홀 중앙에 있는 팔괘경 위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팔괘경은 꽤나 값나가는 골동품처럼 보였다.보통 방에 놓아두면 매우 좋은 기가 맴돈다고 믿었다.그러나 하현은 팔괘경에서 곰팡이가 살짝 번져 있는 것을 간파했다.아마도 이 물건은 어느 큰 무덤에서 파낸 것이 분명하다.그런 팔괘경을 이런 방에 걸어두다니!예술에 대한 엄도훈의 담대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이때 엄도훈은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곧장 달려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우리가 크게 싸우고 있을 때 진홍헌이 뒷문으로 차를 몰고 도망쳤습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곧 그들을 끌고 오겠습니다.”결국 오늘 이 사단은 진홍헌 때문에 일어난 셈이었다.엄도훈은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하현이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보다 중요한 것은 진홍헌에 대한 엄도훈의 원한이 하현 못지않다는 것이다.데릴사위라 쉽게 죽일 수 있다고?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인 거야?그 결과 어
진홍헌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그는 원래 엄도훈의 손을 빌려 감히 자신이 점찍은 여자를 빼앗은 데릴사위를 밟아 죽이려고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밟기는커녕 되려 엄도훈에게 치욕적인 굴욕을 선사할 뿐이었다.진홍헌은 중천 그룹의 아들이었다!그런데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짜증 나고 못마땅한 심정에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진홍헌은 이를 갈며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당신이 날 밟았다고 해서 뭐? 뭐가 바꿔?”“수조에 가까운 자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 중천 그룹을 어떻게 할 수 있어?”“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싸움 실력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총보다야 좋겠어?”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 할수록 진홍헌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특히 옆에 있는 여자들을 힐끔 보니 모두의 눈빛에 하현에 대한 숭배로 가득 차 있었다.진홍헌은 자신이 마치 스스로 자신의 살점을 떼어먹고 있는 한 마리 개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는 몸서리치며 포효했다.“말도 안 돼! 절대 말도 안 돼!”신사 상인 연합회 대문 앞에서 하현은 엄도훈의 얼굴을 발로 밟으며 냉담하게 말했다.“사람을 불러!”“금정 지사 사람들 다 불러 봐!”“정 안 되면 서남 천문채 사람들을 다 부르든지!”“어서 어서!”“하, 하현. 아니 혀, 형님!”“더 이상 못 부릅니다. 아무도 없어요!”엄도훈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그는 서남 천문채 제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냥저냥 외문의 제자일 뿐이었다.그런 그가 무슨 자격으로 금정 지사, 심지어 서남 천문채 사람들까지 와서 총알받이가 되라고 하겠는가?그가 전화를 걸면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그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불렀다고 할 수 있다.나머지는 모두 수준 미달의 양아치들뿐이었다.그들이 아무리 많이 와 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하현은 발밑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거침없던 신사 상인 연합회 회장님이 겨우 이 정도
수십 명이 달려들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맞서며 손바닥을 후려쳤다.파도 같은 장풍은 방금 걷어찬 그의 발만큼의 기세는 아니었지만 손바닥에 닿는 족족 건달들은 나뒹굴었다.비명이 여기저기서 끊이지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하현은 마지막 남은 수십 명도 다 해치운 것이다.그의 뒤쪽에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신사 상인 연합회 건달들이 수두룩했다.들려오는 건 오직 비명뿐이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지막 날린 손바닥을 거두어들였을 때 장내에 일어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현은 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찌그러져 있는 엄도훈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자, 계속 덤벼 봐!”이 말을 듣고 엄도훈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오, 오지 마!”“어서 이놈을 죽이라고! 이것들아! 어서 일어나!”엄도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그의 얼굴에는 충격과 분노, 불복종만이 가득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보호해 줄 건달들이 없었다.모두 전투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용기마저 잃었다.하현은 정말 무서웠다.아무렇게나 내디딘 발, 아무렇게나 뒤흔든 손바닥이 사람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엄도훈은 눈가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뒷걸음질쳤다.오늘은 정말 귀신에 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금정에 이렇게 막무가내의 실력을 가진 데릴사위가 있었다니!그동안 왜 자신은 몰랐을까?“됐어. 그만 소리 지르고 사람을 계속 더 불러 봐! 어서!”하현은 엄도훈 앞으로 다가와 쪼그리고 앉아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당신은 서남 천문채 금정 지사 책임자잖아?”“어째서 수하에 이 정도 인력밖에 없는 거야?”“다 불러 봐! 왜 다 안 부르는 거야?”엄도훈은 하현의 동작에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도 약간은 무술 실력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하현은 너무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졌다는 것이다.엄
이때 엄도훈의 머릿속에 한 마디가 떠올랐다.천하 무공의 으뜸은 빠름이다!설마 눈앞에 있는 이놈의 실력이 격식과 장법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빠른 것인가?그 정도 실력인 것인가?말도 안 된다!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전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대하의 전신 중에 이렇게 젊은 사람이 있었던가?엄도훈은 고심 끝에 하현이 병왕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그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었다.사람을 더 불러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만약 하현이 정말로 병왕이라면 자신의 무리들이 그를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진홍헌과 십여 명의 부잣집 자제들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도저히 눈앞의 상황을 믿으려야 믿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하현이 수백 명의 무리들 앞에서 가죽이 벗겨지도록 고통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오히려 하현이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람들을 제압할 줄은 몰랐다.거의 반 이상이나 되는 무리들을 단숨에 해치운 것이다.가히 무서운 실력이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아니 어떻게?!”진홍민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그녀는 하현이 자신의 오빠에게 혼쭐이 나서 짓밟힌 뒤 함부로 대들었던 자신을 탓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심지어 자신의 오빠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잘못을 빌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진홍민이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그녀가 생각하는 그 허여멀건한 데릴사위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들 부잣집 2세들이 데릴사위 하나 때려잡지 못하고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다니!“계속할 거야?!”멍하니 서 있는 엄도훈을 바라보며 하현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계속하든지 아니면 당신 스스로 남은 손 하나 마저 부러뜨리든지!”
엄도훈은 자신의 지원병이 오는 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기운이 넘쳐흘렀다.이 사람들은 모두 신사 상인 연합회의 유능한 간부들이며 평소에 그를 돕던 인재들이었다.이에 엄도훈은 끊어지지 않은 손을 흔들며 의기양양한 자태를 보였다.그는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형제들아! 어서 저놈을 죽여!”“저놈을 죽여야 내 한이 풀어질 거야!”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엄도훈의 말을 듣고 쇠파이프를 질질 끌며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해 왔다.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상황일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진주희나 황천화를 금정으로 불러 자기 곁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저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하니 정말 막막하긴 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걸음씩 내디디며 엄도훈 앞으로 거침없이 다가와 손바닥을 또 한 번 휘둘렀다.“퍽!”엄도훈의 몸이 또 날아올라 그의 뒤에 서 있던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모두 땅에 처박아 버렸고 동시에 그는 큰소리로 울부짖었다.부러진 한 손이 너무 아팠던 것이다.그리고 쓰러진 스무 명은 모두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사람을 부축하고 어떤 이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하현은 그들에게 예의 차리지 않고 바로 다가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사람들을 모두 땅바닥에 쓰러뜨렸다.“개자식!”하현이 감히 먼저 손바닥을 휘갈기며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또 때리는 것을 보고 남아 있던 건달들이 숨을 헐떡이며 고함을 지르고 달려들었다.“죽어라!”손에 든 쇠파이프가 하현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건달들의 행동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했다.하현은 가까스로 몸을 돌린 후 손바닥을 후려쳤다.비록 상대는 수십 명이나 되지만 하현의 눈에는 모두 어중이떠중이처럼 보였다.옆에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하현도 상황을 봐 가면서 손을 썼을 것이다.“짝짝짝!”앞에 있던 몇몇 건달들이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하현에게 떨어지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화끈거리는 고통과 함
”사람을 불러보라고?!”이 말을 들은 엄도훈은 하마터면 피를 쏟을 뻔했다.과거에는 누가 이런 말을 하면 사정없이 밟아주었더랬다.아주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시원하게!하지만 뜻밖에도 풍수가 뒤바뀌었는지 그가 다른 사람에게 짓밟히는 사람이 되었다.순간 엄도훈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만이 소용돌이쳤다.당당하던 신사 상인 연합회 회장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맞아서 얼굴이 시뻘게지다니!그는 마음이 씁쓸하고 울적하고 괴로웠다.창피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체면치레 몇 마디로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는 계속 헛소리를 들이대면 자신의 체면이 더욱 구겨질 것이 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그래서 엄도훈은 쓸데없는 말 대신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이 자식! 딱 기다려. 네놈을 밟는 일에 우리 서문 천문채 사람까지 부를 필요도 없어!”“우리 신사 상인 연합회에는 수백 명의 형제와 십여 명의 고수들이 있어!”“아주 뼈마디마다 꼭꼭 밟아 줄 것이야!”말을 하면서 엄도훈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그는 신사 상인 연합회를 총출동시킬 모양이었다.그제야 하현은 바라보는 진홍헌의 눈가에 의기양양한 빛이 다시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하현은 확실히 싸움 실력도 좋고 배짱도 두둑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시대가 개개인의 싸움 실력만 좋다고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것이다!돈, 권력, 인맥, 역량, 배경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시대이다.하 씨 성을 가진 놈이 싸움을 잘하면 뭐해?손을 끊어 놓으면 뭐해?이럴 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만둘 줄도 모르고 신사 상인 연합회를 자극해 결국 총출동하게 만들어 서남 천문채까지 나서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몰고 갔으니!이 모든 일로 미루어 보아 식견이 부족한 얼뜨기임에 틀림없다.하 씨 이놈은 실력이 좀 있다고 해도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수백 명이 한꺼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