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바로 이때, 보안실 입구에 또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열 몇 명은 되는 경호원들이 배 나온 지점장을 둘러싸며 들어왔다.지점장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눈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전화 한 통을 하는 동안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은행장이 거의 도착했으니, 지점장에게도 기댈 수 있는 큰 산이 있어 그의 마음속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이봐요, 애초에 은행 카드 한 장만 훔쳤을 때는 경찰서로 이송되더라도 며칠만 갇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말이죠, 일이 그렇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네요.” 지점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점장 어르신께서 또 오셨네요? 지점장 어르신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지금 이렇게 건방지게 구시면 나중에 철판에 발을 찍혔을 때 제 앞에서 무릎 꿇어도 소용이 없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지점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거 젊은이, 당신 솜씨가 좀 좋고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인정해요…”“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싸움 좀 한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요. 대단해 봤자 총탄보다도 대단하겠어요? 혼자서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어요?”“사회에서 제일 대단한 것은 두 단어예요. 하나는 돈, 하나는 권력. 고작 단어 하나가 당신의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 이치가 이해돼요?”하현은 깨달음을 얻고 대답했다. “이런 이치가 있었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제일 대단한 거네요.”지점장은 살짝 멍해 있다가 이내 웃으며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저의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당연히 대단하죠.”“권력은 그렇다 쳐요, 하지만 돈은 제가 많이 갖고 있어요. 당신들 은행을 망가뜨려도 할 말이 없겠죠?” 하현은 면전에서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점장을 바라보았다.“네, 당신이 돈만 있다면 이 은행을 망가뜨리는 것은 말도
이 말인즉슨, 그 핸드폰의 주인은 바로 상업 은행의 VIP 고객이었다.블랙카드에 핸드폰 속의 번호를 더하면, 비록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여전히 가난뱅이 같아 보였지만, 지점장은 겁을 먹기 시작했다.이 세상에 우연이 있기는 했다. 블랙 카드가 거지 손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개인 고객 센터가 전화를 잘못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우연이 서로 겹치게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은 필연이 되어버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지점장은 지금 온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으며, 흰 셔츠가 몸에 다 달라붙을 정도였다.그는 몹시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현을 바라봤는데, 하현이 이미 그 경호팀장을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 놓은 다음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 위에 앉은 것을 보았다.하현은 무심하게 자신이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다. “왜요? 전화 안 받아요? 잘 얘기해봐요!”“철퍼덕!” 지점장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고객님, 아니, 아니, 대표님, 제 눈이 멀어서 사람을 깔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이 순간, 그는 옆에 사람이 수두룩한지 신경 쓰지 못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뺨을 때렸다.지점장의 뒤를 따르던 경호원 열 몇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은행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모두 털썩하며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됐든 지점장이 무릎을 꿇었는데, 그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나.“아…” 얼굴에 난폭한 기색이 역력한 경호팀장은 이 광경을 보자 화들짝 놀랐다. “지점장님, 왜 이 도둑놈한테 무릎을 꿇으세요? 왜 그러세요? 열 받으니까 사람을 시켜서 이놈의 다리를 부러뜨리세요!”“어… 어떻게 이럴 수가…” 주리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반응을 못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점장이 얼마나 건방진 사람인데, 잘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거지?“쾅!”이때, 보안실 대문이 거세게 걷어차여서 열렸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 열 몇 명이 한꺼번에
지점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은행장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VIP 고객님이 직접 카운터로 와서 업무를 처리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고객님의 카드를 훔친 줄 알았어요!”동하는 안색이 어두워져 앞으로 걸어가 지점장의 가슴을 발로 찬 다음,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 밑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니,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대표님께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 주실 수 있을까요?”“그러죠.” 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가게가 클수록 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본래도 많았지만, 정의 구현되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죠.”“은행장님, 조그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네, 말씀하세요. 저의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하는 진지한 얼굴을 내비쳤다. 이런 VIP 고객이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 일은 지나갔고,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만약 하현이 이 순간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면, 동하는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다.“사실 별로 큰일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끼기에, 고객은 서비스 태도가 좋은 곳을 찾아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잖아요? 이따가 제 비서가 저 대신 회사와 개인 자산을 이전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줄 건데, 은행장님께서 귀하신 손으로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문제될 거 없죠?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띠었다.동하는 눈앞이 깜깜해져 기절할 뻔했다.지점장 사무실이 잠시 쓰였다.하현은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 받은 다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슬기가 그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해 그는 천천히 음미했다.반대편에서는 동하가 어색한 얼굴로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하 대표님, 근 몇 년 동안 저희 은행이 대표님 대신 해외 계좌를 힘들게 관리해드린 점을 봐서라도 저희 체면을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하는 어렵게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원하신다면 오후에 저들을 바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들 은행 내부의 일이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네, 네, 네…” 동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표님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산 이전에 관한 일은 없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이 말을 하며 동하는 식은땀으로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하엔 그룹 계좌에는 얼마 없고 1000억 원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달랐다. 그의 계좌 안에 담긴 금액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하현이 개인 계좌를 이전한다면 나동하 이 은행장은 거기서 끝이었다.“은행장님, 당신의 체면을 안 세워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이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요.”“안 그러겠습니다,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동하는 일어섰다. “앞으로 저희 상업 은행이 대표님을 위한 맞춤 전문 팀을 꾸리겠습니다. 어떤 업무든 최단 시간 안에 직접 대표님에게 달려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될까요?”하현은 침묵을 유지했다.동하는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오늘 밤에 서울에서 대형 경매가 열릴 텐데, 유명한 집안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경매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경매는 회원초청제라 같이 데려가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집안 출신이라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제가 마침 초대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얼굴을 비추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시든 다 제가 결제하겠습니다.”이 말을 듣자 하현은 흥미가 조금 생겼다. 그는 초대장을 건네 받아 몇 번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은행장님 덕 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블랙 카드 한도를 올리는 일은 가능한 빨리 해결해주세요.”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어이없는 얼굴을 보였다. 자신의 카드에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있는데, 카드에 한도가
“당신 일은 이미 세리 씨에게 들었어요. 별일 아니니 제가 이따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잘 해결될 거예요.” 진우는 심오한 표정으로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감탄을 했다. “역시 은아 씨는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는 서울 여신이라니까요. 저는 원래 믿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 뵈니 역시 듣던 대로군요. 은아 씨가 이미 결혼하신 게 안타깝네요. 안 그랬으면 제가 은아 씨를 쫓아다녔을 거예요.”진우는 막무가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욕심 가득한 시선이 은아에게 닿자, 그녀는 아주 불편했다. 문제는 진우를 통해 하엔 그룹의 고위층과 가까워져야 했기 때문에, 은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서 대표님,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우리 집 은아는 결혼한 게 맞지만 유명무실한 결혼이에요. 그 쓰레기 데릴사위는 3년 동안 은아의 손도 한 번 안 만져봤어요. 게다가 희정이 이모는 계속 그 데릴사위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만약에 당신같이 훌륭한 남자가 있다면, 희정이 이모든 설 씨 집안이든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예요.” 세리는 희희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그녀의 목적은 애초에 진우와 은아가 잘 되게 관계를 맺어주는 거였다.“진세리,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하현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속으로 찔렸다. 며칠 전에 하현을 쫓아내서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진우는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리를 깊은 눈으로 흘깃 쳐다보았다.세리는 확신에 가득 차 은아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말했다. “은아야, 무슨 생각 해? 그 쓰레기가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한낱 데릴사위에 맨날 너희 집에서 먹고 자기만 하고, 몇 마디 좀 꾸짖었다고 감히 집에 돌아오지를 않아?”“그리고 내가 말하는데, 그 자식은 여자한테 빌붙고 사는 데 도가 텄어. 며칠 전에 거리에서 그 놈이 어떤 부잣집 여자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걸 봤어!”“부잣
하현은 세리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은아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을 뿐이다.“하… 하현?”그러자, 은아는 드디어 하현을 발견했다. 은아는 조금 기쁘면서도 약간 민망해, 그녀의 가녀린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이런 장소에서 하현을 만날 거라고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하현, 당신 정말 대단해요. 요 며칠간 집에 안 들어갔다는 건 그렇다 쳐요,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이런 곳에 오다니. 내가 말하는데, 당신은 정말 여자한테 눌러붙어 사는 걸 잘해요, 빌붙기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세리는 먼저 입을 열어 도발하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본 슬기는 내 대학 동창이에요, 은아도 아는 사람이에요.”“대학 동창?” 세리는 냉소를 지었다. “대학 동창이라면서 남의 차 조수석에 타요? 그럼 말해봐요,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설마 그 동창이 초대장을 준 건 아니죠? 하현 씨, 당신 같은 머저리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 여기는 돈 많다고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하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건 나랑 은아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은 좀 닥쳐주세요!”말을 끝마치고, 하현은 다시 한번 은아를 힐끗 쳐다보았다.은아는 조금 마음에 찔려 앞으로 두 걸음 나서더니 소개했다. “하현, 오해하지 마. 여기 서 대표님은 세리 친구인데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아는 사이래. 그래서 이름 좀 언급해달라고 부탁하려고…”이 말을 듣자, 하현은 즉시 이해가 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하현은 바보가 아니라, 서 대표님이 무슨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리의 진짜 목적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은아 씨, 이분은…” 곁에 있던 진우는 이내 참지 못했다. 은아는 그의 마음에 든 여자였는데, 어떻게 이런 농촌의 하급 이주노동자 같이 생긴 사람이 그녀와 말을 섞을 자격이 있는가? 여신을 모독하는 것 아닌가?
“박시훈?” 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이곳에서 박시훈 이 자식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세리는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시훈아, 어쩜 이런 우연이 있니? 너는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세리는 시훈의 속사정을 대충 알고 있었다. 박 씨 집안은 그저 삼류 집안일 뿐이어서, 원래대로라면 그는 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세리와 은아도 진우 덕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거라, 시훈이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그녀는 호기심을 품었다.시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운이 좀 좋아서 돈을 좀 벌었더니 초대장이 생겨서 한번 구경 와봤지.”말을 마치자, 시훈은 자기 자신조차 조금의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여편네는 그에게 상당히 잘해주었다. 시훈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카드도 하나 쥐여줘 마음껏 긁게 하였다.말을 하던 중, 시훈의 시선이 노점 옷을 입고 있는 하현에게 닿았다. 그는 갑자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이 사람은 너희 집 처가살이 남편 아니야? 요즘 여자한테 빌붙어 다닌다더니, 침대 위에서 바람 피우고 있던 걸 너한테 잡힌 건 아니지?”이 말을 하자, 은아는 더욱더 민망한 기색을 띠었다. 슬기같이 훌륭한 여자는 하현 같은 머저리랑 무슨 사이일 리가 없다고 아무리 은아에게 이성적으로 말을 해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질투했다.“이분은…” 시훈의 시선이 움직여 진우에게 다다랐다. 비록 그에게는 이제 하 씨 이모가 있었지만, 은아를 보자 그의 첫사랑을 간직한 마음이 다시금 피어났다.시훈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진우는 껄껄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진우입니다. 서울 서씨 집안 출신이고 은아 씨랑은 친구예요.”그의 말을 들으니 시훈은 이해가 됐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도 은아를 쫓고 있었다. 시훈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서 대표님, 제가 말이 많다고 하지 마세요. 은아는 좋은 여자지만 사람을 잘
하현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리게 됐네요. 저에게 초대장이 있어요.”“하하하, 저기요, 당신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진우가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난 척하는 자를 많이 만나봤지만, 당신만큼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이렇게 하죠, 오늘 초대장을 꺼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나는 한마디도 안 하고 여기서 꺼질게요.”“하지만, 만약 당신이 진다면, 당신이 꺼지는 거예요, 해볼래요?”진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봐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뒤돌아서 갔을 거예요. 아내가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시훈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 잊으신 것 같은데, 데릴사위한테 무슨 체면이나 자존심이 있겠어요? 저 하늘 위로 이미 던져버렸겠죠!”하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하고 내기를 하죠. 저도 궁금하네요, 이따가 꺼지는 사람은 당신일지 나일지.”말을 하며, 하현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이내 표정이 굳었다.하현은 아까 초대장을 들고 왔는데, 겉옷 주머니에 넣고는 겉옷을 차에 놔두고 왔다.지금 하현은 정말 초대장을 꺼내지 못했다.“하하하, 정말 당신이 존경스럽네요. 초대장도 없으면서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오다니, 얼른 안 꺼져요!”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잘난 척을 해도 이 정도로 실패한 자는 본 적이 없다.시훈도 연이어 냉소를 지었다. 하현은 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그의 돈줄조차 그를 위해 나서기 싫은 게 안 보이나? 반면, 시훈 자신은 달랐다. 하 씨 이모가 시훈이 경매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줬을 뿐만 아니라, 카드도 마음껏 사용하게 자신에게 쥐여줬다. 이런 생각들은 시훈에게 위안이 되었다.“손님, 만약 초대장이 없으시다면 저희 구르미 경매 행사에서 손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종업원 한 명이 정중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바로 이곳의 규칙이었다.하현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종업원은 경호원을 불러 하현을 문밖으로 고이 모셨다.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