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현은 꽤 자제했다. 슬기에게 손대려고 했던 경호원 외에, 하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이 시각, 그 경호원은 몸이 비틀려져 있었고, 얼굴은 계속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아팠다. 이 도둑의 솜씨가 아주 좋고 매우 민첩한 거 아닌가?비록 이 몇몇 경호원은 수년간 사치스럽고 안일한 나날을 보내며 능력을 모조리 잃었지만, 실력은 아직 그대로였기에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패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리는 아연실색했고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하현의 핸드폰을 낚아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현도 일을 마무리할 의향이 없어 경호원의 종아리를 발로 차며 그를 무릎 꿇렸다. 이어서 하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를 때리지 않는 게 원칙이야.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오늘 철저히 네 몸을 망가뜨릴 거야.”“아! 개자식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너는 죽었어!” 이 경호원은 경호 팀장이어서 회사 내에서 조금이나마 지위가 있었다. 그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겠나? 이 순간 그는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할 리가 있나.“그래?” 현장에서 공포에 떨던 시선들을 모두 한 몸에 받은 채, 하현은 다리를 쭉 뻗더니 뚝 소리와 함께 경호팀장의 종아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렸다.그런 다음, 하현의 시선이 다른 쪽 다리에 떨어지더니 그는 차갑게 말했다. “사과할 거야?”“여기… 사람 살려요! 얼른 사람 살려요!” 주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잽싸게 보안실 대문을 열며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주리는 눈 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차마 믿지 못했다. 은행 측 네다섯 명의 경호원은? 결국 이 도둑놈이 이렇게까지 미쳐 날뛰었다고? 더 이상 살기가 싫어졌나? 우리가 경찰에 고소할까 봐 두렵지 않나?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 유일하게 슬기만 당연하다는 얼굴을 내비쳤다. 자기 대표님이 얼마나
“쿵!’바로 이때, 보안실 입구에 또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열 몇 명은 되는 경호원들이 배 나온 지점장을 둘러싸며 들어왔다.지점장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눈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전화 한 통을 하는 동안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은행장이 거의 도착했으니, 지점장에게도 기댈 수 있는 큰 산이 있어 그의 마음속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이봐요, 애초에 은행 카드 한 장만 훔쳤을 때는 경찰서로 이송되더라도 며칠만 갇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말이죠, 일이 그렇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네요.” 지점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점장 어르신께서 또 오셨네요? 지점장 어르신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지금 이렇게 건방지게 구시면 나중에 철판에 발을 찍혔을 때 제 앞에서 무릎 꿇어도 소용이 없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지점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거 젊은이, 당신 솜씨가 좀 좋고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인정해요…”“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싸움 좀 한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요. 대단해 봤자 총탄보다도 대단하겠어요? 혼자서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어요?”“사회에서 제일 대단한 것은 두 단어예요. 하나는 돈, 하나는 권력. 고작 단어 하나가 당신의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 이치가 이해돼요?”하현은 깨달음을 얻고 대답했다. “이런 이치가 있었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제일 대단한 거네요.”지점장은 살짝 멍해 있다가 이내 웃으며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저의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당연히 대단하죠.”“권력은 그렇다 쳐요, 하지만 돈은 제가 많이 갖고 있어요. 당신들 은행을 망가뜨려도 할 말이 없겠죠?” 하현은 면전에서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점장을 바라보았다.“네, 당신이 돈만 있다면 이 은행을 망가뜨리는 것은 말도
이 말인즉슨, 그 핸드폰의 주인은 바로 상업 은행의 VIP 고객이었다.블랙카드에 핸드폰 속의 번호를 더하면, 비록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여전히 가난뱅이 같아 보였지만, 지점장은 겁을 먹기 시작했다.이 세상에 우연이 있기는 했다. 블랙 카드가 거지 손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개인 고객 센터가 전화를 잘못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우연이 서로 겹치게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은 필연이 되어버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지점장은 지금 온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으며, 흰 셔츠가 몸에 다 달라붙을 정도였다.그는 몹시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현을 바라봤는데, 하현이 이미 그 경호팀장을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 놓은 다음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 위에 앉은 것을 보았다.하현은 무심하게 자신이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다. “왜요? 전화 안 받아요? 잘 얘기해봐요!”“철퍼덕!” 지점장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고객님, 아니, 아니, 대표님, 제 눈이 멀어서 사람을 깔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이 순간, 그는 옆에 사람이 수두룩한지 신경 쓰지 못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뺨을 때렸다.지점장의 뒤를 따르던 경호원 열 몇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은행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모두 털썩하며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됐든 지점장이 무릎을 꿇었는데, 그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나.“아…” 얼굴에 난폭한 기색이 역력한 경호팀장은 이 광경을 보자 화들짝 놀랐다. “지점장님, 왜 이 도둑놈한테 무릎을 꿇으세요? 왜 그러세요? 열 받으니까 사람을 시켜서 이놈의 다리를 부러뜨리세요!”“어… 어떻게 이럴 수가…” 주리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반응을 못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점장이 얼마나 건방진 사람인데, 잘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거지?“쾅!”이때, 보안실 대문이 거세게 걷어차여서 열렸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 열 몇 명이 한꺼번에
지점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은행장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VIP 고객님이 직접 카운터로 와서 업무를 처리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고객님의 카드를 훔친 줄 알았어요!”동하는 안색이 어두워져 앞으로 걸어가 지점장의 가슴을 발로 찬 다음,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 밑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니,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대표님께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 주실 수 있을까요?”“그러죠.” 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가게가 클수록 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본래도 많았지만, 정의 구현되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죠.”“은행장님, 조그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네, 말씀하세요. 저의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하는 진지한 얼굴을 내비쳤다. 이런 VIP 고객이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 일은 지나갔고,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만약 하현이 이 순간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면, 동하는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다.“사실 별로 큰일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끼기에, 고객은 서비스 태도가 좋은 곳을 찾아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잖아요? 이따가 제 비서가 저 대신 회사와 개인 자산을 이전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줄 건데, 은행장님께서 귀하신 손으로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문제될 거 없죠?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띠었다.동하는 눈앞이 깜깜해져 기절할 뻔했다.지점장 사무실이 잠시 쓰였다.하현은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 받은 다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슬기가 그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해 그는 천천히 음미했다.반대편에서는 동하가 어색한 얼굴로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하 대표님, 근 몇 년 동안 저희 은행이 대표님 대신 해외 계좌를 힘들게 관리해드린 점을 봐서라도 저희 체면을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하는 어렵게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원하신다면 오후에 저들을 바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들 은행 내부의 일이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네, 네, 네…” 동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표님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산 이전에 관한 일은 없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이 말을 하며 동하는 식은땀으로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하엔 그룹 계좌에는 얼마 없고 1000억 원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달랐다. 그의 계좌 안에 담긴 금액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하현이 개인 계좌를 이전한다면 나동하 이 은행장은 거기서 끝이었다.“은행장님, 당신의 체면을 안 세워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이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요.”“안 그러겠습니다,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동하는 일어섰다. “앞으로 저희 상업 은행이 대표님을 위한 맞춤 전문 팀을 꾸리겠습니다. 어떤 업무든 최단 시간 안에 직접 대표님에게 달려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될까요?”하현은 침묵을 유지했다.동하는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오늘 밤에 서울에서 대형 경매가 열릴 텐데, 유명한 집안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경매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경매는 회원초청제라 같이 데려가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집안 출신이라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제가 마침 초대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얼굴을 비추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시든 다 제가 결제하겠습니다.”이 말을 듣자 하현은 흥미가 조금 생겼다. 그는 초대장을 건네 받아 몇 번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은행장님 덕 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블랙 카드 한도를 올리는 일은 가능한 빨리 해결해주세요.”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어이없는 얼굴을 보였다. 자신의 카드에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있는데, 카드에 한도가
“당신 일은 이미 세리 씨에게 들었어요. 별일 아니니 제가 이따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잘 해결될 거예요.” 진우는 심오한 표정으로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감탄을 했다. “역시 은아 씨는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는 서울 여신이라니까요. 저는 원래 믿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 뵈니 역시 듣던 대로군요. 은아 씨가 이미 결혼하신 게 안타깝네요. 안 그랬으면 제가 은아 씨를 쫓아다녔을 거예요.”진우는 막무가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욕심 가득한 시선이 은아에게 닿자, 그녀는 아주 불편했다. 문제는 진우를 통해 하엔 그룹의 고위층과 가까워져야 했기 때문에, 은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서 대표님,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우리 집 은아는 결혼한 게 맞지만 유명무실한 결혼이에요. 그 쓰레기 데릴사위는 3년 동안 은아의 손도 한 번 안 만져봤어요. 게다가 희정이 이모는 계속 그 데릴사위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만약에 당신같이 훌륭한 남자가 있다면, 희정이 이모든 설 씨 집안이든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예요.” 세리는 희희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그녀의 목적은 애초에 진우와 은아가 잘 되게 관계를 맺어주는 거였다.“진세리,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하현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속으로 찔렸다. 며칠 전에 하현을 쫓아내서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진우는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리를 깊은 눈으로 흘깃 쳐다보았다.세리는 확신에 가득 차 은아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말했다. “은아야, 무슨 생각 해? 그 쓰레기가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한낱 데릴사위에 맨날 너희 집에서 먹고 자기만 하고, 몇 마디 좀 꾸짖었다고 감히 집에 돌아오지를 않아?”“그리고 내가 말하는데, 그 자식은 여자한테 빌붙고 사는 데 도가 텄어. 며칠 전에 거리에서 그 놈이 어떤 부잣집 여자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걸 봤어!”“부잣
하현은 세리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은아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을 뿐이다.“하… 하현?”그러자, 은아는 드디어 하현을 발견했다. 은아는 조금 기쁘면서도 약간 민망해, 그녀의 가녀린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이런 장소에서 하현을 만날 거라고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하현, 당신 정말 대단해요. 요 며칠간 집에 안 들어갔다는 건 그렇다 쳐요,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이런 곳에 오다니. 내가 말하는데, 당신은 정말 여자한테 눌러붙어 사는 걸 잘해요, 빌붙기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세리는 먼저 입을 열어 도발하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본 슬기는 내 대학 동창이에요, 은아도 아는 사람이에요.”“대학 동창?” 세리는 냉소를 지었다. “대학 동창이라면서 남의 차 조수석에 타요? 그럼 말해봐요,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설마 그 동창이 초대장을 준 건 아니죠? 하현 씨, 당신 같은 머저리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 여기는 돈 많다고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하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건 나랑 은아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은 좀 닥쳐주세요!”말을 끝마치고, 하현은 다시 한번 은아를 힐끗 쳐다보았다.은아는 조금 마음에 찔려 앞으로 두 걸음 나서더니 소개했다. “하현, 오해하지 마. 여기 서 대표님은 세리 친구인데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아는 사이래. 그래서 이름 좀 언급해달라고 부탁하려고…”이 말을 듣자, 하현은 즉시 이해가 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하현은 바보가 아니라, 서 대표님이 무슨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리의 진짜 목적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은아 씨, 이분은…” 곁에 있던 진우는 이내 참지 못했다. 은아는 그의 마음에 든 여자였는데, 어떻게 이런 농촌의 하급 이주노동자 같이 생긴 사람이 그녀와 말을 섞을 자격이 있는가? 여신을 모독하는 것 아닌가?
“박시훈?” 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이곳에서 박시훈 이 자식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세리는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시훈아, 어쩜 이런 우연이 있니? 너는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세리는 시훈의 속사정을 대충 알고 있었다. 박 씨 집안은 그저 삼류 집안일 뿐이어서, 원래대로라면 그는 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세리와 은아도 진우 덕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거라, 시훈이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그녀는 호기심을 품었다.시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운이 좀 좋아서 돈을 좀 벌었더니 초대장이 생겨서 한번 구경 와봤지.”말을 마치자, 시훈은 자기 자신조차 조금의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여편네는 그에게 상당히 잘해주었다. 시훈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카드도 하나 쥐여줘 마음껏 긁게 하였다.말을 하던 중, 시훈의 시선이 노점 옷을 입고 있는 하현에게 닿았다. 그는 갑자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이 사람은 너희 집 처가살이 남편 아니야? 요즘 여자한테 빌붙어 다닌다더니, 침대 위에서 바람 피우고 있던 걸 너한테 잡힌 건 아니지?”이 말을 하자, 은아는 더욱더 민망한 기색을 띠었다. 슬기같이 훌륭한 여자는 하현 같은 머저리랑 무슨 사이일 리가 없다고 아무리 은아에게 이성적으로 말을 해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질투했다.“이분은…” 시훈의 시선이 움직여 진우에게 다다랐다. 비록 그에게는 이제 하 씨 이모가 있었지만, 은아를 보자 그의 첫사랑을 간직한 마음이 다시금 피어났다.시훈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진우는 껄껄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진우입니다. 서울 서씨 집안 출신이고 은아 씨랑은 친구예요.”그의 말을 들으니 시훈은 이해가 됐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도 은아를 쫓고 있었다. 시훈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서 대표님, 제가 말이 많다고 하지 마세요. 은아는 좋은 여자지만 사람을 잘
노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후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축 처진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에게 자신을 가게 안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그는 노부인 일행은 그대로 바깥에 무릎을 꿇도록 내버려두었다.십수 년 동안의 부귀영화를 생각한다면 지금 무릎 꿇은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양제명이 이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부의 정은 여전히 깊다고 할 수 있었다.한 시간 후 노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짚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뒷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서늘함과 밀려오는 원한이 뒤엉켰다.노부인은 운전기사에게 어서 출발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사적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보호 유리를 완전히 올린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노부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 씨 그놈이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내가 이미 금액을 올려서 입금했을 텐데?!”“언제 죽일 작정이야?!”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노부인, 하현의 신분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만반의 계획을 세웠지만 도무지 손을 쓸 기회가 없었어요...”노부인은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나는 그놈이 어떤 신분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없어!”“당신들이 어서 빨리 그놈의 숨통을 끊어주기만 하면 돼!”“돈이 더 필요하면 더 주지! 천억 더 줄게!”“그놈만 죽여 준다면 우리 양 씨 가문 재산의 절반까지도 떼어 줄 테니까 명심해!”노부인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 하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오지랖 넓게 감히 양 씨 집안일에 방해를 놓는 그놈만 죽인다면 양제명과 양유훤이 어찌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자신의 계략으로 얼마든지 양제명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좋습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대범하시니 저희
”맞아요. 노부인이 양제명과 양유훤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문은 이미 많이 발전했을 것이고 일찍이 남양 제일 가문이 되었을 거예요!”“맞습니다. 이건 노부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일입니다!”“양유훤이 노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양제명 어르신이 오랜 부부의 정을 생각해 주신다면!”“우리는 그들 덕분에 앞으로 수십 년은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요!”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었다.그들은 지금껏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는 한편 수십 년 동안 더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런 기회를 내동댕이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그들은 사회로 나가 일할 능력을 잃은지 오래였고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밖에 구걸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양제명과 양유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말하자면 양 씨 가문의 노부인의 지위가 흔들렸고 더 이상 노부인이 양 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를 본 양호남이 입을 열었다.“무슨 말이야?!”“당신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지금 할머니를 의심하는 거야? 당신들 살고 싶지 않아?”“살기가 지겨워?!”양신이도 옆에서 거들었다.“오늘날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다 할머니 덕분이야. 그런데 지금 그런 할머니를 몰아붙인다니, 당신들은 양심도 없어?”“당신들 나중에 우리 할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어?”양호남과 양신이는 다른 사람들이야 양유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용서를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기회가 절대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현과 양유훤이 내건 첫 번째 조건이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었다.하 씨 저놈은 정말로 악랄하기 그지없어!“닥쳐! 모두 입 닥쳐!”이 광경을 보고 노부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기업청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우리 가문의 장부와 납세 명세서를 살펴보겠다고 합니다!”“노부인, 노동청에서도 우리 양 씨 가문 공장에 와서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주지 않은 일이 발각되었으니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했습니다.”“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몇몇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양유훤과 접촉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우리 가문의 주식을 넘겼습니다!”“그리고 지금 공급업체에서는 대금 상환을 재촉하고 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는 만기도 도래하지 않은 대출을 상환하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노부인, 원 씨 가문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원천신이 가문에서 쫓겨났다구요. 이제 더 이상 원 씨 가문 사람이 아니랍니다...”나쁜 소식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노부인, 남양 무맹은 양씨백약을 불량품이라 선포하고 앞으로 양가백약 제품만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우리 가문은 완전히 망했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은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지금 같으면 하현은 정말로 1분 만에 양 씨 가문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한순간에 모든 부귀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냐구요!”“하현은 지금 급소를 찌르며 우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우리 가문이 금방 마비될 수 있다구요!”“하현이 이렇게 밀어붙이다가 쌍방이 모두 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완전히 무너지면 그때 하현은 양유훤과 손을 잡고 양가백약으로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어요.”“노부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뭐라도 한 마디 하시죠!”“아니면 양유훤 앞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요. 어쨌든 양유훤도 양 씨 가문 사람이니까 우리가 용서하면
”그리고 엄마가 금정에 있는데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내가 코스 짜 줬어. 아마 기분 좀 나아질 거야.”“날 봐서라도 나중에 엄마 만나면 너무 충돌하지 말고, 응?”“그래, 그럼.”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은아에게 물었다.“아, 당신 뭐 잊은 거 없어?”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뭔데?”“사흘 뒤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우리 이번 참에 혼인신고 다시 할까?”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볼그레지며 허둥지둥 영상통화를 끊었다....오후 3시, 페낭 종합병원 VIP 병동.양 씨 가문 노부인은 한참 전에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그녀는 지금 병상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깊고 날카로운 주름이 움푹 패어 있었다.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녀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자욱이 맴돌았다.방에 모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노부인만 쳐다보고 있었다.다들 노부인이 뭐라도 얼른 생각을 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하지만 노부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한참이 지나 양호남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침묵을 깨고 나왔다.하현이 내건 조건들을 노부인이 들어줄까 봐 양호남은 마음 가득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하현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다리도 부러질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맞아요. 할머니는 우리 양 씨 가문 기둥이잖아요.”“이럴 때일수록 할머니가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 지시를 내려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싸울 수가 있어요.”양신이가 얼얼한 얼굴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우리 양 씨 가문은 기개가 있는 집안이에요. 남양 3대 가문 중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
”꺼져!”하현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양유훤이 얼른 눈물을 닦으며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를 날려버렸다.“그만 망신당하고 저리 꺼져!”“양유훤, 감히 날 때려?”“네가 뭔데 날 때려?”양신이는 더욱 분노에 치를 떨며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나와 양유훤에게 대들었지만 양유훤은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양신이는 다른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양제명의 서슬 퍼런 시선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양제명은 전쟁의 신이었다.비록 몇 년을 꼼짝 않고 힘을 쓰지 못했지만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위엄은 여전했다.만약 이번에 노부인이 악의로 그를 음해하지 않고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양 씨 가문의 지존으로 자리했을 것이다.“그만!”양유훤에게 뺨을 맞고도 망신스럽게 달려드는 양신이를 보고 노부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망신 그만 당하고 이제 돌아와!”“늙은 영감탱이, 수완 한 번 좋군!”“하현, 나도 자네를 기억하네!”노부인이 음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무너질 줄 알아? 우리가 모든 걸 잃고 망할 줄 알아?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거야!”“그동안 난 이미 충분한 자산을 빼돌려 미국으로 보냈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어.”추악한 노부인의 행태를 목격한 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홍매, 내가 당신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당신과 난 오랜 세월 부부의 연을 맺었어. 난 모든 면에서 당신의 뜻을 존중했어.”“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왜 이 지경까지 된 거야?!”“왜 이렇게까지 된 거냐고?”노부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당신은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양 씨 가문은 진작에 내 손안에 있었어. 내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의 진정한 주인이라고!”“나야말로 양 씨 가문의 유일한 주인이야!”“그런데 당신이 왜
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노부인은 원래 같으면 입에 발설하지 않았을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녀는 능력도 없는 하현이 감히 양 씨 가문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에 격분하며 비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장난하는 거야?!노부인의 치밀한 계략 아래 한 세대를 쥐락펴락하는 전신들도 함부로 그녀 앞에서 날뛰지 못했는데 하물며 대하 외지인이 감히?거칠 것 없는 노부인의 말에 원천신과 원가령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어쨌든 하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양 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양 씨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다!그리고 양 씨 가문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 노부인이었다!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양호남이었다!오늘 이 정도 체면이 깎인다고 뭐 어떻게 되겠는가?!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렇습니까?”노부인의 말에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 짐작이 맞으신 듯합니다.”“어르신께 약을 먹은 사람은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하현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후방에서 희미한 탄식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독사의 입에 있는 독, 말벌 꼬리에 있는 침. 둘 다 지독한 독이지만 가장 지독하고 치명적인 독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하구봉과 강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양유훤은 감정에 격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그녀는 양제명에게 달려들었고 미소 띤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양제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깨어나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남양의 전신이 회복된 것인가?이는 앞으로 남양이 여전히 그의 천하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입가에 경련
정의의 편?정의를 지켜?이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마터면 여수혁의 얼굴을 칠 뻔했다.여수혁이 정의를 내걸고 배신을 해?!여수혁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얼른 앞으로 나서며 세상 정의로운 얼굴로 말했다.“당신들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염치도 모르고 나를 회유해 양유훤의 자산을 동결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은밀하게 그 자산을 이전하길 바랐어!”“하지만 나같이 정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당신들과 한패가 될 수 있겠어?”“당신들이 날 믿도록 하기 위해 난 일부러 고육지책으로 하현을 찾아가 얻어맞기까지 했어!”“결국 당신들은 날 믿었고 난 그 틈을 타 얼른 고소를 취하했지. 동결한 자산이 양유훤에게 돌아간 지 이미 오래야!”“이미 모든 절차는 완료되었어.”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그때 분명 여수혁은 자신에게 뺨을 맞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기꺼이 하현의 개가 되겠다고 했던 여수혁의 입에서 어떻게 ‘정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정말 여수혁은 보통 얍삽한 놈이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사실을 들추어낼 마음이 없었다.효과가 있으면 된 것이었다.여수혁의 말에 노부인을 비롯한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양유훤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아무도 모르게 동결된 자산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단단히 문단속을 해 놨기 때문이었다.쌍방에서 몰래 뒤를 친 것도 모자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하현을 보니 양호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화를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나 튀어나와 악랄하게 악담을 퍼부었다.“양유훤, 무슨 근거로 양 씨 가문 자산을 빼돌린 거야?!”“넌 이제 양 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양 씨 가문의 자산은 우리 양 씨 가문의 것이어야 해!”양신이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쳤다.“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