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은행장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VIP 고객님이 직접 카운터로 와서 업무를 처리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고객님의 카드를 훔친 줄 알았어요!”동하는 안색이 어두워져 앞으로 걸어가 지점장의 가슴을 발로 찬 다음,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 밑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니,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대표님께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 주실 수 있을까요?”“그러죠.” 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가게가 클수록 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본래도 많았지만, 정의 구현되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죠.”“은행장님, 조그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네, 말씀하세요. 저의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하는 진지한 얼굴을 내비쳤다. 이런 VIP 고객이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 일은 지나갔고,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만약 하현이 이 순간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면, 동하는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다.“사실 별로 큰일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끼기에, 고객은 서비스 태도가 좋은 곳을 찾아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잖아요? 이따가 제 비서가 저 대신 회사와 개인 자산을 이전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줄 건데, 은행장님께서 귀하신 손으로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문제될 거 없죠?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띠었다.동하는 눈앞이 깜깜해져 기절할 뻔했다.지점장 사무실이 잠시 쓰였다.하현은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 받은 다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슬기가 그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해 그는 천천히 음미했다.반대편에서는 동하가 어색한 얼굴로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하 대표님, 근 몇 년 동안 저희 은행이 대표님 대신 해외 계좌를 힘들게 관리해드린 점을 봐서라도 저희 체면을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하는 어렵게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원하신다면 오후에 저들을 바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들 은행 내부의 일이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네, 네, 네…” 동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표님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산 이전에 관한 일은 없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이 말을 하며 동하는 식은땀으로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하엔 그룹 계좌에는 얼마 없고 1000억 원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달랐다. 그의 계좌 안에 담긴 금액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하현이 개인 계좌를 이전한다면 나동하 이 은행장은 거기서 끝이었다.“은행장님, 당신의 체면을 안 세워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이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요.”“안 그러겠습니다,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동하는 일어섰다. “앞으로 저희 상업 은행이 대표님을 위한 맞춤 전문 팀을 꾸리겠습니다. 어떤 업무든 최단 시간 안에 직접 대표님에게 달려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될까요?”하현은 침묵을 유지했다.동하는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오늘 밤에 서울에서 대형 경매가 열릴 텐데, 유명한 집안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경매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경매는 회원초청제라 같이 데려가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집안 출신이라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제가 마침 초대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얼굴을 비추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시든 다 제가 결제하겠습니다.”이 말을 듣자 하현은 흥미가 조금 생겼다. 그는 초대장을 건네 받아 몇 번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은행장님 덕 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블랙 카드 한도를 올리는 일은 가능한 빨리 해결해주세요.”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어이없는 얼굴을 보였다. 자신의 카드에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있는데, 카드에 한도가
“당신 일은 이미 세리 씨에게 들었어요. 별일 아니니 제가 이따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잘 해결될 거예요.” 진우는 심오한 표정으로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감탄을 했다. “역시 은아 씨는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는 서울 여신이라니까요. 저는 원래 믿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 뵈니 역시 듣던 대로군요. 은아 씨가 이미 결혼하신 게 안타깝네요. 안 그랬으면 제가 은아 씨를 쫓아다녔을 거예요.”진우는 막무가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욕심 가득한 시선이 은아에게 닿자, 그녀는 아주 불편했다. 문제는 진우를 통해 하엔 그룹의 고위층과 가까워져야 했기 때문에, 은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서 대표님,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우리 집 은아는 결혼한 게 맞지만 유명무실한 결혼이에요. 그 쓰레기 데릴사위는 3년 동안 은아의 손도 한 번 안 만져봤어요. 게다가 희정이 이모는 계속 그 데릴사위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만약에 당신같이 훌륭한 남자가 있다면, 희정이 이모든 설 씨 집안이든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예요.” 세리는 희희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그녀의 목적은 애초에 진우와 은아가 잘 되게 관계를 맺어주는 거였다.“진세리,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하현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속으로 찔렸다. 며칠 전에 하현을 쫓아내서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진우는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리를 깊은 눈으로 흘깃 쳐다보았다.세리는 확신에 가득 차 은아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말했다. “은아야, 무슨 생각 해? 그 쓰레기가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한낱 데릴사위에 맨날 너희 집에서 먹고 자기만 하고, 몇 마디 좀 꾸짖었다고 감히 집에 돌아오지를 않아?”“그리고 내가 말하는데, 그 자식은 여자한테 빌붙고 사는 데 도가 텄어. 며칠 전에 거리에서 그 놈이 어떤 부잣집 여자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걸 봤어!”“부잣
하현은 세리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은아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을 뿐이다.“하… 하현?”그러자, 은아는 드디어 하현을 발견했다. 은아는 조금 기쁘면서도 약간 민망해, 그녀의 가녀린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이런 장소에서 하현을 만날 거라고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하현, 당신 정말 대단해요. 요 며칠간 집에 안 들어갔다는 건 그렇다 쳐요,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이런 곳에 오다니. 내가 말하는데, 당신은 정말 여자한테 눌러붙어 사는 걸 잘해요, 빌붙기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세리는 먼저 입을 열어 도발하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본 슬기는 내 대학 동창이에요, 은아도 아는 사람이에요.”“대학 동창?” 세리는 냉소를 지었다. “대학 동창이라면서 남의 차 조수석에 타요? 그럼 말해봐요,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설마 그 동창이 초대장을 준 건 아니죠? 하현 씨, 당신 같은 머저리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 여기는 돈 많다고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하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건 나랑 은아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은 좀 닥쳐주세요!”말을 끝마치고, 하현은 다시 한번 은아를 힐끗 쳐다보았다.은아는 조금 마음에 찔려 앞으로 두 걸음 나서더니 소개했다. “하현, 오해하지 마. 여기 서 대표님은 세리 친구인데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아는 사이래. 그래서 이름 좀 언급해달라고 부탁하려고…”이 말을 듣자, 하현은 즉시 이해가 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하현은 바보가 아니라, 서 대표님이 무슨 하엔 그룹 고위층이랑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리의 진짜 목적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은아 씨, 이분은…” 곁에 있던 진우는 이내 참지 못했다. 은아는 그의 마음에 든 여자였는데, 어떻게 이런 농촌의 하급 이주노동자 같이 생긴 사람이 그녀와 말을 섞을 자격이 있는가? 여신을 모독하는 것 아닌가?
“박시훈?” 은아는 잠시 멍해졌다. 이곳에서 박시훈 이 자식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세리는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시훈아, 어쩜 이런 우연이 있니? 너는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세리는 시훈의 속사정을 대충 알고 있었다. 박 씨 집안은 그저 삼류 집안일 뿐이어서, 원래대로라면 그는 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세리와 은아도 진우 덕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거라, 시훈이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그녀는 호기심을 품었다.시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운이 좀 좋아서 돈을 좀 벌었더니 초대장이 생겨서 한번 구경 와봤지.”말을 마치자, 시훈은 자기 자신조차 조금의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여편네는 그에게 상당히 잘해주었다. 시훈이 구르미 경매 행사에 참석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카드도 하나 쥐여줘 마음껏 긁게 하였다.말을 하던 중, 시훈의 시선이 노점 옷을 입고 있는 하현에게 닿았다. 그는 갑자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은아야, 이 사람은 너희 집 처가살이 남편 아니야? 요즘 여자한테 빌붙어 다닌다더니, 침대 위에서 바람 피우고 있던 걸 너한테 잡힌 건 아니지?”이 말을 하자, 은아는 더욱더 민망한 기색을 띠었다. 슬기같이 훌륭한 여자는 하현 같은 머저리랑 무슨 사이일 리가 없다고 아무리 은아에게 이성적으로 말을 해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질투했다.“이분은…” 시훈의 시선이 움직여 진우에게 다다랐다. 비록 그에게는 이제 하 씨 이모가 있었지만, 은아를 보자 그의 첫사랑을 간직한 마음이 다시금 피어났다.시훈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진우는 껄껄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진우입니다. 서울 서씨 집안 출신이고 은아 씨랑은 친구예요.”그의 말을 들으니 시훈은 이해가 됐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도 은아를 쫓고 있었다. 시훈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서 대표님, 제가 말이 많다고 하지 마세요. 은아는 좋은 여자지만 사람을 잘
하현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리게 됐네요. 저에게 초대장이 있어요.”“하하하, 저기요, 당신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진우가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난 척하는 자를 많이 만나봤지만, 당신만큼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이렇게 하죠, 오늘 초대장을 꺼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나는 한마디도 안 하고 여기서 꺼질게요.”“하지만, 만약 당신이 진다면, 당신이 꺼지는 거예요, 해볼래요?”진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봐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뒤돌아서 갔을 거예요. 아내가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시훈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 잊으신 것 같은데, 데릴사위한테 무슨 체면이나 자존심이 있겠어요? 저 하늘 위로 이미 던져버렸겠죠!”하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하고 내기를 하죠. 저도 궁금하네요, 이따가 꺼지는 사람은 당신일지 나일지.”말을 하며, 하현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이내 표정이 굳었다.하현은 아까 초대장을 들고 왔는데, 겉옷 주머니에 넣고는 겉옷을 차에 놔두고 왔다.지금 하현은 정말 초대장을 꺼내지 못했다.“하하하, 정말 당신이 존경스럽네요. 초대장도 없으면서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오다니, 얼른 안 꺼져요!”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잘난 척을 해도 이 정도로 실패한 자는 본 적이 없다.시훈도 연이어 냉소를 지었다. 하현은 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그의 돈줄조차 그를 위해 나서기 싫은 게 안 보이나? 반면, 시훈 자신은 달랐다. 하 씨 이모가 시훈이 경매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줬을 뿐만 아니라, 카드도 마음껏 사용하게 자신에게 쥐여줬다. 이런 생각들은 시훈에게 위안이 되었다.“손님, 만약 초대장이 없으시다면 저희 구르미 경매 행사에서 손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종업원 한 명이 정중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바로 이곳의 규칙이었다.하현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종업원은 경호원을 불러 하현을 문밖으로 고이 모셨다.
전화 건너에 있던 슬기는 마지못해 말했다. “저희는 방금 들어갔는데 대표님께서 왜 갑자기 종업원에게 쫓겨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밖에서 대표님을 찾고 있습니다…”슬기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아까 가까이 있지 않아서 영문도 모른 채 하현이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일 처리를 한 거예요?” 동하가 화들짝 놀라더니 재빨리 말했다. “이렇게 하죠, 대표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해주시고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전화를 끊은 후, 동하는 재빨리 홀이 있는 곳으로 왔다.“나 은행장님, 저는…” 진우는 동하가 걸어오는 걸 보자, 옷을 툭툭 털며 은아를 향해 눈을 깜빡이더니, 결의에 찬 얼굴로 걸어가 동하와 인사하려고 했다.그러나, 동하는 그에게 눈길 한 번도 주지 않았고, 빠르게 그의 옆을 지나갔다.진우가 내민 손은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버렸으며, 잠시 조금 민망했다.반면, 그의 뒤에 있던 세리는 빠르게 반응했다. “아까 그분이 나 은행장님이시죠? 보아하니 어느 손님을 마중하러 나가나 봐요…”“맞아요, 맞아요,” 진우는 빠른 반응을 보였다. “나 은행장님께서 원래 좀 허둥지둥하셔요. 지금 일이 있으신데 방해하는 건 적절하지 않으니, 조금 이따가 다시 은행장님을 만나러 가죠.”......구르미 산장 홀 문 앞, 종업원 한 명이 입구에 서서 경호원 두 명을 꾸짖고 있었다. “당신들 둘은 앞으로 좀 생각하고 행동하면 안 돼요? 주차장에 들어올 때 초대장을 1차로 검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기 홀 입구에서도 한 번 더 확인해야 해요, 알겠어요?”“조금 전 딱 봐도 거지 같은 그런 사람은 초대장 검사도 안 하고 그냥 들여보내다니, 우리 경매 행사 진행하는 데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되지 않나요? 무슨 일 생기면 둘이서 전부 책임지세요…”경호원 두 명은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이 구르미 산장의 종업원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이때, 동하가 허겁지겁하며 여
이와 동시에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이 여자가 나동하의 여자는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이 거머리 같은 놈은…종업원의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났고, 말로 토해내지 않았을 뿐이다.하현은 애초에 급할 것도 없었다. 진우는 하엔 그룹의 고위층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는데, 그는 이걸 이용해 은아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어느 고위 인사를 알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종업원이 찾아오자, 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아까는 초대장이 없어서 경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지금은 또 나를 다시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날 뭐로 보는 거예요?”종업원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당신 같은 거머리가, 아니지, 당신 같은 바람둥이가 여기서도 허세를 부리다니. 나 은행장님의 지시만 아니었으면, 당신은 우리 구르미 산장에 들어와서 화장실 청소할 자격조차 없어.그러나 종업원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고 공손하게 말했다. “손님, 아까는 저의 태도가 불량했습니다. 나 은행장님의 VIP 손님이신지도 몰랐습니다. 부디 눈이 먼 저희를 용서해주세요!”이 말을 하며, 종업원은 두 팔을 늘어뜨렸고, 마음속에는 억울함이 가득 찼다.두 경호원도 모두 팔을 양옆에 딱 붙이고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두 인간이 나 은행장님의 VIP 손님인 걸. 모시고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구르미 경매 행사의 VIP 대기실 대문.동하는 미소를 머금고 그곳에 서 있었으며, 하현과 슬기가 걸어오자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셨습니까.”그의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회사 대표들이 이 장면을 보고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 딱 봐도 가난해 보이는 이 젊은이가 어떻게 나동하 이 상업 은행 은행장의 중시를 받은 건가.동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들을 소개하지도 않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하 대표님,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시는 걸 압니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