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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채 도망친 그녀
임신한 채 도망친 그녀
작가: 성해윤

1 화

작가: 성해윤
제우 호텔.

송이안이 동창 모임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이제 막 씻으려고 하는데 불현듯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고귀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송이안은 가슴이 움찔거렸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한편 박도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차갑게 노려봤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박도준은 다짜고짜 그녀를 벽에 밀어붙이고 오른발로 문을 쾅 닫았다.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됐고 온몸에 배인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없이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으니 마치 표적을 노리는 야수를 방불케 했다. 송이안은 덜컥 겁이 났다.

박도준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빨간 입술을 쓰다듬었다.

이어서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정승재 좋아해?”

감미로운 목소리지만 불쾌한 기색이 담겨있었다.

“...”

송이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늘 밤에 게임에서 져서 하는 수 없이 인스타그램으로 정승재를 좋아한다는 스토리를 올렸는데 그걸 박도준이 봤다고?

보면 봤지, 이렇게까지 크게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굳이 호텔까지 찾아온 걸까?

송이안은 몹시 당황하여 침을 꼴깍 삼켰다.

“대표님, 그 스토리는...”

말을 채 잇지도 못했는데 박도준이 갑자기 몸을 기울이고 그녀의 입술을 거침없이 탐했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송이안은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

박도준이 왜 갑자기 키스를?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대표님, 이거 놓으세요. 읍... 읍...”

다만 박도준은 아무런 대답 없이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현관에서부터 침대까지 야수처럼 돌변하여 거칠게 공격했지만 놀랍게도 키스 스킬이 너무 좋아 도망치지도 못한 채 멍하니 받아들였다.

오늘 마침 블랙 스커트를 입었더니 홀가분하게 스타킹을 벗기고 강제로 그녀에게 덮쳐들었다.

박도준은 얼굴을 깊게 파묻고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했다.

송이안은 처음엔 반항했지만 오늘 그녀도 과음한지라 한번 일탈하기로 했다.

어차피 박도준이 먼저 불을 지폈으니까.

생각을 마친 송이안은 가녀린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

연속 세 번을 이어 한 후에야 만족한 표정으로 송이안의 옆에서 잠드는 이 남자, 그녀도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송이안은 입술을 앙다물고 천천히 고개 돌려 박도준을 쳐다봤다.

이 남자는 그 방면으로 능력이 끝내준다.

또한 이 사이즈는 딴 남자들한테서 절대 본 적 없는 스케일이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현란한 기술까지... 그녀는 아찔한 이곳에 더는 남고 싶지 않았다.

황급히 줄행랑을 치려고 배에 올린 그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는데 몸을 일으킨 순간 허리가 시큰거리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이 남자 때문에 삭신이 쑤실 지경이었다.

그래도 뭐 섹스할 땐 부드러운 편이라 아프게 하진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온 송이안이 옷을 입고 밖에 나가려고 했는데 박도준 이 인간이 어젯밤에 스커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갈아입을 옷도 없이 고작 이 한 벌 뿐인데...

송이안은 분노에 찬 눈길로 그를 째려봤다.

이를 악물면서 결국 다 찢어진 치마를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잠옷을 대충 걸쳤다.

방에 돌아온 후 가방과 휴대폰을 챙기고 살금살금 나가려고 했는데 불현듯 침대에 누워있던 박도준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짙은 눈빛으로 송이안이 나가는 걸 지켜보다가 다시 서서히 눈을 감았다.

...

그녀는 회의자료와 펜에 수첩까지 챙겨서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그녀가 신중하게 노크했다.

“들어와.”

안에서 박도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책상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대표님, 회의 곧 시작하니 지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회의자료부터 검토해보세요.”

그녀는 양손으로 서류를 건넸다.

한편 박도준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늘씬한 손가락으로 서류를 받았다.

그날 밤 호텔에서 발생한 일도 어언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두 사람은 그날 일에 대하여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송이안은 이 남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지 의심할 지경이었다.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이니까.

다들 성인이고 그녀도 일탈 한번 한 셈이라 둘만의 원나잇이라고 단정 짓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송이안은 자꾸만 뜨거웠던 그 밤이 떠올랐다.

따분하고 금욕적인 이 남자가 침대에서 그토록 저돌적일 줄이야.

생각만 하노라면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박도준은 그 방면으로 체력도 어마어마하고 사이즈도 보통이 아니다.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될 사람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한편 그가 서류를 다 본 후 무심코 시선을 올렸는데 이 여자가 빨개진 얼굴로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 따라 그녀는 빨간 얼굴로 대표님을 멍하니 쳐다보기가 일쑤였다.

아무래도 그날 밤 그 일을 ‘회상’하는 듯싶었다.

“송 비서?”

박도준의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가 사색에서 빠져나왔다.

곧이어 빨개진 얼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네, 대표님.”

송이안은 맑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도준은 훤칠한 몸매에 고귀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출발해야지.”

박도준은 한없이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봤다.

“네.”

송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회의실로 향했다.

송이안은 그에게 문을 열어준 후에야 뒤이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대정 그룹 임원들이다.

박도준은 상업계에서 결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다들 그의 등장에 장난기를 거두고 엄숙하게 임했다.

박도준은 싸늘한 눈길로 임원들을 쭉 둘러보다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서연교의 더샵을 한번 봤는데 정부 지원도 있고 공항과도 가까우니 거기에 오성급 호텔을 지을 예정입니다. 육지성 씨, 조현민 씨, 입찰 서류는 두 팀에서 작성하세요.”

두 사람은 알겠다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에 박도준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해외의 쥬얼리 회사 본사를 대정 그룹으로 옮길 계획이니 조현민 씨가 사람을 보내서 시장 조사도 하고 헤드헌팅 회사에 연락해 엘리트 쥬얼리 디자이너를 다섯 명 채용하세요.”

조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임원들도 알다시피 박도준은 최근 몇 년간 줄곧 해외에서 발전했다. 28살의 젊은 나이에 그는 벌써 해외에 쥬얼리 회사를 창립했고 연 매출이 무려 수십조 원이다.

그는 해외에서 쥬얼리 회사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신분은 바로 세원시 갑부 박씨 일가의 둘째 아들이다.

셋째 아들 박윤찬이 회사 운영에 엉망진창이라 이 집안 어르신 박정빈은 마지못해 박도준에게 대정 그룹을 맡겼다.

다만 그가 해외의 쥬얼리 회사 본사까지 대정으로 옮겨올 줄은 몰랐다.

대정 그룹은 부동산 개발, 패션, 호텔, 백화점, 요식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 쥬얼리까지 섭렵하게 된다면 내일 헤드라인과 실검1위를 독차지할 게 뻔하다.

박도준은 차가운 눈길로 한성훈을 쳐다봤다.

“한 팀장, 신우 그룹의 칩 아이템에 대해 브리핑해보세요.”

한성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네, 대표님. 신우 그룹은 R&D회사로 최근에 차세대 전기차 칩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보내온 서류를 확인해봤는데 나름 괜찮았어요. 이 칩을 성공적으로 연구개발한다면 미래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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