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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작가: 성해윤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뒷모습인지라 그녀를 한눈에 알아챘다.

그런데 병원에는 갑자기 무슨 일일까? 몸이 불편해서? 아니면 누구 병문안을 온 걸까?

박도준은 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갔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6층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송이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송이안을 따라 7번 병실까지 왔지만 함께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병실에서 송이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활짝 웃으면서 송이준에게 말했다.

“이준이 오늘은 좀 어때?”

송이준도 웃으며 누나를 반겨주었다.

“아주 좋아. 나 괜찮으니까 걱정 마, 누나.”

“그래, 그럼 다행이고.”

송이안은 침대맡에 앉아서 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 이준이 꼭 잘 버텨내야 해. 누나가 어떻게든 수술비 마련할 테니까 자포자기하면 안 돼. 알겠지?”

심장이식 수술비용은 무려 2억 원이다. 지금 가정형편으로 이 돈을 절대 모을 수 없다는 걸 송이준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저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낼 뿐이다.

누나와 엄마가 걱정할까 봐 억지로 강한 척, 밝은 척하면서 말이다.

“그래, 누나만 믿을게. 2억 원 모아서 꼭 나 수술시켜야 해.”

송이안은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엄마는 아직이야?”

송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근이라 8시쯤에 올 거야.”

“그럼 그때까지 옆에 있어 줄게. 엄마 오시거든 가야지.”

송이안은 숨을 깊게 몰아쉬고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

“물 따라줄까?”

“좋아.”

송이안은 티포트를 들고 병실을 나섰다.

이때 마침 박도준이 옆 병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대표님이 여긴 어쩐 일이시지? 친구가 아파서 병문안 온 걸까?’

여기까지 생각하던 송이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물 받으러 갔다.

티포트를 들고 돌아올 때 박도준이 병실에서 나왔는데 옆에 예쁜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여자가 박도준을 살짝 껴안자 송이안은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반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하면서 이 남자가 딴 사람과의 스킨쉽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지금은 저토록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있다니?

설마 그의 여자친구일까?

옷차림만 봐도 영락없는 부잣집 딸이었다.

하긴, 박도준의 신분에 이런 여자만이 어울릴 수 있겠지.

다만 이해되지 않는 건 여자친구까지 있으면서 왜 그날 밤 원나잇을 하게 된 걸까?

박도준은 그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부럽다...’

송이안은 입술을 꼭 깨물고 6번 병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박도준이 그녀를 발견했다.

차라리 못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박도준이 아무리 쓰레기여도 어쨌거나 그녀의 상사이기에 인사는 먼저 드려야만 했다.

송이안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박도준이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병문안 왔나 봐?”

송이안은 옆에 서 있는 예쁜 여자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네. 남동생이 여기 입원했거든요.”

예쁜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박도준을 바라봤다.

“오빠, 이분이 바로 고심 끝에 골랐다는 행정비서?”

“...”

오빠라니?

박도준이 오빠라고?

박도준의 눈가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그래.”

“혹시 대표님 여동생분이세요?”

송이안은 좀전의 허튼 생각에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박도준의 여자친구라고 오해할 수 있지...

그 바람에 박도준을 쓰레기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송이안 씨 맞으시죠? 오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녀가 손을 내밀고 눈웃음을 지었다.

“반가워요. 박하린이에요.”

송이안은 손에 묻은 물기를 쓱 닦고 그녀와 악수했다.

“반가워요, 박하린 씨.”

“편하게 하린이라고 불러요. 다들 그렇게 부르거든요.”

박하린은 눈웃음을 지을 때 예쁜 반달 모양이 되어 보는 이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박도준의 여동생은 오빠처럼 차갑고 도도한 게 아니라 마냥 살가워 보였다.

“네, 그럴게요.”

송이안이 대답했다.

이때 박도준이 동생을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할머니 잘 보살펴드려. 난 이만 갈게.”

“알았어, 오빠.”

박하린은 웃으면서 그를 배웅했다.

한편 박도준은 송이안을 힐끔 바라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하린 씨, 그럼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송이안이 말했다.

“남동생이 여기 입원했다고요?”

박하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네.”

송이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무슨 병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하린이 질문을 이어갔다.

“선천성 심장병이에요. 하린 씨,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네.”

박하린은 그녀를 병실에 들여보낸 후에야 6번 병실로 돌아왔다.

이 병실은 단독 병실이라 커다란 방안에 강주희 홀로 지낸다.

박하린이 돌아오자 강주희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하린아, 방금 문 앞에서 누구랑 얘기했어? 너희 오빠는 갔니?”

박하린은 의자에 앉으며 살짝 흥분 조로 대답했다.

“네, 금방 갔어요. 할머니, 나 방금 문 앞에서 누구 봤는지 알아요?”

“누군데 이렇게 의미심장한 거야?”

“오빠 행정비서 송이안 씨요. 오빠는 역시 안목이 좋다니까요. 송이안 씨 엄청 미인이시더라고요. 남동생이 선천성 심장병이라 지금 옆 병실에 입원해 있대요.”

박하린의 말을 들은 강주희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구기고 박하린을 쳐다봤다.

“너희 오빠는 송 비서한테 태도가 어땠어?”

박하린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래.”

강주희는 다시 침대에 눕더니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났다.

“송이안, 왜 이렇게 귀에 익지? 꼭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

“그래요? 저는 그저 오빠 비서라고만 알고 있어요.”

“막상 떠오르지 않네. 됐다.”

강주희가 대뜸 화제를 돌렸다.

“한성훈은 연락 없어? 너희 오빠 회사에서 관심 가는 여자는 없대?”

박하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오빠는 항상 누구한테나 정색하는 얼굴이잖아요. 다만 하유영이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오빠가 송이안 씨를 비서로 뽑은 이후로 줄곧 송이안 씨만 겨냥하고 있대요.”

“그래?”

강주희가 되물었다.

“그럼 송이안은 어떻게 대처했어?”

“이미 도준 오빠 옆에서 반년이나 일해왔잖아요. 아무리 겨냥하고 싶어도 딱히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이안 씨가 똑똑하고 처사 능력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죠.”

강주희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송이안, 꼭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야. 한성훈한테 연락해서 한번 조사해보라고 해.”

“네, 그럴게요.”

박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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