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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

Author: 성해윤
박도준은 심장이 쿵쾅대고 눈가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토록 놀란 적이 또 있을까?

그날 송이안이 왜 약속을 어겼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동생이 제때 밀쳐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당시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예기치 못했다.

“그래서 네 동생은 그때 어떻게 됐어?”

“교통사고를 당해서 갈비뼈가 두 대 부러지고 왼쪽 다리는 골절되었어요. 세 번의 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으니 저는 누가 뭐래도 이준이만큼은 끝까지 책임져야 해요. 걔한테 평생 고마워하면서 살아야죠.”

박도준은 전에 항상 그녀가 매정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이런 말들을 듣고 있으니 편견이 싹 다 사라졌다.

그는 송이안에게 다가가 짙은 눈길로 쳐다봤다.

“나랑 결혼해. 네 동생한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를 찾아줄 테고 수술비용도 내가 전액 부담할게. 또 다른 염려가 있다면 혼전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어때?”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박도준은 절대 그녀의 손을 놓을 리가 없다.

송이안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뒷걸음질 쳤다.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으니까.

“대표님, 지금 한 말 다 진짜예요? 진짜 그렇게 해주실 수 있어요?”

“너 동생한테 지극정성이잖아. 내 제안 거절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송이안에게 동생이 전부였기에 그를 위해서라면 배 속의 아이까지 포기하려고 했으니까.

고작 박도준과 결혼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주먹을 다잡았다.

“그럼 전제조건은 뭔가요?”

이렇게 많은 헌신을 했는데 고작 아이 때문이라면 믿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간단해. 나랑 혼인신고하고 이 아이 낳는 거야.”

둘만의 아이가 생겼으니 이 아이를 낳으면 송이안은 더 이상 그의 곁을 떠날 수 없다.

혼인신고도 할아버지가 종일 소개팅 아니면 전우 손녀를 소개해주겠다면서 재촉하시니 이참에 결혼이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한 셈이다.

또한 박도준은 이제 곧 서른이라 결혼할 때도 되었다.

이때 마침 아이까지 임신한 송이안과 결혼하면 아이한테도 명분이 차려지고 그 또한 소개팅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거양득의 좋은 일을 박도준이 마다할 리 있을까?

송이안도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언제 가서 혼인 신고할까요?”

박도준은 의자에 앉아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봤다.

“내일 아침 9시, 구청에서 만나. 그전에 미리 회사 나올 필요 없어.”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아침 9시, 송이안은 제때 구청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지만 9시 정각에도 이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박도준한테 팽당한 건 아니겠지.

어젯밤에 동생한테 예외가 없다면 1년 이내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이 인간이 번복하면 대체 무슨 면목으로 동생을 마주한다는 말인가?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검은색 롤스로이스 고스트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장 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자 정장 차림의 박도준이 안에서 내려왔다.

그는 늠름한 체구에 넓은 어깨, 날렵한 허리 라인을 자랑했다.

조각 같은 외모에 차가운 눈동자까지 더하니 고혹적이면서 절제된 섹시함이 느껴졌다.

박도준은 그녀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필요한 서류는 다 챙겼어?”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어가자.”

그는 성큼성큼 구청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송이안도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임신한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나오자 박도준은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구청에 들어서니 박도준이 미리 연락했던 탓인지 직원들과 그들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혼인신고를 마치기까지 소요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구청에서 나온 송이안은 따끈따끈한 혼인신고서를 들고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전에 집에서 수없이 소개팅을 주선해줘도 동생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기에 일절 거절했다.

그래서 결국 28살이 된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녀가 한 달 전 술 취한 밤, 세원시에서 명성이 자자한 박도준과 원나잇을 했고 이 남자는 또 마침 그녀의 상사였다.

고작 그 한 번에 박도준의 아이를 임신했고 지금 그 아이 덕분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떡하니 벌어지고 있다.

차에 돌아온 후 그녀는 혼인신고서를 가방에 챙겨 넣고 박도준을 지그시 바라봤다.

“대표님, 혼전계약서는 챙겨오셨어요?”

박도준의 눈가에 사악한 빛이 스쳤다.

“아니. 네가 알아서 작성해.”

“...”

박도준이 먼저 혼전계약서를 준비하고 그녀의 사인을 받을 줄 알았는데 혼자 작성하라고 할 줄이야.

이미 충분한 혜택을 받은 송이안이었기에 최대한 이 남자가 손해 보지 않도록 작성하기로 했다.

“네, 그럼 내일 돌아오는 대로 작성해볼게요.”

“그래.”

박도준이 장 기사에게 말했다.

“공항으로 가.”

“네, 대표님.”

장 기사가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

공항에 도착한 후 두 사람은 전용기를 타고 성주로 날아갔다.

두 시간 후 성주 공항 앞에 그들을 마중 온 차가 도착했다.

실은 송이안이 출발 전에 한주 그룹에 연락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면서 인파들 속에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블랙 슈트 차림의 남자를 발견했다.

이 남자는 바로 한주 그룹 서지민 대표의 비서 주단우였다.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박도준과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주단우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두 사람을 차에 모셨다.

시튼 호텔로 가면서 그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우선 호텔에 가서 쉬세요. 오후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래요.”

박도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대답했다.

한편 주단우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만 했다.

시튼 호텔에 도착하고 두 사람을 호텔 방까지 바래다준 후에야 주단우도 자리를 떠났다.

박도준이 소파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박정빈한테서 걸려온 전화에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또 누굴 소개해주시려고요?”

“하태훈 딸 하은재 알지? 걔는 좀 어떠냐?”

“...”

할아버지의 전화가 소개팅 관련이란 걸 너무 잘 알기에 미간을 구기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관심 없어요.”

옆에 있던 송이안은 그의 말을 듣고 바로 알아챘다. 어르신께서 소개팅을 주선하시는 게 뻔했다.

박도준은 그녀와 동갑인 28살이다.

그의 친구들은 결혼했거나 연애 중이고 심지어 그중 두 명은 유부남에 혼외자식까지 있다.

송이안이 알기로 이들 중 박도준만 여태껏 솔로였다.

대정 그룹 오너이자 박씨 일가 둘째 도련님인 박도준이 여태 결혼을 안 하니 집안 어르신들이 초조해할 만도 하다.

다만 그녀가 궁금한 것은 박도준이 과연 오늘 혼인 신고한 사실을 어르신께 알릴지 말지였다.

“뭐라고? 너 이제 곧 서른이야. 네가 안 급해도 우리가 급해! 하은재 무조건 만나. 안 그러면 대정 그룹 주식이랑 집행권까지 싹 다 네 큰형한테 넘기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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