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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가: 성해윤
차가 곧장 케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주단우가 차 문을 열어주었고 박도준이 먼저 내린 후 송이안도 뒤따라 내렸다.

잠시 후 주단우는 두 사람을 모시고 레스토랑 8층 룸으로 향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노크한 후에야 문을 열었다.

커다란 한옥 인테리어 룸에 둥그런 박달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딥블루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고 양옆에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이 더 있었다.

주단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박 대표님 오셨습니다.”

그가 말한 대표님은 바로 한주 그룹 서지민 대표였다. 서지민은 재빨리 박도준에게 다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가워요, 대표님. 이렇게 먼곳까지 걸음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네 남녀도 서지민 옆으로 다가갔다.

서지민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권하려 하자 옆에 있던 송이안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악수를 꺼리셔서요.”

“그래요? 당돌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서지민이 손을 거둬들였다.

“대표님, 우선 저희 직원들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이쪽은 우리 한주 그룹 홍보팀 팀장 김서영 씨, 그리고 비서분까지. 이쪽은 노상현 상무, 또 이분은 이번 프로젝트 담당자 손수빈 씨예요.”

김서영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만나서 반가워요, 대표님.”

노상현과 손수빈도 잇달아 인사했다.

“네.”

박도준은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준수한 외모에 아무런 표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는 소외감 넘치는 기운을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서지민이 눈웃음을 지었다.

“어서 앉으세요, 대표님.”

송이안은 테이블 가까이 다가가 박도준을 위해 의자를 빼주었다.

박도준이 자리에 앉은 후에야 그녀도 착석했다.

서지민은 우선 주단우에게 분부했다.

“주 비서, 이제 음식 올리라고 해.”

“네, 대표님.”

주단우가 곧장 룸 밖을 나섰다.

박도준은 겉도는 걸 싫어하는지라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번 프로젝트의 장점과 미래 방향성은 어떻게 되죠?”

서지민이 손수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빈아, 얼른 대표님께 브리핑해드려.”

“네.”

손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저희가 새로 개발한 프로젝트는 화재 및 도난 경보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에 비해 불이 나든 도난이 발생하든 가장 빨리 신고가 접수됩니다.”

“특히 화재 같은 경우, 미리 예측할 수 있어요. 화재가 다 일어난 후에야 경보음이 울리는 게 아니라 미리 예측하고 경보음이 울릴 겁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아이템을 개발했는데...”

박도준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잠시 후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올렸다.

손수빈이 브리핑을 마친 후에야 박도준이 질문을 건넸다.

“그럼 어떤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거죠?”

손수빈은 곧장 설명에 나섰다.

“저희가 연구 개발한 스마트 칩으로 작동합니다. 이 칩은 컴퓨터, 대형 전자장비에 쓰이게 되는데 저희가 개발한 이 제품을 사용하시는 한 안전성은 충분히 보장될 겁니다.”

문득 송이안이 입을 열었다.

“폐단은 없을까요?”

그녀는 비서로서 투자 협력 건을 의논할 때마다 본인 의견을 내놓곤 한다.

이 점을 박도준 또한 아주 높이 사고 있다.

손수빈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장난치듯 대답했다.

“폐단이라면... 저희 칩을 사용한 후 효율이 몇백 배 오른다는 점이 있겠죠?”

송이안은 옅은 미소를 지을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에 서지민이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우선 식사부터 하시고 투자에 관한 일은 나중에 다시 의논해요.”

“그러죠.”

박도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곧이어 서지민은 홍보팀 김서영에게 얼른 술을 따르라고 곁눈질했다.

김서영이 이제 막 송이안에게 술을 따르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박도준이 먼저 거절했다.

“송 비서는 됐어요.”

순간 장내의 모든 이가 어안이 벙벙했다.

술 때문이 아니라 박도준이 본인 비서를 대신해서 이 잔을 거부하는 상황이 실로 이상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보통 이런 협력 건의 술자리에서는 비서들도 술을 마셔야 한다.

송이안은 김서영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술을 잘 못 해서요...”

이에 김서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녀는 서지민과 일행에게 천천히 술을 따랐다.

식사를 마친 후 서지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대표님, 이번 프로젝트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도준은 냅킨으로 우아하게 입을 닦은 후 차분하게 답했다.

“내일 계약서에 관해 의논하죠.”

서지민 일행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한편 박도준은 짙은 눈동자로 송이안을 쳐다봤다.

“가자, 이만.”

“네, 대표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도준과 함께 룸 밖을 나섰다.

서지민 일행은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갔다.

레스토랑 문밖에 나선 후 서지민은 박도준과 간단히 인사치레를 마치고 주단우더러 호텔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송이안이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상대의 말을 침착하게 다 듣고는 공손한 태도로 박도준에게 보고했다.

“대표님, 이따가 호텔 돌아가셔서 영상회의를 해야 하는데 피곤하시다면 내일로 미뤄드릴게요.”

오늘 밤 술을 한 잔 곁들인지라 그가 피곤할까 봐 예의상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그들의 차는 곧장 호텔에 도착했다.

룸에 들어선 후 송이안은 협탁 앞에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영상회의를 시작하자 해외 회사의 임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박도준이 회의를 열 때 송이안은 줄곧 옆에 서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야 그녀도 욕실에 들어가서 욕조에 물을 받았다.

“대표님, 욕조에 물 다 받았으니 들어가서 씻으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녀는 공손한 태도로 박도준에게 말했다.

“어디 가?”

박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 돌아가서 쉬어야죠. 용건 있으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녀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실은 서지민이 비서에게 분부하여 송이안한테도 방을 하나 마련해주었다.

아무리 박도준과 혼인신고도 했고 그의 아이까지 임신했지만 아직 그와 같은 방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박도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탁자 위의 담배를 한 대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문득 그녀가 임신한 사실이 떠올랐다.

박도준은 마지못해 담배를 내려놓았다.

그는 음침한 눈빛으로 송이안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 네가 침대에서 자고 내가 소파에서 잘게.”

임신한 몸으로 홀로 방에 내버려 두는 건 도저히 시름이 안 놓였다.

다만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어떻게 대표님을 소파에서 주무시게 하겠어요?”

제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해도 상사를 소파에서 재울 순 없다.

박도준은 별안간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우린 이미 혼인 신고했고 넌 심지어 임신한 몸이야. 누가 뭐래도 너 혼자 독방 쓰게 할 순 없어. 잔말 말고 여기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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