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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Author: 성해윤
이번 회의는 두 시간 동안 지속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송이안은 박도준을 따라 문밖을 나섰다.

10층에 도착하고 박도준은 대표이사실로, 그녀는 비서실로 돌아갔다.

한창 바삐 돌아친 후, 행정팀 한성훈 팀장이 그녀 앞으로 다가와 서류를 쓱 건넸다.

“이건 대표님이 요구하신 신우 그룹 칩 관련 서류예요. 송 비서가 대신 전해주세요.”

“...”

회의 때 분명 그에게 분부한 일인데 왜 송이안더러 대신 전해주라는 걸까?

혹시 대표님이 두려워서 감히 찾아가지 못하는 걸까?

송이안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한 팀장님, 이건 방금 대표님께서 한 팀장님께 분부한 서류인 것 같은데요?”

이에 한성훈이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

“난 지금 주영 그룹에 다녀와야 해서 송 비서가 전해줘요. 그럼 이만!”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한성훈은 다짜고짜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옆자리 하유영은 그녀를 흘겨보며 야유를 날렸다.

“문 열고 들어가면 그만인데 굳이 이안 씨한테 전하네요. 한 팀장님이랑 둘이 뭔가 있죠?”

“...”

송이안은 그녀의 논리가 너무 어이없어서 냉랭한 눈빛으로 흘겨보더니 반박을 날렸다.

“대표님이 유영 씨를 행정비서로 안 뽑은 일도 반년이 지났는데 여태껏 속에 남겨두고 있어요?”

사실 하유영은 박도준이 대정 그룹을 인수하는 걸 진작 알고 수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의 행정비서로 뽑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송이안보다 훨씬 더 노력했지만, 심지어 그녀보다 3년 먼저 대정 그룹에 입사했지만, 업무 실력이나 근무 기간을 놓고 봐도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는데 송이안에게 밀려날 줄은 몰랐다.

박도준이 송이안을 행정비서로 뽑은 후 하유영은 울화가 치밀었다.

하여 그날부로 갖은 수단으로 송이안을 괴롭히고 있다.

하유영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거만 떨지 말아요, 이안 씨! 조만간 대표님께 잘려날 테니까!”

송이안은 서류를 안고 그녀 앞에 다가와 시선을 내리고 차갑게 노려봤다.

“걱정 말아요. 날 자르는 한이 있어도 절대 유영 씨는 안 뽑을 테니까!”

이때 주나연이 팔짱을 끼고 야유 조로 말했다.

“이안 씨는 뭐가 그렇게 잘났어요? 고작 행정비서 주제에 뭐가 대단하다고, 쯧쯧!”

주나연과 하유영은 늘 같은 편이다. 둘은 전에 한 학교 동기라고 하더니 비서실에 발령받은 이후에도 송이안을 포함한 신인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두 여자 때문에 많은 인턴이 못 견디고 떠나갔지만 송이안은 달랐다.

내키지 않는 만큼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며 버텨온 그녀였다.

게다가 매사에 완벽해서 실수 한번 없으니 그녀들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송이안은 경멸의 눈빛으로 주나연을 째려봤다.

“뭐가 그리 잘났냐고요? 본인들도 한번 해보던가요. 대표님이 뽑아주시려나 모르겠지만...”

“뭐라고요?”

주나연이 발끈해서 그녀와 팽팽한 신경전을 이뤘다.

이때 하유영이 말렸다.

“됐어, 이딴 애는 상대하지도 마.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애라 조만간 잘릴 거야. 우린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돼.”

송이안은 대표님께 서류를 드려야 해서 더는 이런 하찮은 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대표이사실 문 앞에 다가가 살며시 노크했다.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

송이안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조용히 안으로 문을 닫은 후에야 책상 가까이 다가왔다.

“대표님, 한 팀장님께서 신우 그룹 칩 관련 서류를 대신 전해드리라고 하네요.”

그녀는 양손으로 공손하게 서류를 건넸다.

이에 박도준이 시선을 올리고 그녀를 흘겨봤다.

“왜 본인이 직접 안 오는 건데?”

“주영 그룹에 급히 다녀와야 한다면서 대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건네받았다.

곧이어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신우 그룹 칩 관련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송이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에게 답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 팀장님만 알고 계세요. 저희한테 일절 언급한 적 없어요.”

박도준이 별안간 그녀에게 서류를 건넸다.

“한번 봐봐.”

“네, 대표님.”

송이안은 서류를 자세히 훑어본 후 다시 접었다.

“다 봤어?”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깍듯이 대답했다.

“어때? 이 프로젝트?”

박도준이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대부분 차세대 전기차 칩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오는 거라 딱히 신기할 것도 없고 또한 안전성도 보장이 안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신우 그룹에서 연구 개발한 칩 프로젝트는 에너지를 더 많이 절약하는 것 외에 조종 가능성도 매우 크고 스마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칩은 오직 해외에서만 구입하면 안 된다고 봐요. 왜냐하면 일단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면 상대에게 주도권을 뺏기기 쉽거든요.”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오직 우리만의 칩을 생산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만의 물건을 간수하면 더는 극단적인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송이안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한편 박도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

“신우 그룹에 연락해서 미팅 시간 잡고 투자 방면으로 한번 잘 의논해봐.”

송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가봐.”

“네.”

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서류를 챙겨서 자리를 나섰다.

돌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는데 한성훈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야? 내게 감시카메라 달았어? 대표이사실을 나서자마자 전화 오네?’

그녀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네, 한 팀장님.”

“송 비서, 대표님 서류 보셨어요?”

“네, 투자 허락하셨으니 한 팀장님께서 신우 그룹과 연락해보세요.”

“정말요?”

전화기 너머로 한성훈의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너무 잘됐어요. 송 비서가 해낼 줄 알았어요! 지금 바로 신우 그룹 주 대표님께 연락드려야겠어요.”

“...”

‘뭐지? 왜 꼭 당한 기분이 들지? 일부러 나 시켜서 대표님께 서류를 전해드렸나? 상당히 찝찝한데...’

두 사람은 곧장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정신없이 돌아치다 보니 어느덧 점심 12시가 다 됐다.

때마침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는데 대표이사실 내선전화였다.

“네, 대표님.”

그녀가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점심에 구내식당 가서 도시락 싸 와. 나가 먹기 싫으니까.”

박도준은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에 송이안은 곧장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무려 6가지 음식으로 아주 풍성했다.

하지만 탕수육을 본 순간 속이 뒤집히고 헛구역질이 났다.

요즘 줄곧 이런 식이라 육류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역겨움을 참으며 박도준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겨우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하니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어서 나직이 말했다.

“대표님.”

“들어와.”

송이안은 도시락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도시락 가져왔습니다.”

박도준은 여전히 업무가 바빠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알았어.”

그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에 그녀도 밥 먹으러 또다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후 탕비실에 가서 박도준만을 위한 시럽 빼고 우유도 뺀 커피를 한 잔 탔다.

그녀는 늘 그렇듯 먼저 노크하고 안에서 대답이 들린 후에야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박도준이 통화 중이라 아무 말 없이 커피를 가까이 내려놓고 컵 손잡이는 그를 향해 돌려놓았다.

박도준의 사무실 책상만 봐도 이 남자가 얼마나 깔끔하고 심지어 강박증까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송이안이 하는 일이 비서직이다 보니 매사에 꼼꼼하게 관찰하고 컵 손잡이도 그를 향해 돌려놓는 센스가 생겼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대표님.”

그녀는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

오후 5시, 어렵사리 퇴근 시간까지 버텨왔는데 그제야 문득 차현 그룹의 실사를 대표님께 전하지 못한 사실이 생각났다.

송이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많은 서류 중에서 재무팀이 보낸 차현 그룹 실사 서류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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