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태승은 연달아 20대나 때린 다음에야 멈춰 섰다. 반승제의 등은 진작 피범벅이 되었고 흐르다 못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숨을 깊게 들이쉰 반태승은 그런 반승제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쉽게 죽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손을 흔들면서 단호하게 말했다.“밖으로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 아무도 저 녀석한테 외투를 건네지 마.”한겨울에 반승제는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 더구나 온몸이 다 상처투성이라, 만약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죽을 것이다.집사는 걱정되는 마음에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반태승은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괜찮아. 저 녀석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반승제는 주저 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결국 반태승을 말리지 못한 집사는 거실에서 연신 한숨만 쉬었다.밖에 눈이 펑펑 오는 것을 보고 집사는 직접 우산을 들고 나갔다. 하지만 반태승 못지않게 고집스러웠던 반승제는 이를 거절했다.“도련님, 우산은 쓰셔야 해요. 눈이 옷이 떨어졌다가 녹기라도 하면 무조건 감기 드세요.”반승제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말했다.“됐어요.”집사는 어쩔 수 없이 우산을 들고 반승제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그는 한겨울의 날씨에 밖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반승제는 다른 도우미들을 불러서 그를 데려가도록 했다.같은 시각, 반승제가 떠난 다음 성혜인은 축 처진 채로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차 안에는 아직도 조금 전의 열기가 남아 있었고, 잊을 수 없는 느낌은 몸에 단단히 각인되었다.성혜인은 옷매무시를 정리한 다음에야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며 이성이 약간 돌아오자, 그녀는 이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는지 자각했다.‘집을 코앞에 두고 왜 차 안에서...’어이없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성혜인은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처음 보는 낯선 도우미였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온몸이
성혜인이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반승제는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전에도 밤샘 야근은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떠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심인우와 마주치고 우뚝 멈춰 섰다.심인우는 부동산 양도에 관한 서류를 가져왔다. 어젯밤 반승제가 말했듯이 한 달 동안의 시간을 조건으로 성혜인이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말이다.“페니 씨, 이건 대표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신 서류입니다.”성혜인은 서류를 힐끗 봤다. 이는 얼마 전 경매에도 나온 적 있는 제원의 중심에 있는 집이었다.이 단지에는 집이 3채만 있었는데 한 층에 4가구, 한 가구에 60 평 정도 되었다. 이곳은 주변 환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해서 제원에서 살며 꼭 필요한 그런 집이었다. 만약 좋은 관리사무소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성혜인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승제가 자신에게 이런 집을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대표님이 정말 이 집을 저한테 주신다고 하던가요?”이 집의 가치는 2000억쯤 했다. 반승제도 한참 전에 사놓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지금은 아예 살 수 없는 집이기도 했다.“네, 페니 씨는 여기에 사인만 하면 됩니다.”성혜인은 감히 사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 비서님, 만약 월세로 친다면 이곳의 가격은 어느 정도 될까요?”심인우는 약간 멈칫했다. 이는 한 평생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대단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월세라면 아마... 한 달에 20억쯤 할 것 같습니다.”“그럼 제가 따로 월세를 내고 사인은 안 할게요. 집은 그럴 능력이 있을 때 돈을 주고 직접 살 거라고 대표님께 전해주세요.”반승제가 주는 집을 받기만 해도 성혜인은 엄청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혜인의 고집에 마땅히 할 말이 없었던 심인우는 그저 서류를 들고 떠났다.성혜인은 이렇게 집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로 나갔다. 안유결이 촬영 중인 드라마가 방송만 된다면 무조건 대박 날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그녀가 사무실에 들어
사무실에 혼자 남은 다음 성혜인은 오전 내로 결재해야 하는 서류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편의점에서 대충 삼각김밥이나 사서 때울 생각이었다.이때 성혜인은 방우찬을 발견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50대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팔짱을 끼고 있었다.성혜인은 원래 두 사람과 아는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나가는 길에 여자와 부딪혀 버렸고, 여자는 휘청거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쏟았다.누가 봐도 피해자는 성혜인이었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가 그녀의 옷소매를 꽉 들어 잡더니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말했다.“거기 서! 너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니? 남의 음료수를 쏟았으면 배상해 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옷소매를 붙잡힌 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몸을 돌렸다. 고집스럽게 생긴 여자는 반쯤 쏟은 음료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왜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 음료수 배상하라니까! 너 내 아들이 누군지 알아? 내 아들은 곧 재벌가 사위가 될 사람이야! 제원의 재벌가에 몸담을 사람이라고!”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우찬은 아직 계산하느라 이쪽 상황을 모르는 눈치였다.여자는 주름 가득한 얼굴에 과하다 싶을 정도의 메이크업을 했다. 아마 그 세대의 유행인 듯했다.성혜인은 휴지를 뽑아 들고 바지에 흐른 음료수를 닦으면서 말했다.“편의점에서 나가려고 한 저한테 음료수를 쏟은 사람은 그쪽이에요. 잘못을 따지려면 그쪽이 제 바지를 배상해 줘야 하는 것 같은데요.”여자는 손을 들어 성혜인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자 성혜인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아주머니, 문명사회에 다짜고짜 손부터 올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여자는 심호흡하더니 언성을 높이면서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니? 지금 내가 가난하고 늙었다고 무시하는 거니?”방우찬은 이제야 이쪽 상황을 눈치채고 부랴부랴 다가왔다.“어머니, 무슨 일이에요?”누군가에게 사다 주는 것인 듯 방우찬은 간식거리를 손에 한가득 들고 있었다. 이곳에
성혜인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 마침 이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방우찬은 김정순의 허리를 감싸면서 말했다.“어머니, 도착했어요. 여기서는 사장님과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저희는 하리만 만나고 바로 가는 거예요.”장하리는 성혜인의 비서이기에 그녀를 만나려면 당연히 사장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마침 휴식 시간이라 낯선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이 시선을 보내왔다.김정순은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기는 했지만 그래도 억지를 부리지 않고 방우찬의 곁에 가만히 있었다. 장하리는 두 사람이 온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달려왔다.“오빠.”방우찬이 대답하려는 순간 장하리는 성혜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사장님, 오후에 결제하셔야 하는 서류는 사무실에 뒀어요. 결제가 끝난 다음 다시 저를 불러주시면 임원들께 알릴게요.”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곁눈질로 어두운 안색의 김정순과 미묘한 표정의 방우찬을 힐끗 봤다.방우찬은 불안한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장하리에게 물었다.“하리야, 이 사람은...”“이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셔. 어떻게 같이 올라왔어?”성혜인이 조금 전 두 사람의 대화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회에서 홍규연과 다정하게 붙어 있던 모습까지 봤다는 생각에 방우찬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김정순도 어색한 모습으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장하리는 머리를 갸웃하면서 물었다.“사장님,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아니에요. 이분이 바로 전에 말했던 장 비서 약혼자인가 봐요?”성혜인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장하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 회사에서 만났기 때문에 약간 어색하기도 했다.“네. 직원분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금방 돌려보낼게요.”“아니에요.”성혜인은 김정순을 힐끗 봤다. 그녀는 조금 전 기고만장하던 모습은 어디에 갔는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이렇게 젊은 여자가 회사 사장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장하리에 대한 평가까지 들었다는 생각에 김정순은 문득 불안해졌다. 방우찬이 홍씨 집안에
장하리가 이렇게 나오니 성혜인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발견할 때까지 내버려둬야겠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끄덕였다.“이만 나가 봐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도 돼요.”장하리는 신바람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혜인은 무거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저녁 8시, 성혜인은 드디어 퇴근하고 회사를 나섰다.반승제는 오늘도 성혜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한 달간 함께 있어 달라고 하던 사람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성혜인은 핸드폰을 한참이나 훑어봤다. 혹시라도 자신이 전화를 놓친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하지만 반승제는 진짜 그녀에게 전화 한 통도 없었다.잠깐 고민하던 성혜인은 먼저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건너편에서는 반승제가 아닌 심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심인우 비서입니다.”“심 비서님, 대표님은요?”“대표님은 일주일간 출장 가셨습니다. 아마 다음 주에야 귀국하실 겁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떠나시기 전에 페니 씨한테 네이처 빌리지를 잘 꾸며달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가 설날이라면서요.”성혜인은 이제야 곧 있으면 설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갈 곳이 없다는 것도 말이다.성휘는 세상을 뜨고, 서천에 있는 임동원 일가와는 관계를 끊고, 강민지는 집에 가야 하고... 명절이 코앞에 닥치고 나서야 성혜인은 이제 진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래서인지 성혜인은 네이처 빌리지를 꾸며 달라는 반승제의 말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설날에 할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어쩐지 요즘 다들 들떠 보인다고 했더니 곧 있으면 휴가네. 다들 설날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게 있겠지?’“알았어요.”전화를 끊은 성혜인은 창밖에서 흩날리는 눈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보낸 설날다운 설날이 언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성휘에 아직 살아 있을 때 설날에 집에 돌아가면 소윤은 성혜인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핑계를 대서 학교 기숙사에 남았다.취직한 다음에
성혜인은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러자 백연서는 더욱 득의양양해서 그녀를 비웃었다.“곧 있으면 설인데, 넌 누구랑 보낼 생각이니? 집안사람을 전부 잡아먹고서 전남편인 승제를 귀찮게 할 생각은 아니지? 만약 BH그룹의 도움이 없었다면 너희 회사는 진작 망했어, 너희 가족은 더러운 기생충일 뿐이라고! 재수 없는 년,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어!”백연서는 심호흡하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애를 유산하고 나서도 승제한테 들러붙으려 하다니, 너 정말 단단히 미쳤구나? 승제는 앞으로도 계속 너를 유산시킬 거야, 승제는 절대 아버지가 되지 않을 거니까! 그 애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 애초에 내가 죽여버렸어야 해. 부모가 이혼한다는데 어쩌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니? 감정 없는 괴물 같으니라고... 하늘도 무심하지. 승제를 데려가고 승우를 돌려줬으면 좋겠건만, 흑흑흑...”백연서는 말하면 할수록 점점 더 광기에 서렸다.백연서에게 아픈 곳을 제대로 찔린 성혜인은 심장이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반승제를 ‘감정 없는 괴물’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약간 속상한 감도 들었다.“반승제 씨도 친아들이 아니던가요?”‘어쩌면 친아들한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백연서는 빨갛게 된 눈으로 머리를 홱 들더니 독기 서린 말투로 말했다.“그래서, 뭐?! 내가 집안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말 한마디, 걱정 한 번 해주지 않는 놈이면 죽어야 마땅하지! 승우를 죽인 사람도 무조건 그 녀석일 거야! 안 그러면 그 녀석은 대표 자리를 꿈도 못 꿨어!”성혜인이 반승제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 백연서는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네 어미랑 아주 똑같아! 너 설마 승제를 좋아하니? 유산했던 일은 벌써 잊은 거야? 아이고, 혜인아. 네가 네 몸을 얼마나 천하게 굴리는지 임지연 그년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하하, 역시 내 아들은 대단해. 임지연의
설날을 하루 앞두고 반승제가 돌아올 때가 되었기에 성혜인은 부랴부랴 백화점으로 가서 벽에 걸 만한 장식품을 샀다.지난 일주일 동안 반승제는 한 번도 성혜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신입사원 모집으로 바빠서 그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하루빨리 사회로 나온 대학 졸업생을 모집해서 회사의 다음 단계 계획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면접을 보는 와중에도 성혜인은 반승제에게 월세를 주면서 살기로 한 집을 간단하게 인테리어 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은 곧 있으면 설날이라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바빴다.오늘도 반승제가 곧 돌아온다는 심인우의 전화가 없었더라면 성혜인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할 뻔했다.성혜인이 백화점에서 산 소품을 벽에 건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밖에서는 자동차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도우미들이 저녁 식사를 거의 다 차린 것을 보고 노트북을 닫았다.차에서 내린 반승제는 먼저 정원을 빙 둘러봤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가 기대하던 것은 대문부터 설날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최근 몇 년 동안 줄곧 해외에서 지낸 반승제는 제대로 된 설날을 보낸 적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보낸 적 없었다.반승우가 죽은 다음에는 기일이 마침 설날쯤이라 김경자와 백연서는 눈물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래서 가문에는 감히 설날 분위기를 낼 사람이 없었다.반대로 반승우가 살아 있을 때는 모두 그한테만 신경 쓰느라 반승제는 거의 부대에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래도 부대에서 좋은 식사 한 끼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아주 만족스러웠다.반승제는 설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길에 다른 사람들이 꾸민 것을 보니 자기 집이 유난히 썰렁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가슴속에 품고 있던 분노는 이 순간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비밀번호를 누르고 출입문을 연 반승제는 마침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성혜인과 마주쳤다. 그녀는 집에서 입기 편한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반승제
이튿날 아침 반승제는 아직 자고 있던 성혜인을 깨우면서 말했다.“일어나, 장 보러 가자.”새벽까지 시달리고야 잠에 든 성혜인은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비몽사몽 옷을 입고 차에 올라탄 다음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반승제의 어깨에 기대 눈을 붙였다.반승제는 성혜인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세를 잡더니 한 손으로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잠시 후 백화점 앞에 도착하자 그들의 앞에 보이는 건 굳게 닫힌 대문밖에 없었다. 심인우도 도착한 다음에야 알아차리고 말했다.“대표님, 백화점은 오전 9시가 되어야 여는 것 같습니다.”아직 아침 7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백화점은 문을 열 리가 난무했다.아주 오랫동안 백화점에 오지 않았던 심인우는 미처 시간 문제를 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침부터 백화점에 온 적 없는 반승제와 성혜인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심인우의 말을 듣자마자 성혜인은 눈을 살짝 뜨더니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대표님, 그럼 저희는 돌아갔다가 다시 나올까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잖아요...”반승제는 머리를 숙여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여기서 기다리지.”성혜인은 반승제의 말투에서 약간의 유치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단 1초도 기다릴 수 없이 당장 얻고야 말겠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 말이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반승제의 손을 잡았다. 반승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정장 차림에 볼펜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손을 뻗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볼펜을 내려놓고 손을 맞잡았다.“왜 그래?”반승제는 자기 손바닥 안에 꼭 들어오는 성혜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가 이토록 적극적인 것은 또 처음인지라 약간 위화감이 들기도 했다.어젯밤도 마찬가지다. 성혜인은 줄곧 아래에 깔려서 반승제가 하는 대로 전부 받아줬다. 그러다 문득 그의 등에서 언제 남은 것인지 모를 흉터가 만져지던 것이 떠오른 성혜인은 이참에 물어보려고 했다.하필이면 이때 반승제의 핸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