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주는 반승제의 반응을 보기 위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승주의 기대와는 달리 반승제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그의 예상이 맞았다. 같이 잤다고 해서 뭐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여인이라는 건 장식품과도 같았다. “네, 취향이 좀 바뀌었어요. 요즘은 페니가 좋더라고요.”그렇게 말하면서, 이승주는 손을 뻗어 성혜인의 턱을 잡고 더욱 가까이 붙었다. 성혜인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 고개를 들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승주 도련님, 까먹고 얘기를 못 한 게 있는데요, 저 남편 있어요. 여기서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이 테이블의 사람이 가장 많았기에 가장 주목 받는 것도 이 테이블이었다. 그 원인은 반승제가 이 테이블에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온시환까지. 두 사람 모두 제원의 권력 중심에 위치한 사람들이고 게다가 반승제가 호구처럼 돈을 계속 던져주고 있었으니까. 반승제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보통 이곳에 끌려오는 게 대다수였다. 그리고 종래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금방 귀국했을 때 와서 잃은 돈은 파산 위기의 회사가 기사회생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툭하면 4000억 정도랄까. 이런 호구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반승제가 이 테이블에 앉은 후 조금이라도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이 테이블에 바로 착석했다. 이승주가 또 성혜인을 데리고 왔으니 이 테이블은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낯이 깎인 이승주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심지어 성혜인을 한 대 치고 싶은 생각까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진짜 한 대 친다면 자기의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질 게 뻔했다. 이 년이 여기까지 계산하고 온 건가?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이승주가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래요? 남편이 누군데요? 설마 저번에 호텔에서 봤을 때 옆에 있던 남자는 아니잖아요?”목숨이 열 개 주어진대도 이승주는 직접 반승제의 이름을 거론할 담이 없었다. 성혜인
윤선미는 이런 곳에서 성혜인을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 성혜인을 노려보는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 것 같았다. 전에 성혜인 때문에 반승제 앞에서 크게 망신당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반승제의 호감을 다시 사기 위해 계획 중이었는데 성혜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니. 성혜인은 윤선미를 무시한 채 반승제에게로 시선을 돌려 부드럽게 물었다. “반 대표님, 칩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두 배로 돌려드릴게요.”둘러 모인 사람들은 반승제에게 말을 거는 성혜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늘 반승제의 등장에 수많은 여자가 말을 걸려고 노력했지만 반승제의 냉랭한 태도에 그 누구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성혜인이 이리도 많은 사람 앞에서 먼저 말을 걸다니? 그녀가 솔로라면 목적은 분명히 반승제와 엮이고 싶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혼 한 유부녀가 반승제한테서 돈을 빌리다니?어리석은 방법이었다. 반승제가 성혜인이 자기한테서 돈을 빌리려는 것을 예상치 못해 굳어있을 찰나 그 옆의 온시환이 자신의 칩 절반을 밀어서 주었다. 웃음을 짓는 정교한 눈매 밑으로 조롱이 살짝 섞여 들어갔다. 온시환의 생각도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성혜인이 반승제의 관심을 끌려고 이런 저급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저급해서 재미도 없을 정도였다. “이 거래 너무 욕심나는데, 페니 씨 제 칩을 빌려드려도 괜찮죠?”성헤인이 반승제를 찾아 돈을 빌리려던 것은 단지 이 테이블에 친한 사람이 없어서였다. 반승제는 이후에도 같이 사업을 하는 사이이니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기가 쉬웠을 뿐이다. 하지만 빌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도 거절하지 않았다.“감사드려요.”온시환은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입술만 끌어올렸다. 누가 봐도 온시환이 이 기회로 성혜인을 꼬시려는 것은 아니었다. 성혜인은 개의치 않고 칩을 가진 후 딜러를 쳐다보았다. 딜러는 급히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며 이어 나갔다. “그럼, 다들 준비되신 것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보다시피 반승제의 기분은 꽤 좋았다. 현장의 분위기도 오묘해졌다. 이승주는 성혜인과 기 싸움을 해봐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기 싸움을 이어간다면 화병이 도지는 것은 이승주 본인뿐이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딜러를 향해 말했다. “시작하죠.”딜러는 모든 사람이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 포커를 꺼냈다. 성혜인의 주위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대다수는 재미를 보러 온 것이고 간혹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까 성혜인이 칩의 가치도 모른 채 두 배로 갚는다고 했으니 온시환에게 4000억을 갚아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아마추어인 그녀가 노리밋 텍사스 홀덤의 테이블에 들어와 앉았다니. 이런 도박은 웬만한 타짜도 재차 고려하는 판이었다. 심지어 이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다 손에 꼽히는 재벌 2세들이지만 성혜인은 얼굴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등을 곧게 편 성혜인 오른쪽의 두 사람이 먼저 보지 않고 각각 2억과 4억을 베팅했다. 그리고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성혜인은 자기 손에 들어온 두 장의 카드를 보고 생각하더니 포기했다. 다들 그녀의 이런 행동이 교활하다고만 느껴졌다. 반승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윤선미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실력도 안 되면서 자리나 차지하고 계신 거예요? 다들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 온 줄 아나.”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딜러한테 물었다.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딜러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되긴 합니다.”하지만 지금 단 한 장의 공유 카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베팅도 하지 않고 포기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돈을 잃기도 싫고, 잃기 두려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여기에 앉아있는 걸까. 노리밋 텍사스 홀덤에 참가하는 사람은 돈이 흘러넘치게 많은 사람이다. 그 정도의 재력이 없다면 이곳에 끼지 말았어야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불만스러워했지만 성혜인은 개의치 않
이러한 도발에도 성혜인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들어 이승주를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승주 도련님, 전 분명히 유부녀라고 말씀드렸는데, 마음을 거절했다고 해서 이렇게 저만 쥐 잡듯 잡을 필요가 있나요?”그 말인즉슨 남자로서 속이 참 좁다는 뜻이었다. 정확한 발음과 청량한 목소리로 내뱉은 성혜인의 말은 곧장 퍼져나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이승주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마음을 받아달라고 했었나요?”성혜인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대답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방관자들이 추측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주가 성혜인을 데려왔건만 유부녀라는 소리에 태도가 완전히 변했으니. 갖지 못하면 부숴버린다는 것인가? 성혜인이 너무 적게 베팅하는 것은 맞지만 거절당했다고 해서 여자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건 품위 없는 행동이었다. 이승주는 체면을 잃어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 년을 너무 얕잡아 봤다. 다른 사람까지 이용하다니. 이 바닥에서는 원래 남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게 머무는 시선들이 의미심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적 가운데서 윤선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 쳤다. “승주 도련님이 뭐가 부족하다고 당신처럼 헤픈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진짜 별꼴이라니까.”자기가 이승주를 거절했다는 둥, 제까짓게 뭐라고 감히 여기서 자기를 치켜세워?성혜인은 윤성미를 의문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누구세요?”윤선미는 표정이 순간 굳었다. 윤선미는 성혜인이 자기를 모른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연기를 이어가려는 건지, 이 불여시 같으니라고. 이승주가 성혜인을 괴롭힐 때 그녀는 억울한 척 기회를 잘 잡아 판세를 뒤집었다. 윤선미는 처음부터 성혜인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았다. 윤선미는 성혜인의 말끝마다 시비를 걸었지만 성혜인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선미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시비를 걸
윤선미는 그녀의 말에 기가 막혀 쓰러질 뻔했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던 윤선미는 반승제에게로 시선을 돌려 도움을 구했다. 그는 여유롭게 앉아 엄지로 카드를 쓸었다. 마침 그가 베팅할 차례가 되어 그는 칩을 몇 개 앞으로 던졌다. 40억 베팅.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테이블로 다시 집중시켰다. 어쩌다 보니 윤선미를 도와준 셈이기도 했다. 윤선미는 한숨 돌렸지만 마음 한편은 아직 서늘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윤선미는 그제야 성혜인을 노려보았다. 성혜인은 눈썹을 둥글게 휘며 웃어 보였다. 손끝은 이미 두 카드에 놓고 다시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반승제가 40억을 베팅한 후, 게임의 룰에 따라 그 후의 사람들도 40억보다 적지 않은 금액을 베팅해야 했다. 도박판에 걸린 돈이 이젠 400억 가까이 되었다. 딜러는 긴장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번 라운드가 다 돌고 드디어 3장의 공유 카드를 공개했다. 하트 에이스, 하트 10, 그리고 다이아몬드 5. 성혜인 오른쪽의 사람은 이미 포기했고 이젠 그녀의 차례가 왔다. 그녀는 등을 의자에 붙이고 시선을 고정한 채 80억 원어치의 칩을 앞으로 밀었다. 족히 두 배였다. “80억.”처음에는 2억씩만 베팅하던 사람이 이제는 80억이나 베팅하다니. 성혜인은 반승제마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승제는 곧 시선을 거두어 갔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손에 어떤 패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이승주는 두 장의 5 카드를 들고 있었다. 공유 카드까지 더하면 트리플이었다. 트리플은 그 어떤 투페어보다도 크다. 이승주는 성혜인을 보고 비웃었다. “카드 볼 줄은 알아요?”“승주 도련님 생각에는요?”성혜인은 눈을 깜빡이며 교활하게 말끝을 올렸다. “전 다른 사람한테 돈을 그저 줄 생각이 없어요. 여러분들한테는 껌값이겠지만 저한테는 평생을 일해야 하는 금액이거든요.”80억이니까. 이승주는 눈으로는 웃
이승주는 다른 말은 듣지 못한 채 로얄스트레이트 플래쉬만 들었다. 이 조합을 만들 기회는 몇만분의 1이었다. 아마추어에게는, 전생에 덕을 쌓지 않는 이상 얻기 힘든 기회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신중하던 이 여자가 왜 갑자기 1600억씩이나 베팅하는 것일까. 아마도 성혜인에게는 모두를 이길 수 있는 카드가 있을 것이었다. 조금 전에 200억을 베팅할 때도 이승주는 머뭇거렸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에 더욱 심란해져서 미간을 팍 찌푸린 이승주는 성혜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아주 담담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승주 도련님, 마지막 베팅인데 안 하실 거예요?”그 말인즉슨, 그가 포기하면 이 돈들은 모두 성혜인의 것이 된다. 그냥 사실을 서술한 것이지만 이승주의 심정은 복잡해져만 갔다. 이게 모두 성혜인의 도발 같았다. 1600억을 잃는 게 두려운 게 아니다. 1600억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도 이 도박판에 돈을 뿌리는 것이 멍청하다고 느껴지는 것뿐이다. 그는 손목을 돌리다가 카드를 던지려고 했다. 성혜인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전 로얄스트레이트 플러쉬가 아니에요. 전 분명히 말씀드렸으니 절 원망하지 마세요, 승주 도련님.”“이런 싸구려 도발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아?”불만이 가득한 이승주가 재빨리 카드를 던져버렸다. 딜러가 그의 카드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두 장의 5, 공유 카드까지 더하면 트리플 5이었다. 이승주의 카드를 오픈한 딜러는 곧이어 성혜인의 카드를 건네받았다.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그 카드를 확인하자마자 살짝 굳어버렸다.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 기대되었다. 딜러는 자기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확인했다. “무슨 카드인데? 로얄스트레이트 플러쉬가 아니면 테이블 먹는 거 라이브 한다.”다들 성혜인의 카드가 로얄스트레이트 플러쉬라고 굳게 믿으며 얼른 확인하려고 했다, 반승제 한 사람만 빼고. 반승제는 금색과 푸른색으
“저기요?”성혜인이 의문스럽다는 듯 다시 한번 불렀다. 생각에 빠져있던 온시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빌려 간 만큼만 돌려주시면 됩니다.”“아니에요, 받으세요. 저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거든요.”도박장의 아마추어가 하룻밤에 4000억을 이겼다. 게다가 여자라니. 그녀가 이 돈을 갖고 이곳을 멀쩡히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방법은 이 돈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돈을 빌릴 때 했던 약속이 최고의 이유가 되었다. 온시환은 되려 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2000억을 두고 갖지 않겠다니, 왜 저러는 거지?아무리 반승제의 디자이너라고 해도 얻는 보상은 얼마 안 될 것이었다. 그녀가 한평생 일해도 2000억이라는 금액은 손에 넣기 힘들었다. 설마... 반승제 앞에서 잘 보이려고?온시환은 더 망설이지 않고 받았다. 그리고 반승제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얘기했다. “기혼자는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기혼자라는 단어에 임팩트를 주며 성혜인을 흘깃 쳐다보았다. 아마도 들었을 것이다. 반승제는 가만히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의문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가정은 그냥 장식품이라는 것은, 온시환이 더욱 잘 알 텐데. 온시환은 생각을 정리했다. 성혜인이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럼 반승제가 목적이다. 바로 반승제를 좋아한다는 것. “승제야, 아직도 모르겠어? 혜인 씨, 널 좋아하는 거잖아.”반승제 수중의 칩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적잖이 놀란 그의 속눈썹마저 파르르 떨렸다. “어디를 봐서?”온시환은 눈짓으로 칩을 가리키며 말했다. “2000억.”그들 눈에 2000억은 껌값이겠지만 일반인들한테는 평생도 갖지 못할 금액이었다. 하지만 성혜인은 별로 감흥도 없다는 듯 온시환에게 떠넘겼다. 반승제의 호감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온시환은 이것 외의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결혼했대, 남편이랑 사이 엄청 좋다던데.”담담한 어투였지만 옆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반승제는 고개를 돌
성혜인이 자리로 돌아가자 옆의 이승주가 또 작정한 듯 시비를 걸기 위해 입을 열었다. “2000억으로 반 대표 앞에서 알짱거리면 눈길 한 번이라도 더 줄줄 알았어요?”성혜인은 이제 이 사람한테 대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이승주는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된 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니 그의 시비를 받아줄수록 더욱 난리를 칠 것이다. 이승주는 성혜인이 자기를 무시하자 배알이 꼴리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여자 때문에 이토록 화나는 것 같았다. 반승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윤선미도 꽉 주먹을 쥐었다. 성혜인이 도박에서 망신당하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큰 성공을 거두어들이니 주변의 재벌 2세들도 다 그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다음 기회에 그녀와 사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빌어먹을, 왜 저 빌어먹을 년이 운이 이토록 좋은 것인지. 윤선미는 턱이 저릴 정도로 이를 꽉 깨물고 분노에 차서 성혜인을 노려보았다. 성혜인은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원래의 신중하게 베팅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계속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미 한번 크게 이겨버린 상태여서 이곳을 벗어날 별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지 못한 이유도 있거니와 옆에서 호시탐탐 노려보는 이승주 때문도 있었다. 반승제가 몸을 일으키자 성혜인은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 성혜인은 남은 칩 몇 개를 이승주에게로 밀어주었다. “승주 도련님, 오늘 여기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놀았어요.”이건 가장 일반적인 하얀색의 칩이었다, 하나에 200만 정도 하는, 가치가 낮아서 얼마 없는 칩이기도 했다. 이승주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손끝으로 테이블만 두드렸다. 원래 화를 내고 싶었지만 성혜인이 반승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반승제가 있기에 이승주는 무조건 참아야 했다. 이렇게 참다가는 화병이 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윤선미도 마찬가지였다. 반승제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저번에 실수한 것이 떠올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