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
잠깐 놀란 건 사실이지만 성혜인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볼 걱정은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명절에도 반태승만 따로 만났기에 반씨 집안의 다른 가족들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반제승 본인도 자신의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더 알 턱이 없었다.어두운 표정으로 떠난 반제승을 떠올리며 성혜인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반승제 씨는 아무래도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요.”예쁜 여자라면 직업이고 뭐고를 떠나 사족을 못 쓰는 임경헌은 물씬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럴 리가요. 혜인 씨의 디자인은 제가 본 것 중 최고였어요. 저희 사촌 형이 경영을 배우는 동시에 예술도 배웠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보아냈을 거예요. 오늘은 그냥 이혼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 같아요.”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양한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반승제 씨가 결혼했다고요?”임경헌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진작에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이혼하느라 변호사랑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에요.”임경헌은 성인이 되고 나서 흥청망청 노느라 집으로 돌아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저 반승제에게 할아버지가 찾아준 아내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결혼 얘기를 처음 들은 양한겸은 궁금한 듯 계속해서 물었다.“저는 네이처 빌리지의 펜션이 신혼집인 줄 알았어요. 만약 신혼집이 아니라면 혼자 사시는 집인가요?”임경헌은 성혜인에게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신혼집이기는 해요. 저희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지금의 형수랑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이 집은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같이 살려고 준비하는 것 같아요.”임경헌은 이렇게 말하면서 성혜인에게 주스를 건네줬다.“형이 곧 다시 온다고 했으니, 그때 다시 혜인 씨의 설계도를 보여주자고요. 형도 무조건좋아할 거예요.”성혜인은 주스를 받아 들면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제가 후에 꼭 밥 살게요.”임경헌은 성혜인의 당당한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
“무슨 얘기?”반승제의 말투는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앞으로 네 마음대로 이상한 여자 소개해 주지 마.”자신의 사촌 동생이 고객 중 한 명이라니, 반승제는 도저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런 것을 더 즐기는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금욕적인 생활을하는 반승제는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임경헌이 밖에서 이상한 것을 배워왔다고 생각하며 그는 조만간 잔소리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형, 진짜 안 올 거예요? 제가 형이랑 맞는 사람을 찾느라 한참 헤맸단 말이에요.”인테리어가 필요한 집이라면 임경헌에게도 몇 채 있었기에 그는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형이 싫으면 제가 냉큼 데려갈 거예요. 저는 아주 마음에 들거든요.”반승제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너 이제 이상한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BH그룹으로 와서 인턴부터 시작해. 네 어머니가 이미 나한테 다 얘기했어. 그러니 넌 내일부터 출근해,”반승제는 임경헌에게 반발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임경헌은 난감한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성혜인은 바로 자신이 거절당했음을 알아차리고 위로했다.“괜찮아요. 반승제 씨가 따로 마음에 드는 디자이너가 있나 보죠.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펜션이라면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임경헌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그럴 리가 없는데... 저는 아직도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고 들었거든요.”성혜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거래도 인연을 따져요. 저랑 반승제 씨는 인연이 아닌가 보죠.”“제가 후에라도 다시 물어볼게요. 만약 형이 싫다고 하면 제집을 디자인해 줘요. 저는 혜인 씨의 스타일이 엄청 마음에 들었거든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알아봐 주셔서 고마워요.”임경헌은 또 전화 한 통을 받더니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저녁은 제가 낼게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하는데 전화번호를 줄 수 있어요? 저희는 다음 날에 다시 만나요.”성혜인은 주저 없이 자신의 번
성혜인의 표정이 너무도 태연한 나머지 반승제는 자신이 너무 단순해서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 싶었다.반승제는 마치 조각상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성혜인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이라도 회사의 미래를 위해 쟁취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체면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깟 체면에 비해 반승제가 줄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반승제 씨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만약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받지 않고 포기할게요.”반승제는 도대체 어떻게 이 여자를 형용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고객이라면 이미 있잖아?”성혜인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혹시 본인의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까 봐 이러는 건가?’동시에 여러 고객의 일을 하는 디자이너도 물론 있지만 성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반승제 씨를 맡게 되면 다른 고객은 받지 않을 거예요. 만약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5분만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관심 없어.”반승제는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섰다. 양한겸을 부축하고 있는 성혜인은 어찌 따라갈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양한겸을 데리고 대리 기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양한겸은 술에 취했어도 성혜인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성혜인이 문라이트 밖으로 나서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차 안에서 예쁜 여자한 명이 내려왔다.여자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성혜인의 뺨을 때렸다.“너지?! 회사에서 물어볼 게 있다며 귀찮게 굴 뿐만 아니라 집으로 ‘사랑의 커피’를 보낸 사람이 너지?! 내가 진작에 발견했어. 너 오늘은 내 남편이랑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양한겸을 부축하고 있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성혜인은 뺨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여자는 화를 주
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메이크업으로 간신히 뺨에 난 자국을 가리고 출근했다.양한겸의 회사는 한 건물에서 2층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성혜인은 아르바이트생으로서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회의는 꼭 참가해야 했다.예전 같으면 가장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할 양한겸이 오늘은 반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는 어제와 같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행색도 단정하지 못했다.성혜인은 바로 양한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늦어서 죄송해요.”양한겸은 가장 앞으로 가서 앉았다. 성혜인의 걱정하는 눈빛을 보고 그는 멋쩍게 미소를지어 보였다.직원들이 순서대로 보고를 끝내고 회의도 끝이 났다.성혜인은 다른 직원과 함께 나가려고 하다가 가만히 앉아있는 양한겸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요?”양한겸은 피곤한 듯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재이 친정에 문제가 생겼어.”그는 밤새 골머리를 앓은 듯 목소리가 걸걸했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머뭇거렸다.“많이 심각해요?”양한겸은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결심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금 회사를 팔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직원들한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성혜인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타이밍에 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양한겸은 돈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다.이 회사는 양한겸이 다년간 노력한 결과이기에 그도 마음 같아서는 팔고 싶지 않았다.“아직 얼마나 필요한데요?”“적어도 40억 정도.”양한겸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반승제의 일이 성사됐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게 됐네.”“제가 계속 얘기해 볼게요.”성혜인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일을 아직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마요.”양한겸은 한숨을 쉬었다.“너도 반승제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마. 그리고 어제는 내 아내가 전적으로 잘못했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회의실에서 나온 성혜인은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던 성혜인은 바로 답장했다.‘제가 직접 반승제 씨와 얘기할 수는 없을까요?’이미 BH그룹까지 온 마당에 반승제만 원한다면 두 사람은 바로 만날 수 있었다.변호사는 반승제와 상의해 본다고 답장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BH그룹의 가장 위층.반승제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이때 심인우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성혜인 씨가 대표님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반승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거절해요.”반승제는 이것 또한 이혼하지 않을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나랑 만나면 뭐가 달라질 줄 아나? 퍽이나...’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더러 이혼 서류를 성씨 저택으로 보내서 직접 사인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라고 해요.”심인우는 반승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성혜인의 얘기를 그만하고 스케줄을 확인했다.“HD은행 이문호 대표님과의 골프 스케줄은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반승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정리하며 말했다.“그래요.”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성혜인은 가만히 앉아서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이 말이다.기다림은 아주 평화로웠다. 성씨 저택에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혜인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승제가 왜 너랑 이혼해?”성휘는 다급하게 말했다.“둘이 싸우기라도 했어? 일단 집으로 와서 잘 좀 얘기해 보자.”성혜인은 약간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아빠,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저희는 남과 다를 바 없어요. 그리고 승제 씨가 귀국한 이상 저를 아내로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ㅂ성휘는 급한 나머지 랩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혜인아, 이혼은 절대 안 된다. SY그룹에서 곧 투자 유치를 시작할 건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혼한다면 주가가 무조건 하락할 거야.”휴대전화 건너편에서는 소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혜인이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성혜인은 반승제의 차가운 표정에 몸이 흠칫 떨리는 것만 같았다.그의 일행은 빠르게 성혜인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은 반승제와 얘기하느라 주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였다. 뒤에 있는 사람은 전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이는 성혜인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선 세상이었다.성혜인은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골프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평범한 생김새의 이승주는 명품 운동복을 입고 가볍게 공을 치고 있었다. 성혜인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골프채를 캐디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드디어 만났네요, 페니 씨. 일 한 번 같이 하기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앉았다“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직원일 뿐인데요.”이때 골프장 직원들이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거물이 방문하려는 모양이었다.성혜인의 시선을 느낀 이승주는 허풍을 치기 시작했다.“BH그룹이라고 알아요? 제 아버지가 오늘 BH그룹 대표랑 4조짜리 경기를 준비했어요.”성혜인의 경험으로 허풍 치기를 좋아하는 고객을 상대로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가장 옳았다.“도련님께서 금방 산 땅만 해도 600억은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4조쯤은 HD은행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요?”이승주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반승제가 금방 귀국하고 나서 첫 합작 기회가 생겼으니 이쯤은 준비해야죠.”“반승제 씨의 귀국이 확실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죠.”성혜인은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칭찬만 했다.이때 이승주가 캐디가 건네는 물을 받아들며 몸을 일으켰고, 성혜인도 어쩔 수 없이 따라 일어났다.“제 아버지 말로는 반승제가 이미 결혼했다고 하더라고요.”“그래요? 보기에는 전혀 결혼한 사람 같지 않던데요.”성혜인은 골프채를 꺼내면서 말했다. 갑이 하고 싶은 얘기라면 그녀는 뭐든 맞춰줄 수 있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결혼을 했으면 와이프를 보여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쯤 되면 사람들이 비웃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