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깨끗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소독한 후 그는 멈춰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10대 소년처럼 보였지만 눈빛은 잔혹하고 사악했다.그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나갔다. 의사는 이미 성혜인의 상처를 다 꿰맸지만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테이블 위에 촛불을 켜놓았다. 의사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노예찬을 흘끗 보았다. 노예찬은 소파에 앉아 곁눈으로 성혜인을 관찰했다. 최근 반승제에 대한 걱정에 더해 오늘 밤 발목을 다치며 몹시 초췌해진 성혜인은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빛이 매우 어두웠지만 농예찬은 그녀가 열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거실 안에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옆에서 주사기를 꺼내 성혜인의 손목을 잡고 주사를 놓으려는 순간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귀를 꿰뚫는 높은 총소리에 성혜인은 눈을 번쩍 떴다. 노예찬은 손에 있던 주사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소파 밑으로 차서 넣었다.“누나, 열이 나는 것 같아.”성혜인은 일어나서 그를 옆방으로 밀어 넣었다.“너와 배현우는 여기 숨어있어. 내가 나가서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올 테니까, 내가 올 때까지 섣불리 나오지 마.”노예찬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설핏 그의 눈동자에 악의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누나, 구금섬에서는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어. 밖은 위험해.”성혜인은 노예찬의 손등을 토닥였다.“괜찮아. 나가서 보고 금방 돌아올 테니 잘 숨어 있어.”노예찬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풀었다. 성혜인은 몸을 추스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혜인이 나가자마자 노예찬은 전화를 걸어 중간 섬의 상황을 물었다.“10장로님, 안쪽 섬에 있던 사람이 직접 검문소를 뚫고 중간 섬으로 온 것 같습니다.”노예찬은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꽉 움켜쥐고 얼굴을 굳혔다.“어떤 놈인
성혜인은 20분 정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차도 그림자도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노예찬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성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내가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계속 돌아오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나와봤어.”성혜인은 방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나왔다.“예찬아, 나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해. 배현우를 부탁할게. 고열에 정신까지 이상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네가 잠시 나 대신 좀 도와줘.”“언제 돌아와?”“모르겠어.”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그 세력이 누구인지, 체포된 남자가 반승제가 맞는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맞다면 그녀는 가서 그를 구해야만 했다. 변장하고 들어가야만 한다.노예찬의 눈빛이 음침해졌다. 내섬에 있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길래 한밤중에 중간 섬에 침입하여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킨단 말인가.성혜인이 섣불리 그들을 따라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해파리 인장은 어디가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그래서 그는 성혜인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누나. 저 사람들은 내섬에서 온 사람들이야.”“네가 어떻게 알아?”“외섬, 중간 섬, 내섬의 번호판이 다 달라. 내섬의 세력은 매우 복잡해. 몇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데 이 가문 사람들만 총을 사용할 수 있거든. 그들을 건드리면 아마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게. 예찮아, 배현우 잘 부탁해.”지금 짐을 떠넘기는 건 좀 뻔뻔한 일이지만, 배현우는 돌봐줄 사람이 정말 필요했다.노예찬은 눈썹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오늘 밤 일을 일으킨 사람들을 욕했다. 부하들이 아직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성혜인을 붙잡아 둬야 했다.하지만 성혜인은 반승제에 관한 일을 마주쳤고 게다가 아침에 누군가 반승제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침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노예찬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심지어 택시를 타고.“X발!”
“구씨 가문 측에 최근 여자를 죽이려거든 먼저 나와 상의하라고 전해.”“네.”전화를 끊은 노예찬은 바지 주머니에 전화를 넣었다. 이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노예찬.”노예찬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바보는 언제 나왔지?문 안에 서 있던 배현우는 노예찬의 살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순진하게 물었다.“혜인이는? 혜인이 보고 싶어.”노예찬은 짜증을 내며 손을 흔들었다.“물건 사러 나갔어. 곧 돌아올 거야.”배현우의 열은 아직 내리지 않았고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운 상태였다.“정말이야? 안 믿어. 나 견과류가 들어간 요구르트 먹고 싶어.”노예찬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먹고 싶으면 더 기다려. 지금 섬 전체가 정전되어서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서 살 수 없어.”“안 믿어.”배현우는 그대로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안 믿어. 빨리 나가서 사줘.”노예찬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보니 그는 땅에서 구르고 있었다.“너무 배고파.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요구르트, 스테이크, 불고기... 먹고 싶어.”배현우가 음식 이름을 줄줄이 읊었지만 노예찬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후 비가 한바탕 퍼부어서 땅은 아직도 축축했다. 배현우는 땅에서 구르며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노예찬은 의자를 테라스로 옮겨와 앉았다. 주변에 촛불을 켜 놓았지만 여전히 매우 어두웠다. 전기가 언제 들어오는지도 모르겠고, 그는 진흙탕에서 아이처럼 데굴데굴 구르는 남자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10분 동안 구르던 배현우는 아마도 오늘 밤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로 기절했다.노예찬은 일어나 그의 앞으로 걸어가 다리를 뻗어 발로 차고 나서야 그 남자가 정말 기절했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배현우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 난방을 켜고 온도를 올린 후 바닥에 내팽개쳐 버린 채로 내버려두었다.배현우는 원래 열이 나고 있었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며 열이 더 심해졌지만 정신을 차
성혜인은 성큼성큼 다가가 두 사람의 상처를 확인했다.“우선 숨을 곳부터 찾아야 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밤 중간 섬이 너무 어수선해. 우리도 표적이 됐어.”성혜인은 총을 들고 매우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배현우, 예찬이를 부축해줘.”“혜인아, 나 너무 배고파.”방금 바닥에서 오랫 동안 굴렀지만 노예찬은 그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는 정말 배가 고프고 몸이 뜨껍고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은 서둘러 뜨거운 우유 한 병을 꺼내 비스킷과 함께 먹였다. 그 사이 또 5분이 지체되었다.“역시 혜인이가 좋아.”배가 부른 배현우는 노예찬을 일으켜 세울 힘이 있었다. 성혜인은 총을 들고 길을 열었다. 노예찬은 절뚝거리며 잠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다시 묵묵히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바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둘 다 바보였다. 그에게 놀아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오늘 밤 일은 그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해파리 인장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어렸을 때부터 체질이 남달랐던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구석진 곳에 방치되더라도 숨이 조금만 붙어 있으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이 사람들 왜 우리를 감시하는 거야? 누나한테 뭔가 있어서 그래?”이때 세 사람은 한 골목길에 이르렀다. 한참을 걸어왔는데도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아마 방금 전에 머물렀던 작은 별장을 폭파한 것 같았다.“누나,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그는 구금섬 전체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무리를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성혜인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총을 잡은 손이 이 순간까지도 계속 떨리고 있었다.오늘 밤은 그녀의 관점이 뒤집힌 밤이었다. 예전 바깥 세상에 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스릴있고, 자극적인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실제 총격전을 한 적도 없었다.낡아빠진 다리 아래의 구멍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멈춰섰다. 이 다리 구멍의 위치는 매우
해파리 인장을 가진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K가 10장로 에게 복종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인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찬은 항상 K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성녀가 K를 안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그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을까.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K는 해파리 인장만 찾을 뿐이지 성녀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노예찬을 부축하여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겨우 1평 남짓했는데 세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였지만, 성혜인은 여자이기 때문에 두 남자 사이에 약과 음식을 놓고 선을 그어 놓았다. 그리고 노예찬에게 해열제를 먹였다.“열이 날 것 같으니까 우선 한 알 먹어.”노예찬은 텐트 꼭대기를 바라보며 이런 곳을 만든 그녀의 손재주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누나, 그 인장을 이용해 그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는 않아?”성혜인은 피곤한 기색으로 자리에 누웠다.“오늘 밤 승제 씨를 봤는데, 안쪽 섬에서 온 사람들에게 잡힌 것 같아. 그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았으니 날이 밝으면 가서 살펴봐야겠어.” “안쪽 섬 사람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 정말로 잡혔다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어. 누나 지금 임신 중이잖아. 혹시 반승제라는 사람이 아이 아버지야?”“맞아. 그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돼서 너무 불안해.”노예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구씨 가문의 포로가 혹시 반승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반승제가 중간 섬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며 안쪽 섬 사람들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재력이 상당해서 안쪽 섬에 들어가면 권력 구도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오랫동안 안쪽 섬에서 평온하게 지내온 가문들이 어떻게 반승제가 저들의 자원을 빼앗아 가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외부에서 온 자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오래전부터 그곳에 자리 잡아 온 세력을 이길 수는 없다.따라서 그들은 분명 반승제를 처리하려 할 것이고, 아무 죄명이나 갖
한편 구지한은 작은 철창 안에 웅크리고 앉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밖의 남자를 보며 미간을 바짝 좁혔다.“널 진짜 믿어도 돼? 네 여자 친구는 찾았어?”반승제는 검은 로브를 밑으로 당겨 두 눈을 가렸다.“곧 찾을 거야.”구지한은 바닥에 내려앉자 너무 차가워서 엉덩이가 마비될 것 같았다.“반승제,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있지마. 지금 구씨 가문 주인 인장이 네 손에 들어갔으니 일부 세력을 부릴 수 있을 텐데, 왜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반승제는 옆에 있는 벽에 기대어 이 큰 도련님의 초라한 행색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더 강력한 인물이 존재하는데 아직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어.”구지한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속이 아주 깊어 좀체로 내색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보는 통찰력이 날카로웠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모험을 하며 자신의 전부를 반승제에게 걸지 않았을 것이다. 반승제를 처음 본 날 밤, 그가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구지한은 구금섬을 떠나려고 결심했다. 그의 성향은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혐오했지만 광대한 외부 세계라면 분명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었다.구씨 가문의 차기 가주로서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는 모든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될 것이다. 그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날에는 암살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금섬은 자유로운 곳이 아니었다.“아마 여러 가문과 비밀리에 거래를 해온 그 사람일 거야. 나타날 때마다 변장을 하고 목소리도 때로는 노인처럼, 때로는 여자처럼, 때로는 소년처럼 변해서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몰라. 게다가 잔혹하기까지 해서 그의 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어. 그를 파헤치려면 좀 어려울 거야.”구지한은 바닥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짚고 말했다.“그런데 반승제 너도 정말 대단해. 신분을 위조할 생각을 하다니.”원래 내섬에는 검은 로브로 가리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는데, 매년 여러 가문에 약
“구지한, 우리 구씨 가문에 어떻게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역겨운 짐승이 태어났을까!”그 남자는 구지한이 말을 듣지 않자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외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다면, 특히 너 같은 놈을 극혐하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널 살려둘까?”구금섬의 규칙상 구지한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어떠한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고 여기므로 죽음을 선사한다.구금섬의 규칙은 모두 상류층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성향의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구금섬에 신선한 피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구지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두 손을 머리 뒤로 얹었다. “그래, 그래. 난 죽어 마땅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살아 있네. 넌 우리 밖에서 계속 개처럼 짖으렴.”남자는 분노에 몸을 떨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할아버지께서 이미 네 소식을 듣고 여기로 오시는 중이야. 그래, 두고 봐!”남자는 말을 마친 후 반승제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문이 닫히자 이곳에는 반승제와 구지한만 남았다.구지한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플로리아라는 곳에 가면 정말 나 같은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 거야? 심지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고?”“그래.” “꼭 살아서 네가 말한 나라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반승제는 미간을 좁히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내가 널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구지한은 손을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로 바꾸었다.“그랬으면 좋겠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금섬을 떠나본 적이 없어. 우리가 접한 지식으로 여태까지 구금섬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했어.”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고 있던 검은색 로브를 정리했다.“밖에 나가서 좀 둘러볼게.”“네 여자 친구를 보러 가지 않을 거야?”“가야 해. 하지만 오늘 밤 중간 섬에 난동이 일어나서 예전에 살던 집이 파괴됐어.” “그 여자는 괜찮아?”“괜찮아. 하지만 쫓아가지 않아서 다시 연락이 끊겼
성혜인이 한숨을 내쉬자 배현우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혜인아, 나 집에 가고 싶어. 이 섬에서 벗어나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가고 싶어.”성혜인을 비스킷을 그의 입에 밀어 넣었다.“우선 배부터 채우고 나서 말해”지금의 그녀는 감히 이 다리 구멍을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대낮에 그 무리가 어디를 지키고 있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발목을 잡는 두 사람을 데리고 온전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성혜인은 비스킷을 먹으며 노예찬에게 잠 좀 자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노예찬이 물었다.“오늘 밤 나갈 거야?”“응, 어젯밤 그 무리의 상황을 보러 가고 싶어. 두 무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무리는 나를 처리하러 왔고 다른 한 무리는 내분 중이었어. 그들이 잡고 있는 사람은 아마 승제 씨일 거야. 가서 살펴봐야 해.”노예찬의 눈에 희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오늘 밤 그녀가 나간 틈을 타 연극을 한 번 더 해야 할까?이제 부하들과 연락이 닿았고 어젯밤 그 작은 별장을 폭파한 무리가 K의 부하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구금섬은 노예찬의 구역이고 노예찬은 어리지만 유능했다. 자신의 세력에 K가 침투하지 못했지만 K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아마 성혜인이 첫날 이곳에 들어왔을 때 K의 사람들이 이미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노예찬의 구역이라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뿐. 노예찬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는 그 위선자를 몹시 싫어했다.세 사람은 이렇게 다리 구멍 아래에 하루 동안 숨어있었다. 밤이 되자 성혜인은 밖으로 나가며 노예찬에게 신신당부했다.“만약 그 무리가 여기를 찾아내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배현우를 데리고 도망가. 내 번호를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면 되니까.”“알았어.”노예찬의 입꼬리가 휘어 올라갔다. 오늘 밤은 바로 성혜인이 죽을 시간이었다. 그녀는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성혜인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찬아, 고민이 있거나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