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원래 차가운 숨만 쉬고 있었는데 이 질문에 몸이 움찔 굳어버렸다. 온시환은 웃으며 묵묵히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현장의 모든 사람은 반승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반승제가 이전에 윤단미와 사귀었으니 두 사람이 관계를 가졌을 게 뻔했다. 아마도 18살 때거나 19살 때일 것이었다. 성혜인도 나름 궁금해져서 입술을 말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와 윤단미의 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반승제의 첫 여자도 윤단미일 것이었다. 젊은 남녀는 불타오르기 쉬웠으니. 게다가 두 사람은 동창이었으니. 제원의 이 바닥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발랑 까져서 미성년자임에도 관계를 가진 적이 적지 않았다. 반승제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성혜인의 표정을 보고는 왜인지 모르게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갓 돌아온 날에, 반씨 집안의 파티가 진행된 밤.”그렇다면 최근이 아닌가?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반승제가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온시환은 그 말을 듣고 손안에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리고 옆의 성혜인이 멍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승제의 말에 따르면 반승제와 성혜인이 같이 밤을 보낸 날이 처음이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여기까지 생각하니 성혜인은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 전에 남자와 관계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반승제는 그날 밤 성혜인을 완벽하게 컨트롤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의 대답 때문에 분위기가 순간 오묘해졌다. 지어는 옷과 옷의 마찰 속에서 불꽃에 피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서수연이 미는 바람에 그녀와 반승제의 팔이 딱 붙어버렸다. 피부 사이로 온도를 나누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어두운 불빛에 살짝 더워진 그녀는 참지 못하고 술을 몇 모금 더 마셨다.사람들은 여전히 놀라서 토론하고 있었다. 반승제가 첫사랑을 위해 몸을 아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그도 남자였다. 그리고 여자들은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만약 성혜인과 반승제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면 당연히 반승제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갈 데까지 간 사이에 키스 하나로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온시환도 물론 똑같이 생각했다. 게다가 성혜인이 지금껏 보여준 성격으로는 잘 아는 사람을 곁에 두고 모르는 사람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성혜인은 머리를 숙인 채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반승제 만큼은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반승제의 대답 때문에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반승제를 선택한다면 의심을 굳히는 격이었다.사람들을 쓱 훑어보던 성혜인의 시선은 신이한에게 닿았다. 카사노바 신이한은 30초짜리 키스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와 반승제의 사이를 알고 있어서 귀찮은 일이 생길 리도 없었다.“페니 씨,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했어요?”온시환은 흥미진진한 방관자의 태도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온시환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반승제를 선택한다면 몸을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반승제를 선택하지 않았다.반승제와 성혜인이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여자들은 전부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 오직 반승제만 어두운 안색으로 성혜인이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성혜인의 곁에 앉아있던 서수연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힘껏 밀쳤다.“너 뭐야? 이한 씨는 너 안 좋아하거든? 어디서 감히 들이대려는 거야!”서수연은 신이한을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 성혜인이 신이한을 노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힘을 다해 밀쳤다.몸을 반쯤 일으켰던 성혜인은 그대로 반승제의 품으로 쓰러졌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지고 은은한 술 냄새가 느껴졌다.성혜인은 서수연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지금 와서 신이한을 찾아가는 건 이상했기에, 그냥 이때다 싶어서 손
현장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언짢은 표정의 반승제와 서수연에 의해 밀쳐진 성혜인을 보고 두 사람의 키스는 그저 사고일 뿐, 성혜인이 반승제의 하룻밤 상대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혜인에게 질투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승제의 키스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성혜인이 사과를 하고 나자 병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두 사람의 키스로 인해 약간 어색해졌다. 원래 놀리려고 했던 사람은 감히 반승제를 놀릴 수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서수연의 생각 없는 행동은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수연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현이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서수연은 이제야 정신 차리고 당당하게 말했다.“제가 뭘요? 친하지도 않으면서 들이대려고 한 사람이 잘못이죠.”제원대학에 있을 때도 그렇고 지금 그렇고, 자꾸만 엮이는 신이한과 성혜인에 서수연은 아주 불안했다.“이건 게임일 뿐이야. 못 놀겠으면 빠지던가.”신이한이 말했다. 서수연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서수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독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며 성혜인을 노려봤다. 성혜인은 보는 척도 하지 않고 게임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한 시간 후, 게임이 드디어 끝나고 성혜인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아직 16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 게 떠올라서 반승제에게 물었다.“대표님, 카드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반승제는 술잔을 돌리며 머리를 들었다. 그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고, 이 중에서도 가장 멀쩡해 보였다.게임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신 성혜인은 약간 취기가 올라왔지만 갚을 돈이 있다는 것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성혜인의 발그레한 얼굴에 빛나는 눈빛을 보고 반승제는 또다시 그날 밤이 생각났다. 술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 안에서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약간 이상했다.“돈은 어떻게 구했어?”“빌렸어요.”반승제는 여자의 옷이나 가방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성혜인이 쓰
성혜인은 일단 16억 원을 갚고 다시 은행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리고 반승제가 손해 보는 일 없도록 이자까지 쳐주려고 했다. 하지만 반승제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화까지 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반승제가 말하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온시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제야, 안가?”온시환도 꽤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승제의 앞에 서 있는 성혜인을 힐끗 바라봤다.“두 사람 무슨 비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반승제는 한 발짝 멀어지더니 먼저 밖으로 나갔다. 온시환은 성혜인에게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는 그를 따라갔다.뒤늦게 술집에서 나온 성혜인은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 이때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으로 와서 천천히 멈춰 섰고 운전석에는 성한이 앉아 있었다.성혜인은 경계 섞인 눈빛으로 뒷걸음질 쳤다. 성한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너 혼자 술집에 놀러 온 거야?”성한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병원에서 성혜인과 마주친 이후로 그녀가 무조건 더러운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한밤중에 술집 앞에 나타난 걸 보면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정장을 빼입은 성한이 차에서 내려왔다.“너 술 마셨지? 타, 내가 데려다줄게.”“됐어요.”대리기사가 이미 오고 있었기에 성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성한은 포기하지 않고 다가와 대놓고 그녀의 살냄새까지 맡았다.“에이, 오빠랑 무슨 내외 하고 그래.”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아빠도 없는데 연기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성혜인은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때마침 대리기사가 도착하고 그녀는 성큼성큼 멀어져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성혜인이 밀쳤던 곳을 코에 가져다 댔다. 성혜인의 몸에서는 옅은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다른 여자처럼 향수를 쓰지 않아서 향긋한 살냄새가 나기도 했다.성한은 성혜인의 차를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
강민지는 칼같이 답장 왔다.「방금 헤어졌는데, 왜? 사장이 급하게 불러서 일 보러 갔어. 예준 씨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잖아.」재벌 2세인 강민지와 다르게 신예준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것도 반지하에서 살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얼굴이 반반한 데다가 고생할 줄도 아는 노력형이었다.성혜인이 신예준에 대한 인상은 강민지의 일방적인 서술에 국한되었다.신예준은 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네 개씩 했다고 한다. 그의 학비와 생활비는 전부 자신이 스스로 번 것이었다. 반대로 강민지의 집안은 국내에서 가장 큰 보석 장사를 하고 있어서 돈 모자랄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성혜인은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아주 의아했다. 그리고 요즘에야 강민지가 자신의 재력을 숨기고 신예준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민지는 신예준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가난한 척하면서 자신이 식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신예준은 그녀의 말을 순순히 믿었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의 거짓말을 더욱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강민지는 손바닥만 한 집을 구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로 하면 본가의 수영장보다도 작다고 한다.성혜인은 두 사람의 만남을 좋게 보지 않았다. 재벌은 결혼 상대의 집안에 아주 예민했다. 그러니 두 사람이 결혼하고 싶다고 해도 강민지의 집안사람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강민지는 신예준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성혜인은 두 여자를 몰래 따라갔다.이 층에는 스위트 룸이 두 개 있었는데, 서로의 기척이 완전히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기둥 뒤에 몸을 숨긴 성혜인은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이 노크하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키 큰 여자는 문가에 서 있었고 문이 열리는 순간 폭죽이 터졌다.“생일 축하해요.”문을 연 사람은 신예준이었다. 여자는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 만나기 참 어렵네요. 만약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었다면 나오지도 않았을 거죠?”신예준은 뒤로 한 발짝 물러
성혜인의 발목은 살짝 삐끗했을 뿐이라서 금방 나았다. 하지만 반승제의 손은 완전히 관통되었기에 낫는데 한참 걸렸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른손을 다쳐서 가위로 낡은 붕대를 잘라내는 데 한참 걸렸다.오늘 술집에 있을 때, 반승제는 오른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온시환도 그가 다친 것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다가가서 가위를 뺏어 들었다. 반승제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성혜인은 반승제를 바라보지 않고 상처에만 열중했다. 그녀는 붕대를 잘라내고 한층 한층 풀어냈다. 곧이어 상처가 드러났고 꿰맨 곳은 잘 아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또 세심하게 약을 바르고 새 붕대를 감았다.모든 과정을 끝내고 머리를 들어 무언가 말하려고 했을 때, 문 쪽에서 한목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문 쪽을 바라봤다. 갑자기 들어온 사람은 온시환이었다.온시환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자신이 방을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닌지 확인까지 했다.성혜인은 자신이 금방 다시 나갈 것이기에 방문을 닫지 않고 들어왔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후다닥 일어나며 말했다.“다 됐어요, 대표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시환은 한쪽에 서서 희대의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성혜인은 반승제가 당연히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시환과 짧게 목례하고는 보온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자마자 온시환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만약 오늘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네가 페니 씨랑 키스할 때 지은 싫은 척하는 표정이 진짜인 줄 알뻔했어. 두 사람 역시 그렇고 그런 사이 맞지?”온시환의 직업은 작가였기에 상상력이 아주 풍부했다. 그래서 그는 제멋대로 상상하며 말하기 시작했다.“페니 씨가 진짜 너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믿어? 안 좋아하면 그렇게 열심히 상처 소독을 해주겠어? 설마 이 상처도 페니 씨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
성혜인은 집으로 돌아가려다 말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강민지를 기다렸다.얼마 후 강민지가 카펫에 구멍을 뚫을 듯이 쿵쿵 소리를 내며 빠르게 걸어왔다.“민지야.”강민지는 성혜인의 부름에 대답하지도 않고 그녀가 말했던 방문 앞으로 왔다.쾅쾅쾅!한바탕 노크하고 나자 강민지의 손바닥은 빨갛게 되었다.같은 시각, 방 안에는 두 쌍의 남녀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송미나는 신예준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예준 씨, 혹시 나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거예요?”송미나는 약간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신예준이 서프라이즈를 준비할 만한 사이즈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송미나가 통 크게 2000만 원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신예준은 싱긋 웃으며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노크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다른 여자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강민지가 서 있는 방향에서 테이블 앞에 있는 신예준이 정확히 보였다. 송미나는 아직도 그를 안고 있었다.강민지는 이를 악물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가방을 휘둘렀다.“야, 이 미친놈아! 네가 감히 바람을 피워?”강민지가 찾아올 줄 몰랐던 신예준은 멍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러다 곧 당황하면서 벌떡 일어났다.“미... 민지야.”가방에 맞은 송미나가 욕하려고 했을 때, 함께 있던 남자가 그녀를 말려 섰다. 남자는 작게 머리를 저으며 그녀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나 파티에서 저 여자 만난 적 있어.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송미나는 이를 악물고 강민지를 노려봤다. 그녀는 문득 강민지의 가방을 바라봤다, 에르메스에서 새로 나온 4억짜리 가방이었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한정판만 걸치고 있었다.송미나는 순간 기세가 줄어들어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집안도 잘 사는 축이기는 했지만 몇억짜리 가방을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예준 씨, 이 여자 누구예요?”강민지가 답했다.
강민지는 휴지를 뽑아 들고 신예준의 얼굴을 닦아주며 자신의 옷차림을 설명했다.“이건 길가에서 대충 산 거야, 4000원짜리 신발 본 적 있어? 이 옷은 동대문에서 산 거고 가방은 6000원도 안 돼. 방금 그 사람들이 비싸다고 생각한 건 다 내 아우라 때문일 거야. 내가 원래 좀 옷을 잘 입잖아.”강민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신예준의 볼에 뽀뽀했다.“미안해, 예준 씨.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근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 예준 씨가 이렇게 벌어온 돈으로 산 선물을 받고 싶지 않으니까.”성혜인은 신예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이 잘생긴 것만큼은 진심으로 인정했다. 누군가가 몇천만 원으로 밥 한 끼 먹을 기회를 사는 것도 어쩌면 이해가 되었다.성혜인은 시선을 떨군 채로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민지는 신예준을 한참 타이르고 나서야 오해를 풀고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갔다.문 앞으로 왔을 때, 강민지는 머리를 돌려 윙크를 날렸다. 성혜인은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따라가지 않고 있었다.“예준 씨도 우리 집 상황 잘 알지? 내 동생이 돈을 엄청 많이 써. 엄마는 내 예물로 동생한테 집 사줄 생각만 한다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엄마를 설득해서 예물을 많이 요구하지 않을 거니까.”“고마워, 민지야.”성혜인은 어이가 없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한참 지난 다음에야 밖으로 나갔다. 강민지, 신예준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며 반승제의 방을 지나고 있을 때, 마침 안에서 나오는 온시환과 마주쳤다.온시환은 성혜인을 보자마자 눈썹을 찡긋했다. 성혜인은 왜 방금 강민지와 함께 내려가지 않았는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온시환과 함께 있는 바에는 차라리 커플과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또 보네요.”온시환은 성혜인의 뒤쪽을 힐끗 봤다. 왜냐하면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과 전혀 다른 곳에서 걸어왔기 때문이다. 방금 울고불고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었기에,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