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오른 그녀는 운전석에 앉았다.발목의 상처가 아직 조금 아프긴 했지만 거의 다 나았다.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로 인해 차 안의 분위기도 더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성혜인도 액셀을 밟지 않고 백미러로 그를 바라보았다.포레스트 펜션에 가는 걸까, BH그룹에 가는 걸까, 아니면 호텔로 가는 걸까?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여기 휴대폰입니다.”그녀는 반승제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반승제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 핸드폰 화면에 뜬 두 개의 새 알람 소식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성혜인은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반승제의 기분이 더 안 좋아진 것은 알 수 있었다.그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짜증.평소 반승제는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단미의 문자 하나로 그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게 하다니.성혜인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첫사랑인가.“BH그룹으로 돌아가지.”그는 핸드폰을 옆에 간단히 던져놓고는 답장하지 않았다.성혜인도 애써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차를 몰고 BH그룹으로 가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주머니한테서 연락이 온 것이다.“혜인 아가씨, 반 회장님께서 갑자기 포레스트 펜션으로 오셨는데 지금 당장 반 대표님과 오시라고 합니다.”성혜인은 자신이 스피커폰을 안 켠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눈에 놀라움이 서렸다.반 회장님께서 포레스트 펜션에 가셨다니!그녀는 백미러로 또 한 번 반승제를 보았다. 반승제의 핸드폰도 울린 걸 보니 반 회장님께서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거신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승제는 발신자를 보고는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할아버지.”“승제야, 나 지금 포레스트 펜션에 있다. 너 손을 다쳤다고 하던데 좀 와서 보자꾸나.”“할아버지, 저 지금 BH그룹 긴급회의에 참석해야 해요. 아마 늦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급하지 않아, 기다리마.”반 회장님과의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아주머니 쪽에서도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반 회장님, 저랑 승제 씨 잘 지내고 있어요.”그녀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얘기하며 차를 한잔 건넸다. “그것보다, 네 몸을 걱정해야 할 텐데.”반태승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반승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 다 노력한다더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알콩달콩한 부부를 생각하며 그는 그만 떠보고 차를 마셨다. “혜인아, 만약 겁도 없는 것들이 널 건드리면 봐줄 필요 없다. 승제한테 해결해달라고 하면 된다.”성혜인은 이 화제에 대해 더 말하기 어려웠다. 이러다가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서였다. 한 시간 후, 그녀는 몸을 일으켜 국을 끓이러 갔다. “혜인아,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된다. 왜 직접 하려고 하니.”“회장님, 이건 제가 승제 씨랑 약속한 것이라서...”그 말을 들은 반태승은 더욱 기뻐서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웃었다. 그리고는 반승제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떠났다. 성혜인은 직접 그를 배웅하고 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선 채 멍을 때렸다. 유경아가 옆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성혜인은 유경아가 반태승의 앞에서 진실을 얘기하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유경아는 그것보다는 반태승의 건강을 더욱 걱정했다. 반태승은 돌아가는 길에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을 쏟아부었다. 이때의 반태승은 회의에 참여 중인 터라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저번과 같이 칭찬받았다. 저번에는 큰 거래를 성사해서였지만 지금은 왜 칭찬을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승제야, 그럼 나는 먼저 돌아가마. 너희 사이를 방해하면 안 되지. 하지만 너 너무 바쁘다고 해서 혜인이를 챙겨주지 못하면 안 된다. 혜인이는 널 좋아해, 아니면 왜 너한테 자기를 바치겠어.”반태승은 말을 마치고 나서 홀로 웃더니 또 말을 이어갔다. “너 이 자식, 잘하고 있어.”반승제는 얼굴이 삽시에 굳었다. 도대체 그 여자가 반태승 앞에서 뭐라고 지껄인 것인지. 자기를 나한테 바치다니? 그는
대답을 마친 성혜인은 반승제가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자기가 일할 때 쓰는 번호로 또 문자를 보냈다. 「반 대표님, 배상하는 돈은 그냥 계좌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계좌번호 좀 주실래요?」1분 전에 그한테서 돈을 빌리고 지금은 또 빚을 갚는데 성혜인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반승제는 그 문자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녀에게 이렇게 많은 돈이 있었던가? 남편과 세를 들어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망가진 차는 보험처리 할 수 있었지만 하진희더러 배상하라고 한 것은 하진희를 난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성혜인이 나서서 배상할 줄은, 게다가 그녀가 16억이라는 돈을 갚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모든 일을 혼자 짊어지는 스타일이라...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침 대답하려는데 온시환이 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반승제는 옆의 외투를 들고 홀로 운전하여 바에 도착했다. 성혜인은 강민지와 돈을 빌리는 것 때문에 만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해결되었다. 그 후에 성혜인은 반승제의 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인테리어 시공 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 강민지가 전화를 받더니 신예준을 보러 간다고 했다. 성혜인도 더 머무르기 싫어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페니 씨, 반가워요.”성혜인은 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신이한을 보았다. 신이한은 오늘도 플레이보이처럼 입고 있었다. “듣자 하니 조희준과 마찰이 있었다면서요?”“알면서 물으시는 거죠?”신이한은 가볍게 웃더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라운지라서 조금 시끄러웠다. “저랑 룸으로 갈래요? 우리가 해야 할 얘기가 남은 것 같은데.”신이한은 끊임없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진심으로 성혜인과 엮이고 싶었지만 반승제의 아내라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성혜인도 이미 그에게 말해놓았으니 신이한이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테리어 시공 팀에 관해서는 확실히 신이
다들 반승제가 참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남녀 간에 기묘한 기류가 오가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온시환은 호들갑을 잘 떠는 편이었으니. 그래서 반승제가 게임에 참여하겠다는 소리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솔로인 여성들은 게임을 통해서라도 반승제와 썸을 타고 싶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반승제가 이전에 윤단미와 사귀었고 지금까지 그녀를 기다리며 솔로로 남아 온 것을. 그래서 BH그룹의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미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반승제의 얼굴만 보고도 그와 웃기고 싶은 여자들이 꽤 많았다. 온시환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설명을 해줬다.“다들 게임에 참여하니 벌칙에 걸리면 빼기 없기예요?”그리고 성혜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페니 씨, 괜찮죠?”성혜인은 이미 신이한에게 약속을 한 터라 뺄 수가 없었다. “당연하죠.”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시환이 병을 돌렸다.병이 누구를 향해 멈추면 그 사람은 진실이나 벌칙을 선택해야 했다. 현장의 사람들은 모두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로마니 콘티 와인이었다. 이 술은 적어도 한 병에 2천만 원이었다.성혜인은 마셔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로마니 콘티를 맥주처럼 마시는 그들을 보고 처음으로 제원 부자들의 사치를 느꼈다. 성혜인은 주량이 괜찮았기에 살짝 맛을 보았다. 손을 들며 팔꿈치가 저도 모르게 반승제의 가슴을 터치하고 말았다. 룸안의 술 냄새가 진했지만 그런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아니라 와인의 부드러운 향기였다. 술 냄새는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게다가 관계를 가졌던 사람 사이에는 더더욱. 반승제는 그녀의 손이 가슴에 닿을 때 순간 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반승제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돌아가는 병만 주시하고 있었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성혜인의 웃는 옆태가 반승제로 하여금 옅은 미소를 띠게 했다. 성혜인은 술잔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
반승제는 원래 차가운 숨만 쉬고 있었는데 이 질문에 몸이 움찔 굳어버렸다. 온시환은 웃으며 묵묵히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현장의 모든 사람은 반승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반승제가 이전에 윤단미와 사귀었으니 두 사람이 관계를 가졌을 게 뻔했다. 아마도 18살 때거나 19살 때일 것이었다. 성혜인도 나름 궁금해져서 입술을 말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와 윤단미의 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반승제의 첫 여자도 윤단미일 것이었다. 젊은 남녀는 불타오르기 쉬웠으니. 게다가 두 사람은 동창이었으니. 제원의 이 바닥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발랑 까져서 미성년자임에도 관계를 가진 적이 적지 않았다. 반승제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성혜인의 표정을 보고는 왜인지 모르게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갓 돌아온 날에, 반씨 집안의 파티가 진행된 밤.”그렇다면 최근이 아닌가?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반승제가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온시환은 그 말을 듣고 손안에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리고 옆의 성혜인이 멍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승제의 말에 따르면 반승제와 성혜인이 같이 밤을 보낸 날이 처음이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여기까지 생각하니 성혜인은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 전에 남자와 관계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반승제는 그날 밤 성혜인을 완벽하게 컨트롤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의 대답 때문에 분위기가 순간 오묘해졌다. 지어는 옷과 옷의 마찰 속에서 불꽃에 피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서수연이 미는 바람에 그녀와 반승제의 팔이 딱 붙어버렸다. 피부 사이로 온도를 나누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어두운 불빛에 살짝 더워진 그녀는 참지 못하고 술을 몇 모금 더 마셨다.사람들은 여전히 놀라서 토론하고 있었다. 반승제가 첫사랑을 위해 몸을 아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그도 남자였다. 그리고 여자들은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만약 성혜인과 반승제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면 당연히 반승제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갈 데까지 간 사이에 키스 하나로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온시환도 물론 똑같이 생각했다. 게다가 성혜인이 지금껏 보여준 성격으로는 잘 아는 사람을 곁에 두고 모르는 사람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성혜인은 머리를 숙인 채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반승제 만큼은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반승제의 대답 때문에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반승제를 선택한다면 의심을 굳히는 격이었다.사람들을 쓱 훑어보던 성혜인의 시선은 신이한에게 닿았다. 카사노바 신이한은 30초짜리 키스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와 반승제의 사이를 알고 있어서 귀찮은 일이 생길 리도 없었다.“페니 씨,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했어요?”온시환은 흥미진진한 방관자의 태도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온시환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반승제를 선택한다면 몸을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반승제를 선택하지 않았다.반승제와 성혜인이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여자들은 전부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 오직 반승제만 어두운 안색으로 성혜인이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성혜인의 곁에 앉아있던 서수연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힘껏 밀쳤다.“너 뭐야? 이한 씨는 너 안 좋아하거든? 어디서 감히 들이대려는 거야!”서수연은 신이한을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 성혜인이 신이한을 노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힘을 다해 밀쳤다.몸을 반쯤 일으켰던 성혜인은 그대로 반승제의 품으로 쓰러졌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지고 은은한 술 냄새가 느껴졌다.성혜인은 서수연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지금 와서 신이한을 찾아가는 건 이상했기에, 그냥 이때다 싶어서 손
현장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언짢은 표정의 반승제와 서수연에 의해 밀쳐진 성혜인을 보고 두 사람의 키스는 그저 사고일 뿐, 성혜인이 반승제의 하룻밤 상대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혜인에게 질투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승제의 키스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성혜인이 사과를 하고 나자 병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두 사람의 키스로 인해 약간 어색해졌다. 원래 놀리려고 했던 사람은 감히 반승제를 놀릴 수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서수연의 생각 없는 행동은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수연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현이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서수연은 이제야 정신 차리고 당당하게 말했다.“제가 뭘요? 친하지도 않으면서 들이대려고 한 사람이 잘못이죠.”제원대학에 있을 때도 그렇고 지금 그렇고, 자꾸만 엮이는 신이한과 성혜인에 서수연은 아주 불안했다.“이건 게임일 뿐이야. 못 놀겠으면 빠지던가.”신이한이 말했다. 서수연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서수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독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며 성혜인을 노려봤다. 성혜인은 보는 척도 하지 않고 게임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한 시간 후, 게임이 드디어 끝나고 성혜인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아직 16억 원을 배상해야 하는 게 떠올라서 반승제에게 물었다.“대표님, 카드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반승제는 술잔을 돌리며 머리를 들었다. 그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고, 이 중에서도 가장 멀쩡해 보였다.게임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신 성혜인은 약간 취기가 올라왔지만 갚을 돈이 있다는 것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성혜인의 발그레한 얼굴에 빛나는 눈빛을 보고 반승제는 또다시 그날 밤이 생각났다. 술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 안에서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약간 이상했다.“돈은 어떻게 구했어?”“빌렸어요.”반승제는 여자의 옷이나 가방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성혜인이 쓰
성혜인은 일단 16억 원을 갚고 다시 은행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리고 반승제가 손해 보는 일 없도록 이자까지 쳐주려고 했다. 하지만 반승제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화까지 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반승제가 말하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온시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제야, 안가?”온시환도 꽤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승제의 앞에 서 있는 성혜인을 힐끗 바라봤다.“두 사람 무슨 비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반승제는 한 발짝 멀어지더니 먼저 밖으로 나갔다. 온시환은 성혜인에게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는 그를 따라갔다.뒤늦게 술집에서 나온 성혜인은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 이때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으로 와서 천천히 멈춰 섰고 운전석에는 성한이 앉아 있었다.성혜인은 경계 섞인 눈빛으로 뒷걸음질 쳤다. 성한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너 혼자 술집에 놀러 온 거야?”성한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병원에서 성혜인과 마주친 이후로 그녀가 무조건 더러운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한밤중에 술집 앞에 나타난 걸 보면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정장을 빼입은 성한이 차에서 내려왔다.“너 술 마셨지? 타, 내가 데려다줄게.”“됐어요.”대리기사가 이미 오고 있었기에 성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성한은 포기하지 않고 다가와 대놓고 그녀의 살냄새까지 맡았다.“에이, 오빠랑 무슨 내외 하고 그래.”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아빠도 없는데 연기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성혜인은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때마침 대리기사가 도착하고 그녀는 성큼성큼 멀어져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성혜인이 밀쳤던 곳을 코에 가져다 댔다. 성혜인의 몸에서는 옅은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다른 여자처럼 향수를 쓰지 않아서 향긋한 살냄새가 나기도 했다.성한은 성혜인의 차를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