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과묵한 성격의 서주혁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뱉었다.“젠장!”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동댕이쳤다. 찻잔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해외에 다녀와야겠어.”그때 온시환은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았다. 그의 집안과 윗선은 연줄이 끈끈하지 않은 데다가 서주혁의 전화는 지금 수시로 감시당하고 있다.“너까지 출국하면 승제 죽이려는 사람들을 누가 말려? 그러지 말고 국내에 머물러있어.승제도 그쪽에서 너의 협조가 필요할지도 몰라. 아무튼 우리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두 사람은 모두 진심으로 반승제를 걱정하고 있었다.서주혁은 심란한 마음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눈에서 불꽃이 튕겨 나올 것만 같았다. ...성혜인은 자기가 떠난 일이 이런 크나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랐다.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나흘 뒤였다.눈이 안 보이는 대신에 후각이 매우 예민해져 이곳의 공기가 네이처 빌리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순간 그녀는 경계하며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다.그리고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내 가벼운 숨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누구야?”미스터 K는 이번에 가면을 쓰지 않았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돌아온 걸 환영해.”성혜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심지어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잠이 들어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네이처 빌리지에 있었는데, 왜 갑자기 깨어나니 이 남자 옆에 있는 것일까.“반승제가 직접 널 나한테 넘겨줬어. 성혜인, 네 머릿속에는 오직 사랑만 가득 들어차있겠지만 그는 나라와 대의를 더 중히 생각하는 거야.”“무슨 말이에요, 그게?”미스터 K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일어나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 앞으로 다가갔다.바깥 햇살은 너무 눈부셨다. 여기는 플로리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넌 BK 미래의 수령이야. 그리고 BK는 신비한 조직이지. 앞으로 제원, 심지어 나라에도 무수한 위험을 초래할 거야. 그인들 왜 저랑 맞는 집안의 여자와 연애하고 싶지
성혜인은 한 실내 훈련장으로 오게 되었고 남자는 그녀한테 방패를 손에 쥐여주었다.“너의 기억은 성여에 의해 조작된 것일 거야. 성여의 최면술은 사람의 기억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매우 완벽해. 내가 봤을 땐 너의 순발력과 맷집은 매우 훌륭한데, 다만 그동안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을 뿐이야.”성혜인은 고개를 숙여 손에 든 물건을 보았다. 비록 보이진 않았지만 손으로 만져볼 순 있었다.“내가 이제 널 채찍으로 때릴 거야. 네 눈이 회복되는 이 한 달 동안, 난 계속 이 방법으로 널 훈련해 순발력을 제고할 거야. 넌 지금 너무 약해.”약하다는 단어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제원에 있을 때 그녀는 수없이 많이 기도했다. 자신이 좀 더 강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반승제와 이렇게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녀한테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성헤인은 갑자기 상념에 빠졌다. 반승제가 그녀를 껴안고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난 그저 일반인에 불과해. 나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나도 아직 배워야 하는 게 있고 너도 아직 다 못한 사명이 있잖아. 만일 어느 날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서 내가 널 찾으러 갈 때까지 기다려줘, 응?” 그 생각을 하며 온몸에 힘이 실리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팔이 채찍에 의해 심하게 맞았다.남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고 말투까지 차가웠다.“여기가 만약 전쟁터라면, 네가 방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순간 넌 이미 죽었어. 다시!”그는 또다시 채찍을 휘둘렀다.이러한 훈련은 처음이라 성혜인은 적응이 어려웠다.남자가 채찍을 열 번 휘두르는 동안,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나머지 채찍은 다 그녀의 몸으로 떨어져 살갗이 찢어지고 피멍이 들었다.이마에도 어느새 땀이 흥건했고 땀방울이 턱밑으로 흘러내려 옷을 흠뻑 적셔버렸다.채찍을 스무 번 휘두른
반승제가 지하 격투장으로 돌아가자, 장미가 대문 밖에서 그를 맞이했다.“승제야.”반승제는 그녀한테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를 데려가라고 했다.장미는 반승제와 비슷한 그 남자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아랫사람한테 눈짓했다.배현우는 두 손이 쇠사슬에 묶여 발끝만 땅에 닿을 수 있었고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그를 만났을 때 반승제는 그와 거래하고 싶다고 했고, 이윽고 그를 기절시켜 지하 격투장으로 데려왔다.반승제는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했다.“물 끼얹어서 깨워.”한 잔의 찬물이 배현우의 얼굴에 끼얹어졌다.그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귀티 나는 남자를 보자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승제야, 이건 무슨 짓이야?”검은색 의자에 앉아 있는 반승제는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그의 양복 차림은 이 격투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여기는 누구도 관여 안 하는 곳이에요. 지금 있는 이곳은 지하 격투장 7층이고요.”배현우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플로리아에서 세력을 갖고 있는 그도 당연히 이 격투장을 알고 있었지만 반승제의 것인 줄은 몰랐다.너무나 의외였다. 반승제가 GOD였다니...그는 머릿속으로 반승우와 연락을 취했다.“동생이 만만치 않네. 지하 격투장까지 손에 쥐고 있다니, 더 죽이고 싶어졌는데? 내가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반승우?”반승우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안 나타난 지 오래되었다.너무 오래되어 배현우도 그가 진짜 사라졌는지 의심이 들 만큼.반승우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그는 반승제한테 시선을 돌렸다. 그때 반승제의 한마디가그를 멍하게 만들었다.“첫 번째 인격은 반승우일 테고... 그럼 두 번째 인격은 이름이 뭐예요?”반승제는 마치 이중인격이 그한테는 그다지 신경 쓸 만한 큰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한 말투로 운을 뗐다.배현우의 안색은 순간 굳어졌다. 그는 불현듯 반승제가 그의 별장에서 며칠 동안 잠복해 있으며 성혜인과 몰래
그의 표정을 보자 배현우는 자신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아까는 은연중에 그런 느낌만 들었을 뿐인데 거기에 술 저장 창고가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기억을 꼼꼼히 정리해 봐도 격투장에 온 적은 확실히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서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하지만 반승제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고, 비수를 그의 목구멍에 갖다댔다. “넌 이름이 뭐야?”두 번째 인격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배현우.”‘정말로 배현우가 맞았구나.’반승제의 눈에는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자 배현우의 목에는 즉시 가는 핏자국이 생겼다.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승제가 연구 기지를 알고 싶어한다면 그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역시나 반승제는 비수를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배현우를 훑어보았다.배현우가 고개를 들며 반승우의 대표적인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반승제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 징그러운 웃음, 그만 집어치워.”배현우의 얼굴이 삽시에 굳어지며 사나운 진짜 면모를 드러냈다.그리하자 반승제도 질문을 시작했다.“그 사람들이 반승우 몸에서 실험을 했고, 그래서 네가 생긴 거 맞지? 너는 그들이 만든 두 번째 인격이야? 너의 역할은 뭐야?”배현우는 다른 사람이 이 일에 대해 묻는 것을 가장 싫어했고 반승우의 제2인격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줄곧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전에 그의 이름이 뭐였는지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해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지금 그의 안색은 유난히 어두웠다.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고, 미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았다.반승제는 그제야 비로소 진실한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과 반승우는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럼 도대체 이 인격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가 생겨난 목적은 또 무엇일까? 오직 연구기지 자료를 많이 더 알아야 그한테 승산이 있다.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그녀는 반승제의 맞은편에 앉아 저절로 와인을 한 잔 따랐다.“지난번에 네가 돌아왔을 때부터 묻고 싶었어.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너를 그렇게 넋을 잃게 만든 거야? 한국에서 도주범으로 다 몰리게 만들고. 저 안에 있는 남자, 네 형 맞지? 중요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 이미 국제 수배령이 내려졌다는데? 승제야,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동원을 하면서까지 한 사람을 잡겠다고 하는 걸 봐선, 국내에서 아마 너에 대한 논란이 엄청 날 거야.”일반인들은 이런 소식을 접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주식은 전부 관리 기구에 넘겼고 주식에 대한 권한은 전부 심인우한테 있다.그가 BH 그룹을 지키고 있는 한 그룹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고, 반승제도 그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제원 상층 인사들이 동향을 살피고 있겠지만, 그것이 또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그가 지금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소위 말하는 BK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였다.“승제야, 나랑 그 여자에 대해 말해 줄래?”장미는 반승제와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다.이 지하 격투장에는 전 세계 최고의 미녀들이 모여있다. 여기서 미모는 일종의 화폐와도 같다.예전에 반승제한테 여자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여자가 재미없다고만 했다.여자한테서 재미를 느끼느니 화면에서 반짝이는 데이터를 쳐다보기만도 못하다고 했다.그러다가 어느 날, 반승제가 여기로 돌아왔을 때,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장미는 그제서야 그의 할아버지가 제멋대로 그한테 아내를 만들어 주고 혼인신고까지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때는 그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껏 해봐야 결혼을 했다 뿐인데. 또한 반태승 어르신의 안목은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유전자는 반드시 대를 이어 물려줘야 마땅하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그럴 바에 그 여자한테 아이를 낳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싶었다.그때 반승제는 이렇게 대답했다.“누난 몰라.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은 윤단미밖에
진세운이 손을 멈칫했다.“그게 무슨 말이야?”“설씨 가문 막내딸, 그 사람 진짜 딸 아니야. 설씨 가문 회장님께서 승제한테 진짜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대. 그런데 승제가 떠나는 바람에 그 어린 공주님을 찾는 일은 내가 맡게 된 거지.”그가 고개를 숙여 담배 한 대를 꺼내더니 자연스럽게 진세운에게 건넸다.진세운이 담배를 건네받으려 하자 서주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너도 담배를 필 줄 아는 사람이었어?”진세운이 씩 웃더니, 담담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곤 입에 갖다 댔다.“외국에 있을 때부터 진작 피기 시작했지. 그냥 수술 끝나고 가끔 피는 정도.”서주혁이 따라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공감하듯 미간을 찌푸렸다.“의사가 힘들긴 하지. 1년 내내 네가 쉬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환자에서 수술대에서 죽게 되면 또 가족들이 얼마나 난리를 피우겠어. 너도 참 고생한다.”“그럼 그 막내딸에 대한 단서는 좀 찾았어?”“그럴 리가. 벌써 20년이나 더 된 일인걸. 부인이 임신했을 때 마침 두 사람이 갈라지게 됐고, 나중에 만났을 때는 이미 부인이 아이를 낳은 후였어. 그 뒤 두 사람은 바로 함께 플로리아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 모든 자료가 사라졌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난 이 사건의 키가 왠지 그 부인한테 있는 것 같거든. 그런데 회장님께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길 바라셔서.”진세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는 의사이기에 이런 명문가들에 대한 가십거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서주혁이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형제이기 때문이며 둘째로 진세운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며 친구라 해도 그들 몇 명뿐이기 때문이었다.진세운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서주혁이 담배 한 대를 더 내밀었다.“한 대 더 펴. 이따 시환이 만나면 알려줘야겠다. 너도 담배 피운다고.”“하나면 됐어. 나 요새 계속 병원에 있으니까 도움 필요하면 말해.”서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들
반승제는 하루 뒤에야 소식을 들었다.서주혁의 차가 떨어져 불에 그슬렸으며, 차에는 불에 타버려 재로 된 시신이 있었으며 현재로서는 누구의 시신인지 구별조차 불가하다고 했다.전화를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마치 머리가 벼락에 맞은 듯 띵했다.전화기 너머 온시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천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난 거야.”“서천에 뭘 하러 가는지는 말 안 했어?”“안 했어.”반승제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벽을 향해 주먹을 쳤다. 손을 부르르 떨며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주혁이 최근에 누구랑 접촉했는지 조사해 봐.”“서천으로 떠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은 진세운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부하야. 그 부하랑 주혁이 같은 차를 탔는데, 죽은 사람이 서주혁인지 부하인지는 아직 몰라. 시신이 다 타버려서 DNA 감식 기다려야 해.”온시환의 떨리는 목소리를 보아 그 역시 크게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반승제는 얼른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는 서주혁이 자신을 대신해 맡은 일로 인하여 사고를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가 한국을 떠난 이후 모든 신원정보가 제한되었으므로 밀입국을 제외하고는 귀국할 도리가 없었다.밀입국은 본디 범죄이다.그는 심호흡한 뒤 국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서주혁의 상황을 확인했다.현재 제원 병원의 복도는 이미 서씨 가문의 사람들로 가득했다.감정인이 감식 결과를 들고 왔다.“사망자는 서주혁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복도는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곧이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온시환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가빠오는 호흡을 겨우 진정시키고 온시환은 서둘러 반대편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방금 수술을 마친 진세운을 찾아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감식 결과가 잘못된 거 아냐? 서주혁이 어떻게 죽어?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빨리 가서 다시 검사해 보라고 해봐!”세 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하고 새벽 세 시에야 끝마쳤으므로 진세운의 얼굴에는 기진맥진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그저
온시환은 그녀를 더 생각하지 않고 바로 액셀을 밟았다.혼란스럽다. 모든 게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반승제는 해외로 갔고 서주혁은 목숨을 잃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하늘을 뒤덮어 제원의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몇 킬로메터를 쉬지 않고 달리던 온시환이 문득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핸드폰을 꺼내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생각이 났어. 서주혁이 말하길 네가 맡기고 간 일에 모든 정력을 쏟아붓겠다고 했어. 서천으로 출발하기 전에는 병원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고.”반승제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이쪽 사람 시켜서 조사하게 하고 있어.”“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내가 지금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알아? 난 지금 그다음 죽을 사람이 진세운일까 봐, 혹은 나일까 봐 무서워. 와중에 우릴 적으로 돌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난 지금까지도 서주혁이 죽었다고 실감이 되지 않아. 적어도 이런 방법으로 가진 말았어야 한다고.”반승제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조만간 한국에 들를게.”“너 미쳤어?”온시환이 대뜸 화를 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지금 제원 상황이 복잡해. 특히 네가 떠난 이후로 더. 백겸은 쓰러진 뒤로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했고, 상부에서도 널 도와주지 않는다며. 네 아버지도 널 반씨 가문에서 쫓아내겠다는데! 네 손에 그 주식들만 없었으면 넌 진작부터 반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네 집안 사람들은 죄다 반승우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어. 심지어 네가 반승우를 질투해서 출국시킨 줄 알아. 게다가 네가 김씨 가문 회사를 마구 인수한 뒤로 업계에서 그 이상한 소문을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어.”온시환이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불에 타 거의 재가 된 서주혁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일단 돌아오지 마. 서씨 가문에서도, 상부에서도일을 조사할 테니까. 지금 돌아오면 괜히 안 좋은 일 당할 수 있으니까 일단 네 일부터 끝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