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두 번째 인격?’그는 돌아온 반승우가 예전의 성격과 달리 많이 변해있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했다.연구기지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성격이 바뀐 건가 싶었으나 제2의 인격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만약 눈앞의 이 비열한 남자가 두 번째 인격이라면 이 몸의 소유자인 반승우는 아직 잠들어 있다는 뜻인가?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떴고, 배현우는 누군가 자신의 말을 엿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별장의 CCTV에서 벗어난 반승제는 햇빛이 들지 않은 구석에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특정 시스템이 탑재된 이 핸드폰은 다른 사람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기에 그가 지금 배현우의 별장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반승제가 핸드폰을 켜자 그곳에는 수백 통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그중에서도 설기웅이 제일 많이 연락했었는데 아마도 설인아의 행방을 알고 싶었나 보다.비웃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성혜인의 처지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던 반승제는 곧바로 장미에게 문자를 보냈다.[눈 멀게 하고 벙어리로 만들 수 있는 약 있지? 그거 설인아한테 먹여.]장미는 잔인한 그의 방법에 놀란 듯 물음표를 잔뜩 보내왔다.설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설씨 가문에서 수년을 지낸 사람인데 설의종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시키는 대로 해줘.]그의 지시를 어긴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던 장미는 곧바로 독주 한 그릇을 들고 설인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반승제가 설기웅에게 얘기해줬듯이 설인아는 진작에 지하 격투장으로 보내졌다.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여자를 모욕할 수 없었던 반승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을 택했다.장미가 방문을 열자 곧바로 설인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이거 풀어! 당장 풀라고! 내가 누군지 알아?”플로리아로 보내질 때 줄곧 혼수상태였던 설인아는 본인이 이미 제원을 떠난 줄도 몰랐고,
장미는 설인아가 다 심킨 걸 보고서야 경호원에게 힘을 풀라고 눈치 줬다.목은 물론이고 온몸이 아파진 설인아는 피를 한 모금 토하기도 했다.순간 그녀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난 장미는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 나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방을 나갈 때쯤 곧바로 설인아의 비명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성혜인, 죽여버릴 거야.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넌 내 손에 죽었어.”목이 터지라 울부짖으며 또 한 모금의 피를 토했다.장미가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왔다.“설기웅 씨가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저마다 손에 총을 들고 있습니다.”장미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곧 홀까지 따라갔다.홀 중앙에 설기웅이 서 있었고 주위에는 도박이나 장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이런 상황은 지하 격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문제를 일으킨 게 설씨 가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플로리아의 제1 명문 가문이자 황실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지하 격투장은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구역이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기 행각을 벌인 사기꾼이거나 사람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자들이다. 총격전은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그들은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되레 쇼를 보기 위해 머물렀다.키가 1.9m에 육박한 설기웅은 플로리아에서도 군계일학의 존재였다.검은색 장갑을 낀 채 손에 총을 들고 있던 그는 장미가 나오자 입을 열었다.“내 동생 지금 어딨어?”설기웅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을 찾아왔지만 워낙 능구렁이인 장미는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장미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채 요염하게 걸으며 앞으로 다가왔다.“도련님, 격투장에서 총을 쓰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아직 모르시나 봐요?”설기웅은 총구를 장미에게 겨눴다.“다시 한번 물어볼게. 내 동생 어딨어?”장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동생? 누구죠?”그녀는
차 안.설기웅은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설인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설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눕히고서야 설인아는 의식을 되찾았다.“아! 아! 아!”설인아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주위를 더듬기 시작했고 어디로 보내졌는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녀를 덮쳤다.설기웅은 사방을 더듬는 그녀의 모습에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인아야, 왜 그래?”그의 목소리를 들은 설인아는 잠시 당황하더니 자신의 목과 눈을 번갈아 만지기 시작했고 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그제야 알아차린 설기웅은 손을 들어 흔들었으나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이내 설인아의 목을 향해 손을 얹었지만 돌아오는 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초라한 모습뿐이었다.나미선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래층에서 걸어 올라왔다.“무슨 일이야? 제원에 갔다던 애가 왜 이렇게 된 거야?”나미선의 목소리를 들은 설인아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다.나미선은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인아야, 엄마 여기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마.”설인아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지만, 목은 이미 완전히 쉬어 한 음절조차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가슴이 미어진 설기웅은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반승제의 복수라는 걸 깨달았다. 성혜인이 겪었던 모든 일을 그대로 똑같이 겪게 만든 게 분명했으니까.설기웅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는 당시 독약 한 그릇으로 성혜인을 벙어리로 만든 스스로를 자책했다. 반승제가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 상황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머리가 아픈 듯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고 이내 나미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인아야, 엄마가 의사 선생님 찾아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도대체 누가 널 이렇게 만든 거니?”그녀는 눈물을 흘리
저녁.최근 반승제가 다른 그룹을 마구 인수하자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었다.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 그는 갑자기 행동을 멈췄고 그제야 모두 경계 태세를 늦췄다.동시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새벽 1시가 된 별장.성혜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밀치며 손끝으로 그의 손바닥을 두드렸다.“이러다 들켜요.”배현우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기에 어젯밤에 안 들켰다고 하여 오늘 밤도 그럴 거란 보장이 없다. 심지어 그녀는 배현우가 어떠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다.반승제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괜찮아. 내가 살살할게.”살살하기는커녕 어찌나 힘이 넘치는지 저녁 11시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성혜인이 어깨를 깨물자 아픈 듯 ‘스읍’하는 소리를 냈다.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갑자기 방문을 두드렸고 이내 배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아직 안 자지?”너무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던 성혜인은 나가라며 재빨리 반승제를 밀쳤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아무 답도 하지 마.”반승제는 땀범벅으로 된 성혜인의 이마를 보고선 가슴이 아픈 듯 손을 들어 닦더니 다시 그녀에게 키스를 한 뒤 더 빠르게 움직였다.성혜인은 그의 강심장에 혀를 내둘렀다. 배현우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그 시각 밖에 있던 배현우는 경호원들에게 물었다.“저녁에 약 먹었어?”경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으니 지금 이 시간이라면 잠을 자는 게 정상이다.의심이 들었지만 자는데 방해가 될까 봐 굳이 들어가서 확인하지는 않았다.같은 시각 방안의 반승제는 성혜인의 이마를 맞대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성혜인은 바깥의 불빛을 빌려 홧김에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반승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달랬다.“괜찮아, 안 들어올 거 알아.”성혜인은 화가 난 듯 그를 피했고 반승제는 재빨리 그녀의 손에 입맞춤했다.“지난번에 네가 말했던 미스터k를 조
제원의 새벽 4시는 만물이 조용해지는 시간이다.남자는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는 데 특별히 사용되는 작은 이어폰을 손끝에 쥐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설마 바보같이 반승제의 달콤한 말 몇 마디에 흔들린 건가?’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을 내려놓자 누군가 조용히 물었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성혜인을 계속 배현우의 곁에 놔둘 수는 없었다.남자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떴고 그의 아우라에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한참 후, 그는 이어폰 한쪽을 휴지통에 버렸다.“배현우에게 반승제가 그 별장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말을 마친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여유롭게 눈을 감았다.“아참, 그리고 성혜인한테 얘기해. 임지연의 생사를 개의치 않는다면 쭉 지금처럼 반승제랑 붙어있으라고. 어차피 난 다음 달 5일 저녁에 떠날 거니까 손잡을지 말지는 성혜인한테 달려있어.”“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존경심이 가득한 눈길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들에게 있어 눈앞의 이 남자는 BK를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는 최강의 존재나 다름없었다.경호원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30분 후, 배현우는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반승제가 여기에 숨어있다고?”그는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주위의 경호원들을 훑어보았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현우는 손을 들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답했다.“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야.”성혜인이 방에서 쉬고 있던 그때 창가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그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건 미스터 K였다. 그는 임지연의 생사를 정말 신경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그럴 리가 있겠는가.성혜인이 고개를 숙인 그때 누군가 방문을 털컥 열고 들어왔다.배현우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욕실로 직행했다.욕실에는 성혜인의 세면도구만 있었는데 거울 뒤편의 서랍을 열자 역시나 남성용 세면도구가 잔뜩 나왔다.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그는 살기를 내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반승제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밖에 있는 사람에게 의자 두 개를 건네달라고 했다.밖에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배현우가 납치됐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반승제는 문을 다시 닫고 의자로 창문을 부쉈다.밖에서 헬기의 굉음이 울리고 사다리가 내려졌다.그는 옷장으로 문을 받쳐 밖에 지키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혜인아, 가자.”성혜인은 망설이지 않고 직접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반승제는 배현우에게 한 마디만 남겼다.“백 할아버지한테 찾아가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 있는 며칠 동안 저와 혜인에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해요.”배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헬기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성혜인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꼭 껴안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날렸다.반승제의 품에 머리를 파묻은 그녀는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네이처 빌리지에 도착하기 전에 반승제는 미리 진세운에게 연락해 그녀의 눈을 봐 달라고 했다.진세운은 이내 도착했고, 서주혁과 온시환도 함께 왔다.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반승제는 성혜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진세운은 한바탕 검사하더니 들고 온 구급상자를 꺼냈다.“두 군데 모두 회복 불가는 아니야. 눈의 회복은 뇌에 있는 어혈이 깨끗이 제거된 후에 논의하도록 하고, 목은 일주일 안에 회복될 수 있어. 너무 부어서 말을 못 할 뿐이지 독약이 그렇게 세지는 않아.”그는 차가운 손끝으로 성혜인의 목을 만져본 후 약 한 병을 남겼다.“이걸 먹으면 사흘이면 말할 수 있고 일주일이면 회복될 거야. 그런데 눈은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 일단 약으로 개선하면서 시기를 기다려 보자.”회복될 수 있다는 말에 반승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옆에 있던 온시환이 입을 열었다.“세운아, 너 의술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 당시 연구기지의 사람들이 왜 너를 데려가지 않았어? 너도 반승우 만큼이
“승제 씨, 나 배고파요.”그녀는 계단을 더듬으며 내려가려고 했다.반승제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옆으로 돌려 안았다.“넘어질지도 모르니 내가 안고 내려가지.”“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그에게 안겨 있었다. 그의 몸에서 안심되는 상쾌한 향기가 났다.아래층 거실에 도착한 후 그녀는 손으로 탁자를 만졌다.잠시 후 담백한 저녁 식사가 그녀 앞에 차려졌다.반승제가 숟가락을 들었다.“내가 먹여줄게.”“네.”그녀는 히죽 웃더니 입을 벌리고 받아먹었다.다 먹은 후 반승제는 또 그녀를 부축해 위층에 올라가 쉬게 했다.“승제 씨, 지금 낮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 잠깐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안 돼요?”그녀는 아직 자고 싶지 않았다.“혜인아, 많이 쉬어야 눈이 빨리 회복돼.”“알았어요.”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의 부축을 받으며 방에 올라갔다. 침대에 앉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혼자서 잠이 안 오는데, 같이 자면 안 돼요?”“업무상 처리할 일이 있어서 금방 갔다 올게.”“아, 그럼 일 봐요.”성혜인은 그의 허리를 풀어주고, 멀어져 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 안의 냄새를 맡으려고 심호흡했다. 방 안에는 온통 그 향 냄새였다.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손끝으로 마룻바닥을 만지던 그녀는 온몸이 굳어졌다.네이처 빌리지의 인테리어는 그녀가 디자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디테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특히 네이처 빌리지의 마룻바닥은 그녀가 몸소 서천에 가서 찾은 원목마루로, 구하기 힘들고 매년 다 팔리면 없었다.그녀는 당시 이 마루를 위해 서천에 여러 번 갔었다.지금 그녀가 머무는 방은 네이처 빌리지와 비슷하다.특히 침대의 쾌적함, 문, 식탁 디테일까지 네이처 빌리지와 똑같다.이런 물건들은 국제 유명 브랜드라 쉽게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지만 원목마루는 쉽게 찾을 수 없다.이곳은 네이처 빌리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녀를 위해 네이처 빌리지와 비슷한 집을 만든 것이다.방금
순간 조급해진 그녀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물었다.“승제 씨, 괜찮아요?”반승제가 그녀를 소파에 눌러 앉혔다.“괜찮으니 움직이지 말아요.”그녀의 눈물이 순식간에 흘러내렸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다른 사람이 승제 씨를 사칭한 줄 알았어요. 승제 씨 몸에서 나는 냄새도 다르고 마룻바닥도 달랐어요. 중간에 누군가가 저를 옮기지 않았나요? 제가 조금 전에 이곳에 온 건 아니에요?”그녀는 머릿속이 너무 혼란했다.반승제는 가슴팍을 꿰매고 있는 와중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혜인아, 넌 그저 악몽을 꿨을 뿐이야.”그녀의 말은 횡설수설하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듣는 사람이 그녀가 놀라서 정신이 나갔나 의심할 정도였다.“아니에요. 저는 진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세운이 반승제에게 당부하는 소리가 들렸다.“요 며칠 상처가 물에 닿으면 안 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 칼이 심장에 꽂혔다면 누구도 너를 구하지 못했을 거야.”그의 말에 급소를 찔린 성혜인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하마터면 반승제를 죽일 뻔했다.그가 방금 그 칼을 피하지 않았다면, 지금...그녀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갑자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의문이 너무 많았다.진세운은 그녀가 적어도 3일은 있어야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하룻밤이 지났는데, 그녀는 왜 말을 할 수 있을까?“승제 씨, 제가 왜 말할 수 있는 거죠? 제가...”그녀는 어둠 속에 갇힌 불나방처럼 사방으로 부딪히지만, 어디가 출구인지 몰랐다.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너 나흘 동안 혼수상태로 열이 계속 나다가 이틀 전에 겨우 열이 내렸어. 막 깨어나서 얼떨떨한 거야. 괜찮아. 난 괜찮아.”나흘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던 거였구나. 그런데 왜 아무 느낌도 없지?“그럼 집에 향은? 왜 집에 갑자기 향을 놓았어요?”“내가 세운한테 달라고 했어. 너 잠을 잘 자지 못하겠다며? 이 향은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