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애초에 반승제의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샤워하러 갔다. 얼마 후, 욕실에서 나와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반승제는 말도 없이 2천만 원을 돌려줬다.‘이건 배상이 필요 없다는 뜻인가?’반승제는 언제나 성혜인을 차갑게 대했다, 정확히는 서로 차갑게 대했다. 2천만 원을 주고받기도 껄끄러울 정도로 말이다.성혜인은 반승제의 생각을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했던 식사 자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망가진 우산을 사진 찍어 반승제에게 보내줬다. 그러고는 부동산에 연락해 은행 절차가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하루빨리 포레스트 펜션에서 나오고 싶었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반승제를 피해 가며 살 수는 없었다.반승제도 성혜인의 두 가지 정체를 알게 된다면 빨리 쫓아내려 할 것이다. 그녀는 그래도 이 정도의 양심은 있었다.머리를 말리고 나서 사진을 확인한 반승제는 이번에도 역시 단답으로 답장했다.「그래.」「이건 혹시 배상이 필요 없다는 뜻인가요?」「응.」반승제의 차가운 태도에 성혜인도 길게 말하지 않았다.「감사합니다.」지루하기 그지없는 채팅 내용에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반승제는 노트북을 열고 서류를 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의 눈빛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선물상자로 향했다. 이건 반태승이 성혜인에게 전해 주라고 했던 선물이다.반승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선물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청소하고 있던 유경아는 반승제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걸레를 내려놓았다.“대표님, 혹시 필요한 게 있으세요?”유경아는 혹시라도 백연서가 트집을 잡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깍듯한 태도로 말했다.“그 여자는 아직도 안 돌아왔어요?”반승제는 복도 끝에 있는 방을 바라보며 물었다.“네.”“이걸 전해줘요.”반승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차가운 말투를 일관했다.유경아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무래도 비싼 물건 같은데 대표님이 직접 사모님의
결혼한 3년 동안,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아내와 만난 적 없었다. 그러니 방 안에 이상한 토이가 있어도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렇게 잘 보이는 곳에 뒀는지는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반승제는 저도 모르게 그 물건을 다시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이혼하고 싶었지만 반태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부 관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그는 애써 기분을 진정시키며 일이나 계속했다.성혜인은 자신의 얼굴 안마기가 어떤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새로운 시공팀과 내일 밤의 파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반승제가 개인 번호로 보냈던 문자를 바라봤다.반승제는 성혜인과 반씨 저택에서 만나려고 했지만 그녀가 지각하는 바람에 결국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한참 고민하다가 개인 번호로 예고라도 하기 위해 문자 한 줄 보냈다.「대표님, 사실 저희 이미 만난 적 있어요.」반승제는 한참이 지나서도 답장이 없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약간 우습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반승제는 일말의 호기심도 없을 정도로 명의상의 아내가 싫은 듯했다.‘됐어, 시간이 늦었으니 나머지는 내일 다시 얘기하자. 어차피 난 이미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이튿날, 성혜인은 잠결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 정신 차렸다. 성휘는 아침부터 전화 와서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를 준비했는지 물었다.파티에 처음 참석하는 성혜인은 당연히 드레스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고, 이제야 일어나서 드레스를 사러 가야겠다고 했다.“혜인아, 드레스는 내가 이미 포레스트 펜션으로 보냈어. 넌 그걸 입고 가면 돼.”파티 장소가 반씨 저택이었기에 성휘는 성혜인의 드레스에 많은 신경을 썼다.제원 전체를 놓고 봐도 반씨 저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게다가 반태성도 참석하는 자리여서, 이는 성혜인을 사람들에게 알릴 최적의 기회였다.“난 몸이 안 좋아서 병원 밖으로 못 나갈 것 같구나. 괜히 파티에 참석했다가 회장님의 눈에 나면 안 되니 오늘은 네가 알아
“사모님, 혹시 사라진 물건이라도 있어요?”유경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실을 두리번거렸다.“아니에요, 그냥 책 위치가 달라져서요.”성혜인의 말을 들은 유경아는 드디어 한시름 놓고 식사를 차리러 갔다.성혜인은 반승제가 갖고 왔다는 선물상자를 열어봤다. 상자 안에는 옥으로 만든 팔찌가 들어 있었다. 반태승이 준비한 물건이니 당연히 비쌀 것 같아서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반태승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고 휴대전화 건너편에서는 반태승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 네 아버지는 좀 어떻냐?”반태승은 성혜인에게 진심으로 잘해 줬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했던 거짓말과 사인했던 계약서만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었다.“아버지는 많이 좋아졌어요. 저 방금 할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을 봤어요. 비싼 팔찌 같은데 정말 고마워요.”“내가 승제 놈한테 문병을 가라고 이르기는 했지만 갔는지 모르겠구나.”반태승은 반승제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성혜인에게 간접적으로 물었다.“갔었어요. 승제 씨가 많이 도와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만족스러운 대답에 반태승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오늘 밤 팔찌를 끼고 나오거라, 내 잘 어울리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구나. 그리고 너를 사람들한테 소개해 줘야겠다. 무식한 놈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못하게끔 말이다.”반태승의 말에 감동한 성혜인은 눈물을 글썽였다.“알겠어요.”“그리고 두 사람 꼭 잘 지내야 한다. 내가 증손주를 볼 날만을 기다리고 있어.”“저랑 대...”성혜인은 무의식적으로 대표님이라고 하려다 말고 말을 고쳤다.“저희도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시간이 조금 걸리네요.”하나의 거짓말은 수많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괜찮아, 나도 그리 급한 것은 아니니. 둘이 노력만 하고 있으면 됐지.”성혜인은 안부의 말을 몇 마디 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팔찌를 바라봤다. 이는 임경헌의 어머니가 선물했던 팔찌와 똑같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성혜인
반승혜는 축 처져 있다가도 금세 환하게 웃으며 겨울이를 바라봤다.“겨울이가 그 강아지랑 너무 닮았어요. 페니 씨, 어디 살아요? 저 앞으로 겨울이랑 같이 놀아도 돼요?”반승혜는 성혜인이 걸어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녀는 제원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에서 나왔다. 이 동네는 땅값이 금값과 마찬가지였고,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페니 씨 집안이 생각보다 좋은가 보네.’성혜인은 반승혜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바로 설명했다.“저는 근처에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이 동네가 산책하기 좋다는 말을 들은 적 있거든요. 그리고 저 요즘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새로운 집 주소는 제대로 결정되고 알려줄게요.”반승혜는 별 의심 없이 겨울이와 놀기 시작했다. 성혜인은 뒤에서 그녀가 그리다 만 그림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그녀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그림은 안 그려요?”반승혜는 약간 짜증 섞인 얼굴로 겨울이를 놔주고 붓을 들었다.“안 그래도 저녁에 시간이 없어서 빨리 그려놔야 해요. 내일이 제출 마지막 날이거든요.”“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리고 생일 축하해요, 승혜 씨. 선물은 다음에 만날 때 줄게요.”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선물 준비는 당연하였다. 성혜인은 자신이 공부하면서 만들어 놓은 모든 필기에서 중요한 것만 따로 정리해 선물로 만들었다. 반승혜에게는 모자란 물건이 없었으니, 주얼리 같은 걸 선물하면 오히려 식상할 것 같았다.“고마워요. 너무 비싼 걸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딱히 모자란 물건이 없거든요.”“승혜 씨가 무조건 좋아할 거니까 기대해요.”성혜인은 혹시라도 또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포레스트펜션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반승제의 차가 그녀를 유유히 스쳐 지나가 펜션을 향해 갔다.성혜인은 몸을 흠칫 떨며 발걸음을 멈추더니, 겨울이를 데리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반승제가 죄를 물으러 온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유경아는 반승제가 성혜인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했다. 그녀는 속으로 성혜인이 빨리 돌아왔으면 했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부부이니, 지금처럼 어색하게 지내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게다가 반승제는 일분일초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었고, 너무 오래 기다리다가 안 그래도 나쁘던 감정이 더 틀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했다. 자칫 백연서가 또다시 찾아올 수도 있고 말이다.유경아는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몰래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모님, 대표님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겨울이를 밖에 두고 일단 들어오시는 건 어때요?”만약 겨울이를 데리고 들어온다면 반승제에게 들킬 수밖에 없게 된다.성혜인은 반승제가 죄를 물으러 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 계약을 해지고 대외로 선포하는 것이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금세 어차피 이혼할 마당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기에, 반승제가 화를 내도 진심을 다해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겨울이가 포레스트편센에서 지내고 있는 건 절대 들키면 안 됐다. 그녀는 반승혜를 찾아가 겨울이를 잠깐 부탁했다. 급할 일만 처리하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반승제 앞에 개를 데려가는 것은 안 그래도 바닥 치는 호감도를 더 깎기만 할 뿐이었다.반승혜는 물론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성혜인은 길에서 20분이나 낭비하고 포레스트펜션을 향해 달려갔다. 혹시라도 반승제가 기다림에 지칠까 봐서 말이다.반승제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20분을 기다린 것은 이미 그의 최선이었다. 그는 사업 파트너조차 5분 이상 기다리지 않는데, 성혜인은 이미 두 번이나 그를 바람 맞혔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이때 황급하게 달려오고 있던 성혜인이 반승제의 차를 발견하고 약간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잠깐 정신을 판 사이에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리며
성혜인은 문틀을 짚고 겨우 차에 올라탔다. 무릎 통증과 발목 통증이 심하기는 했지만 반승제도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짓기만 했다.“고마워요, 대표님.”공기 중에는 피비린내가 서서히 퍼져나갔다.성혜인은 반승제에게 방해가 될까 봐 말없이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반승제의 시선은 차에 올라타서부터 그녀의 무릎에 집중되어 있었다.성혜인의 무릎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발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그녀는 인상만 찡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차는 반승혜의 집을 지나쳐 갔다. 겨울이의 존재감은 아주 강했고 차로 지나가면서도 반승혜와 놀고 있는 그가 한눈에 보였다.반승제가 돌연 물었다.“아까는 어디로 그렇게 달려가고 있었던 거지?”반승제는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던 성혜인이 왜 갑자기 강아지를 반승혜에게 맡기고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도 그의 첫 번째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페니의 집은 꽤 먼 곳에 있지 않았나?’반승제의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성혜인은 차분한 말투로 늘 그랬듯이 에둘러 설명했다.“이 동네 산책로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강아지를 키우기도 너무 좋고요. 저는 이 근처의 윌셋집에 살고 있어요. 비록 금방 또 이사하겠지만.”‘월세?’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성혜인의 의뢰비는 건당 몇억 원은 했다. 제원의 집값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월셋집에 살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결혼도 했기에 아직도 내 집 마련을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저 방금 전에 대표님이 오는 것을 봤어요. 이곳에서 다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성혜인은 교묘하게 화제를 돌려 주도권을 잡았다.“그러게.”반승제는 짧게 답했다. 그녀는 포레스트펜션에 살고 있는 여자를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얼마 후, 병원 앞에 도착한 성혜인은 절뚝거리며 혼자 차에서 내려왔다. 한쪽 다리 전체가 고통에 휩싸인 채로 중심을 잡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유경아는 금방 얼음을 갖고 왔고 성혜인은 약 한 시간 동안 찜질했다. 하지만 발목 통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하이힐을 신자 침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성혜인은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억지로 참고 메이크업을 했다.유경아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모님, 제가 회장님한테 사정을 설명해 드릴게요. 오늘 말고 다음에 가시는 게 어때요?”“안 돼요.”성혜인은 자신에게 그토록 잘해주는 반태승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공항 마중도 못 가서 오늘만큼은 절대 불참할 수 없었다.메이크업을 완성한 성혜인은 반태승이 선물한 팔찌를 꼈다. 그 외의 주얼리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도도한 인상의 성혜인에게 허리선을 강조한 드레스는 아주 어울렸고 마치 겨울에 핀 한 송이의 꽃과 같았다. 거기다 눈 부신 빛을 자랑하는 옥팔찌까지 더해져 더욱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단장을 끝낸 성혜인은 바로 차에 올라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휘에게서 전화 왔다. 그는 성씨 저택에 들러 성혜원도 데리고 가라고 전했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혜원이는 왜 데려가요? 몸도 아픈 애가 어떻게 버티려고요.”“혜원이가 파티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가고 싶은 눈치더라. 회장님이 너를 많이 아끼시니 한 명 더 데려가도 괜찮을 거야. 병원에 누워만 있느라 파티 같은 곳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네 동생도 불쌍하잖아. 나는 바쁘니 그냥 네가 데리고 가.”성혜인은 성혜원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기에 그냥 동의했다.차를 돌려 성씨 저택으로 가니, 성혜원은 진작에 드레스를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이 약한 관계로 또래보다 훨씬 야위었다.소윤은 오늘 성혜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반씨 저택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물론 참석하고 싶기는 했지만 체면을 내려놓고 성혜인에게 부탁하기는 싫었기에 성혜원이 가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성혜원이 갔다가 훌륭한 사윗감을 낚아올지 또 누가
임남호의 곁에는 갑자기 깡패 같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임남호의 어깨를 잡고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성혜인은 몇 발짝 걷지도 못하고 길가의 나무를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임남호가 위험에 빠질까 봐 이를 악물고 쫓아갔다.어두운 거리에는 주먹질하는 소리와 욕설이 간간이 들려왔다.“돈은 왜 아직도 안 갚아?! 너 죽고 싶어?”“미친놈, 감히 우리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해?”성혜인은 골목 앞으로 오자마자 깡패들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그만 해요!”깡패들은 동작을 멈추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음흉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하나둘씩 걸어왔다.“올~ 임남호 네가 언제부터 이런 미인이랑 알고 지냈어?”임남호는 몸을 웅크린 채로 머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살짝 머리를 들어 성혜인을 발견한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혜인이니?”임남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갈비뼈 몇 대가 나갔는지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성혜인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임남호가 한심했다.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람이 취직하기는커녕 거지처럼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삼촌과 외숙모를 생각해서라도 듣기 싫은 말은 삼켜버렸다.깡패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뒷걸음질을 쳤다. 발목이 아직 아픈 데다가 하이힐까지 신고 있어서 그녀는 길가의 돌부리에 걸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이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잠시 후 걷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통증은 전해오지 않았고 한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잡고 부축해 줬다.성혜인은 머리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과 향기에 그녀는 후다닥 자세를 바로 하며 거리를 벌렸다.“대표님?”성혜인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반승제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꽤 먼 곳까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