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속으로는 선수 후보들을 비웃고 있었지만, 사적은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컵에 음료수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정말이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테이블의 음식은 어느새 절반이나 사라졌다. 사적은 자신이 원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설마 식사 끝난 뒤에서야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사적은 가만히 단오혁이 있는 곳을 보았다.평소라면 단오혁은 식사를 하기 전이거나 식사가 끝난 뒤에 본론을 꺼냈다. 식사 도중에 진지한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만약 식사하기 전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내가 담배 태우러 나가 있던 동안에 말이야. 팀장이 뭐 말한 거 없었어?”여명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사적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당연히 말씀이 있었죠. 그냥 전과 같은 형식적인 말씀이었어요. 아시잖아요.”사적은 계속 캐물었다.“중요한 건 없었고?”여명은 진지한 얼굴로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매번 경기 전에 항상 하시던 말씀이었어요. 딱히 별다른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어요.”사적은 가슴이 조금 무
녹야 찻집.단원혁은 찻잔을 깨끗하게 씻고 있었다. 마디마디가 선명한 손은 따사로운 아침 햇빛 아래서 빛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고소한 차향이 공기 속에 퍼졌다. 단원혁은 연유성에게 차 한잔 따라주었다.“사람을 붙였다고요.”연유성은 찻잔을 들어 차향을 맡고는 한 모금 홀짝였다.다시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단원혁의 말에 대꾸했다.“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요. 뭐라도 해야죠. 괜히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몇 년 동안 보살펴줘서 참 고맙군요.”당연히 미래에 대해 말한 것은 아니다. 4년 동안 단씨
오늘 아침에도 그러했다. 무미건조한 아침 인사가 담긴 문자가 왔다. 마치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매일 존재감을 알리는 풋풋한 남학생의 청춘 로맨스 같아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강하랑은 딱히 답장하지 않았다. 다시 연유성과 잘해볼 마음이 없는 건 확실했다. 다만 일로 엮인 사이라 아직은 연유성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되었기에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정 안 되면 부잣집 딸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한가할 때 대충 두어 개 작품을 만들어 큰오빠 회사에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굳이 그녀가 돈과 정력을 팔며 인
“안녕하세요.”강하랑은 이렇게 많은 낯선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단씨 가문 가족 파티는 속하지 않았다. 그때는 비록 그녀가 기억 잃고 처음 가족들과 만난 것이었지만 몸에 새겨진 익숙함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그러니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유혁이 그녀를 데리고 들어왔을 때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룸에 있는 사람들도 그러했다.평소에는 시끌시끌하던 그들이 제일 많이 만난 여자는 바로 그들의 끼니를 책임져주는 식당 아주머니였다. 이런 미인을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설령 경기의 사회를 맡은 사회자도 강하랑보다 예쁘지
[지금 누구더러 바보라고 하는 거야? 말조심해. 난 그냥 바보가 아니야. 도도신 여동생님에게 푹 빠진 유일한 바보야!][미치겠네. 아니, 바보가 그렇게 되고 싶어? 근데 순서 좀 지켜줄래? 내가 먼저 반했거든? 첫 바보는 나라고!][다들 봤어요? 여신님이 오자마자 도도신 눈빛부터 바뀌는 거? 그 시크하고 차가운 눈빛 어디 갔죠. 저 다정한 눈빛 좀 보세요, 정말로 우리가 알던 도도신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어제 사적 형이 도도신한테 욕먹은 게 싸다고 생각되네요. 저렇게 예쁜 여동생을 모욕했는데 어느 오빠가 참을 수 있겠어요.]
호텔로 돌아온 뒤 강하랑은 잊지 않고 며칠 전에 산 선물을 팀원에게 나눠주었다.전에는 줄 기회가 마땅치 않았지만, 오늘 마침 함께 식사했으니 선물 주기엔 적당한 시기였다.팀원들은 강하랑의 선물에 놀란 반응을 보이며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덕에 강하랑은 조금 부끄러웠다.그녀는 알지 못했다. 정중하게 고마움을 전한 사람들이 뒤에서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말이다.강하랑이 작별인사를 하며 먼저 호텔 방으로 들어가자 팀원들은 바로 환호했다. 새로 만들어진 단톡방에서도 이상한 대화와 사진이 오갔고 핸드폰이 망가질 정도로 미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어느 부잣집 딸 같았고 단유혁은 마치 그녀를 지키는 경호원 같아 보였다.강하랑의 스트레스 지수는 최대치를 찍고 있었다.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 관객이 많이 모이지 않았고 대부분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밖에 있었기에 그녀의 개량 한복 차림은 그다지 튀지 않았다.경기장은 조금 어두웠다. 강하랑과 단유혁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사회자가 마침 결승전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드레스를 입은 사회자는 한국어로 먼저 소개를 하곤 다시 영어로 똑같이 반복했다. 전문적인 모습에 현장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