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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화

연유성은 순간 침묵하게 되었다.

답은 분명했다.

강하랑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강세미랑 결혼하기로 했으면 그럼 얼른 이혼부터 처리해. 괜히 강세미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뭘 하든 내가 결정해. 네가 상관할 자격은 없어. 아무리 아직 이혼 접수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넌 자격이 없어. 이혼하면 더더욱 자격이 없고.”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고 얼굴에 비췄던 감정도 말끔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돌아가. 난 더 이상 너랑 얽히고 싶지 않아. 귀찮게 하지 말고 가.”

이미 이혼 서류에 사인을 했는데도 그녀는 강세미에게서 그런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그와 계속 연락을 유지해 온다면 앞으로 강세미가 얼마나 그녀를 괴롭혀 올지 예상이 가는 일이었다.

그간 쌓여온 원한을 그녀는 이미 은혜로 보답을 해줬다. 그런데도 계속 그녀를 건드린다면 그녀는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연유성은 당연히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안색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아주 어두워져 있었다.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항상 그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춰주었기에 그가 귀찮다고 말한 사람은 강하랑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그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강하랑이!

그가 굴하지 않고 앞으로 한발 다가서자 단이혁이 바로 그를 막아섰다.

“연 대표, 사람이라면 무릇 주제를 알아야죠. 이미 자신의 그릇에 음식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그릇을 탐내다니. 우리 하랑이가 그렇게 분명하게 더는 질척거리지 말라고 말했는데 자꾸 이러면 보기 안 좋습니다.”

연유성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아예 무시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강하랑을 보았다.

“너 정말로 나랑 집으로 안 갈 거냐?”

강하랑은 고개를 들었다.

“연유성, 내 앞에서 그런 모호한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넌 분명 내가 어릴 때부터 널 좋아했다는 거 알면서, 내가 어떻게 널 포기하고 네가 강세미랑 잘되길 바랐는데.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만약에 들러붙어서 안 떠나려고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되면 이혼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 텐데 말이야. 좋아하지도 않는 나랑 결혼해서 한평생 살 수 있어?”

집으로 가자.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가.

해외로 쫓겨난 첫해 동안 그녀는 연유성이 자신에게 일말의 감정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기대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안부 전화 한 통도 없는 사람이 절대 그녀를 데리러 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그녀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과거의 옛 기억이 떠오른 강하랑의 두 눈빛엔 싸늘한 빛이 맴돌았다.

“연유성, 네 입으로 직접 말했잖아. 만약 할아버지께서 원하셨던 게 아니었다면 절대 나랑 결혼할 리가 없다고 말해놓고서 지금은 이혼을 미뤄두고 있고, 그렇게 하면 재밌어?”

연유성의 머릿속엔 여전히 그녀가 방금 했던 말로 가득 찼다.

한순간 그는 그녀가 다시 어릴 때 껌딱지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이성이 또다시 튀어나와 생각과 충돌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연성철의 강요였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계속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강하랑의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칠흑처럼 어두웠던 눈동자도 다시 전처럼 평온해졌고 어두운 아우라도 사라졌다.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혼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난 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걸 지켜볼 수는 없어. 강씨 가문에서 널 쫓아냈으니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넌 우리 할아버지가 아주 예뻐하면서 큰 거야. 그런 네가 이렇게 된 걸 만약 할아버지께서 아셨다면 실망하지 않겠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내가 대체 어떻게 되었는데?'

‘설마 내가 돈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타락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나쁜 길로 들어섰다고?'

강하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연유성, 네 말대로라면 네 돈을 쓰던, 아니면 단 대표님의 돈을 쓰던 다 같은 거 아니야? 다 같은 건데 내가 왜 굳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찾아가야 해?”

“강하랑!”

연유성은 조금 전까지 누그러졌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강하랑은 관심 없다는 듯이 귀를 후비적후비적 팠다.

“그래, 들려. 양쪽 귀 아주 잘 들려.”

CTR 빌딩에 있는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점차 많아지는 사람에 강하랑은 더는 연유성이랑 실랑이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연유성은 어떨지 몰라도 그녀는 이 상황이 아주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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