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그녀를 꾹 누르며 얼음장같이 거무스름한 눈동자를 크게 뜨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쌀쌀하게 말했다.“서 씨네 그 잡종?”소원은 피식 차갑게 웃었다.이 남자는 항상 이 모양이었다.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면서도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서현재는 이미 남자 눈에 박힌 목표물로 되었으니, 그녀가 언급하든 말든 이 남자가 그를 곤란한 처지에 밀어붙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다행히 서현재도 지금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에게는 서씨 집안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고 육경한은 그 지경까지 권세를 믿고 나댈정도는 아니었다.만약 그가 정말 평범한 의사라면, 생명을 위협하는‘사고’가 언제 닥칠지 몰랐다.소원은 눈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육경한, 넌 정말 비참한 사람이야. 너 자신을 다른 남자와 비교할 때 얼마나 멍청하고 웃기는 알아? 네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비교를 해?”“네가 귀국한 뒤 나를 아무렇게나 짓밟았을 때부터 나는 이미 너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넌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를 네 곁에 억지로 남겨두고,계속 네 혼잣말로 사랑한다고 중얼거렸잖아.”“네가 이러는 게 내 눈엔 뭐 같은지 알아?”“개 같아, 그것도 재수 없는 개.”“내가 너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들이대다니, 넌 정말 답이 없는 놈이야.”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차갑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되어 남자의 가슴에 꽂혔다.분명히 그는 힘이 매우 세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몸이 탈진된 것처럼 힘없게 느껴졌다.맞다, 소원의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다.그는 소원이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줄곧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그때 가문의 원한을 짊어지고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의 끓어 번지는 분노의 파도는 여전히 가슴속 깊이 묻어둔 애정의 불씨를 꺼버릴 순 없었다.그는 재수 없게도 감히 인정하지 못하였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 여자를 사랑한다는
소원은 9시가 다 되도록 계속 자고 있었다.그녀의 몸은 너무 피곤해 극도로 수면이 필요했다.늦게 일어난 것을 발견한 그녀는 재빨리 씻고 문을 열러 갔다.어제 문 뒤에 놓아둔 의자는 아직 멀쩡했다.그녀는 문을 열면서 어제 그 난리가 났었는데 만약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또 무슨 수를 써서 나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바깥 복도는 매우 조용했다.소원은 이상하다고 느꼈다.보통 9시부터 별장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의사가 육경한에게 달인 한약은 하루에 네 끼를 마셔야 하는데, 매일 이 시간이 마침 그가 약을 마실 때였다.매번 이때마다 하인들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쁘게 움직였지만 오늘은 빈집처럼 조용했다.심지어 소종도 보이지 않았다.계단을 막 내려가려고 할 때, 그녀는 아래층 주방에서 두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육 도련님께서 무슨 일 생기신 거 아니야? 밤에 밖의 인기척을 들었는데 육 도련님을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신 것 같아.”“그때 나도 마침 봤어. 욕조에 빠지신 걸 소종님이 발견하여 건져냈는데, 금방 건져냈을 때 그 백지장같이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이 마치 이미 숨 멎어있는 사람과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소종님이 30분 동안 응급처치를 한 후에야 육 도련님은 정신이 좀 들었고, 나중에는 산소 부족 시간이 길어져 뇌에 손상이 될까 봐 큰 병원으로 보내졌대.”소원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육경한은 어젯밤에 끝내 욕조에서 기어 나오지 못했다.‘어쩐지 내가 떠날 때 뒤에서 아무 소리도 없더라니...’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반격을 당했을 때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이때 아래층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육 도련님이 데려온 이 소 아가씨는 정말 악운이야. 그녀가 이 집에 온 뒤 도련님의 상처는 점점 더 심해졌고 조금 괜찮아지려나 하면 또다시 심해지고... 지금은 또 물에 빠지다니, 정말 이상해.”“맞아, 소종님께서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육 도련님은 이렇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아이고,
심지어 홍채 인식이 필요했다!육경한 본인 외에는 누구도 잠금을 해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그녀는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실망감을 느꼈다.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한 유리장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한 층, 두 층, 세 층, 유리장 안엔 그녀와 밀접히 연관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의 졸업작품, 졸업사진, 전에 육경한에게 손수 짜주었던 목도리, 그에게 밥을 가져다줬던 도시락통...그 외에 또 너무 많았고 어떤 물건들은 심지어 그녀가 줬던 물건인지 멍을 때리고 생각을 해봐야 기억이 조금씩 나는 것들이었다.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유리장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게다가 유리장 겉면은 먼지 한 톨도 없이 누군가 쭉 정성껏 닦아온 것처럼 보였다.이런 비밀 공간은 다른 사람이 들어올 리는 없고 그렇다면 모든 것은 육경한 본인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었다.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그들도 이전엔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육경한도 그녀에게 잘 대해줬던 적은 있었다...그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서 눈부신 사랑을 했었고,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낙엽 아래서 깍지를 끼고 산책도 했으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는 서로 꼭 껴안고 몸을 따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숨 막히는 삶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고, 그는 그녀의 모든 취향과 혐오하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매번 정확히 그녀의 지뢰점을 짓밟아 그녀의 한계를 도전했다.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그처럼 머릿속이 온통 원망으로 도배되고 침식되었다.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그녀도 괴물로 되어버렸다.그들은 결국 같은 부류였다...그녀가 동경하고 꿈꿔왔던 평범한 날들은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소원은 상념에 잠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갑자기 문밖에서 발소리와 함께 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소종 씨, 다녀오셨습니까.”“응.”소종의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울렸다.소원은 당황하여 허둥지둥 숨겨진 방에서 나와 모든 것
소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깼다면서 굳이 볼 필요가 있나요? 나 오늘 회사 가야 돼요. 육경한이 약속한 거예요.”소종은 쌀쌀하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하세요.”그는 이 여자가 양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 한두 날 아니었다.그녀를 계속 곁에 두고 있으면 해만 끼칠 거지만 보스가 손을 대지 말라니 그도 어쩔 수 없었다.소원은 뒤돌아서 서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육경한이 방해 될 줄 알았는데 하늘도 그녀를 돕는듯했다.육경한은 현재 병원에 누워있고 소종도 잠시 몸을 뺄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소원은 별장을 나왔고 오늘은 오직 기사 한 명만 그녀를 배웅했다.평소의 경호원들은 대부분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네 명은 남아서 별장을 지켰다.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따라오지 않았다.그녀는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차에 앉아 점점 눈앞에서 벗어나는 별장을 말없이 지켜보았다.백미러 속 그 흰색 ‘감옥’은 점점 멀어져 끝내 보이지 않았다.이곳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소원은 마음을 굳게 먹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당부했다.“오늘은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 이따 육 도련님 만나러 갈 거거든요.”운전기사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소원은 회사로 돌아와 오후까지 안에 있고 난 뒤 홀로 지하 차고로 향했다.그러고는 별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승용차에 들어갔다.잠시 후, 그녀는 검은색의 타이트한 가죽 재킷으로 갈아입고 검은 헬멧을 쓴 채 차 밖으로 나와 곁에 세워진 한 대 검은색 모터바이크에 늠름하게 올라탔다.그녀는 몸을 살짝 숙이고 ‘쌩’하는 바람 소리만 남긴 채 떠났다.모터바이크는 한 고급 회관의 차고에 도착하여 멈추었다.소원은 미리 알아두었던 경로에 따라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굳이 회관에서 방 대표님과 거래하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회관에 사람이 많고 지켜보는 눈도 많기 때문에 방 대표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공연하게 사람을 잡을
동시에 두 가지 금지 사항을 위반했으니, 그도 감히 방현수더러 처리해 달라고 말을 못 할 것이다.“그만해, 사람 왔어.”방민기는 술에 취해 다리 위의 여자를 밀어냈다.방민기의 어머니는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그는 어머니의 화려한 외모를 물려받아 볼 만한 얼굴이었다.하지만 희미한 불빛 아래 유난히 창백한 얼굴과 눈 밑 선명한 다크서클, 그리고 목덜미 곳곳에 남아있는 연분홍색의 키스 마크들은 그가 긴 시간 동안 여자들과 뒤엉켜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가 실눈을 뜨고 힐끗 쳐다보자, 앞에 서 있는 여인은 온통 검은색 차림을 한 채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가 정말로 죽여줬다.특히 이 모터바이크 복장은 그 누구도 더 섹시하게 못 입을 것 같은 정도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그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뭐야, 완전 미인이잖아!”방민기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소원을 향해 걸어가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아가씨, 할 말은 저의 품속에서 하지 않을래요?”역겨운 술과 담배 냄새가 엄습해 왔다.소원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옆으로 재빠르게 피했다.헛것을 잡은 방민기는 한 춤추고 있는 여인을 낚아채어 슬쩍 몸을 만지고는 언짢은 듯 말했다.“하 참, 내가 지금 너랑 말하고 있잖아, 귀먹었어? 안 들려?”“방 대표는 얘기할 시간이 없는가 봐요.”소원은 말을 마치고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서 가버렸다.문고리에 손을 올린 순간 방민기가 소리쳤다.“거기 서!”소원은 잠시 움직임이 없다가 뒤돌아 방민기를 쳐다보았다.헬멧이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방민기는 뭔가 싸하고 매서운 기운을 느꼈다.그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성질은 꽤 있네, 내가 언제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니?”소원이 말했다.“얘기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 전부 나가 달라고 하시죠.”방민기는 헤헤 웃으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쁜 아가씨, 나를 독차지하고 싶은가 봐? 그래, 네 말대로 하지.”그는 손짓하며 여자들을 나가게 했다.그의 다리에 앉아
순간, 암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뛰쳐나왔다.방민기에게는 이전의 부잣집 도련님의 장난기와 방탕함이 보이지 않았고 눈매가 음험하고 사나웠다.딱 봐도 애초부터 그녀를 잡을 준비가 된 것 같았다.하지만 소원은 그의 상상처럼 멍청하지 않았고 이런 것들도 전부 그녀의 예상 속에 있었다.그녀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희고 얇은 손목이 깔끔한 곡선을 그리자 예리하고 차가운 빛을 반사하는 작은 칼이 이미 눈 깜빡할 사이에 방민기 목에 닿았다.갑작스러운 변고가 생겼지만, 방민기은 여전히 이 여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는 두 경호원을 호되게 꾸짖었다.“어서 이 미친년을 처리하지 못해!”두 경호원은 모두 완벽한 훈련을 거쳤고 이 상황을 보자 둘은 서로 눈빛 교환만으로도 분공을 끝냈고, 앞뒤로 달려들어 이 여자를 포획하려고 했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보다 빨랐고, 칼끝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향해 쿡 찔렀다.그녀의 동작은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피가 ‘푸쉭-’하고 뿜어져 나왔다.방민기는 아픔에 ‘씁’하고 줄곧 숨을 헐떡이며 욕을 내뱉었다.“이런 미친년, 죽고 싶어?!”경호원들은 이 여자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것을 보아내고 움직이려던 행동을 멈추었다.그들의 언제나 방 사장의 생명 안전을 첫 순위에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소원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방민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가만 안 있을 거예요!”“쯧!”방민기는 화가 나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그는 애초에 오늘은 누가 그를 협박하든 무조건 상대방의 손을 잘라내고 혀를 뽑아내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여자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자 똥 먹는 개는 버릇을 못 고친다고 그는 일단 마음대로 갖고 논 뒤 처리해 버려도 될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그런데 갖고 놀기는커녕, 이 여자의 손에 패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방민기는 화를 내며 말했다.“대체 뭘 원해!”“방 대표님께서 얘기하는 걸 허락하셔서 왔는데요.”소원은 냉담한 표정으로 계속했다.“나는 내가
경호원은 황급히 물러났다.방민기의 머리는 소원의 무릎에 눌려 소파 위에 15분 동안이나 똑같은 자세로 있다가 드디어 풀려났다.이제 방민기는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는 원래 술과 놀음에 취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몸이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좋은 경호원을 찾아주신 덕분이었다.그는 소파에 축 늘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날 건들지 마, 힘이 없어.”방민기는 목이 부러진 것만 같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으며, 하여 목을 기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년이야!’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소원은 칼끝을 방민기 목에서 조금도 떼어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들어오세요.”방금 나갔던 경호원이 들어와서 커피색 서류봉투를 내밀었다.소원은 말했다.“땅에 던지고 다시 나가세요.”경호원이 머뭇거리며 방민기을 쳐다보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욕을 퍼부었다.“꺼져, 쓸모없는 놈아.”정신이 문제 있는 여자 한 명도 상대하지 못해 그를 여기서 고생시키다니!그는 목숨을 아끼고 싶었고 다시는 이 미치광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얼른 물건 가지고 꺼져, 제발.’소원이 서류를 꺼내자 익숙한 글자체가 그녀의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망울을 뿌옇게 흐렸다.짜고 축축한 눈물이 부서진 유리구슬처럼 굴러떨어졌다.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고 소리 없이 말했다.‘아버지...’가슴이 누군가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듯 찌릿찌릿 아팠다.다행히 헬멧이 그녀의 슬퍼하는 기색을 가렸기 때문에 방민기에게 지금이 그녀를 공격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소원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침착하라고 자신을 타일렀다.그녀는 서류를 품에 넣은 뒤 지퍼를 잠그고 말했다.“방민기, 나를 안전하게 떠나게 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당신을 죽일 거예요.”방민기는 힘없이 대답했다.“가는 건 되는데, 그전에 네가 약속한 것은 주고 가야지.”“내가 안전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엾기 그지없었고 온갖 비참한 척을 다 해대던 여인은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깨진 술병을 들고는 그녀의 목을 향해 무작정 찔러왔다.소원은 생각할 겨를 없이 팔을 번쩍 들어 공격을 막았다.유리가 그녀의 팔을 스치며 베자, 순간 피가 흘러내렸다.쥐고 있던 작은 칼도 쨍그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방민기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땅에서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고는 복도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이놈들아, 모두 이리 와!”여인은 땅에서 천천히 일어나 술병을 높게 쳐들고 칭찬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종알댔다.“오빠, 어서 저를 칭찬해 줘요. 앞으로 제가 여자 몇 명 더 잡아드릴게요.”소원은 그제야 자신을 모함한 여자가 방금 그녀와 생김새가 흡사한 여자라는 것을 발견하였다.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백한 성형의 흔적은 대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행동인지 알 수 없었고 소원의 마음속에 물음표만 가득 남겨놓았다.방민기는 청아의 엉덩이를 꼬집고 변태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좋아! 우리 이쁜 청아가 제일 기특하지. 오빠가 나중에 좋은 상을 줄게. 오빠가 크고 맛있는 걸...”두 사람의 대화를 소원은 겨우겨우 알아들었다.청아가 방민기를 도와 나쁜 짓을 한 건 무조건 처음이 아니었다.전에도 비슷한 찌질한 방법을 사용해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는 가여운 여자들을 강박했을 것이다.그래서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것이었다.소원은 상처를 꾹 눌러 어느 정도 지혈시키려고 했고, 눈을 힘주어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방민기를 잡을 작정이었다.그때, 터벅터벅 촉박한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그녀는 단번에 엘리베이터 문 닫기 버튼을 눌렀다.청아는 상황을 보고 달려와 엘리베이터 문을 안 닫기게 손으로 막고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소원에게 발로 걷어차여 뒤로 튕겨 나갔다.“악!”청아는 벽에 쿵 하고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엘리베이터 문이 점차 닫혔다.방민기는 문밖에서 조급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육경한은 이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컵을 내려놓자 소원이 말했다.“그럼 밥 먹어. 난 갈게.”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려 했다.문 앞까지 왔을 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육경한이 침대에서 떨어졌다.키가 188cm인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넘어져 있으니 매우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급히 가서 육경한을 부축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소원은 갑자기 허약해진 육경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냐 말이다.이내 육경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아파.”이 말을 들은 소원은 순간 육경한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색을 보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상처 난 등이 촉촉한 것을 보니 아마도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황산에 의한 상처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나오기에 소원은 상처가 터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날 육경한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을 생각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힘주지 마. 날 잡아. 조심하고.”소원의 팔에 기댄 육경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오랜만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육경한은 심장이 졸깃했다. 소원의 몸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 냄새는 마치 약처럼 아픔을 잊게 했다.육경한을 다시 침대에 눕힌 소원은 침대 높이를 조절해 그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소원이 돌아서자 육경한은 그녀가 또 떠날까 봐 급히 말했다.“소원아, 나 배고파.”순간 소원은 조금 전 넘어진 것이 진짜로 고의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간병인은 어디 갔어?”“간병인 없어. 평소에 황진수가 도와줘.”육경한의 말에 소원이 짜증 내며 한마디 했다.“왜 간병인을 안
연기가 제법인 황진수는 진짜로 배가 아픈 척했고 심지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순간 멍해진 소원이 한마디 물었다.“왜 그래요? 의사를 부를까요?”황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그는 손에 들고 있던 죽을 높이 들었다. 혹시라도 소원이 받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녀의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소원 씨,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육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의사가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차가운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황진수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사라졌다.죽을 들고 좌우를 둘러보던 소원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육경한이 있는 VIP층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소원은 죽을 경호원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육경한 병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 조금 전 황진수는 그녀와 육 대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철수하라고 했다.소원이 문을 두드리자 방안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소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서를 보고 있는 육경한은 소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황진수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거기에 둬.”테이블 위에 놓여진 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손에 든 죽을 번갈아 본 소원은 육경한이 갑자기 죽을 먹고 싶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이 죽 가게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제 샀던 죽 가게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았다.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든 죽을 놓은 소원은 육경한이 여전히 그녀를 알아채지 못하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육경한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소원?”소원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황 비서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나더러 대신 갖다 주라고 했어.”육경한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나를 보러 온 줄 알았네.”약간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소원은 이왕 온 김에 몇 마디 안부는 주고받아야
사생아가 많은 방현수는 여자아이인 방민아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민기는 이미 판결이 났고 방씨 가문이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여론이 너무 떠들썩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 일 이후, 방현수의 정신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기대하던 두 아이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방민아는 아마도 방현수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방현수가 돈과 힘을 들여 그녀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자신의 추측을 말한 황진수가 한마디 보탰다.“방민아 씨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현수의 마음도 바꾸고요.”육경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방민아가 나오면 소원은 그녀의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다. 여자들 사이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욱경한은 잘 알고 있었다.육경한이 황진수에게 말했다.“방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시해 봐. 그리고 방민아가 나오면 반드시 24시간 내내 감시하여 소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황진수가 말했다.“알겠습니다.”육경한이 또 물었다.“진아연 쪽은 어때, 소식이 있어?”진아연이 또 도망쳤다. 지난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후 몸이 나아지자 간호사가 한눈을 판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아마도 육경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래서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회를 잡아 도망친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 일도 그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육경한은 그녀에게 확실히 물어봐야 했다.이때 황진수가 말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출입국 사무소에 다 물어봤지만 아직 다른 데로 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긴장을 놓치면 안 돼. 진아연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야.”황진수가 알겠다고 하자 육경한도 조금 지쳤는지 한마디 했다.“이만 나가 봐.”황진수는 집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육경한이 한 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한마디 말했다.“육 대표님, 입에 맞지 않아서 안
병실 밖에 있던 황진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감정적 가치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이지애는 가스라이팅에 정말 능숙했다.육경한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녀가 과연 육경한을 걱정하는 척하며 그런 감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다니...솔직히 말해서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황진수가 소리 지르는 이지애를 끌어내어 경호원들에게 넘기자 이지애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육경한의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나를 무례하게 대한 일, 나중에 분명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황진수는 냉정하게 말했다.“여사님, 더 이상 자신을 육 대표의 누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저 사촌 누나일 뿐인데 왜 항상 ‘사촌’이라는 말을 잊으시는 건가요? 밖에서 본인을 육 대표의 친누나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다 보니 입에 붙어서 못 고치는 건가요?”황진수는 이지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육경한의 누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사 대표들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또 육경한과도 자주 만났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로 육 대표의 누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지애는 결국 자업자득의 꼴이 되었다.이지애가 분노하며 말했다.“너 같은 놈은 평생 이 꼴로 살 거야. 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잘 들어, 경한이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나를 누나로 생각할 거야. 그때면 널 첫 번째로 해고할 테니 두고 봐!”“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황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정말!”이제 육경한이 그녀의 뒤를 봐주지 않으니 황진수도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지애를 무시하며 바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데려가세요. 앞으로 육 대표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지애는 욕을 하면서 문을 잡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찾아와 이지애를 보더니 통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
“경한아, 누나가 예전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그때 너에게 돈을 준 것 때문에 네 형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는 몰라. 그 자식이 죽을 때까지도 내가 친정에 돈을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이지애가 끊임없이 과거의 일들을 들먹였지만 육경한은 그런 그녀가 단지 시끄럽다고 느껴졌다.원래부터 가족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지애가 그때 돈을 준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육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누나,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그때 나에게 몇십만 원을 준 이유가 우리 엄마에게서 4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차용증을 찾아내 파기했잖아요.”육경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이지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마음속은 아주 불안했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급히 부인하며 말했다.“경한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엄마의 돈을 빌렸다고 그래? 네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야!”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육경한이 침묵하자 이지애는 육경한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웃으며 말했다.“경한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보아하니 일부러 우리 사촌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말한 것인가 본데 나는 너희 집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없어.”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육경한은 이지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얼마 전, 집안 하인이 청소를 하면서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펼쳐보니 그 안에 육경한의 엄마가 쓴 채무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에 이지애가 육씨 가문에서 4억원을 빌린 내역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육경한의 엄마가 겨우 모은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그리고 날짜도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지애가 미용원에 투자하여 금방 개
이 말은 육경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라리 묻지 말걸... 주석훈은 대체 무슨 친구란 말인가? 단지 몇 번 만난 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황진수는 급히 말했다.“병원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소원 씨가 병문안을 잠깐 왔다가 저녁에 바로 갔대요.”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육경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진수도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업무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중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육경한의 사촌 누나 이지애가 병문안을 온 것이다.“경한아, 우리 연주 좀 살려줘!”이지애는 육경한과 다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울부짖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지애는 육경한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울부짖었다.“경한아, 오늘 아침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애가 살이 쏙 빠졌어. 얼굴도 초췌해지고 말이야. 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몸에는 상처투성이야. 안 그래도 괴롭힘을 당한 애인데 또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버틸 수 있겠니...”이지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나온 눈물은 진심인 것 같았다.이번에는 육연주의 잘못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육연주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만 말하며 육경한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이 일로 육경한도 다쳤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이지애는 육연주를 욕하기도 했다. 건드려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을 건드려 병원 신세 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족에게 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실제 피해자가 육경한이라면 육경한이 합의서를 써주면 육연주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육연주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소원의 진술 때문에 육연주는 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이 죄는 아주 무거운 죄로 변호사와 상담 후 최소 감옥에 몇 년은 있어야 하며 길면 5년에서 10년까지도 있을 수 있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전까지 유진은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몇 달 더 있다가 유진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소원이 동화책을 내려놓고 물었다.“유진아, 엄마가 임신한 거 누가 말해줬어?”유진이 말했다.“아줌마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임신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랬어요.”유진이 또 물었다.“임신했다는 것은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긴 거야.”“너무 좋아요.”그녀의 임신을 바로 받아들인 유진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소원은 유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는 3개월이 지난 후 너에게 말하려고 했어. 임신한 지 세 달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풍습이 있거든.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어.”유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예요.”소원이 미소를 지었다.“좋아?”“당연히 좋죠. 항상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돼.”소원이 유진을 꼭 안아주자 유진이 말했다.“엄마,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어요. 엄마가 낳은 아기라면 다 좋아요. 나중에 내가 없어도 동생이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요.”너무나 순수한 유진의 말에 마음이 아픈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유진아, 네가 왜 없어? 너는 항상 건강하게 있을 거야. 엄마 옆에서 이 아기를 지켜줘야지.”유진이 어른스럽게 말했다.“알겠어요. 엄마, 아기를 꼭 잘 돌볼게요.”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소원은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유진에게 약을 먹일 수 있지만 서현재의 연구 결과로 보면 그 약이 유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유진에게 약을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