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게… 저.. 무서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괜찮아요.”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래.”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옷은 왜 벗는 거예요?”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그녀는 거울속에 비친 수려한 이준혁의 외모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자꾸 설렜다.이준혁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욕심이 생겨서 이준혁을 놓아주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린 뒤, 윤혜인은 거울 속의 이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렸고 그녀 가까이에 서있던 이준혁은 화장대에 손을 걸치더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감사 표시는 어떻게 할 건데?”그의 말에 윤혜인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예전에 그녀는 항상 몸으로 감사 표시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두 사람은 곧 이혼할 거니까!거울속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혁을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준혁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갑자기 윤혜인의 턱을 살짝 잡더니 고개를 돌리고 사나운 얼굴로 경고를 했다.“앞으로 그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모든 남자가 나처럼 신사적인건 아니야.”윤혜인은 그녀의 이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를 것이다. 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움직이지 마.”그렇게 두 사람은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꺼풀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이준혁은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이건 벌이야.”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윤혜인은 화가 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이때, 이준혁의
임세희의 손길이 이준혁의 허리에 닿은 순간 이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임세희의 손은 그렇게 허공에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이준혁을 쳐다보았다.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손을 거둔 임세희는 몰래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준혁 오빠, 내가 싫어?”“아니, 괜한 생각하지 마.”이준혁이 임세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내가 지금 오빠에게 짐이 됐다는 걸 알아… 아무래도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임세희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고 이준혁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임세희의 어개를 꼭 잡더니 그녀를 위로했다.“그런 말 하지 마! 난 끝까지 너를 지켜줄 거야.”“준혁 오빠, 난 오빠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임세희는 이준혁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한참 뒤, 임세희가 깊은 잠에 빠지고 나서야 이준혁이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실 문이 닫히던 순간, 곤히 잠든 줄 알았던 임세희가 두 눈을 번쩍 떴다.조금 전, 임세희는 이준혁에게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아주 은은한 향이기는 했지만 임세희는 여자의 향수라는 걸 바로 확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혁 오빠 곁에는 염치없이 끼어든 윤혜인 말고는 다른 여자가 없다.임세희는 이를 꽉 깨물었고 화가 잔뜩 난 탓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이 복수를 할 것이다. 언젠가 윤혜인 그 여자 눈에 피눈물이 나게 만들 것이다.한편, 병원에서 나온 이준혁이 차에 타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청월 아파트로 가.”이준혁은 넥타이를 풀어 던진 채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피곤한 듯 대답했다.한참 뒤, 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준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눌렀다.안방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윤혜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끈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조금 야릇한 모습이었다
소원은 남자친구 몰래 윤혜인에게 숫자 17을 그렸고 그녀의 손짓을 본 윤혜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원의 손짓은 이 남자가 그녀의 어장에 들어온 열일곱 번째 물고기라는 뜻이었다.“우리 원이가 저한테 혜인 씨 얘기를 자주 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미인인 줄 몰랐네요. 만나서 반가워요.”김재성이 손을 뻗어 윤혜인과 악수를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말을 하면서 그녀를 이리저리 훑는 김재성이 눈빛에 왠지 모르게 불편했지만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했다.김재성은 악수를 한 뒤, 손을 거두면서 실수인 척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고 순간, 윤혜인은 소름이 쫙 돋았다.윤혜인이 급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김재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소원과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한참 뒤, 식사를 하던 도중에 김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룸에 둘만 남게 되자 소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혜인아, 너 괜찮아?”윤혜인은 소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준혁과의 일에 관해 소원에게 숨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알아주는 상류 명문 가문이기에 임세희에 관한 일은 소원이 윤혜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대답을 하려던 찰나, 윤혜인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헛구역질을 하던 윤혜인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뒤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헤헤, 오늘밤에는 무조건 따먹을 거야. 정 안 되면 술을 많이 먹이지 뭐. 젠장,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그래. 멍청한 여자가 계속 잠자리를 거부해. 약을 타볼까 고민중이야. 그리고 절친이라고 데려온 여자가 있는데 엄청 예뻐. 둘을 한꺼번에 잘 수 있으면 완벽한데. 나중에 침대에서 사진도 좀 찍고 동영상도 찍어서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즐겨야지. 그땐 반항도 못할 걸?”그 뒤의 말은 더 역겨운 말들이었고 조용히 듣고 있던 윤혜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김재성은 윤혜인을 발견하자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거들먹거렸다.“
김재성의 공격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윤혜인은 태연하게 몸을 슬쩍 돌려 피했고 헛방을 날린 김재성은 바닥에 흘린 오디 주스를 밟고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나 이를 꽉 깨물며 욕을 퍼부었다.“어디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찾아 나선 소원은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윤혜인이 설명하려고 할 때, 김재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소원아, 혜인 씨가 내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내가 안 줬거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내 몸에 주스를 뿌렸어…”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비참한 모습으로 일어나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윤혜인은 그런 김재성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리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김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소원아, 난 너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혜인 씨를 거절한 건데…”“웩! 웩… 웩!”김재성의 말은 윤혜인의 헛구역질 소리에 끊겨버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하던 말 계속 하세요.”윤혜인이 입을 막으며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김재성은 화가 났다. 갑자기 말이 끊긴 바람에 조금 전의 북받쳐 오르던 감정을 잃은 그는 말을 길게 할 수도 없었다.“소원아, 넌 날 꼭 믿어줘야 돼.”“재성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소원은 김재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사랑스럽게 웃었고 김재성은 이내 의기양양했다. 이 방법은 모든 여자에게 먹혔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절친이라고 해도 남자가 끼어들면 그 우정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김재성의 눈에 소원은 그저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바보일 뿐이다. 김재성이 손을 뻗어 소원을 안으려고 한 찰나, 소원이 무릎으로 그의 아랫도리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순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 김재성은 기름에 튀
소원은 이런 결정을 내린 윤혜인이 대견했다. 이준혁의 인간 관계는 너무 복잡했기에 소원은 윤혜인이 혹시라도 다치게 될까 봐 오래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넌 진작에 정신을 차려야 했어. 맨날 이준혁의 잔심부름이나 하고, 그게 뭐야! 넌 얼굴도 예쁘고 실력도 강하고.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디자인했던 작품은 상까지 받았잖아! 이산 그룹을 떠나면 네 앞날이 휘황찬란할 거야.”예전에 윤혜인이 이준혁을 많이 사랑하고 있을 때 소원은 그녀에게 상처가 될까 봐 할 수 없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윤혜인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고 제대로 마음먹었다고 하니 소원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그거 알아? 한구운이 돌아왔대! 대학교 다닐 때 너랑 구운 선배는 완전 선남선녀였잖아.”“선배님이 귀국했다고?”윤혜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그래, 너 한구운 선배 인스타 팔로우 안 했어? 구운 선배는 지금 주식 투자계의 다크호스야. 어마어마할 정도로 유명해졌다고.”윤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이준혁에게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소원 말고는 연락하는 동창이 거의 없었다.사실 난 그때 너와 구운 선배가 잘 되길 바랐거든. 한구운 선배가 너보다 2년 선배이긴 하지만 너에게 진짜 잘해줬어. 내가 부러울 정도였다니까.”“이상한 얘기하지 마. 구운 선배는 성격이 다정해서 모든 사람에게 잘해줬어.”윤혜인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녀는 그때 당시 한구운은 그저 학생 회장으로써 신입생에게 신경을 조금 더 많이 쓴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은 윤혜인이 이런 쪽에 둔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에이그, 바보 같은 계집애.”“육경한 씨가 돌아왔다고 들었어.”윤혜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육경한은 소원과 약혼을 했던 사이지만 갑자기 육경한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서 소원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은 것이다.이준혁과 육경한은 꽤 친한 사이였기에 육경한이 귀국한 뒤로부터 두 집안은 비즈니스 합작이 유난히 잦았다.소원의
이내 빠르게 표정 관리를 한 임세희가 곁에 있던 송소미를 보며 말했다.“소미야, 내가 식당에 가방을 두고 온 거 같아.. 혹시 가서 확인 좀 해줄 수 있을까?”송소미는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임세희의 말에 윤혜인을 죽일 듯이 째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송소미가 떠나자 임세희가 윤혜인을 보며 환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윤혜인 씨, 그동안 저 대신 준혁 오빠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간단한 말 한마디로 임세희는 이준혁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하게 표시했다. 윤혜인은 임세희의 인사 말을 들으며 너무 아이러니했다.분명 이준혁의 아내는 윤혜인 그녀인데.임세희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전에는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작은 모순이 생겼다고 해외로 도망가버렸거든요. 근데 준혁 오빠가 지금까지 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진짜 너무 감동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돌아온 김에 준혁 오빠랑 결혼할 생각이에요.”이 순간, 임세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흐릿하게 들렸다. 윤혜인은 심장이 너무 아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그들은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이준혁은 벌써 임세희와 결혼하고 싶은 건가?“윤혜인 씨, 윤혜인 씨?”임세희의 부름에 윤혜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네, 임세희 씨.”임세희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윤혜인을 보며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윤혜인에게 건넸다.“윤혜인 씨, 저희 번호 주고받을까요? 준혁 오빠가 저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데 저도 오빠한테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나중에 윤혜인 씨 도움도 필요할 것 같고.”윤혜인은 번호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간절하게 바라는 임세희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번호를 받은 임세희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윤혜인 씨, 혹시 저를 저쪽까지 밀어줄 수 있을까요?”고개를 끄덕인 윤혜인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살짝 밀었지만 휠체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손잡이를 누른 채 허리를
말을 끝낸 이준혁은 윤혜인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임세희를 안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두 사람을 뒤따라가던 송소미는 바닥에 쓰러진 윤혜인을 보며 비아냥거렸다.“허튼 기대는 이제 그만 넣어둬. 넌 하수구 안에서 살고 있는 쥐에 불과해. 우리 세희 언니의 발 뒤꿈치도 못 따라간다고.”송소미의 거친 말에도 윤혜인은 전혀 들리지 않는듯 멀어져가는 이준혁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보았다.윤혜인은 저렇게까지 긴장한 이준혁의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이준혁은 그녀에게 마음을 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검은색 벤틀리는 빠른 속도로 윤혜인 앞을 지나쳤고 윤혜인은 아랫배가 점점 더 아팠다.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다급하게 배를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아가야…”이때, 윤혜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소원은 그녀에게 차가 막혀서 주차장에서 나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점점 더 심해지는 고통에 윤혜인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 앞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웠기에 윤혜인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몸으로 이준혁의 차를 세우려고 했다.그리고 그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윤혜인은 그녀 앞을 지나치는 차를 보며 힘겹게 다가가 온 힘을 다해 차 뒤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빠른 속도로 도로를 향해 나서는 검은색 벤틀리는 주인처럼 매정했다.윤혜인은 우두커니 서서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점점 더 강해지는 아랫배의 통증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배를 꼭 끌어안았다.“아가야,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 말렴…”한편, 병실 안에서.의사가 임세희에게 정밀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이준혁은 병원 복도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사모님은 못 찾았습니다. 아마도 이곳을 떠나신듯 합니다.”전화기 너머 주훈이 솔직하게 전했다.“알았어.”전화를 끊은 이준혁 머릿속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