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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이한나
김재성의 공격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윤혜인은 태연하게 몸을 슬쩍 돌려 피했고 헛방을 날린 김재성은 바닥에 흘린 오디 주스를 밟고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나 이를 꽉 깨물며 욕을 퍼부었다.

“어디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찾아 나선 소원은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윤혜인이 설명하려고 할 때, 김재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원아, 혜인 씨가 내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내가 안 줬거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내 몸에 주스를 뿌렸어…”

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비참한 모습으로 일어나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윤혜인은 그런 김재성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리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김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소원아, 난 너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혜인 씨를 거절한 건데…”

“웩! 웩… 웩!”

김재성의 말은 윤혜인의 헛구역질 소리에 끊겨버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하던 말 계속 하세요.”

윤혜인이 입을 막으며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

김재성은 화가 났다. 갑자기 말이 끊긴 바람에 조금 전의 북받쳐 오르던 감정을 잃은 그는 말을 길게 할 수도 없었다.

“소원아, 넌 날 꼭 믿어줘야 돼.”

“재성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

소원은 김재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사랑스럽게 웃었고 김재성은 이내 의기양양했다. 이 방법은 모든 여자에게 먹혔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절친이라고 해도 남자가 끼어들면 그 우정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

김재성의 눈에 소원은 그저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바보일 뿐이다.

김재성이 손을 뻗어 소원을 안으려고 한 찰나, 소원이 무릎으로 그의 아랫도리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

순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 김재성은 기름에 튀겨진 새우 마냥 온몸을 움츠리고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너무 아파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내가 왜 널 바보 같다고 하는지 알아? 혜인이가 네 연락처를 물어봤다고? 차라리 돼지가 하늘을 난다는 말을 믿으라고 해!”

소원이 고고한 자태로 우뚝 서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김재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원아, 넌 우리가 천생연분이라고 했잖아. 근데 지금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나 너무 마음이 아파.”

김재성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어떻게든 소원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했다.

소원은 그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 가정 배경이 가장 훌륭한 여자였기에 이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예쁜 데다가 돈도 많았다. 제일 중요한 건 아직 소원과 잠자리를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원은 실눈을 살짝 뜨더니 다시 발을 들어 남자의 구두를 힘껏 짓밟았다.

“너랑 나는 기껏해야 한 달 만났어. 그런데 너 따위가 나랑 혜인이 7년 우정을 이간질하려고 해? 꿈도 꾸지 마!”

쓰레기를 처리한 소원은 더 이상 이곳에서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윤혜인의 어깨를 꼭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자기야, 가자. 다른 음식점에 가서 더 맛있는 거 사줄게. 이곳 공기는 저 쓰레기 때문에 다 오염됐어.”

두 사람 뒤에 서있던 김재성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얼굴까지 일그러졌다. 그는 사악한 표정으로 소원과 윤혜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계집애들, 나중에 내 손에 다시 잡히기만 하면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제대로 괴롭혀 주겠어.’

한참 뒤, 소원과 윤혜인이 다른 레스토랑에 나타났다. 이 레스토랑은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고급 한식집이었다.

주문을 마친 윤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원아, 내가 조금 전에 김재성 그 쓰레기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너에게 약을 탄다고 했어….”

윤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원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네가 설명 안 해줘도 다 알고있어. 성격이 온화한 우리 혜인이를 화나게 만들었다면 그 쓰레기가 더러운 짓을 저지른 게 분명하지. 네가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난 그 쓰레기 같은 놈에게 먹히고도 몰랐을 거 아니야.”

수다를 떨면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 소원이 윤혜인을 힐끔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혜인아, 그럼 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윤혜인은 소원이 뭘 묻는 건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적거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 이산 그룹을 떠날 거야.”

“마음먹은 거야? 그럼 앞으로 무슨 일 할건데?”

소원은 핼쑥한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걱정되는 듯 물었고 윤혜인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마음먹었어. 앞으로는 디자인 쪽 일을 하고 싶어.”

이제 이준혁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돌아온 만큼 그녀는 더 이상 이준혁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눈치껏 하루 빨리 자리를 피해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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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5화

    “경한아, 누나가 예전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그때 너에게 돈을 준 것 때문에 네 형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는 몰라. 그 자식이 죽을 때까지도 내가 친정에 돈을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이지애가 끊임없이 과거의 일들을 들먹였지만 육경한은 그런 그녀가 단지 시끄럽다고 느껴졌다.원래부터 가족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지애가 그때 돈을 준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육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누나,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그때 나에게 몇십만 원을 준 이유가 우리 엄마에게서 4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차용증을 찾아내 파기했잖아요.”육경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이지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마음속은 아주 불안했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급히 부인하며 말했다.“경한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엄마의 돈을 빌렸다고 그래? 네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야!”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육경한이 침묵하자 이지애는 육경한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웃으며 말했다.“경한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보아하니 일부러 우리 사촌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말한 것인가 본데 나는 너희 집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없어.”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육경한은 이지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얼마 전, 집안 하인이 청소를 하면서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펼쳐보니 그 안에 육경한의 엄마가 쓴 채무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에 이지애가 육씨 가문에서 4억원을 빌린 내역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육경한의 엄마가 겨우 모은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그리고 날짜도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지애가 미용원에 투자하여 금방 개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4화

    이 말은 육경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라리 묻지 말걸... 주석훈은 대체 무슨 친구란 말인가? 단지 몇 번 만난 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황진수는 급히 말했다.“병원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소원 씨가 병문안을 잠깐 왔다가 저녁에 바로 갔대요.”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육경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진수도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업무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중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육경한의 사촌 누나 이지애가 병문안을 온 것이다.“경한아, 우리 연주 좀 살려줘!”이지애는 육경한과 다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울부짖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지애는 육경한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울부짖었다.“경한아, 오늘 아침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애가 살이 쏙 빠졌어. 얼굴도 초췌해지고 말이야. 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몸에는 상처투성이야. 안 그래도 괴롭힘을 당한 애인데 또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버틸 수 있겠니...”이지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나온 눈물은 진심인 것 같았다.이번에는 육연주의 잘못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육연주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만 말하며 육경한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이 일로 육경한도 다쳤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이지애는 육연주를 욕하기도 했다. 건드려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을 건드려 병원 신세 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족에게 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실제 피해자가 육경한이라면 육경한이 합의서를 써주면 육연주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육연주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소원의 진술 때문에 육연주는 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이 죄는 아주 무거운 죄로 변호사와 상담 후 최소 감옥에 몇 년은 있어야 하며 길면 5년에서 10년까지도 있을 수 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3화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전까지 유진은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몇 달 더 있다가 유진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소원이 동화책을 내려놓고 물었다.“유진아, 엄마가 임신한 거 누가 말해줬어?”유진이 말했다.“아줌마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임신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랬어요.”유진이 또 물었다.“임신했다는 것은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긴 거야.”“너무 좋아요.”그녀의 임신을 바로 받아들인 유진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소원은 유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는 3개월이 지난 후 너에게 말하려고 했어. 임신한 지 세 달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풍습이 있거든.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어.”유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예요.”소원이 미소를 지었다.“좋아?”“당연히 좋죠. 항상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돼.”소원이 유진을 꼭 안아주자 유진이 말했다.“엄마,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어요. 엄마가 낳은 아기라면 다 좋아요. 나중에 내가 없어도 동생이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요.”너무나 순수한 유진의 말에 마음이 아픈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유진아, 네가 왜 없어? 너는 항상 건강하게 있을 거야. 엄마 옆에서 이 아기를 지켜줘야지.”유진이 어른스럽게 말했다.“알겠어요. 엄마, 아기를 꼭 잘 돌볼게요.”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소원은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유진에게 약을 먹일 수 있지만 서현재의 연구 결과로 보면 그 약이 유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유진에게 약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2화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1화

    황진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간 후 소원은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주석훈이 죽을 다 먹고 소원에게 말했다.“소원 씨, 이만 돌아가세요. 여기는 의사와 간호사가 많으니까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소원 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소원은 밤에 유진을 보러 갈 예정이었기에 진짜로 돌아가야 했다.주석훈을 위해 간병인을 구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간병인을 찾기 어려웠다. 감염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환자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이제 막 열이 내린 주석훈은 소원의 고민을 알아채고 농담을 던졌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요. 이렇게 큰 병원에 있는데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요?”소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번 일, 여자친구에게 말씀하셨나요?”“여자친구요?”주석훈이 멍해 있자 소원이 급히 말했다.“방금 물컵을 들다가 변호사님의 직원증을 떨어뜨렸어요. 죄송해요,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여자친구 사진인 것 같아서...”소원의 말을 들은 주석훈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지만 소원이 보기엔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았다.평소 밝고 남을 잘 돕는 그의 얼굴과 조금 달랐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여자친구 맞아요.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어요.”몇 초 동안 충격에 빠졌던 소원이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몰랐어요.”“괜찮아요. 이미 오래된 일이니까.”주석훈의 말에 소원이 한마디 했다.“정말 예쁘더라고요.”그러자 주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잘 웃고 또 성격도 좋았어요. 그리고 동물들도 정말 좋아했죠.”소원은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온화해 보이던 여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니...두 사람이 몇 마디 더 나눈 후, 주석훈이 소원에게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했다.주석훈의 말에 소원도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원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석훈의 전화벨 소리가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10화

    황진수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미우 그룹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하나같이 대표님의 권한을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회의도 많아서 시시각각 대표님 곁을 지킬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도 속이 바질바질 타요. 대표님이 빨리 업무 복귀하셨으면 좋겠어요.”황진수은 소원에게 왜 육경한을 보러 오지 않냐고 대놓고 질책하지 않고 월급쟁이로서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만 얘기했다. 이렇게 되면 가스라이팅까지는 아니지만 누구든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수락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소원은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비서님, 수고하셨어요. 시간 되면 그때 찾아갈게요.”가겠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고 시간 될 때 찾아간다고 말했다. 지금 바로 병원인데 시간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황진수도 이 말까지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그러면 소원 씨, 일 보세요. 일 끝나면 대표님 좀 꼭 보러 오시고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컵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수액실로 돌아와 보니 주석훈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소원은 딱히 깨우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주석훈 눈에 난 다크서클만 봐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기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그 누구든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주석훈의 정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미 너무 안정적인 편이었다.침을 뺄 때가 되자 주석훈이 잠에서 깨 간호사를 불렀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는 역시나 중무장하고 들어왔다. 병원 측은 주석훈의 상황을 대비해 수액실도 단독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바늘을 뽑은 간호사들은 주석훈에게 오늘 밤 다시 열이 나는지 체크해야 하므로 밖에는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은 아직도 병실에 남아있는 소원을 보며 멋쩍게 말했다.“소원 씨,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옆에서 있어 주기 힘든데.”“괜찮아요.”소원이 말했다.“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요.”소원이 물을 주석훈에게 건네주는데 핸드폰이 올렸다. 배달 기사가 걸어온 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09화

    소원은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주석훈은 이번에 병원을 바꿔 제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전문가들이 이런 유형의 감염류 질병에 더욱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소원이 도착하자 수액을 맞던 주석훈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소원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소원이 말했다.“마침 근처로 왔다가 얼굴이나 보려고 왔죠.”소원은 주석훈이 신세 지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주석훈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석훈의 창백해진 얼굴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목마르죠? 물 좀 마실래요?”주석훈은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목이 불편해 이렇게 말했다.“괜찮으면 소원 씨가 뜨거운 물 좀 따라줄래요?”“그래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소원이 말했다.“컵은 내 가방에 있어요.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소원 씨가 좀 가져다줘요.”소원이 주석훈의 가방에서 컵을 꺼내다 주석훈의 사원증이 딸려 나왔다. 사원증 뒷면에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보관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사진에 보이는 여자는 밝고 수수하고 웃음이 참 예쁜 사람이었다.소원은 그 사람이 주석훈의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다. 본적도, 그렇다고 들어본 적도 없는 여자였지만 그래도 사진을 사원증 뒷면에 넣어두고 다닌다는 건 무척 사랑한다는 의미였다.주석훈은 머리가 흐리멍덩한 상태라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소원이 사원증을 다시 집어넣고는 뜨거운 물 받으러 갔다.뜨거운 물을 받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데 마침 육경한의 비서 황진수가 보였다. 황진수는 소원을 보고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소원 씨, 혹시 대표님 보러 오셨어요?”소원은 황진수의 열정에 살짝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아니요.”황진수는 소원이 들고 있는 남성용 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친구가 홍콩에 있어서요.소원이 설명했다.“아 그래요?”황진수의 말투에서 실망이 묻어났다. 소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황진수가 입을 열었다.“소원 씨, 우리 대표님 좀 보러 가주실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808화

    소원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소원이 언짢은 표정으로 취객과 함께 온 사람을 바라봤다. 동행한 사람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연신 이렇게 말했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술에 취해서 그렇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주석훈은 동행자의 태도가 좋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얼른 데리고 올라가요.”취객이 여전히 중얼거리며 말했다.“음냐... 맛있다. 음냐...”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주석훈이 여전히 앞에 서서 그들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소원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가 걱정되어 이렇게 말했다.“주 변호사님, 상처 아무래도 소독해야 될 것 같은데요.”주석훈이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성가실 필요는 없어요.”소원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치료해요. 어차피 지금 병원이잖아요. 상처 처리하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주석훈은 소원의 권고에 치료하러 향했다. 간호사가 바쁘다 보니 한참 기다려서야 소독할 수 있었고 치료를 마쳤을 땐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주석훈이 다시 휠체어를 밀어주려는데 소원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변호사님, 저는 괜찮아요. 이제 휠체어 안 타도 돼요. 다 나았는데 앉아 있으려니까 낯 간지럽네요.”주석훈은 소원의 상태가 확실히 괜찮아 보이자 휠체어에 앉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더니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당황한 기색의 간호사 두 명이 토론하는 게 들렸다.“너 그거 알아? 큰일 났대.”“무슨 일?”“아까 실려 온 환자가 있는데 혈액 검사를 해보니 에이즈래. 그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전부 검사받아야 한다던데?”“뭐? 접촉한 사람은 다 받아야 한다고? 그런 병이 있다고 직접 밝히진 않았나 보지?”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환자는 병원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소수의 환자가 병을 속여서 혈액으로 감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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