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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말을 끝낸 이준혁은 윤혜인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임세희를 안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뒤따라가던 송소미는 바닥에 쓰러진 윤혜인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허튼 기대는 이제 그만 넣어둬. 넌 하수구 안에서 살고 있는 쥐에 불과해. 우리 세희 언니의 발 뒤꿈치도 못 따라간다고.”

송소미의 거친 말에도 윤혜인은 전혀 들리지 않는듯 멀어져가는 이준혁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윤혜인은 저렇게까지 긴장한 이준혁의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이준혁은 그녀에게 마음을 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검은색 벤틀리는 빠른 속도로 윤혜인 앞을 지나쳤고 윤혜인은 아랫배가 점점 더 아팠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다급하게 배를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야…”

이때, 윤혜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소원은 그녀에게 차가 막혀서 주차장에서 나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점점 더 심해지는 고통에 윤혜인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 앞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웠기에 윤혜인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몸으로 이준혁의 차를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윤혜인은 그녀 앞을 지나치는 차를 보며 힘겹게 다가가 온 힘을 다해 차 뒤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향해 나서는 검은색 벤틀리는 주인처럼 매정했다.

윤혜인은 우두커니 서서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점점 더 강해지는 아랫배의 통증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배를 꼭 끌어안았다.

“아가야,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 말렴…”

한편, 병실 안에서.

의사가 임세희에게 정밀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이준혁은 병원 복도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사모님은 못 찾았습니다. 아마도 이곳을 떠나신듯 합니다.”

전화기 너머 주훈이 솔직하게 전했다.

“알았어.”

전화를 끊은 이준혁 머릿속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윤혜인밖에 없었다. 임세희 상처를 확인하기 급급했던 이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윤혜인을 밀쳐버린 것이다.

그의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리 세게 밀치지도 않았고 외상도 없어 보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가 많이 고통스러워 한 것 같았다.

주훈이 그녀를 못 찾았다는 건 그녀가 멀쩡하다는 뜻 아닐까?

이준혁은 왠지 자꾸 짜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머릿속에는 윤혜인의 붉어진 눈시울과 눈물범벅이 된 얼굴만 계속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이준혁은 임세희를 다치게 한 윤혜인을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윤혜인과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녀는 선을 넘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윤혜인은 남편인 이준혁에게 투정을 부린 적도 없었고 과한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어쩌면 이번 일은 의외의 사고였을 수도 있다.

만약 정말 사고였다면 임세희는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준혁은 병실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병실로 들어섰다. 여전히 흐느끼고 있던 임세희는 이준혁을 발견하자마자 그를 와락 끌어안았고 그 순간, 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이준혁은 이런 스킨십이 싫었지만 그녀의 다친 팔을 발견하자 매정하게 밀어낼 수가 없어서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좀 괜찮아졌어?”

이준혁이 물었다. 분명히 그녀를 걱정해서 묻는 말이지만 임세희는 왠지 이준혁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이제 많이 아프지는 않아.”

임세희가 고개를 든 채 글썽이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세희야, 어떻게 된 거야?”

이준혁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가벼웠지만 임세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윤혜인 씨가 좋은 마음으로 날 도와주려고 휠체어를 밀었던 건데 내 생각엔 휠체어가 고장 나서 넘어졌던 거 같아. 준혁 오빠, 윤혜인 씨 탓 아니야. 너무 미워하지 마.”

임세희가 자책을 하며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얘기를 다 들은 그제서야 그녀를 바라보는 이준혁의 눈빛이 조금 따듯해졌다.

그가 조금 전에 왜 임세희를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준혁은 임세희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슬쩍 그의 허리를 안고 있는 임세희의 손에서 벗어났다.

“일찍 쉬어.”

은은한 불빛에 비춰진 이준혁의 외모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완벽했고 임세희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 뒤, 환하게 웃고 있던 임세희는 이준혁이 병실을 나서자마자 표정이 사악하게 변했다.

이준혁이 그런 천박한 계집애 때문에 그녀를 의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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