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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이내 빠르게 표정 관리를 한 임세희가 곁에 있던 송소미를 보며 말했다.

“소미야, 내가 식당에 가방을 두고 온 거 같아.. 혹시 가서 확인 좀 해줄 수 있을까?”

송소미는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임세희의 말에 윤혜인을 죽일 듯이 째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송소미가 떠나자 임세희가 윤혜인을 보며 환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윤혜인 씨, 그동안 저 대신 준혁 오빠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간단한 말 한마디로 임세희는 이준혁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하게 표시했다. 윤혜인은 임세희의 인사 말을 들으며 너무 아이러니했다.

분명 이준혁의 아내는 윤혜인 그녀인데.

임세희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전에는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작은 모순이 생겼다고 해외로 도망가버렸거든요. 근데 준혁 오빠가 지금까지 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진짜 너무 감동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돌아온 김에 준혁 오빠랑 결혼할 생각이에요.”

이 순간, 임세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흐릿하게 들렸다. 윤혜인은 심장이 너무 아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이준혁은 벌써 임세희와 결혼하고 싶은 건가?

“윤혜인 씨, 윤혜인 씨?”

임세희의 부름에 윤혜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네, 임세희 씨.”

임세희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윤혜인을 보며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윤혜인에게 건넸다.

“윤혜인 씨, 저희 번호 주고받을까요? 준혁 오빠가 저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데 저도 오빠한테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나중에 윤혜인 씨 도움도 필요할 것 같고.”

윤혜인은 번호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간절하게 바라는 임세희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호를 받은 임세희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윤혜인 씨, 혹시 저를 저쪽까지 밀어줄 수 있을까요?”

고개를 끄덕인 윤혜인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살짝 밀었지만 휠체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잡이를 누른 채 허리를 숙여 혹시 어디에 걸린 건지 확인하려고 했고 고개를 숙인 순간, 임세희가 갑자기 윤혜인의 팔을 꽉 꼬집더니 차갑게 웃으면서 물었다.

“윤혜인 씨, 2년 동안 제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면서 행복했나요?”

임세희의 말에 윤혜인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다음 순간, 멈춰 있던 휠체어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 윤혜인 씨!”

임세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가 윤혜인의 이름을 불렀고 빠르게 굴러가던 휠체어는 그대로 뒤집어졌다.

화들짝 놀란 윤혜인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임세희를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임세희는 이미 휠체어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임세희가 바닥에 쓰러졌고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희야!”

윤혜인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옆으로 확 밀쳤고 윤혜인은 휘청거리다가 옆에 있던 난간에 부딪쳤다. 순간 무릎인지 아랫배인지 모를 곳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준혁 오빠, 나 너무 아파..”

임세희는 이준혁의 품에 기댄 채 가녀린 모습으로 흐느꼈다.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렀고 표정도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눈살을 확 찌푸린 이준혁이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임세희의 상처를 확인했고 자신이 밀쳐버린 윤혜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윤혜인은 그런 이준혁을 보며 심장이 너무 답답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준혁 오빠, 제가 봤어요! 저 미친 여자가 세희 언니를 밀어버린 거예요!”

식당에서 나오던 송소미가 윤혜인을 가리키며 이준혁에게 고자질을 했다. 솔직히 그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윤혜인을 괴롭히고 싶었다.

그 순간, 이준혁이 고개를 홱 돌려 윤혜인을 빤히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는 언짢음이 가득했다.

그의 눈빛에 윤혜인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마음속에 작은 기대를 품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그런 게 아니…”

“그만해!”

이준혁이 매정하게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고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세희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한마디로 윤혜인은 완벽한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 마음속에 있던 일말의 기대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윤혜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스웠다. 윤혜인 그녀는 이준혁에게 있어서 이런 악독한 짓도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온몸이 얼음장 마냥 차가워진 윤혜인은 덜덜 떨고 있었고 이 순간, 몸과 마음 중 어떤 게 더 아픈지 너무도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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