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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준혁의 건장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윤혜인을 그대로 스쳐갔다.

그녀를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윤혜인은 이준혁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던 임세희였다.

윤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택시에 탄 윤혜인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목적지를 묻는 택시 기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거긴 이제 곧 그녀의 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참 고민하던 윤혜인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청월 아파트로 가주세요.”

청월 아파트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나서 구매한 집이었다. 그때 당시 그녀는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 위해 할부로 산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준혁이 큰 별장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그녀가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윤혜인은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잠시 바람을 쐬었다.

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있었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

2년, 700일이 넘는 낮과 밤들, 그 마음이 아무리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녹았을 텐데, 지금 그녀의 귓가에는 비웃음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비웃고 있었다.

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윤혜인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기대고 서있는 이준혁을 발견했다.

옷소매를 거둔 이준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서, 기다란 목과 섹시한 쇄골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냈다.

윤혜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임세희와 함께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고 이준혁은 정장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손은 주머니에 넣고 윤혜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화는 왜 안 받아?”

이준혁은 많이 피곤한 듯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그의 말에 윤혜인이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얼떨결에 무음 모드를 눌러 버렸던 것이다.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와 있었고 전부 이준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2년 동안 함께 하면서 이준혁이 그녀를 찾기 위해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한 건 처음이다.

예전의 윤혜인이라면 지금쯤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뻐하고 뿌듯했을 것이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도로 가방에 넣더니 벽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들었어요.”

이준혁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살짝 짜증난 듯 말했다.

“널 두 시간 동안이나 찾아다녔어.”

임세희를 병원에 데리고 간 뒤 집으로 돌아와보니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윤혜인이 보이지 않자 이준혁은 심지어 주훈에게 윤혜인이 회사에서 나와서 어디로 갔는지 길가의 CCTV까지 확인하라고 시켰다.

윤혜인이 이렇게 그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청월 아파트로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 나에게 얘기를 하고 가. 가자.”

이준혁은 돌아서서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말은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윤혜인은 남자의 건장한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아쉬움과 욕심이 생겼다.

앞으로… 그들 두 사람에게 앞으로의 날들이 남아있긴 할까?

이준혁은 고개를 돌려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윤혜인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안아주기를 기다리는 거야?”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윤혜인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이준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준혁 씨, 우리 이제 그만 이혼해요.”

“무슨 뜻이야?”

이준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고 윤혜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 청월 아파트로 이사 올 거예요. 어차피 저희는 곧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가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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