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의 건장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윤혜인을 그대로 스쳐갔다.그녀를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윤혜인은 이준혁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던 임세희였다.윤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택시에 탄 윤혜인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목적지를 묻는 택시 기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거긴 이제 곧 그녀의 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한참 고민하던 윤혜인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청월 아파트로 가주세요.”청월 아파트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나서 구매한 집이었다. 그때 당시 그녀는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 위해 할부로 산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준혁이 큰 별장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그녀가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윤혜인은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잠시 바람을 쐬었다.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있었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2년, 700일이 넘는 낮과 밤들, 그 마음이 아무리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녹았을 텐데, 지금 그녀의 귓가에는 비웃음 소리만 들렸다.그 소리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비웃고 있었다.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윤혜인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기대고 서있는 이준혁을 발견했다.옷소매를 거둔 이준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서, 기다란 목과 섹시한 쇄골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냈다. 윤혜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임세희와 함께 하고
윤혜인이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 같았다.“관계? 윤혜인, 네가 보기엔 우리가 어떤 관계 같은데?”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고 이 남자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렇다, 처음부터 이준혁의 태도는 확실했다. 두 사람은 계약 결혼으로 절대 사사로운 감정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눈에 그들은 단지 직원과 상사의 관계였다.이준혁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골든 싱글이었고, 그와 결혼하고 싶은 규수들은 줄을 설 정도였다.이준혁이 이렇게 묻는 건 그녀에게 절대 달라붙지 말라고 얘기인가?아랫입술을 꽉 깨문 윤혜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청월 아파트에 오지 마세요.”말을 끝낸 윤혜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10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인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그녀는 손을 놓을 준비를 해야 했다.계속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살 수는 없었다.복도의 센서등이 꺼지고 켜졌다를 반복했고 이준혁은 실눈을 뜬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온몸에서는 위험하다는 시그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투정을 받아줄 수가 있지만 이번에는 실로 선을 넘은 것이다!타오르던 분노는 윤혜성의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본 순간, 사르르 녹아버렸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혹시 송소미 때문이라면…”“그 여자랑 상관없어요. 이 대표님, 그만 돌아가세요.”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건 송소미 한 사람뿐만은 아니다.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을 지나쳐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억지를 부리는 윤혜인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 이준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윤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억지 그만 부려.”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리더니 윤혜인을 돌려세운 뒤, 그
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게… 저.. 무서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괜찮아요.”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래.”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옷은 왜 벗는 거예요?”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그녀는 거울속에 비친 수려한 이준혁의 외모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자꾸 설렜다.이준혁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욕심이 생겨서 이준혁을 놓아주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린 뒤, 윤혜인은 거울 속의 이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렸고 그녀 가까이에 서있던 이준혁은 화장대에 손을 걸치더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감사 표시는 어떻게 할 건데?”그의 말에 윤혜인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예전에 그녀는 항상 몸으로 감사 표시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두 사람은 곧 이혼할 거니까!거울속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혁을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준혁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갑자기 윤혜인의 턱을 살짝 잡더니 고개를 돌리고 사나운 얼굴로 경고를 했다.“앞으로 그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모든 남자가 나처럼 신사적인건 아니야.”윤혜인은 그녀의 이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를 것이다. 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움직이지 마.”그렇게 두 사람은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꺼풀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이준혁은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이건 벌이야.”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윤혜인은 화가 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이때, 이준혁의
임세희의 손길이 이준혁의 허리에 닿은 순간 이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임세희의 손은 그렇게 허공에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이준혁을 쳐다보았다.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손을 거둔 임세희는 몰래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준혁 오빠, 내가 싫어?”“아니, 괜한 생각하지 마.”이준혁이 임세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내가 지금 오빠에게 짐이 됐다는 걸 알아… 아무래도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임세희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고 이준혁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임세희의 어개를 꼭 잡더니 그녀를 위로했다.“그런 말 하지 마! 난 끝까지 너를 지켜줄 거야.”“준혁 오빠, 난 오빠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임세희는 이준혁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한참 뒤, 임세희가 깊은 잠에 빠지고 나서야 이준혁이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실 문이 닫히던 순간, 곤히 잠든 줄 알았던 임세희가 두 눈을 번쩍 떴다.조금 전, 임세희는 이준혁에게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아주 은은한 향이기는 했지만 임세희는 여자의 향수라는 걸 바로 확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혁 오빠 곁에는 염치없이 끼어든 윤혜인 말고는 다른 여자가 없다.임세희는 이를 꽉 깨물었고 화가 잔뜩 난 탓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이 복수를 할 것이다. 언젠가 윤혜인 그 여자 눈에 피눈물이 나게 만들 것이다.한편, 병원에서 나온 이준혁이 차에 타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청월 아파트로 가.”이준혁은 넥타이를 풀어 던진 채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피곤한 듯 대답했다.한참 뒤, 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준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눌렀다.안방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윤혜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끈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조금 야릇한 모습이었다
소원은 남자친구 몰래 윤혜인에게 숫자 17을 그렸고 그녀의 손짓을 본 윤혜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원의 손짓은 이 남자가 그녀의 어장에 들어온 열일곱 번째 물고기라는 뜻이었다.“우리 원이가 저한테 혜인 씨 얘기를 자주 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미인인 줄 몰랐네요. 만나서 반가워요.”김재성이 손을 뻗어 윤혜인과 악수를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말을 하면서 그녀를 이리저리 훑는 김재성이 눈빛에 왠지 모르게 불편했지만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했다.김재성은 악수를 한 뒤, 손을 거두면서 실수인 척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고 순간, 윤혜인은 소름이 쫙 돋았다.윤혜인이 급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김재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소원과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한참 뒤, 식사를 하던 도중에 김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룸에 둘만 남게 되자 소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혜인아, 너 괜찮아?”윤혜인은 소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준혁과의 일에 관해 소원에게 숨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알아주는 상류 명문 가문이기에 임세희에 관한 일은 소원이 윤혜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대답을 하려던 찰나, 윤혜인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헛구역질을 하던 윤혜인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뒤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헤헤, 오늘밤에는 무조건 따먹을 거야. 정 안 되면 술을 많이 먹이지 뭐. 젠장,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그래. 멍청한 여자가 계속 잠자리를 거부해. 약을 타볼까 고민중이야. 그리고 절친이라고 데려온 여자가 있는데 엄청 예뻐. 둘을 한꺼번에 잘 수 있으면 완벽한데. 나중에 침대에서 사진도 좀 찍고 동영상도 찍어서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즐겨야지. 그땐 반항도 못할 걸?”그 뒤의 말은 더 역겨운 말들이었고 조용히 듣고 있던 윤혜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김재성은 윤혜인을 발견하자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거들먹거렸다.“
김재성의 공격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윤혜인은 태연하게 몸을 슬쩍 돌려 피했고 헛방을 날린 김재성은 바닥에 흘린 오디 주스를 밟고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나 이를 꽉 깨물며 욕을 퍼부었다.“어디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찾아 나선 소원은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윤혜인이 설명하려고 할 때, 김재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소원아, 혜인 씨가 내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내가 안 줬거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내 몸에 주스를 뿌렸어…”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비참한 모습으로 일어나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윤혜인은 그런 김재성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리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김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소원아, 난 너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혜인 씨를 거절한 건데…”“웩! 웩… 웩!”김재성의 말은 윤혜인의 헛구역질 소리에 끊겨버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하던 말 계속 하세요.”윤혜인이 입을 막으며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김재성은 화가 났다. 갑자기 말이 끊긴 바람에 조금 전의 북받쳐 오르던 감정을 잃은 그는 말을 길게 할 수도 없었다.“소원아, 넌 날 꼭 믿어줘야 돼.”“재성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소원은 김재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사랑스럽게 웃었고 김재성은 이내 의기양양했다. 이 방법은 모든 여자에게 먹혔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절친이라고 해도 남자가 끼어들면 그 우정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김재성의 눈에 소원은 그저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바보일 뿐이다. 김재성이 손을 뻗어 소원을 안으려고 한 찰나, 소원이 무릎으로 그의 아랫도리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순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 김재성은 기름에 튀
소원은 이런 결정을 내린 윤혜인이 대견했다. 이준혁의 인간 관계는 너무 복잡했기에 소원은 윤혜인이 혹시라도 다치게 될까 봐 오래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넌 진작에 정신을 차려야 했어. 맨날 이준혁의 잔심부름이나 하고, 그게 뭐야! 넌 얼굴도 예쁘고 실력도 강하고.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디자인했던 작품은 상까지 받았잖아! 이산 그룹을 떠나면 네 앞날이 휘황찬란할 거야.”예전에 윤혜인이 이준혁을 많이 사랑하고 있을 때 소원은 그녀에게 상처가 될까 봐 할 수 없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윤혜인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고 제대로 마음먹었다고 하니 소원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그거 알아? 한구운이 돌아왔대! 대학교 다닐 때 너랑 구운 선배는 완전 선남선녀였잖아.”“선배님이 귀국했다고?”윤혜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그래, 너 한구운 선배 인스타 팔로우 안 했어? 구운 선배는 지금 주식 투자계의 다크호스야. 어마어마할 정도로 유명해졌다고.”윤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이준혁에게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소원 말고는 연락하는 동창이 거의 없었다.사실 난 그때 너와 구운 선배가 잘 되길 바랐거든. 한구운 선배가 너보다 2년 선배이긴 하지만 너에게 진짜 잘해줬어. 내가 부러울 정도였다니까.”“이상한 얘기하지 마. 구운 선배는 성격이 다정해서 모든 사람에게 잘해줬어.”윤혜인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녀는 그때 당시 한구운은 그저 학생 회장으로써 신입생에게 신경을 조금 더 많이 쓴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은 윤혜인이 이런 쪽에 둔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에이그, 바보 같은 계집애.”“육경한 씨가 돌아왔다고 들었어.”윤혜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육경한은 소원과 약혼을 했던 사이지만 갑자기 육경한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서 소원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은 것이다.이준혁과 육경한은 꽤 친한 사이였기에 육경한이 귀국한 뒤로부터 두 집안은 비즈니스 합작이 유난히 잦았다.소원의
소원은 육경한이 그렇게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결국 남자는 활이 이미 당겨진 상태라면 멈추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신체적인 변화는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소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는 더 이상 손발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고 꽤나 얌전하게 행동했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별장에 도착하자 소원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육경한의 손에 손목이 잡혀 멈춰야만 했다.육경한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너를 봐줬는데 너는 나 안 도와줄 거야?”소원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줘? 설마 차 안에서 또 하려는 건 아니지?”“아니야.”육경한은 단호하게 부정하며 말했다.“내 방패가 돼 달라는 거야.”소원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사이 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을 품에 안아 올렸다.그러자 소원은 육경한의 품에 움츠러들었고 그가 그녀에게 덮어준 재킷이 적당히 민망한 것을 가려주었다.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했다.소원은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기에 그를 자극하면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남자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간 후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았다.쿵 소리가 나며 소원은 부드러운 침대에 깊이 파묻혔다.“뭐 하는 거야!”놀란 소원이 외쳤고 육경한은 몸을 숙여 그녀를 눌렀다.“숙제 계속해야지.”소원은 몸부림쳤다.“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남자는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피를 빨아낼 듯 굶주려 있었다. 소원은 찌릿찌릿한 통증을 느꼈다.“차 안에서는 안 한다고 했지. 집에서는 안 한다고는 안 했어.”그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후 모든 말은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사라졌다.지칠 대로 지친 소원은 그만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육경한
육경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옅게 미소 지었다.“넌 내 아내야. 아내랑 하는데 무슨 수단이 필요하겠어?”그는 소원의 부드러운 몸을 따라 손길을 내려보내며 신중하게 그녀의 모든 민감한 부분을 자극했다.두 사람의 몸은 이미 한 번 완벽히 맞아 들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지난번 그 불꽃 같은 밤 이후, 이 감정은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다.육경한은 그녀의 몸을 자기 몸처럼 잘 알고 있었다.어디를 만지면 그녀가 민감해질지, 어디를 자극해야 몸이 반응할지, 육경한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소원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당... 당신 진짜 미쳤어! 이 손 치워!”하지만 육경한은 그녀의 거칠게 반항하는 모습조차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곧 그는 소원의 목덜미로 입술을 가져가 부드럽고 달콤한 숨결을 불어넣었다.“불편해?”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으며 그녀의 목을 가볍게 흡입했다.잠시 후, 육경한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눈앞에 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정말 불편해?”소원은 그의 손가락 끝에 맺힌 흔적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무슨 병 있는 거 아니야?!”육경한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더욱 흐뭇해했다.“그래, 맞아. 난 너한테만 병이 있어.”그는 속으로 말했다. 그건 그리움의 병이었고 밤마다 소원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는 병이었다.소원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뼛속까지 각인된 병이었다.육경한은 늘 후회했다.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얻어 소원에게 더 잘 대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소원은 육경한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그건 누구라도 반응했을 거야. 착각하지 마.”그녀는 애써 무심한 척하며 육경한의 행동에 기가 차 웃음을 흘렸다.“뭐 이런 거로 잘난 척하는 거야? 차라리 클럽에 가서 남자 찾는 게 낫겠다. 그 사
소원이 이렇게 말하자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에 한층 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알잖아. 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그가 방민아와 결혼했던 건 단지 소원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마음 때문이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방씨 가문에 대한 미련은 이미 오래전에 끊어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죄책감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육경한은 방씨 가문의 구세주가 아니다.그 멍청하고 생각 없는 남매를 계속 뒤치다꺼리해줄 이유도 없었다.그가 방민아를 무시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하지만 방민아는 변해 있었다.사랑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뀌는 걸까?누군가는 스스로 치유의 길을 선택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다.결국 방민아와 육경한은 닮아 있었다.둘 다 사랑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존재들이었다.소원은 천천히 육경한을 올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그렇겠지. 당신은 정이 없는 대신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잖아. 도처에 널린 것들에겐 아무런 도전심이 안 들겠지.”그 말에 육경한의 눈빛이 번뜩였다.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는 오늘만큼은 감정을 억누르고 소원의 말을 받아넘기려 했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육경한의 신경을 건드렸다.“그래, 맞아.”그는 낮은 목소리로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난 가시 돋친 걸 좋아하거든.”이와 동시에 그는 손을 들어 소원의 턱을 붙잡아 고정시켰다.“그래서 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거야.”소원이 몸을 비틀며 불쾌한 듯 외쳤다.“이 손 놔!”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읍...!”소원은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육경한은 소원의 반항을 가볍게 제압했고 손놀림 하나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그의 손이 피부 위를 스치자 소원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그녀는 육경한의 입술을 물었고 겨우 두 마디를 뱉었다.“이...
소원은 육경한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적어도 그녀를 질책하거나 화를 낼 줄 알았으니 말이다. 아니면 무언가 벌이라도 내릴 줄 알았는데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평온했다.마치 정말 단순히 소원을 데리러 온 것처럼 보였다.사실 방민아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육경한이 그녀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소원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그저 방민아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고 싶었을 뿐이다.육경한은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소원도 거부하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는 오늘 육씨 가문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운전기사가 앞 좌석에 앉아 차를 몰았고 두 사람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남녀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벽이 존재했다.오랜 침묵 끝에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네가 맞췄어. 네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난 막지 않았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영상을 방현수에게 넘겨줄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소원이 그 영상을 터뜨리지 않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가 있었다.왜냐하면 만약 영상이 퍼지면 방씨 가문과 밀접하게 협력하는 미우 그룹이 연루될 것이 분명했고 육연주처럼 가까운 가족도 휘말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너무 많은 문제를 동반한 일이었다.하지만 그는 도박에 졌다.소원의 마음속에는 육경한을 위한 단 1%의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미우 그룹 또한 그녀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왜 그 사람들의 죄악을 덮어주고 그들이 편히 살게 둬야 하지?”그날의 치욕을 떠올리자 소원은 눈빛이 붉게 물들었고 온몸이 떨렸다.“몇 번이나! 당신들 눈엔 다른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 거야?”“다른 사람은 나와 상관없어.”육경한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잘생긴 얼굴에는 얼음 같은 무표정만이 드리워졌다.소원은 그가 이제서야 그녀를 질책할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기다렸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하지만 이번엔 네가 있어서, 난 그냥 두 눈을 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정말 알고 있는 걸까? 경한 씨가 정말... 알고 있는 걸까?’방민아의 눈빛이 흔들렸다.그가 방씨 가문에게 단 하나의 숨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몰아세우면 결국 방씨 가문과 육경한은 물고 물리는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처음으로 방민아는 육경한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 그런데 그를 이렇게까지 몰랐던 걸까?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경찰서를 벗어나기 전, 방민아는 다시 경찰에게 불려갔다.그녀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변호사의 손을 붙들고 애원했다.“아빠한테 말해주세요. 절 구해달라고요. 육경한은 믿으면 안 돼요. 절 꼭 구해야 해요. 들어가기 싫어요. 하루라도 안 돼요!”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결과였다. 방씨 가문과 육씨 가문이 완전히 갈라서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것.결국 방씨 가문은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육경한의 수완으로 보아 방씨 가문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건 시간문제였다.그렇게 되면 방민아와 방민기를 보호하던 방패막이 무너질 것이고 그들은 마침내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소원이 공개한 영상은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어 방민아와 방민기의 악행을 세상에 폭로하도록 촉구하고 있었다.경찰에게 끌려가던 방민아는 육경한 옆을 지나치며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육경한, 저 여자가 한 말이 정말이야? 이미 원본 영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네가 그걸 이용해 우릴 협박한 거야? 당신이 어떻게 우리 집에 이럴 수 있어!”그녀는 이성을 잃은 듯 울부짖었다.“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데... 얼마나 사랑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육경한, 당신은 정말 마음도 없는 거야?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야!”아무리 울고 불며 소리를 질러도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는 멀리 서 있는 소원을 바라보며 그녀를 이해하
방민아는 육경한이 온 것을 보고 소원의 계획을 전혀 모른 채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생각했다.마음속에 작은 기대감이 솟아나자 그녀는 눈을 굴리며 결심했다.반드시 육경한의 앞에서 이 여자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소원이 얼마나 악랄하고 비열한지 깨닫게 해야 한다고.“넌 경한 씨를 이용하고 있어. 결혼한 것도 경한 씨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지? 네 힘만으로는 방씨 가문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경한 씨와 결혼하지 않으면 경한 씨가 너에게 마음을 놓지도, 네 행동을 그냥 두고 보지도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방민아가 소원을 향해 매섭게 쏘아붙였다.“그래서 어쩌라고?”소원은 그녀의 말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방민아는 갑자기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웃어댔다.“하하하하... 이제 알겠어. 넌 경한 씨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하고 있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를 갈라놓고도 넌 그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잖아! 그거 알아? 경한 씨가 네 자식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했다는 거.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 자식은 평생 가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빨리...”문득 말을 멈춘 방민아는 자신이 말실수를 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하마터면 자신의 악행을 자백할 뻔했던 것이다.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무슨 차이가 있을까? 소원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방민아가 한 짓으로 단정하고 있었다.그녀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육경한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원이 그를 이렇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육경한이 이런 말을 듣고도 충격을 받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분명히 마음속에 큰 상처가 생길 것이고 그러면 육경한은 더 이상 소원이 이렇게 제멋대로 굴게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적어도 방민아는 이렇게 생각했다.“네 말이 맞아.”소원은 그녀를 보며 간단히 인정했다.“내가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게 뭐가 어때서?”방민아는 소원이 이렇게 쉽
마치 과거에 소원이 육경한을 상대하던 방식을 똑같이 돌려받고 있는 듯한 상황이었다.방민아는 의심스러웠다.‘이 여잔 정말 이 세상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나?’“넌 그럴 리 없어. 이런 일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거야. 네 아이도 장차 그걸 알게 될 텐데 정말 부끄럽지 않아?”방민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네 아이의 엄마가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네 아이를 비웃지 않을 거라 생각해?”그러나 소원이 대답 대신 터뜨린 것은 거침없는 웃음이었다.“하하하하하...!”그 웃음소리는 광기 어린 울림이었고 방민아는 본능적으로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웃지 마! 이 미친 여자야, 네 웃음소리 소름 끼친다고!”방민아가 소리쳤지만 소원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방민아, 당신 말이 너무 우스워서 그래. 내가 부끄러워야 한다고? 당신은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지?”소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갔다.“내가 왜 부끄러워야 하지? 내 아들이 왜 부끄러워야 하지?”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내가 맞고 약을 먹고 힘을 잃었던 게 부끄러운 일이야? 내가 힘이 부족하고 권력이 없으며 당신들처럼 배경이 좋지 않은 게 내 잘못이야?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고 모욕을 받아야 하는 거야?”소원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정말로 부끄러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봐. 당신들이 그렇게 잘 보관하던 영상... 그 조회 수가 얼마인지 알아?”잠시 숨을 고른 뒤, 소원이 단호하게 말했다.“1억! 조회 수가 1억이야!”그녀는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1억 명의 네티즌에게 판단을 맡겨보자고. 누가 부끄러워야 하는지. 사람들이 공정하게 답을 줄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겠는데 설령 이번에도 운명이 나를 돕지 않는다 해도 나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 부끄러운 건 내가 아니라 병든 세상이니까.”소원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렷이 발음하며 덧붙였다.“그리고 내 아들
방민아의 초조한 기색은 고스란히 소원의 눈에 들어왔다.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말했다.“방민아, 육경한이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친 사람이야. 나 같은 미친 사람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이 미칠 필요가 있을까?”“경한 씨가 네가 이런 짓을 하는 걸 가만둘 리 없어.”방민아는 육경한이 그녀를 방치할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만약 가만히 둔다면 그것은 곧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원은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이 날 막든 말든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어.”“너 진짜 미쳤구나?”이 순간 방민아는 소원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달았다.자신이 진짜 위험한 사람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서늘한 공포가 몰려왔다.이 여자는 자신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내가 왜 이렇게 오래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소원이 갑자기 방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맑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뭘 하려고 하는 거야?”방민아는 그녀의 눈빛에 소름이 돋으며 뒷걸음질 쳤다.이 여자가 또 무슨 충격적인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기 누가 있는지 봐.”소원이 멀리 경찰차가 멈춘 곳을 가리켰다.고개를 돌려 본 방민아의 시선에 방민기가 손이 뒤로 묶인 채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는게 보였다.“오빠...!”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삭였다.‘어떻게 이런 일이...’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원을 노려보며 물었다.“너 그날 밤 영상을 경찰에 넘긴 거야?”‘그럴 리 없어. 그 영상의 원본은 경한 씨가 직접 아빠한테 건네주며 파기했다고 하지 않았나?’방현수는 직접 나서서 육경한과 협상하며 이번 사건이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방씨 가문과의 과거 은혜 관계를 정리하고 완전히 남남이 되기로 했다고 했었다.방씨 가문이 미우 그룹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은혜는 육경한을 평생 얽매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방현수가 그렇게 한 이유도 단순히 방민아
방민아는 경호원의 말을 듣고 폭발하려던 감정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그렇다. 자신이 이런 여자의 몇 마디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예전의 방민아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자제력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난 멍청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과 달라. 계속 이미지를 망칠 순 없어.’그녀는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부드럽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소원 씨, 두고 봐요. 소원 씨도 곧 이 안에 들어가서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게 해줄 테니까.”소원은 웃으며 물었다.“그 전에 소송은 다 끝났어요? 그렇게 대단하면 민아 씨 일부터 해결하지 그래요?”방민아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내가 무슨 소송에 얽혀 있다는 거예요? 이번 일은 나랑 아무 상관없어요. 이미 누군가 대신 책임졌으니까 소원 씨도 날 함부로 모함할 생각은 하지 마요.”소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정말 아무 상관도 없다고요? 그럼 밤에 잠은 잘 와요? 지난 세월 동안 민아 씨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쳐놓았는지 생각해 보면서도요?”순간 방민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원은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가식적인 얼굴을 벗겨낼 거야.”그 순간 방민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원에게 완전히 기세가 눌렸음을 깨달았다.하여 어쩔 수 없이 계속 물러서기만 했다.“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소원은 천천히 방민아에게 다가갔다.그녀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방민아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방민아, 당신도 알다시피 난 몸이 좋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그건 바로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벌을 받게 만드는 거야.당신은 절대 내 아이를 건드렸어서는 안 됐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건드렸으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방민아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소원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