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
이준혁의 건장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윤혜인을 그대로 스쳐갔다.그녀를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윤혜인은 이준혁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던 임세희였다.윤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택시에 탄 윤혜인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목적지를 묻는 택시 기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거긴 이제 곧 그녀의 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한참 고민하던 윤혜인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청월 아파트로 가주세요.”청월 아파트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나서 구매한 집이었다. 그때 당시 그녀는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 위해 할부로 산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준혁이 큰 별장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그녀가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윤혜인은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잠시 바람을 쐬었다.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있었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2년, 700일이 넘는 낮과 밤들, 그 마음이 아무리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녹았을 텐데, 지금 그녀의 귓가에는 비웃음 소리만 들렸다.그 소리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비웃고 있었다.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윤혜인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기대고 서있는 이준혁을 발견했다.옷소매를 거둔 이준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서, 기다란 목과 섹시한 쇄골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냈다. 윤혜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임세희와 함께 하고
윤혜인이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 같았다.“관계? 윤혜인, 네가 보기엔 우리가 어떤 관계 같은데?”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고 이 남자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렇다, 처음부터 이준혁의 태도는 확실했다. 두 사람은 계약 결혼으로 절대 사사로운 감정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눈에 그들은 단지 직원과 상사의 관계였다.이준혁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골든 싱글이었고, 그와 결혼하고 싶은 규수들은 줄을 설 정도였다.이준혁이 이렇게 묻는 건 그녀에게 절대 달라붙지 말라고 얘기인가?아랫입술을 꽉 깨문 윤혜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청월 아파트에 오지 마세요.”말을 끝낸 윤혜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10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인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그녀는 손을 놓을 준비를 해야 했다.계속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살 수는 없었다.복도의 센서등이 꺼지고 켜졌다를 반복했고 이준혁은 실눈을 뜬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온몸에서는 위험하다는 시그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투정을 받아줄 수가 있지만 이번에는 실로 선을 넘은 것이다!타오르던 분노는 윤혜성의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본 순간, 사르르 녹아버렸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혹시 송소미 때문이라면…”“그 여자랑 상관없어요. 이 대표님, 그만 돌아가세요.”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건 송소미 한 사람뿐만은 아니다.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을 지나쳐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억지를 부리는 윤혜인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 이준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윤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억지 그만 부려.”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리더니 윤혜인을 돌려세운 뒤, 그
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게… 저.. 무서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괜찮아요.”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래.”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옷은 왜 벗는 거예요?”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그녀는 거울속에 비친 수려한 이준혁의 외모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자꾸 설렜다.이준혁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욕심이 생겨서 이준혁을 놓아주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린 뒤, 윤혜인은 거울 속의 이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렸고 그녀 가까이에 서있던 이준혁은 화장대에 손을 걸치더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감사 표시는 어떻게 할 건데?”그의 말에 윤혜인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예전에 그녀는 항상 몸으로 감사 표시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두 사람은 곧 이혼할 거니까!거울속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혁을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준혁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갑자기 윤혜인의 턱을 살짝 잡더니 고개를 돌리고 사나운 얼굴로 경고를 했다.“앞으로 그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모든 남자가 나처럼 신사적인건 아니야.”윤혜인은 그녀의 이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를 것이다. 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움직이지 마.”그렇게 두 사람은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꺼풀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이준혁은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이건 벌이야.”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윤혜인은 화가 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이때, 이준혁의
임세희의 손길이 이준혁의 허리에 닿은 순간 이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임세희의 손은 그렇게 허공에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이준혁을 쳐다보았다.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손을 거둔 임세희는 몰래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준혁 오빠, 내가 싫어?”“아니, 괜한 생각하지 마.”이준혁이 임세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내가 지금 오빠에게 짐이 됐다는 걸 알아… 아무래도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임세희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고 이준혁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임세희의 어개를 꼭 잡더니 그녀를 위로했다.“그런 말 하지 마! 난 끝까지 너를 지켜줄 거야.”“준혁 오빠, 난 오빠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임세희는 이준혁의 손을 꼭 잡은 채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한참 뒤, 임세희가 깊은 잠에 빠지고 나서야 이준혁이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실 문이 닫히던 순간, 곤히 잠든 줄 알았던 임세희가 두 눈을 번쩍 떴다.조금 전, 임세희는 이준혁에게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아주 은은한 향이기는 했지만 임세희는 여자의 향수라는 걸 바로 확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혁 오빠 곁에는 염치없이 끼어든 윤혜인 말고는 다른 여자가 없다.임세희는 이를 꽉 깨물었고 화가 잔뜩 난 탓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이 복수를 할 것이다. 언젠가 윤혜인 그 여자 눈에 피눈물이 나게 만들 것이다.한편, 병원에서 나온 이준혁이 차에 타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청월 아파트로 가.”이준혁은 넥타이를 풀어 던진 채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피곤한 듯 대답했다.한참 뒤, 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준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눌렀다.안방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윤혜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끈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조금 야릇한 모습이었다
소원은 남자친구 몰래 윤혜인에게 숫자 17을 그렸고 그녀의 손짓을 본 윤혜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원의 손짓은 이 남자가 그녀의 어장에 들어온 열일곱 번째 물고기라는 뜻이었다.“우리 원이가 저한테 혜인 씨 얘기를 자주 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미인인 줄 몰랐네요. 만나서 반가워요.”김재성이 손을 뻗어 윤혜인과 악수를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말을 하면서 그녀를 이리저리 훑는 김재성이 눈빛에 왠지 모르게 불편했지만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했다.김재성은 악수를 한 뒤, 손을 거두면서 실수인 척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고 순간, 윤혜인은 소름이 쫙 돋았다.윤혜인이 급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김재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소원과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한참 뒤, 식사를 하던 도중에 김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룸에 둘만 남게 되자 소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혜인아, 너 괜찮아?”윤혜인은 소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준혁과의 일에 관해 소원에게 숨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알아주는 상류 명문 가문이기에 임세희에 관한 일은 소원이 윤혜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대답을 하려던 찰나, 윤혜인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헛구역질을 하던 윤혜인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뒤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헤헤, 오늘밤에는 무조건 따먹을 거야. 정 안 되면 술을 많이 먹이지 뭐. 젠장,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그래. 멍청한 여자가 계속 잠자리를 거부해. 약을 타볼까 고민중이야. 그리고 절친이라고 데려온 여자가 있는데 엄청 예뻐. 둘을 한꺼번에 잘 수 있으면 완벽한데. 나중에 침대에서 사진도 좀 찍고 동영상도 찍어서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즐겨야지. 그땐 반항도 못할 걸?”그 뒤의 말은 더 역겨운 말들이었고 조용히 듣고 있던 윤혜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김재성은 윤혜인을 발견하자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거들먹거렸다.“
김재성의 공격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윤혜인은 태연하게 몸을 슬쩍 돌려 피했고 헛방을 날린 김재성은 바닥에 흘린 오디 주스를 밟고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나 이를 꽉 깨물며 욕을 퍼부었다.“어디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을 찾아 나선 소원은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윤혜인이 설명하려고 할 때, 김재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소원아, 혜인 씨가 내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내가 안 줬거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내 몸에 주스를 뿌렸어…”김재성은 허리를 잡고 비참한 모습으로 일어나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고 윤혜인은 그런 김재성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리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김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소원아, 난 너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혜인 씨를 거절한 건데…”“웩! 웩… 웩!”김재성의 말은 윤혜인의 헛구역질 소리에 끊겨버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하던 말 계속 하세요.”윤혜인이 입을 막으며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김재성은 화가 났다. 갑자기 말이 끊긴 바람에 조금 전의 북받쳐 오르던 감정을 잃은 그는 말을 길게 할 수도 없었다.“소원아, 넌 날 꼭 믿어줘야 돼.”“재성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아.”소원은 김재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사랑스럽게 웃었고 김재성은 이내 의기양양했다. 이 방법은 모든 여자에게 먹혔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절친이라고 해도 남자가 끼어들면 그 우정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김재성의 눈에 소원은 그저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바보일 뿐이다. 김재성이 손을 뻗어 소원을 안으려고 한 찰나, 소원이 무릎으로 그의 아랫도리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순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 김재성은 기름에 튀
게다가 그 무녀는 족장과 심성부터 다른 사람이었다. 족장은 장생불로술에 미쳐있었지만 무녀는 주변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관념을 키워온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녀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다. 무녀는 서현재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서현재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서현재는 무녀한테 제어권을 빼앗겼을 때 이미 무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교통사고로 약간 정신을 차렸을 때, 서현재는 무녀가 아주 중요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무녀는 살아있는 것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아니나 다를까, 서현재가 무녀를 구해주자 무녀는 몰래 서씨 가문의 명령을 거역하고 약초로 서현재의 몸을 제어했다.무곡산에 올 때까지도 서현재를 데리고 있었다.서현재를 살린 것은 본인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인 것도 있었다.하지만 소원은 여전히 걱정되었다.“현재야, 네 몸 상태 괜찮은 거 맞아?”“당연하죠. 난 의사잖아요. 검사해 봤으니까 잘 알아요.”서현재는 소원을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소원은 다른 일로 많이 바빴기에 서현재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서현재는 핸드폰에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이거 봐요. 멀쩡하게 잘 살아있잖아요. 어찌 되었든 살아있으면 돼요.”“그래, 알겠어. 그럼 다음에 이 약을 전해줄게.”소원이 얘기했다.그 사람들은 서현재를 죽기 직전까지 괴롭혔다. 얼굴이 팅팅 부어올랐을 뿐만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 여전히 휴식이 필요했다.서현재는 소원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소원 누나, 괜찮아요. 내가 사람을 보내서 가져오게 할게요.”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서현재는 믿을만한 두 사람을 보내 약을 가져오게 했다.소원이 또 서현재에게 물었다.“투자금은... 어떻게 됐어?”서현재는 소원에게 긍정적인 소식만 알려주며 얘기했다.“일은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어요.”소원도 알고 있었다. 서현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소원 앞에서는 힘든 티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걸.소원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현재야,
서현재가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되살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사실 제 뇌는 독벌레에 약 1/4 정도 갉아 먹혔어요.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마 뇌성마비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 무녀가 계속 어떤 알약으로 제 생명을 유지했어요. 그 약은 이 알약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제가 정상인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나중에 제사 현장에서 저에게 알약 네 알을 먹여 뇌의 손상된 부분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봉합되어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되었어요. 두통 같은 후유증이 있긴 하지만 약을 먹은 우리 두 사람 다 상태는 괜찮아요. 하지만 유진이가 사용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먼저 한 알을 꺼내 연구해 봐야 해요.”서현재는 원래 이 말을 소원에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는 남자였기 때문에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소원이 걱정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는 소원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음이 매우 여린 사람이었다.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다.서현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마도 소원의 마음속에서 그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서현재와 함께하기로 한 이유도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뭐라고? 너의 뇌가...”소원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그제야 서현재가 그동안 겪은 일이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살아서 숨을 쉬는 순간마다 독벌레가 그의 뇌를 갉아 먹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전 괜찮아요, 누나. 불행 중 다행은 무녀가 약간의 양심이 남아 있는지 제 목숨을 완전히 빼앗아 가지는 않았어요. 그 무녀가 죽기 전에 먹인 알약 덕분에 적어도 죽지는 않았잖아요. 약간의 후유증은 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서현재가 부드러운 말투로 축 처진 소원을 위로했다.사실 무녀가 서현
보고서를 열어본 그녀는 검사 수치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상과 달리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에 들어있었다.‘그럴 리가...’그녀는 전에 위 수술을 받은 후, 일부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면서 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속에 회복 마력을 가진 마법 구슬이 있는 듯 망가졌던 신체 기능들이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완벽한 수치는 아니지만 평범한 일반인의 상태였기에 그녀는 매우 만족스러웠다.‘설마 그 알약이 정말 기적 같은 효과가 있는 걸까?’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자 소원은 바로 서현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 소리가 몇 번 울린 후에야 통화가 연결되었다.“소원 누나?”서현재의 목소리는 약간 놀란 듯했다.서현재의 신분 문제와 육경한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소원은 서현재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서현재에게 피해를 미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었었는데 이번 일은 의학을 전공하고 유전자 검사까지 연구해 본 서현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현재야, 신체검사 보고서 좀 봐줄 수 있어? 내 수치가 모두 정상이 되었어. 설마 그 알약이 정말 기적 같은 효과가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유진이도 희망이 있다는 거 아니야?”소원의 목소리는 기대에 가득 찼고 잔뜩 들떠 있었다.만약 소원 말대로라면 이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몇 알의 알약이 남아 있었기에 그 알약을 유진에게 먹여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서현재는 소원의 다급함을 알아채고 바로 대답했다.“좋아요. 보내주세요. 저희 음성채팅으로 얘기해요.”음성 채팅으로 전환한 후, 소원은 자신의 진단서를 사진으로 보내고 나서야 서현재의 건강 상태가 떠올랐다.방금 유진에게 희망이 생겼다는 기쁨에 정신이 팔려 서현재의 건강 상태를 묻는 걸 깜박했던 것이었다.“현재야, 너 몸은 괜찮아?”소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날 그녀는 룸 안에 있었고 거리도 꽤 멀었기 때문에 서현재가 그녀를 봤는지 확신할 수 없었
소원은 육경한의 마음속 응어리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일에 대해 그녀는 이미 여러 번 설명해 보았지만 소종이 다시 자살을 시도한 이후로 이 일은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금기가 되었다.그녀가 어떻게 설명하든 소종이 이 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초라한 변명은 오히려 소종에게 불공평한 일이었다.소원은 입을 굳게 다물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때 육경한이 냉소를 지으며 협의 이혼 신청서를 꺼내 침대에 던졌다.“네가 원하는 자유 줄게.”소원은 그가 협의 이혼 신청서까지 준비해 놓았을 줄은 몰랐다.남자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방의 감금도 풀린 것 같았다.하인이 올라왔을 때 뭐라 말하고 싶은데 말을 꺼내기 힘든 모양이라 소원이 무슨 일이 있냐고 먼저 물었다.“소원 씨, 대표님께서 저에게 소원 씨가 이사를 하신다고 물건을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하는 하인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전에 소원 씨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왜 갑자기 이사를 하시는 걸까?’육경한이 이미 이혼할 마음을 먹었으니 소원은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원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줄 수 없었다.아무도 그녀가 어떻게 한밤중의 꿈속에서 고통을 이겨냈는지 모른다. 병 주고 약 주는 행동은 이제 그녀를 감동하게 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절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양육권은 반드시 쟁취해야만 했다.그녀의 물건이 많지 않았기에 간단히 정리한 후 육경한에게 문자를 보냈다.[육경한, 이혼은 동의하지만 유진의 양육권은 내가 갖고 싶어. 유진이는 내가 목숨을 걸고 고통을 이겨내서 낳은 내 아이야. 나는 유진이를 만날 권리가 있어. 유진은 이미 어느 정도 사람을 기억하는 아이라고. 난 우리의 관계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아. 네가 결정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 줬으면 해.]이 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별장을 떠났다.차 안.육경한은 소원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입술을 꽉
이번 도망 사건 이후로 소원은 더 엄격히 감시를 받았다.집사는 소원이 있는 곳에서 작업자들에게 집 안팎의 모든 창문을 전부 막아 버리라고 지시했다.어디 하나 빠져나갈 틈이 없이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며칠 뒤 소원은 마침내 육경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늦은 밤, 별장에 도착한 육경한은 침대 옆에 말없이 서 있었다.그의 강렬한 시선을 느낀 소원은 침대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차갑고 잘생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악!”침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얼굴을 확인한 후 소원은 그 자리에 조각상처럼 굳어버렸고 놀란 마음을 안정시킨 뒤 급하게 입을 열었다.“육경한, 유진은 어디 있어? 네가 유진을 어디로 보낸 거야?”“네가 영원히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보냈어.”육경한이 대답했다.그 말에 소원은 온몸이 경직된 채 몇 초간 멍하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육경한에게 달려들어 물었다.“너, 우리 유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리 유진은 아직 어린아이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육경한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원의 광기 어린 표정을 보고 비웃음이 더 선명해졌다.“내가 뭘 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나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거야?”소원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육경한이 받은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정말 알 수 없었다.육경한은 낮고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유진이 괜찮아. 난 그냥 유진이를 엄마 없는 삶에 익숙해지게 훈련하고 있을 뿐이야.”소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엄마 없는 삶이라니? 너 설마 유진이와 날 떼어놓으려는 거야?”“넌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육경한이 차갑게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이곳을 떠날 기회를 줄게. 하지만 여기서 나가면 너는 평생 유진이를 다시 볼 수 없을 거야.”“육경한,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소원은 화
소원은 육경한의 새로운 비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종 씨는 어떻게 됐나요?”비서는 놀란 듯 두 눈이 동그래진 채 소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모르셨나요? 선배님은 자살미수로 인한 뇌 산소 부족으로 지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그 말을 들은 소원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믿기 어려운 사실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소종 씨가 또 자살을 시도했다고? 이럴 수가? 소종 씨는 이미 회복되었다고 들었는데, 지난번 자살 시도도 육경한의 위로 덕분에 괜찮아졌는데, 무엇 때문에 또 자살을 시도해서 이런 심각한 상황이 된 걸까?’“소종 씨가 또 자살을 시도한 건가요?”소원은 그 소식이 믿기지 않아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비서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선배님이 약을 먹었대요. 낮에는 괜찮았는데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선택을 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2분만 더 늦었으면 살아날 희망이 없었다고 하셨어요.”소원의 머릿속은 얼어붙은 것처럼 멍해졌다.그녀는 이제야 육경한이 서현재를 그렇게 미워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모든 게 설명됐다. 육경한이 소중한 가족으로 여겼던 소종이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며 생을 마감하려 하니 육경한은 끝없는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소종은 육경한을 구하려다가 절단 수술을 받았고 그 때문에 생의 희망을 잃고 자살을 시도했다.소종의 일이 이렇게 쉽게 지나갈 리 없다는 것을 눈치를 챈 소원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육경한이 오늘처럼 미친 짓을 할 것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며 내버려 두면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이 폭풍은 오래 지속할 것이다.소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길을 잃은 사람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원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결국 육경한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넌 알고 있을 거야.
유리문 밖, 서현재는 그 조폭 같은 사람들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마치 서현재를 때려죽이려는 것처럼 잔인하게 굴었다. 서현재도 고집이 세서 매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체력이 이미 바닥났는데도 그는 일어나려고 애를 쓰며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소원은 서현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소리쳤다.“육경한, 넌 이미 날 의심하고 있잖아. 내가 뭐라 해도 넌 날 믿을 생각 없잖아.”“그러니까 보여달라고. 내가 널 믿을 수 있게. 넌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육경한이 단호하게 말했다.“몰라... 난 모르겠어...”소원은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희망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분명히 일이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희 와 비가 이렇게 반복되면서 소원은 완전히 기운을 잃었다. 그녀는 자포자기하며 말했다.“차라리 날 죽여. 육경한,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나를 죽여줘...”“죽고 싶어?”육경한은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말했다. “그럼 넌 누굴 함께 데려가고 싶어?”그의 말에 놀란 소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음을 멈췄다.“첫 번째는 서현재, 그러면 두 번째는 누구지? 네가 누구와 접촉했었지? 생각해보자.”육경한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아연이? 아니면 그 여경 강민혜 씨? 아니면 숙 매니저?”육경한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소원은 잔뜩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이게 민혜 씨와 영숙 언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진아연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죽어도 싼 사람이었지만 민혜 씨와 영숙 언니는 아니잖아. 이게 그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육경한은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그 사람들과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면 나한테 죽여 달라고 말하지 말았어
육경한이 원했던 대답은 서현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서현재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틀린 대답을 했기 때문에 서현재가 다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었다.소원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점점 육경한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소원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억지로 곁에 두고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고 그녀가 아끼는 사람을 괴롭히는 이런 악순환이 정말로 그를 기쁘게 할까?말을 마친 육경한은 소원을 잡아당기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어디로 가려는 거야?”소원은 남자의 손에 끌려 휘청거리며 따라갔다.육경한은 그녀를 연회장 뒷문으로 끌고 갔다. 뒷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두꺼운 유리 너머로 밖에서 서현재를 구타하는 여러 사람이 눈에 띄었다.조폭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방금 육경한에게 아부하던 남자였다. 이 사람들도 그 남자가 불러온 모양이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서현재를 죽도록 때리라고 명령했다.“그만해!”소원은 서현재를 구하려고 달려들었지만 굳게 잠긴 유리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유리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그만하라고! 당장 그만해! 이건 살인이라고! 이 나쁜 놈들아!”소원이 아무리 소리쳐도 밖의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하게 때렸다.서현재는 원래 몇몇 사람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지만 여덟 명이 함께 덤비는 바람에 한 번 쓰러지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사이에서 다시 일어날 방법이 없었다.소원은 피투성이가 된 서현재의 모습을 보며 분노가 극에 달했다.그녀는 앞문으로 돌아가서 서현재를 구하려고 했지만 육경한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를 유리문에 밀어붙였다.소원은 머리를 유리에 기댄 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육경한은 그녀의 틀린 대답 때문에 더 비참해진 서현재의 운명을 지켜보게 하려 했다.소원은 그에게 서현재를 풀어달라고 애원해서는 안
이때 육경한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괜찮아요. 저도 이 일이 효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서현재 씨는 서씨 가문의 사람이니 이런 행동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는 소원을 바라보며 마치 농담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서현재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야?”소원은 육경한의 말에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육경한의 속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평온해 보이는 가면 뒤에 이미 분노가 쌓여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옆에 있던 남자는 할 말을 잃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육경한의 여자 친구는 서현재의 편을 들고 있었지만 육경한은 아니었다.두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남자는 더는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육경한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서현재 옆을 지나갈 때 일부러 팔꿈치로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와인 잔을 부딪치고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눈이 먼 거예요? 와인이 제 옷에 묻었잖아요.”서현재는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상대방이 자신의 잔을 부딪쳤던 것이라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치는 격이다.그는 조금이라도 화난 기색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쪽이 저를 부딪친 거예요.”남자는 일부러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뭐라고요? 제가 부딪쳤다고? 누가 증명해 줄 수 있나요?”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아무도 서현재를 도와주려 나서지 않았다. 이 상황을 본 남자는 큰소리로 웃더니 웨이터 손에 들려 있던 와인 한 병을 가져와 서현재의 머리 위로 쏟아부은 뒤 비웃으며 말했다.“저희는 그쪽 같은 배은망덕한 사람을 환영하지 않아요. 알아서 꼬리 내리고 빨리 이곳에서 나가주세요!”그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현재를 한바탕 모욕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주변에서는 불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구경꾼들이 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