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윤혜인, 기억이 돌아온 거야?”“아니요.”윤혜인은 그저 그 이야기 속의 자신을 기억하고 감정 이입을 한 것뿐이었다.되돌아온 대답에 이준혁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그는 그녀가 과거를 기억하길 바라면서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도대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고, 결국 분위기는 어색하게 흘러갔다.“미안해...”과거의 일들에서 잘못하고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윤혜인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임세희에게 조금 관대한 적은 있었으나 그녀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윤혜인은 실망한듯한 남자의 표정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준혁 씨,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모든 ‘미안해'가 ‘괜찮아'로 돌아오지는 않아요. 저는 과거의 저를 대신해 당신을 용서할 권리가 없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 마치 어젯밤의 열정적인 그녀가 그녀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가슴이 미세하게 떨리며 이준혁은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그때, 문 벨이 울렸고 윤혜인은 재빨리 문을 열었다.“윤혜인, 괜찮아?"곧 배남준이 들어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위아래로 살폈다.과도하게 걱정하는 듯한 마음이 윤혜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괜찮아, 남준 오빠.”그러자 배남준은 안도하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현장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은 그 행동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이준혁은 갑자기 앞으로 나서더니 윤혜인의 손목을 잡았다. 눈빛은 매우 어두운 채로 말이다.“혜인이한테 손대지 마세요.”얼음처럼 차가운 말이었다.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은 윤혜인이 본능적으로 배남준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이었다.그렇게 현 상황은 이준혁이 윤혜인을 잡고, 윤혜인은 다른 남자를 잡고 있는 꼴이 되었다.온도가 마치 영하로 내려간 듯, 주위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어두운 이준혁의 얼굴에는 윤혜인이 가한 공격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
배남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대표님, 부부라는 호칭은 이미 이혼한 전처에게는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이준혁은 배남준까지도 이혼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순간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마치 수천 개의 화살에 찔린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눈도 한껏 붉어진 채로 그가 윤혜인을 내려다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윤혜인, 저 남자랑 무슨 관계야?”창백한 얼굴에 밤을 새운 탓에 그의 눈가에는 핏줄이 드러나 있었다.그리고 그 눈빛에는 더 이상의 상처를 견딜 수 없는 듯한 슬픔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윤혜인은 그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비록 배남준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지만 이준혁에게 희망 따위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다.배남준은 윤혜인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곤란함을 눈치채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혜인이와 저는 경천이의 허락을 받고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습니다.”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듣자, 이준혁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그러더니 그는 배남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윤혜인만을 응시하며 물었다.“정말이야?”배남준이 이렇게 말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윤혜인은 깜짝 놀랐다.‘오빠가 무슨 허락을 했다는 거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다고?!’그녀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준혁의 강한 성격을 생각하며 일부러 윤혜인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우리 사귀고 있어요!”짧은 몇 마디가 원자폭탄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해 남자의 단단한 마음에 엄청난 구멍을 내버렸다.그의 얼굴에서 혈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윤혜인은 이 틈을 타서 손을 뺐고 계속해서 말했다.“앞으로 저와 얽히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남준 오빠가 오해할 수 있으니까요!”이준혁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윤혜인의 말이 그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린 듯 말이다.“안 돼!”그때, 이준혁이 갑자기 소리쳤다.“분명 나랑 6개월 동안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네. 저희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거지, 아직 결혼한 게 아니잖아요!”윤혜인은 계속해서
그러자 배남준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사람은 망상할 수는 있지만 그 망상에 계속 빠져있어선 안 됩니다. 혜인이는 현재 독신이며, 나와 그녀는 정당하게 교제 중입니다. 강제로 사랑을 빼앗는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죠.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마도 대표님 혼자만의 생각일 겁니다.”이 말에 안색이 즉각 변하더니 이준혁은 배남준의 옷깃을 잡아채며 분노했다.“당신이 북안에서 얼마나 강력한지 상관없습니다! 여기는 서울, 내 구역이에요! 내 손에서 혜인이를 빼앗아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 추호도 하지 마세요!”남자의 얼굴은 차갑고 살벌해 보였으며 마치 당장이라도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했다.윤혜인은 급히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초조하게 말했다.“이준혁 씨, 제발 그만해요! 남준 오빠 건드리면 당신이랑도 끝입니다!”윤혜인의 진심 어린 방어는 마치 독을 발라 날카로운 칼처럼 이준혁의 마음을 찔렀다. 그는 심한 고통에 휩싸여 미쳐버릴 것 같았다. “좋아, 평생 나랑 끝장 보자. 이번 생, 다음 생, 끝까지 함께 끝장내 보자고!”윤혜인은 이준혁의 광기 어린 표정을 보며 그가 정말 미쳤다는 직감을 받았다.그러나 이내 이준혁의 말이 더 놀라웠다.그는 갑자기 목욕 가운을 벗어젖히며 단단하고 매력적인 가슴과 배를 드러냈다. 그의 피부에는 수많은 애매한 붉은 자국들이 있었다. “나더러 엮이지 말자며, 근데 이건 뭐야? 녹음도 있어, 들어볼래?”순간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윤혜인은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내가 정말 이 남자랑 그런 일을 했다고?!’이준혁의 잘생긴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며 윤혜인은 분노가 치솟았다. “짝!”그녀는 그의 얼굴에 강한 뺨을 날렸다.“이 짐승! 내가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면서 이렇게 기회를 노려요? 당신은 인간 이하의 짐승이에요, 짐승!”이준혁은 잠시 멍해졌다.그녀의 손은 분명 뺨에 닿았는데 어쩐지 마음이 더 아픈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의 고통을 숨기며 그는 무표정하게 윤혜인을 바라보고는 입꼬리
“윤혜인, 나더러 공평하게 대해달라며... 넌 나한테 공평하게 대하고 있는 거 맞아?”분명 그녀는 그에게 공평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 지금 윤혜인이 겨누고 있는 칼날은 오직 이준혁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윤혜인은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운 관계를 빨리 끝내고 싶었기에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당신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당신한테 공평하게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이 말을 들은 이준혁은 심하게 상처를 받은 듯 자연스럽게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그러더니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평소 강직했던 그의 등도 지금은 살짝 굽어 있었다.그러더니 이준혁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윤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혜인, 나한테도 공평하게 대해주면 안 돼? 부탁이야, 나한테도 공평하게 대해줘...”그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극도로 비굴하게 애원했다.그러자 윤혜인은 마음속이 마치 솜으로 가득 차 산소가 사라진 것처럼 답답했다.이준혁이 이렇게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그녀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 모습에 윤혜인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지를 막론하고 윤혜인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는 공평함을 줄 수 없었다!“쾅,쾅,쾅!”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두 명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경찰관이 들어와 신분증을 내보이며 말했다.“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여기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경찰관들은 방 안의 두 남자를 훑어본 뒤 윤혜인에게 물었다.“신고자분입니까?”“네, 맞아요.”“누가 당신을 성추행했습니까?”윤혜인은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몇 초 동안 응시하다가 차분하게 말했다.“저 사람입니다.”순간, 이준혁의 몸은 다시 수많은 화살에 관통당한 듯 고통으로 얼룩졌다.그는 굽어 있던 등을 곧게 펴며 윤혜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는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믿지
경찰서에서 나올 때, 이준혁의 표정은 어두웠고 이마는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주훈이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어디 아프세요?”이준혁의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일단 차에 타자.”차에 올라탄 후, 그는 뒷좌석에 몸을 눕히고 길고 깨끗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눈에 띌 정도로 아파 보였다.“약..."주훈은 잠시 당황하다가 중앙 콘솔에서 진통제를 꺼내 병뚜껑에 담아 물과 함께 건넸다.이준혁은 무표정으로 약을 받아 물과 함께 삼키고는 다시 손을 내밀며 말했다.“세 알 더.”그러자 주훈이 주저하며 말했다.“대표님, 원지민 씨가 이 약은 한 번에 두 알만 복용하라고 했습니다. 과다 복용하면 신경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가져와.”“하지만...”불쾌한 듯 이준혁이 다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원지민의 비서로 가고 싶은 거야?”“죄송합니다, 대표님.”주훈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사과하며 약을 건넸다. 그리고 이준혁은 약을 삼킨 후 눈을 살짝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방금 윤혜인이 그 남자에게 기대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의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다.폭발하는 감정에 그는 배남준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이성은 이준혁에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윤혜인이 싫어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더욱 멀어질 뿐이었다.이준혁은 그녀가 다시 조용히 사라질까 봐 너무 두려웠다.지난 5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그와 그의 정신과 의사만이 알고 있었다.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는 하루도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때문에 이대로 포기할 이준혁이 결코 아니었다. 윤혜인이 다시 결혼하지 않는 한, 그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언젠가 그녀가 결혼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는 결혼식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그래서 이준혁은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차가 천천히 움직였고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혜인이는
놀란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 아까 자신을 도와준 변호사에게 물었다.“그러면 그쪽은 누구세요?”그러자 그 변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는 이선 그룹의 법무 변호사입니다.”윤혜인은 잠시 멍해졌다.‘이선 그룹의 법무 변호사? 내가 아까 그렇게 오해했는데도 날 이렇게까지 도와준단 말이야?’그때, 낮고 차가운 남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놀라서 고개를 든 윤혜인의 시야에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그 순간,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배남준이 윤혜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실내 온도가 낮아지자, 그는 바로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 주었다. 그리고 이 모습에 이준혁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고마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말을 전했다.“정말 도와주셔서 고마워요.”“나한테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 혜인아.”이준혁의 목소리는 낮고 매력적이었지만, 밤새 잠을 못 자서인지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그가 천천히 뒤에서 주먹을 풀었지만 아무도 그의 이 작은 행동을 눈치채지는 못했다.‘내가 이렇게 내 감정을 숨기게 될 줄이야... 하지만 혜인이 날 멀리하지 않는다면, 뭐든 다 괜찮아.’그때, 윤혜인이 배남준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핸드폰 샀어요?”“응.”배남준은 그녀에게 원래와 똑같은 폴더폰을 건네주었다. 윤혜인은 핸드폰을 켜고 잠시 조작한 후 이준혁에게 말했다.“대표님, 방금 2400만 원 송금했으니 확인해 주세요.”순간, 이준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잠시 얇은 입술을 꼭 다물더니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뜻이야?”그러자 윤혜인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금 전의 감정은 어느새 정리된 듯 보였다.“이선 그룹 법무팀의 연봉을 기준으로 시간당 계산한 금액이에요. 1시간도 안 걸렸으니 1시간 기준으로 계산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넓은 공간은 갑자기 고요해졌다.이준혁의 표정은 굳어지고, 그의 깊은 눈동자는 상처와 불쾌함으로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눈앞이 깜깜해지며 다리가 풀렸다.“아줌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홍 아줌마는 울먹이며 설명했다.“제가 하원 시간보다 일찍이 기사와 함께 유치원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유치원 앞이 사람들로 가득 찼더라고요. 다들 어떤 나쁜 여자의 아이를 찾겠다고 소리치고 있었어요. 그 나쁜 여자가 혜인 씨를 말하는 것 같았고, 핸드폰에도 어떤 동영상도 있다고 했어요. 나중에 겨우겨우 제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갔는데 아름이의 선생님이 아름이가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윤혜인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몸마저 휘청거렸다.“아줌마, 일단 계속 찾아보세요. 저도 곧 갈게요.”배남준도 상황을 들었고 망설임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걱정하지 마, 아름이는 무사할 거야. 우리도 바로 가서 보자.”뒤에 따라오던 윤혜인도 윤혜인의 놀란듯한 목소리를 들었고 멀리서도 그녀의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뒤이어 배남준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보자 이준혁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즉시 차에 올라타 지시했다.“따라가.”차 안에서 주훈은 상황을 조사한 후 보고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이준혁은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무슨 일이야?”“어젯밤 연회에서의 윤혜인 씨 동영상이 퍼졌어요. 사람들이 지금 모두...”그러자 이준혁은 차갑게 말했다.“무슨 소문인지 말해.”주훈은 땀을 닦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사람들 모두 윤혜인 씨가 시누 엔터의 장 대표에게 약을 먹이고 성적 관계를 시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윤혜인 씨가 ‘선수’라는 소문이 도는 중이에요...”이준혁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주훈은 계속해서 설명했다.“그리고 이 논란은 단 몇 시간 만에 크게 퍼졌습니다. 누군가 뒤에서 이를 조작하는 것 같아요. 장 대표의 부인도 나와서 윤혜인 씨를 비난하면서 윤혜인 씨가 자주...”주훈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장 대표의 부인은 꽤 이름 있는 배우입니다
북성 엔터는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그 세력은 시누 엔터를 압도하고 있다.때문에 이 소식을 북성이 퍼뜨린다면 당연히 더 많은 관심을 끌 것이다.그러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에게 자신을 곤란하게 할 만한 큰 뉴스를 터뜨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주훈은 어쩔 수 없이 북성의 봉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 제안을 말하자 봉 대표의 분노가 귀를 찢을 듯한 소리로 전화기에서 들려왔다.차량 내부에서도 그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차라리 저한테 죽으라는 말을 하지 그런대요? 제 밥그릇을 깨면서까지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냥 차라리 절 죽이라 하세요!”봉태현과 이준혁은 오래된 친구 사이로 서로 말을 가리지 않았다.그때 이준혁이 뒤에서 낮게 말했다.“핸드폰 이리 줘.”주훈은 두려움에 떨면서 휴대폰을 이준혁에게 건네주었다. “봉태현, 이선 그룹의 연간 대행 계약에 5%를 추가로 제공할게.”순간, 봉태현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알겠어, 지금 당장 뉴스 터뜨릴게, 보스!”곧이어 이준혁은 주훈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차갑게 명령했다.“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가면 이 사건의 배후를 모두 찾아내.”한편 다른 차 안에 있는 윤혜인은 뉴스를 볼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은 아름이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침내 차가 유치원 근처 도로에 도착했다.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인파의 사람들이었다.유치원이 경호원을 동원해 그들을 막고 있었지만, 열성 팬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유치원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일부 사람들은 윤혜인의 사진을 들고 있었고 심지어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소리쳤다. “불륜녀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자격이 있나!”“이곳은 불륜녀의 자식을 교육하는 곳인가?”“다른 사람을 남편을 유혹하지 말라고 아이 엄마에게 교육하고는 있나요?!”배남준은 찡그리며 말했다.“너무 위험해, 차 안에 있어. 내가 아름이를 찾아올게.”“안 돼요, 내가 들어가서 아름
그녀가 당한 모든 불행은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원진우 씨, 지금 무슨 헛된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날 거예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절대 잊지 않았어요.”윤혜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나 가야 해요!”그러자 원진우는 분노가 가득 찬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는 대화가 안 되겠군.”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세 식구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지 천천히 알게 될 거야.”윤혜인은 경계심을 품고 원진우를 응시했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곧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를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지시를 내렸다.“아가씨의 짐을 챙겨서 비행기에 실어라.”윤혜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원진우는 느긋하게 설명했다.“우린 곧 떠날 거라서.”원진우가 윤아름과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말에 윤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윤아름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걸 보면 그의 경계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이번에 끌려가면 아버지, 큰오빠, 아이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안 가요!”윤혜인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문에 도달하자마자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곧 원진우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은 뒤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즉시 떠나야 했다.바깥에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떠나기만 하면 전처럼 윤아름과 윤혜인 모두 꽁꽁 아무도 모르게 숨
윤혜인이 갑자기 손을 들자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안에 들어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윤혜인은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하얀 나무젓가락을 들어 원진우의 목에 찔러넣고 싶었다. 두 사람은 신장 차이가 있었지만 원진우는 지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어 윤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뾰족하게 자른 나무젓가락이 그대로 원진우의 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피가 나무젓가락을 타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지는 피의 양에서 윤혜인은 글렀다는 걸 알아챘다. 동맥을 찌르지 못했으니 원진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원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더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바라봤다.“나 죽이고 싶어요?”원진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윤혜인이 뒤로 물러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곧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구하러 들이닥칠 거예요. 도망은 꿈도 꾸지 마요.;원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연락이 됐나 보네요.”윤혜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혜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원진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면 윤혜인도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기보다는 계속 위장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원진우는 목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뽑지도 처리하지도 않은 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제법인데?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가? 배짱이 커.”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사하기로 소문난 원진우가 친자 감정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미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원진우는 윤혜인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나 속이려 했나 본데...”원진우가 허리를 굽혀 서류를 줍더니 윤혜인에게 건네줬다.“봐... 네 말이 맞아. 너 정말 내 딸이야.”“...”윤혜인은 원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결과지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갔다.99.99%.그럴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원진우가 안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밝아진 윤아름을 보고 원진우의 표정도 살짝 풀렸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지는 않았다.“시간 됐어요.”원진우가 덤덤하게 말하더니 윤아름이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윤아름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에서 나갔다.다음날.윤아름이 제시간에 나타나자 윤혜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줬다. 이야기가 결말까지 이어지자 윤아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거야?”윤아름이 마술을 부리듯 손목에 묶었던 레이스를 풀더니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헤헤 웃었다.“이거?”윤혜인은 원하던 물건이 윤아름 몸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손목에 묶여있는 레이스가 그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윤혜인은 얼른 자수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치 추적기가 아직 들어있었다. 윤혜인은 자수를 더듬거리며 버튼을 찾더니 꾹 눌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윤혜인이 얼른 자수를 윤아름의 손목에 묶어줬다.발신기의 발신 기회는 고작 두번이었다. 마지막 한 번을 사용했으니 이제 더는 기회가 없다. 윤혜인은 윤아름이 다시 끌려가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지만 곧 구출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꾹 참았다.한편, 곽경천과 배남준은 북안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윤혜인을 찾고 있었다. 원진우의 출입국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아직 북안도에 숨어있다는 의미였다.이준혁도 온 힘을 다해 윤혜인을 찾았다. 꼬박 3일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치던 이준혁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려 했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발신기... 발신기에서 또 한 번의 신호를 보내왔습니다.”이준혁이 얼른 외투를 집어 들더니 지하 차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훈은 발신기 주변에 위험 물체가 있는지 탐색했다. 이준혁은 이 소식을 곽경천과 배남준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똑같이 윤혜인과 윤아름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아름아, 왜 그래?”원진우가 앞으로 다가와 윤아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뒤를 힐끔 돌아본 윤아름이 원진우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윤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윤아름이 오히려 애가 된 것 같았다.“삼촌, 일단 나가 계세요. 삼촌이 여기 있으면 오히려 자극만 받을 거예요.”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진우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아름을 보고 한발 양보했다.“윤혜인 씨, 얌전하게만 있으면 절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원진우가 타이름 반 협박 반으로 말했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였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윤아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엄마, 엄마, 나 혜인이야...”원진우는 겨우 차분해진 윤아름을 보며 더는 자극하기 싫어 방에서 나갔다. 윤혜인은 방문이 닫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오전에 방안을 둘러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새 거처를 바꿔서 그런지 아니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날 계획이라 그런지 여기는 카메라가 없었다.“엄마, 미안해요. 아팠죠?”윤혜인이 얼른 윤아름의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살짝 빨개진 정도였다. 이런 위험한 수를 둔 건 윤아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원진우가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아름의 정서를 이용해 원진우를 영향 주려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윤아름이 아닌 윤혜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면 죽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원진우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윤아름은 여전히 아무 감각이 없는 듯했지만 윤혜인이 친근하게 다가가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깜빡였다가 윤혜인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엄마...”윤혜인은 한참 동안 속 시원하게 울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물었다.“엄마, 그때 그 자수는 어디에다 뒀어요?”윤혜인이 물은 자수는
윤혜인이 문 앞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화들짝 놀란 도우미가 얼른 달려와 윤혜인을 막았다.“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도우미가 윤혜인을 안더니 힘껏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윤혜인은 문을 두드릴 수 없어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엄마. 엄마. 엄마.”윤혜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바깥에서 들리던 웅얼거리는 소리가 달라졌다.쿵.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쿵. 쿵. 쿵.휠체어로 문을 힘껏 부수는 소리와 도우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사모님.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윤혜인이 더 높은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엄마.”방 안에 있던 도우미가 윤혜인의 입술을 틀어막자 윤혜인이 팔다리를 마구 버둥대며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망가졌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안으로 쌩하고 들어왔다. 윤아름은 큰 꽃병 하나를 이고 들어와 윤혜인의 입을 막고 있는 도우미를 내리쳤다. 도우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윤아름이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나 윤혜인을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윤혜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다시 안아보는 거라 윤혜인도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도우미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다른 도우미를 보고 윤아름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긴 윤아름은 아까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게다가 원진우가 윤아름을 다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기에 과분하게 말렸다가 윤아름이 다치는 날에는 도우미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이때 소식을 들은 원진우가 다급하게 걸어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녀를 보게 되었다. 원진우는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윤혜인은 정상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멍하던 예전과 비기면 정서라는 게 생겼다. 윤혜인이 확실히 윤아름을 치유
원진우는 연속 몇 시간이나 윤혜인을 관찰했다. 관찰한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원진우는 윤혜인이 자는 모습이 자신과 쏙 빼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든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것도 말이다.“일어났으면 뭐 좀 먹어요. 도우미에게 이쪽으로 가져다주라고 할게요.”원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 윤혜인에게 예전 경력이 없었다면 원진우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잔혹한 사이코패스 성향을 뒤로 잘 숨긴 것 같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가는 원망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정서도 도라는 게 있어 일정한 포인트까지 닿으면 되지 아니면 원진우가 오히려 경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진우는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그저 윤혜인이 보면 볼수록 귀엽다고 생각했다.“혜인 씨,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거예요?”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혜인의 몸에는 금패가 하나 있는데 위에 윤혜인의 이름이 적힌 금패였다. 양아버지가 길다가 그녀를 줍고 주변과 경찰서에 윤혜인이라는 아이가 실종됐는지 물었지만 윤혜인이라는 아이를 잊어버린 적은 없다고 했다. 전에 조사가 어려웠던 건 윤혜인이 원진우의 의해 먼곳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기술이 좋지 않아 실종자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이긴 했다. 게다가 양아버지는 인자한 사람이었기에 윤혜인의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만 말할 뿐 이기적이게 그녀의 모든 걸 묵살하지는 않았다. 원래 이름을 쓰겠다고 한 것도 어느 날 친부모님을 만나면 그들이 자기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듣기 좋네요.”원진우가 말했다. 윤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원진우가 뭔가 말하려다가 방향을 잃었다.“일찍 쉬어요.”원진우가 이렇게 말하더니 방에서 빠져나갔다. 도우미가 아침을 가져다줬는데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윤혜인은 그 요리와 밥을 이미 보며 원진우가 아직 독을 타지는 않았을 거라는
윤혜인은 다시 눈을 감으며 잠을 자야 체력을 보존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오빠가 사람을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자신을 타일러도 윤혜인의 잠자리는 여전히 뒤숭숭했고 악몽만 연거푸 꿨다. 엄마가 여기 있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도 여기 있다는 생각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동이 틀 때까지 버틴 윤혜인이 눈을 뜨자 침대맡에 놓인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원진우였다. 윤혜인은 순간 얼굴을 굳히더니 혹시나 하지 말아야 할 잠꼬대를 하면서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전부 쏟아낸 게 아닌지 걱정했다.“깼어요?”원진우는 그런 윤혜인을 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윤혜인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매우 덤덤했다.“네.”“어제 잠을 설치는 것 같던데요?”원진우가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차갑디차가운 눈동자에 담긴 의미가 뭔지는 알아내기 힘들었다.윤혜인은 혹시나 실수한 건 아닌지 의심되어 심장이 철렁했다. 얼른 머리를 굴린 윤혜인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렇게 말했다.“네. 잠을 잘 자지 못한 건 맞아요. 어제 겪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무섭거든요. 나는 정말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요.”윤혜인이 솔직하게 말하자 원진우의 눈빛도 살짝 풀렸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요?”원진우가 물었다.“네. 너무 무서워요. 나를 세 번이나 죽이려고 했는데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윤혜인은 두려움을 전혀 위장하지 않았다. 원진우와 말할 때도 몸을 살짝 움츠리며 뒤로 빼고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에 원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평소 곽진명과는 어떻게 지내는데요?”윤혜인은 원진우가 무슨 뜻으로 묻는지 몰라 잠깐 넋을 잃었다.“곽진명과도 이렇게 지내요?”원진우가 물었다. 윤혜인은 그제야 원진우가 자기를 윤혜인의 아버지로 대입해 곽진명과 비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곽진명을 떠올리자 윤혜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아빠는 내게 무척이나 잘해줬어요. 그래서 한 번도 무섭다고
원진우가 눈길을 돌리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묵묵히 다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총명한 여자라는 걸 알아챘으니 윤혜인이 한 말과 보이는 행동을 믿으면 함정에 빠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원진우는 윤아름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윤아름의 어깨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아름아,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윤아름의 동공은 여전히 풀려 있었고 원진우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원진우는 윤아름의 어깨를 점점 더 억세게 부여잡더니 이를 악물고 캐물었다.“말해. 말하라고. 있어, 없어?”“...”윤아름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흥흥거릴 뿐이었다. 진우희가 그렇게 된 걸 본 다음부터 줄곧 이 상태였다.원진우는 윤아름의 멘탈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양자를 총으로 쐈다는 소식부터 먼저 알려주고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진우희의 시신까지 보여줬다. 지하실에 갇혀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윤아름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다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곽경천도 그녀를 구하려다 총에 맞았고 진우희도 그녀를 도우려다 원진우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이 모든 건 다 그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고 그 뒤에 아무리 다시 이어주려 해도 이어지지 않았다. 무의식적인 흥얼거림과 가끔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은 윤아름을 모두가 알아주던 미녀에서 바보로 전락하게 했다. 하지만 미인은 미인인지라 치매에 바보가 되어도 예쁘기만 했다.윤아름은 초점 없는 동공으로 무의식적으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때 미약하게나마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윤아름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되찾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넘어졌다. 원진우가 부축하려 했지만 윤아름이 그 손을 탁 쳐내더니 미친 듯이 모니터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화면으로 보이는 윤혜인은 어느새 몸을 웅크리고 있
그 누구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이를 본다면 차분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윤아름처럼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윤아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멍한 표정이었다.원진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이번에는 정말 연기가 아닌 진짜였다. 윤혜인의 쓸모도 이제 끝났기에 원진우는 윤혜인의 손에 올렸던 발을 뗐고는 입을 열었다.“온도 영하 80도로 내려.”“!”윤혜인이 화들짝 놀랐다. 이건 윤혜인을 산채로 냉동시켜 저번에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겠다는 뜻이었다. 원진우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자 윤혜인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원진우가 문밖으로 나서는 날에는 죽음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어떻게 해야만 살 수 있을까...’윤혜인은 죽기 싫었다. 살아서 엄마를 구하고 오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얼굴을 떠올리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원진우!”윤혜인이 성까지 붙여서 부르자 아니나 다를까 원진우가 걸음을 멈추더니 윤혜인을 돌아봤다. 윤혜인은 혀끝을 꽉 깨물었다. 피비린내가 혀끝에서 느껴져서야 윤혜인은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윤혜인의 목은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내가 누구 딸인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윤혜인을 보는 원진우의 눈빛에서 보기 드물게 두려움이 묻어났다. 비록 몇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윤혜인이 그 눈빛을 캐치하고는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머지 반이야말로 윤혜인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이었다.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고민할 기회도 주지 않고 꿋꿋하게 말했다.“삼촌, 그렇게 총명하신 분이 이미 눈치채고 계신 거 아니에요? 경천 오빠랑 나랑 친 남매가 아닌 건 알고 있잖아요. 아버지가 왜 직접 낳지 않고 남자아이를 입양했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원진우가 윤혜인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혹시 지금 내 딸이라고 하고 싶은 거예요?”“머리는 썼는데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렇게 쉽게 속지 않아요.”원진우가 이렇게 말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