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곁눈질로 육경한을 바라보았다. 셔츠는 단추가 이미 세 개나 풀어져 옆에 있는 여자들이 손을 안으로 넣고 있었다.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분명히 매우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소원은 고개를 돌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조 대표의 곁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대표님과 함께하죠.”조 대표는 기세를 몰아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감아 품에 안더니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소원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지만 이내 다시 그 감정을 숨겼다.조 대표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뜨거운 기운을 내 뿜으며 흥분하여 말했다.“나는 이렇게 개방적인 여자가 좋다니까.”메스꺼움이 다시 심해져 소원은 그 빨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술을 마신다는 명목으로 조 대표의 음흉한 손길을 피했다.“제가 술 따라드릴게요.”조 대표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술을 마시고는 또 다가와 한잔을 요구했다.소원은 조금 피하다가 얼굴에 유혹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한잔 더 드릴게요.”조 대표는 마음에 들었는지 소원의 부드럽고 작은 손을 어루만지며 물었다.“너 이름이 뭐야?”그러자 소원은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 새빨간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저는 소이라고 합니다.”순간, 불빛 아래 육경한의 눈동자가 조금 더 어두워졌다.‘소이...’그것은 이전에 두 사람이 열애했을 때 그가 그녀에게 지어준 별명이었다.당시 소원은 따스한 얼굴로 육경한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생에 나를 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하지만 지금 그녀는 만난 지 몇 분 밖에 되지 않은 늙은 남자에게 자신을 소이라 부르라고 한다.육경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급함이 억누를 수 없이 솟구쳐올랐다.‘정말 천하고 방탕한 여자야.’옆에 있는 몇몇 대표들은 아양을 떠는 소원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했는지 하나둘 수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그중 한 명은 두껍게 묶여있는 돈을 직접 소원의 얼굴에 뿌리기까지 했다.‘퍽’하
룸 안에 갑자기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소원은 마치 알아채지 못한 듯 조 대표, 안 대표, 장 대표 등 몇 사람과 어깨를 걸고 모여들어 술을 마셨다.그녀의 눈웃음은 봄처럼 아름다웠고,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조 대표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지금 소원의 몸 위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갑자기 온몸에 참을 수 없는 기운이 솟구쳐올라 조 대표는 소원을 확 끌어당겨 소파에 눕혔다.마찬가지로 취할 대로 취한 몇몇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불만스러운 듯 비틀거리며 다가왔다.“나도...”“조 대표! 혼자 즐기는 건 아니지...”그들은 헤헤하고 웃으며 모두 늑대와 호랑이처럼 소원에게 뛰어들었다.“펑!”술병 한 개가 조 대표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뚝뚝...”한 방울, 한 방울씩 피가 소원의 얼굴에 떨어졌고, 그녀는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바로 구토했다.저녁을 먹지 않은 탓에 그녀가 토해낸 것은 핏덩이가 전부였다.하지만 조 대표의 머리가 찢어져 피가 여기저기로 퍼져 있었기에 도대체 누구의 피인지 명확히 분간할 수 없었다.조 대표가 이마를 가리고 욕설을 퍼부었다.“어떤 미친놈이야? 눈 안 달렸어? 나한테 죽고 싶어서 이리로 물건을 던지는 거야?”“펑!”조 대표는 머리에 또 한 번 술병을 맞았다.순간,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가 온 방 안에 울려 퍼졌다.다른 두 사람도 땅에 쓰러져 외쳤다.“경호원, 경호원...”육경한은 손에 있는 술 얼룩을 닦고 와인 한 병을 들고 일어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다 나가.”몇몇 대표들은 육경한이 왜 이토록 화가 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연구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여자들도 모두 자리를 피했다.뒤이어 육경한은 주변을 서성이다가 소원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운 모습을 없이 소파에 누워 그를 보고 심지어 웃고 있었다.육경한은 와인 한 병을 소원의 얼굴에 쏟아부어
육경한은 완전히 화가 났고 술기운은 그의 진실된 생각도 가려버렸다.‘이런 천한 여자한테 내가 다시 한번 설레고 흔들렸던 거야? 내가 멍청했지.’육경한은 피에 굶주린 듯 손을 꽉 움켜잡으며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우습게도 그는 또 그녀에게 속았다.무정하고 의리 없는 여자는 육경한을 배신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고 속였다. 그야말로 갖고 논 것이었다!‘내가 절대 너를 편하게 두지 않을거야! 지옥이 어떤지 보여줄게!’소원의 위는 알코올 때문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지만, 끝끝내 굴복하지는 않았다.“대표님도 그냥 그렇네요, 여자 앞에서 허풍이나 떨 뿐.”육경한이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웃었다.“듣는 바에 의하면 너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하던데.”마침 술이 깬 소원은 그 말을 듣고 명확하게 대답했다.“아닌데요.육경한은 차갑게 냉소하며 가볍게 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그 남자가 아마 서현재라고 했지?”소원은 몸이 갑자기 굳어졌고 육경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일어나서 바지 단추를 채우고 일어나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너 데리고 서현재 만나러 갈까?”표정이 얼어붙었지만, 소원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경한 씨, 서 선생님과 나는 단지 환자와 의사 관계일 뿐이야. 그러니 여기저기 사람 불편하게 하지 마. 알았어?”“서 선생님? 참 친절하게도 말하네, 어린 동생을 좋아할지는 몰랐네?”소원은 기계 사람처럼 말을 내뱉었다.“미친 사람처럼 굴지 마!”그러자 육경한은 무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미쳐? 서 선생님을 만나면 난 네가 얼마나 미쳤는지 잘 보여줄 거야!”말을 끝내고 그는 바닥에 있는 양복을 주워 소원을 감싸고 그녀를 어깨에 들쳐멨다.소원은 미친 듯이 어깨를 두드리며 욕했다.“육경한, 이 미친놈! 당장 내려놔!”육경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차에 넣고 미친 듯이 질주해 병원에 도착했다.오늘 밤 응급 외과는 마침 서현재가 당직이었다.소원은 예감이 좋지 않자
소원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곧바로 약을 가지고 돌아온 육경한은 두 사람이 원래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빛을 잠깐 반짝였다.육경한이 서현재에게 약을 건네며 물었다.“수액을 먼저 할까요, 아니면 상처부터 먼저 치료할까요?”서현재는 간호사에게 약을 건네며 대답했다.“상처는 약 갖고 가셔서 치료하시고 수액은 지금 투여해야 해요."그러자 육경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서 선생님께서 찜질해주시는 거 아닌가요?”서현재는 육경한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아닙니다. 필요하시다면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해도 됩니다.”육경한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러면 제가 직접 소원이에게 해줄게요.”서현재는 듣지 못한 척하고 간호사가 수액을 놓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병상을 떠나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육경한은 담배를 들고 책상에 있는 서현재를 살펴보았다.생김새가 깨끗하고 피부가 매우 하야며 검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보기에 아주 착해 보이는 것이 대학교 때 꽤 인기가 많았을 것 같았다.그는 피식 차갑게 웃으며 생각했다.‘소원이가 정말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고? 어린애 같은 게 여자랑은 밤도 안 보낼 것 같이 생겼는데.’사실 육경한은 소원이 서현재를 좋아한다고 추측할 뿐, 아직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발견하지 못했다.그들의 유일한 만남은 아침 식사 뿐이었다.육경한은 문에 기대어 손에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더니 웃으며 서현재에게 물었다.“선생님은 소원이랑 아는 사이 아니세요? 왜 모르는 척하고 계시는 거죠?”서현재는 머리를 들지도 않고 대답했다. “한 달에 소원 씨가 네 번이나 입원했는데 당연히 얼굴은 알죠. 처음에는 소원 씨한테 신고할 필요가 있냐고 물었어요, 나중에는 안 그랬지만요.”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잠깐 멍해 있었다. 한 달에 네 번,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라는 것이다.육경한은 이 일들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대부분 육경한은 집에 들
습관적으로 아픔을 참는 그녀의 모습에 육경한의 마음이 약해졌다.하지만 그녀가 다시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생각에 육경한의 눈빛은 순간 다시 어두워졌다.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온기가 없어지더니 그가 갑자기 소원의 턱을 움켜쥐었다.“소원, 언제는 널 갖고 놀라더니 인제 와서 못 견디겠는 거야?”그 말을 들은 소원은 구역질이 났다.이 미치광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소원은 눈을 감더니 모처럼 약한 척했다.“지금은 정말 안 돼, 너무 아파...”하지만 육경한은 냉소를 지으며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럼 짖어 봐. 네가 나를 만족시킨다면 오늘은 그냥 놔줄게.”문득 고개를 치켜든 소원은 그 하얀 벽을 보더니 육경한의 뜻을 알아차렸다.단지 서현재의 앞에서 그녀더러 짖게 하고 모욕을 주며 그들의 관계를 떠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예전의 소원이라면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굴욕적인 술 접대를 경험한 후, 그녀는 체면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없어도 될 존재라고 생각했다.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은 소원에게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체면을 지키며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일깨워주었다.소원은 혀끝으로 남자의 배꼽 아래를 능숙하게 핥았다. 입술을 약간 벌리니 부드러운 신음 소리가 입술과 이빨 사이로 흘러나왔다.“으음...음...”마침내 그녀는 60초 동안 소리를 내며 육경한이 스톱을 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소리 지르지 마.”육경한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몸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움직이면서 말이다.그는 순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소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육경한은 그녀를 눌러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이런 통제 불능의 느낌은 육경한을 더욱 짜증 나게 했다.소원은 입술을 깨물고 비웃었다.“벌써 안 되겠어?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경한 씨 비웃어.”육경한의 눈
서현재는 한 손으로만 소원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약을 바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그는 손에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파스에는 진통을 완화해주는 성분이 들어있었다.발가락을 움츠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아진 소원의 머릿속은 온통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반면 서현재는 여전히 담담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약을 발라준 뒤, 서현재는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버리는 김에 육경한이 사 온 죽도 함께 버렸다.잠시 나갔다 온 그는 보온병을 들고 들어와 침대에 앉더니 소원을 향해 물었다.“누나, 제가 먹여줄까요, 아니면 직접 드실래요?”소원은 아직 약을 바르던 때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두 번째 질문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내가 직접 먹을게.”“가만히 있어요. 제가 준비할 테니까요.”서현재는 작은 상을 내려놓고 능숙하게 죽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고 젓가락을 챙겨주었다.그의 손은 매우 예뻤고 긴 손톱도 없었으며 뼈마디가 뚜렷한 것이 그야말로 섬섬옥수였다.살짝 주먹을 쥐었을 때 핏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걸 보아 힘도 아주 센 것이 분명했다.한참 그의 손을 본 소원의 얼굴은 또 뜨거워졌다.서현재가 소원에게 약을 발라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젓가락을 뜯어 건네주는 서현재의 모습을 본 소원은 비로소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특히 그 죽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새우죽이였기에 소원은 별말을 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다 먹은 후, 서현재는 상을 깨끗이 치우고 소원의 침대를 다시 정리해 주었다.“누나, 이젠 주무세요, 제가 돌봐드릴게요.”소원은 오히려 서현재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했다.“괜찮아, 현재야.”서현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소원은 얼굴을 돌린 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얼마 후, 소원이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너뿐만이 아닌데... 네가 나 병원에서 두 번이나 돌봐준 것만으로 해도 이미 충분해. 그
소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우리 지금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 다른 변화 없이 말이야. 그게 나을 것 같아.”이것은 아주 명백한 거절이었다.소원은 말을 마친 뒤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서현재가 살짝 그녀의 팔을 잡았다.서현재는 아무 말 없이 몇 초 동안 그녀를 보았다.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그의 입술은 소원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하다가 멈추고 말았다.서현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소원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내가 그 남자보다 더 잘 되면 나한테 와요.”서현재가 떠난 후에도 소원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분명히 예전 소원의 눈에 서현재는 그저 꼬맹이일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소원은 점차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금요일 날 아침, 이하진은 윤혜인에게 데리러 갈 테니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다.그렇게 윤혜인은 곧바로 주소를 보냈고 이하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집 아래로 내려왔다.두 발짝 앞으로 나가자 검은색 지프차가 보였다. 이하진은 조수석에 앉아 윤혜인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문을 열고 차에 탄 윤혜인은 뒤에 한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정유미였다.윤혜인을 본 순간 정유미는 적개심에 불타 이하진을 향해 물었다.“하진아, 과외 선생님이 이분이야?”이하진은 대답이라 치고 ‘흥’하며 짧게 소리 냈다.정유미는 윤혜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윤혜인도 두 사람이 서로 앙숙 관계라 생각했다.윤혜인은 문을 닫고 정유미와 멀리 떨어진 문 옆에 앉았다. 정유미는 윤혜인이 작은 배낭을 메고 온 것을 보고 표독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이러고 가요?”그러자 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유미는 더 신이 나서 웃어댔다.순간 정유미는 앞으로 이틀간의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차가 시동을 걸고 나서야 윤혜인은 고개를 들어 앞줄을 훑어보았고, 그제야 차를 몰고 있는 사람이 이준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선글라스에 양복 대신 네이비 컬러의 바
정유미의 힘은 세지 않았다.하지만 윤혜인의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정유미가 뺨을 때리자 얼굴에는 금세 빨간 손자국이 남겨졌고 보기도 좋지 않았다.뺨을 때리고 난 뒤, 정유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정혜인의 뺨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챘다.소리를 듣고 놀란 이하진이 멀리서 뛰어오더니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야, 정유미,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사람을 때리고 난리야!”이하진도 윤혜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매를 맞은 사실에 매우 불쾌했다. 어쨌든 윤혜인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니 말이다.사실 정유미는 곧바로 윤혜인에게 사과하려 했다. 비록 성격이 나쁘고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골라 하는 그녀지만 먼저 남을 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보다 어린 이하진이 대뜸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정유미도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다.“넌 왜 난리인데,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잖아.”“그럼 사과해.”이하진의 성질머리는 더 더러웠다. 당장이라도 정유미의 옷깃을 잡아당겨 윤혜인에게 사과시키려 하였다.놀란 정유미는 이준혁의 뒤로 숨던 그의 옷을 잡았다.이준혁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하진의 손을 홱 잡고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짓이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잖아.”손을 잡힌 이하진은 뾰로통해서 말했다.“형, 틀린 건 바로잡아줘야지, 감싸줄 게 아니라.”“감싸줄 건데, 왜?”말을 마친 이준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산에 오를래, 말래?”사실 윤혜인은 조금 전에 발생한 일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정유미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준혁이 정유미를 이렇게 감싸는 것을 보니 윤혜인의 안색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누군가가 감싸준 다라... 참 좋겠네.’정유미는 웃으며 이준혁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뒤돌아서 약오르는 표정으로 이하진을 돌아봤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이하진은 화가 났다.‘아버지가 국내에 없는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