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아픔을 참는 그녀의 모습에 육경한의 마음이 약해졌다.하지만 그녀가 다시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생각에 육경한의 눈빛은 순간 다시 어두워졌다.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온기가 없어지더니 그가 갑자기 소원의 턱을 움켜쥐었다.“소원, 언제는 널 갖고 놀라더니 인제 와서 못 견디겠는 거야?”그 말을 들은 소원은 구역질이 났다.이 미치광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소원은 눈을 감더니 모처럼 약한 척했다.“지금은 정말 안 돼, 너무 아파...”하지만 육경한은 냉소를 지으며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럼 짖어 봐. 네가 나를 만족시킨다면 오늘은 그냥 놔줄게.”문득 고개를 치켜든 소원은 그 하얀 벽을 보더니 육경한의 뜻을 알아차렸다.단지 서현재의 앞에서 그녀더러 짖게 하고 모욕을 주며 그들의 관계를 떠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예전의 소원이라면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굴욕적인 술 접대를 경험한 후, 그녀는 체면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없어도 될 존재라고 생각했다.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은 소원에게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체면을 지키며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일깨워주었다.소원은 혀끝으로 남자의 배꼽 아래를 능숙하게 핥았다. 입술을 약간 벌리니 부드러운 신음 소리가 입술과 이빨 사이로 흘러나왔다.“으음...음...”마침내 그녀는 60초 동안 소리를 내며 육경한이 스톱을 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소리 지르지 마.”육경한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몸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움직이면서 말이다.그는 순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소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육경한은 그녀를 눌러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이런 통제 불능의 느낌은 육경한을 더욱 짜증 나게 했다.소원은 입술을 깨물고 비웃었다.“벌써 안 되겠어?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경한 씨 비웃어.”육경한의 눈
서현재는 한 손으로만 소원의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약을 바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그는 손에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파스에는 진통을 완화해주는 성분이 들어있었다.발가락을 움츠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아진 소원의 머릿속은 온통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반면 서현재는 여전히 담담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약을 발라준 뒤, 서현재는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버리는 김에 육경한이 사 온 죽도 함께 버렸다.잠시 나갔다 온 그는 보온병을 들고 들어와 침대에 앉더니 소원을 향해 물었다.“누나, 제가 먹여줄까요, 아니면 직접 드실래요?”소원은 아직 약을 바르던 때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두 번째 질문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내가 직접 먹을게.”“가만히 있어요. 제가 준비할 테니까요.”서현재는 작은 상을 내려놓고 능숙하게 죽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고 젓가락을 챙겨주었다.그의 손은 매우 예뻤고 긴 손톱도 없었으며 뼈마디가 뚜렷한 것이 그야말로 섬섬옥수였다.살짝 주먹을 쥐었을 때 핏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걸 보아 힘도 아주 센 것이 분명했다.한참 그의 손을 본 소원의 얼굴은 또 뜨거워졌다.서현재가 소원에게 약을 발라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젓가락을 뜯어 건네주는 서현재의 모습을 본 소원은 비로소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특히 그 죽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새우죽이였기에 소원은 별말을 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다 먹은 후, 서현재는 상을 깨끗이 치우고 소원의 침대를 다시 정리해 주었다.“누나, 이젠 주무세요, 제가 돌봐드릴게요.”소원은 오히려 서현재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했다.“괜찮아, 현재야.”서현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소원은 얼굴을 돌린 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얼마 후, 소원이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너뿐만이 아닌데... 네가 나 병원에서 두 번이나 돌봐준 것만으로 해도 이미 충분해. 그
소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우리 지금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 다른 변화 없이 말이야. 그게 나을 것 같아.”이것은 아주 명백한 거절이었다.소원은 말을 마친 뒤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서현재가 살짝 그녀의 팔을 잡았다.서현재는 아무 말 없이 몇 초 동안 그녀를 보았다.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그의 입술은 소원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하다가 멈추고 말았다.서현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소원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내가 그 남자보다 더 잘 되면 나한테 와요.”서현재가 떠난 후에도 소원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분명히 예전 소원의 눈에 서현재는 그저 꼬맹이일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소원은 점차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금요일 날 아침, 이하진은 윤혜인에게 데리러 갈 테니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다.그렇게 윤혜인은 곧바로 주소를 보냈고 이하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집 아래로 내려왔다.두 발짝 앞으로 나가자 검은색 지프차가 보였다. 이하진은 조수석에 앉아 윤혜인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문을 열고 차에 탄 윤혜인은 뒤에 한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정유미였다.윤혜인을 본 순간 정유미는 적개심에 불타 이하진을 향해 물었다.“하진아, 과외 선생님이 이분이야?”이하진은 대답이라 치고 ‘흥’하며 짧게 소리 냈다.정유미는 윤혜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윤혜인도 두 사람이 서로 앙숙 관계라 생각했다.윤혜인은 문을 닫고 정유미와 멀리 떨어진 문 옆에 앉았다. 정유미는 윤혜인이 작은 배낭을 메고 온 것을 보고 표독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이러고 가요?”그러자 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유미는 더 신이 나서 웃어댔다.순간 정유미는 앞으로 이틀간의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차가 시동을 걸고 나서야 윤혜인은 고개를 들어 앞줄을 훑어보았고, 그제야 차를 몰고 있는 사람이 이준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선글라스에 양복 대신 네이비 컬러의 바
정유미의 힘은 세지 않았다.하지만 윤혜인의 피부가 워낙 하얀 탓에 정유미가 뺨을 때리자 얼굴에는 금세 빨간 손자국이 남겨졌고 보기도 좋지 않았다.뺨을 때리고 난 뒤, 정유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정혜인의 뺨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챘다.소리를 듣고 놀란 이하진이 멀리서 뛰어오더니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야, 정유미,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사람을 때리고 난리야!”이하진도 윤혜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매를 맞은 사실에 매우 불쾌했다. 어쨌든 윤혜인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니 말이다.사실 정유미는 곧바로 윤혜인에게 사과하려 했다. 비록 성격이 나쁘고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골라 하는 그녀지만 먼저 남을 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보다 어린 이하진이 대뜸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정유미도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다.“넌 왜 난리인데,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잖아.”“그럼 사과해.”이하진의 성질머리는 더 더러웠다. 당장이라도 정유미의 옷깃을 잡아당겨 윤혜인에게 사과시키려 하였다.놀란 정유미는 이준혁의 뒤로 숨던 그의 옷을 잡았다.이준혁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하진의 손을 홱 잡고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짓이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잖아.”손을 잡힌 이하진은 뾰로통해서 말했다.“형, 틀린 건 바로잡아줘야지, 감싸줄 게 아니라.”“감싸줄 건데, 왜?”말을 마친 이준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산에 오를래, 말래?”사실 윤혜인은 조금 전에 발생한 일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정유미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준혁이 정유미를 이렇게 감싸는 것을 보니 윤혜인의 안색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누군가가 감싸준 다라... 참 좋겠네.’정유미는 웃으며 이준혁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뒤돌아서 약오르는 표정으로 이하진을 돌아봤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이하진은 화가 났다.‘아버지가 국내에 없는
이하진은 윤혜인의 체력에 굴복하여 손을 내저으며 중도에 정유미와 휴식을 취하였다.윤혜인은 계속 올라갔고 한참을 걷다가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물 한 병을 꺼내 마실 준비를 했다.하지만 뚜껑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광활한 산골짜기를 보니 두피가 저릿저릿해나는 것 같았다.그러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준혁의 모습에 놀라 뒤로 젖혀졌다.이준혁은 곧 넘어질 것 같은 윤혜인을 큰 손바닥으로 잡아당겼다.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의 품에 안겼고 손에 있던 물도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발밑은 온통 돌과 움푹 패여 있는 골짜기들로 가득해 넘어지면 엉덩이가 두 동강 날 정도였다.본능적으로 윤혜인은 손을 뻗어 이준혁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얼굴은 그의 단단한 가슴에 바짝 갖다 댔다.“쿵쿵쿵.”이준혁의 차분하면서도 힘찬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윤혜인은 잠시 숨을 돌린 뒤에야 자신이 이준혁을 매우 애매한 자세로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숨을 ‘합’하고 참더니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데인 것처럼 이준혁을 바로 밀어냈다.쓰자마자 버리는 행동과 같은 모습에 순간 안색이 굳어지더니, 이준혁이 사나운 말투로 말했다.“이런 밀당같은 수작 좀 작작 해. 등산하는 남자는 많고 나는 너한테 관심 없어.”윤혜인은 입을 열기도 전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안색도 이따금씩 붉으락푸르락하며 변했다.때마침 서너 명이 짝을 지어 산을 오르는 남자들이 그들 곁을 지나갔다.이준혁의 말을 들은 그들은 바로 윤혜인에게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그녀가 등산하는 목적이 남자를 꼬시기 위해서인 줄 알고 말이다.그런 눈빛을 견디지 못한 윤혜인은 한참 이준혁을 쳐다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위로 걸어갔다.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윤혜인은 방금 지나가던 남자 몇 명이 마치 쉬고 있는 것처럼 앞에서 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윤혜인은 자신을 바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혜인은 이준혁이 제자리에서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이준혁은 힐끗 쳐다보았지만, 윤혜인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아 더 아래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나무 그늘에 앉아 이하진을 기다렸다.정오의 산 중턱이 어찌나 더운지 윤혜인은 자신의 목에서 연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유일하게 갖고 있던 물병은 조금 전 굴러 내려가 사라졌다.이틀 동안 그녀는 아직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윤혜인이 자발적으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하진은 아마 그녀에게 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윤혜인은 이준혁인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하지만 그가 앞에 지나갈 때 익숙한 차가운 향기가 불어왔다.‘둥’하는 소리에 윤혜인은 눈을 떴다. 이준혁이 다 마신 생수병을 던지는 것이었다.그 모습에 윤혜인은 눈썹을 찌푸렸다.‘아무 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다니... 왜 전에는 이렇게 시민의식이 낮은 걸 몰랐지?’햇빛이 비치자 그 안에 은은하게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윤혜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약 반병의 물이 남아있었다.그녀는 5분을 참고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5분이 지나자 정말 참을 수 없어 윤혜인은 물병을 향해 다가갔다.물병을 주운 후, 그녀의 표정이 매우 복잡해졌다.윤혜인은 자신을 위로했다. 이준혁에게 아무런 병이 없다는 것은 적어도 알고 있었다.햇빛을 굴절시키며 생수병 안에 있는 물이 그녀를 유혹했다. 목은 타다 못해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곧 윤혜인은 마음을 먹고 병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바로 입을 대지는 않고 조금 고개를 들어 입에 병 입구가 닿지 않도록 하고 물을 입에 부었다.총 반병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많이 마실 수 없어서 두세 모금 정도로 조금만 마셨다.생수병을 내려놓자마자 윤혜인은 돌아오는 이준혁을 발견했다. 그는 두 팔로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뜨며 윤
‘저렇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전처가 있는데 내가 떠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정유미는 이준혁의 조각 같은 얼굴을 보고 순간 힘이 넘쳐나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려가지 않을래요.”역시 외모를 가장 밝히는 정유미였다.그녀는 여태껏 이준혁보다 잘생긴 사람을 보지 못했었다.이준혁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시간은 어느새 12시가 넘었다.이하진은 가져온 각종 요리를 꺼내 그들이 고르도록 했다. 도발하는듯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바라보며 말이다.그 눈빛은 마치 배고프면 패배를 인정하라는 의미 같았다.윤혜인은 얼굴을 돌려 그들이 먹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잠시 후 향긋한 반찬 냄새가 풍겨오자 윤혜인도 조금 배가 고픈 나머지 가방에 있는 육포를 꺼내 몇 조각 나눈 후 세 조각을 먹어 굶주림을 달랬다.다행히 그녀도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 있었다. 비록 가방은 작았지만, 안에는 모두 실용적인 물건들이 담겨있었다.식사를 마치고 또 길을 떠나 마침내 어둠이 드리우기 전에 산꼭대기에 도착했다.이하진은 고용인들을 데리고 텐트를 쳤다. 하지만 윤혜인에게만은 달랑 텐트만 던져주며 스스로 치라고 했다.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텐트가 다 완성되어도 윤혜인은 여전히 못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실수로 그녀는 망치로 자신의 손을 찧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그녀는 “아!”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곧이어 눈물이 쏟아졌다.순간 윤혜인의 앞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준혁이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습관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그를 한 번 보았다.하지만 조롱이 섞인 그의 눈빛을 발견하고 윤혜인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속으로 자신을 바보 같다고 욕하며 말이다.‘저 사람은 나를 아주 싫어하잖아, 왜 잊었을까...’그때 정유미가 나와 이준혁을 불렀다.“준혁 씨, 와서 저녁 먹어요. 하진이가 정말 엄청 많이 가지고 왔어요. 맥주도 있어요.”정유미는 먹을 것
남자가 머리를 너무 세게 잡아당기는 탓에 두피가 벗겨질 것만 같았다. 윤혜인은 고통에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그렇게 얼마간 끌려가고 나서야, 남자가 멈춰 섰다.그러고는 윤혜인의 입에 수건을 집어넣었고 또 굵은 밧줄로 그녀의 손을 묶었다.남자의 형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있었다. 오직 두 눈동자만이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 음흉한 기운이 몸서리쳐질 정도였다.윤혜인은 그제야 자신을 잡아 온 사람이 뜻밖에도 두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달빛을 빌어 그녀는 이 두 사람이 바로 낮에 자신을 조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마음속에서 순간 두려움이 미친 듯이 증폭하였다.낮에 좋은 말을 하며 그녀더러 가게 한 남자가 먼저 다가와서 웃으며 윤혜인에게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너를 다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그냥 순순히 말만 잘 들으면 내가 잘해줄게.”다른 한 남자의 표정은 매우 사나웠다. 그는 날카로운 외국제 칼을 꺼내며 말했다.“감히 반항하려 든다면 이걸로 네 얼굴을 긁어버릴 거야. 알겠어?!”차가운 바람에 윤혜인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꽃같이 예쁜 얼굴에는 어느새 창백한 빛만 남아있었다.“알아들었냐고!”칼을 든 남자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 포악한 눈빛은 줄곧 윤혜인의 풍만한 가슴에 머물렀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정신이 든 윤혜인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놀란 탓에 넋을 잃은듯했다.순간, 두 남자의 경계태세도 많이 줄어들었다.‘굳이 칼을 대지 않아도 충분히 겁을 줄 수 있겠는데?’그나마 선하게 생긴 남자가 윤혜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칭찬했다.“참 예쁜 아가씨야.”“아진아, 그만하고 얼른 하자. 나 더 이상 못 참겠어.”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말을 하며 동시에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병이라도 난 것처럼 아주 급하게 말이다.점심에 윤혜인을 만났을 때, 그는 사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를 “처리”하고 싶었다.하지만 눈치가 빨랐던 아진은 그녀와 싸우던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