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
이준혁의 건장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윤혜인을 그대로 스쳐갔다.그녀를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윤혜인은 이준혁 품에 안겨 있던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기사가 났던 임세희였다.윤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택시에 탄 윤혜인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목적지를 묻는 택시 기사의 말에 그녀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거긴 이제 곧 그녀의 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한참 고민하던 윤혜인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청월 아파트로 가주세요.”청월 아파트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나서 구매한 집이었다. 그때 당시 그녀는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 위해 할부로 산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준혁이 큰 별장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그녀가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윤혜인은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아파트 공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잠시 바람을 쐬었다.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달콤했던 순간도 있었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2년, 700일이 넘는 낮과 밤들, 그 마음이 아무리 얼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녹았을 텐데, 지금 그녀의 귓가에는 비웃음 소리만 들렸다.그 소리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게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비웃고 있었다.어둠이 깃들고 나서야 윤혜인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기대고 서있는 이준혁을 발견했다.옷소매를 거둔 이준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서, 기다란 목과 섹시한 쇄골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냈다. 윤혜인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임세희와 함께 하고
윤혜인이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보였지만 마음은 너무 아팠다. 누군가가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 같았다.“관계? 윤혜인, 네가 보기엔 우리가 어떤 관계 같은데?”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웃었고 이 남자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렇다, 처음부터 이준혁의 태도는 확실했다. 두 사람은 계약 결혼으로 절대 사사로운 감정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눈에 그들은 단지 직원과 상사의 관계였다.이준혁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골든 싱글이었고, 그와 결혼하고 싶은 규수들은 줄을 설 정도였다.이준혁이 이렇게 묻는 건 그녀에게 절대 달라붙지 말라고 얘기인가?아랫입술을 꽉 깨문 윤혜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청월 아파트에 오지 마세요.”말을 끝낸 윤혜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10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인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그녀는 손을 놓을 준비를 해야 했다.계속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살 수는 없었다.복도의 센서등이 꺼지고 켜졌다를 반복했고 이준혁은 실눈을 뜬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온몸에서는 위험하다는 시그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혁은 윤혜인의 투정을 받아줄 수가 있지만 이번에는 실로 선을 넘은 것이다!타오르던 분노는 윤혜성의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본 순간, 사르르 녹아버렸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혹시 송소미 때문이라면…”“그 여자랑 상관없어요. 이 대표님, 그만 돌아가세요.”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건 송소미 한 사람뿐만은 아니다.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을 지나쳐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억지를 부리는 윤혜인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진 이준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윤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억지 그만 부려.”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리더니 윤혜인을 돌려세운 뒤, 그
이준혁이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윤혜인의 손가락을 보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그게… 저.. 무서워요.”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충 이유를 둘러댔다. 자신의 허접한 말에 윤혜인은 감히 이준혁을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가 과연 믿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걱정된 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조금 전에 약 먹었으니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에 움츠린 채 안겨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로 보는 그녀는 더욱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더군다나 열이 난 탓에 하얀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유난히 가녀린 모습이었다.이준혁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돌아서서 익숙한 듯 집 문을 열고 윤혜인을 안방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으며 머리카락도 젖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얼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괜찮아요.”이준혁을 보내려는 뜻이었다. 별장 생활에 익숙한 이준혁은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래.”간단하게 대답한 이준혁은 떠나지 않았고 되레 손으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 단추까지 하나씩 풀고 있었다.“옷은 왜 벗는 거예요?”순간 흠칫 놀란 윤혜인은 숨을 참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몸도 안 좋은데 설마 이 남자는 욕구를 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건가? 저게 인간인가?이준혁이 말없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그 적나라한 눈빛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훑어보는 이준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준혁의 눈빛은 다른 남자와 달랐다. 마치 윤혜인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녀는 이준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다.“저 지금 몸이 불편해요.”윤혜인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오늘 잠자리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그녀는 거울속에 비친 수려한 이준혁의 외모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자꾸 설렜다.이준혁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욕심이 생겨서 이준혁을 놓아주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린 뒤, 윤혜인은 거울 속의 이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렸고 그녀 가까이에 서있던 이준혁은 화장대에 손을 걸치더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감사 표시는 어떻게 할 건데?”그의 말에 윤혜인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예전에 그녀는 항상 몸으로 감사 표시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두 사람은 곧 이혼할 거니까!거울속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혁을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준혁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갑자기 윤혜인의 턱을 살짝 잡더니 고개를 돌리고 사나운 얼굴로 경고를 했다.“앞으로 그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모든 남자가 나처럼 신사적인건 아니야.”윤혜인은 그녀의 이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를 것이다. 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움직이지 마.”그렇게 두 사람은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꺼풀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이준혁은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이건 벌이야.”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윤혜인은 화가 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이때, 이준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