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눈물을 머금고 허탈하게 웃었다.“이준혁 당신에게 우리 할머니가 중요하고 않고를 떠나 내가 중요하지 않지 않은 거지?”망설일 필요도 없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이준혁은 더 이상 그녀의 행패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이게 재밌어?”순간 그녀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그 고통으로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윤혜인의 생존 본능이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할머니에게 아쉬움을 남겨드릴 수 없었다.그녀는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애원했다.“괜히 그러는 거 아니고 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당신을 너무 보고 싶어해요...”눈살을 찌푸린 이준혁은 전화상으로는 홀로 남아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할머니를 뵈러 간다고 했으니 꼭 지킬 거야. 넌 얌전히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면 돼.”윤혜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야만 울면서도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거의 실성하며 외쳤다.“그저 응석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진짜라고 말하고 있는데 당신은 왜 날 믿지 않는 거죠?”“믿지 않는 게 아니야. 세희가 몸이 안 좋아서 그래. 어제부터 심해져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니까. 난 절대 그녀를 홀로 해외에 남겨 둘 수 없어.”강경한 이준혁의 태도에 윤혜인은 절망했다.그녀가 자신을 너무 크게 본 것이 맞았다.이준혁에게는 임세희가 하늘이었다.외할머니가 위독하여 기다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준혁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잘못 믿었던 것 같다.“혹시 그녀가 그저 병으로 당신을 잡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요?”“헛소리 그만 해. 세희가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자신의 생명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야?”“바보란 걸 몰랐나요? 그것은 당신이 믿어줬기 때문이죠. 항상 그 핑계로 당신을 잡고 있었잖아요. 그럼 왜 매번 당신 앞에서만 아프고 다른 사람 앞에선 멀쩡한지 생각은 안 해 봤나요?”윤혜인
이 한마디에 조금 남아있던 이준혁의 상냥함이 사라졌다.그는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한두 번은 그럭저럭 맞춰줄 수 있지만 지금 윤혜인은 도가 너무 지나치다.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게다가 이런 식의 협박을 제일 싫어하는 이준혁이었다.그는 드디어 폭발했다.“윤혜인! 그만 유치하게 굴어! 헤어지잔 말로 감히 날 겁주려는 거야?”윤혜인의 마음은 이미 죽어서 그의 말은 전혀 자극이 되지 않았다.마음속의 그 환한 빛이 영원히 저물었다.“이번엔 진짜예요. 전에는 내가 눈이 멀어서 당신을 믿었어요.”“혜인이 너!”이준혁은 휴대폰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는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조금 진정하는 게 좋겠어!”“뚜뚜뚜-”상대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이준혁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쾅!”휴대폰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주훈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방금 대표님과 사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그는 조심 망설이다가 물었다.“제가 한번 무슨 일인지 알아볼까요?”“됐어!”이준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그 사람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보고 하지 마!”그는 그녀에게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녀가 이렇게 막무가내라고 생각했고 뭐만 하면 헤어지자는 말과 이혼하겠다는 말로 그를 위협하는 것 같다.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때까짖 내버려 둘 셈이었다.전화를 끊은 윤혜인은 조금 평온해 보였다.하지만 그저 겉면일 뿐이다.할머니는 한시가 급하다. 그녀는 반드시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단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할머니의 꿈을 이루어드려야 한다.그때 간호사 한 분이 다가오며 말했다.“304호 환자 가족분이시죠?”워낙 예쁜 미모여서 한두 번 스친 사이지만 간호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요?”간호사는 연민의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이렇게 예쁜 여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간호사가 말했다. “저기 누군가가 찾고 계시던데 얼른 가보세요.
바닥에 쓰러진 할머니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얼굴을 닦을 기력조차 없었던 할머니는 혼잣말했다.“우리 혜인이는 때리지 말아. 너희가 말한 그런 애가 아니란 말이다. 안 돼...”그때,윤혜인의 심장은 칼에 찔린 듯했다.그리고 막무가내로 난도질당했다.왜...왜 할머니에게 그러는 거야...앞에 선 뚱뚱녀는 할머니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늙은이 잘 들어. 당신 손녀는 남의 남자를 넘보는 아주 고약한 년이야. 우리는 하늘을 대신해 따끔하게 교육하는 거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은 그 여자에게 덮쳤고 그녀의 팔을 세게 물었다.그러자 살이 갈아지더니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악!”뚱뚱녀의 날카로운 비명에 함께 온 무리가 식겁했다.피는 여자의 팔을 따라 흘러내렸고 윤혜인의 얼굴에도 묻었다.세게 베어 문 윤혜인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완전히 실성한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할머니를 또 건드리면 다 죽여버릴 거야!”간병인도 그녀를 도왔다. 비록 몸을 떨고 있었지만, 상반신으로 할머니를 단단히 보호 하고 있었다.그녀는 이 무리와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옷차림만으로도 돈과 힘이 있어 보여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아가씨와 어르신이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벌벌 떨면서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라 믿으면 안 돼요... 아가씨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구경꾼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나서서 돕지 못했지만, 입으론 몇 마디 했다.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윤혜인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증거를 남기기 시작하며 그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명예훼손, 비방, 폭행! 너희들 누구 하나도 도망칠 생각하지 마.”함께 온 여자는 몸을 움츠렸다. 그들은 그저 뚱뚱한 친구의 분풀이를 해주면 2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윤혜인이 제삼자가 맞는지는 그들도 알지 못했다.게다가 조금 부유한 집들이라 감방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았다.주저하는 그들의 모습에 기
윤혜인은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모두 네가 꾸민 짓이지?”송소미는 못 들은 척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비록 예전에는 그랬던 적이 있지만 이미 잘못을 뉘우친 상태야. 그러니 헛소리하지 마.”이 말에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이제 보니 상습범이었네?동정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잖아?뚱뚱녀도 자신감을 되찾으며 윤혜인의 휴대폰을 낚아채 바닥에 던져버리고 발로 밟았다.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증거? 내가 지금 인정하게 해줄게.”그리고 가방에서 사진들을 한가득 꺼내 윤혜인의 얼굴에 뿌렸다.사진들이 바닥에 한가득 널브러졌다.예리한 사진 모서리가 윤혜인의 얼굴을 스쳤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진을 보았다.자태가 너무 난해했다.모두들 태세 전환하며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겉으로 봐선 아니더니 진짜네? 이렇게 미친 짓을 했을 줄이야.”“너무 역겨워! 맞아도 싼 년이야.”“나도 한때 때리고 싶네. 가증스럽긴.”“...”악의가 담긴 듣기 거북한 말들이 사방에서 공격했다.윤혜인은 천천히 몸을 돌렸고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줍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당황한 윤혜인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마치 둔탁한 무언가가 그녀를 덮친 것 같았다.모두 거짓이고 조작된 것이라고 할머니께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실망이 극에 달한 할머니의 표정에 그녀는 입술을 뗄 수 없었고 목구멍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다.순간, 윤혜인은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찰칵! 찰칵!”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휴대폰을 꺼내 증거를 남기며 인터넷에 올렸다.각종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으며 새로운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윤혜인은 다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이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거에요...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라고요...”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듣지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비웃음과 경멸의 소리는 더욱 거세
이 일은 원래부터 그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고 그저 돈만 받고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송소미가 이렇게 큰 그림을 만든 것은 마치 우연처럼 가장하기 위함이었고 더욱 손쉽게 배 속의 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뚱뚱녀와 사진들은 모두 사전에 준비된 것이다.나중에 실수했다고 하면 되고 좀 더 돈을 들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 와중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줄은 몰랐다.그녀는 이상야릇하게 말했다.“또 새로 꼬신 남잔가? 정말 대단하네 윤혜인. 양쪽에 하나씩 끼...”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얼굴에 송소미는 입을 틀어막았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숨도 크게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남자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있지 않았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들의 휴대폰을 전부 확인해 봐. 영상은 하나도 유출돼선 안 돼. 만약 삭제를 원하지 않는다면 법무부의 고소장을 받을 준비하라고 해.”감정 기복 없은 말투였지만 현장의 사람은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일 처리를 확실하게 했고 병실에는 이제 송소미만 남았다.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는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가려 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삼...촌...”이신우는 그녀를 흘겼다.“오늘 네가 한 짓은 결국에 이씨 가문의 얼굴을 깎는 거야.”“삼촌,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저 지나가다 들린 것뿐이에요...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나가. 아직은 내가 직접 나서지 않을 거니까.”이신우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송소미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이게 무슨 말이가?그럼 누가 그녀를...”그리고 송소미도 끌려 나갔다.병실은 조용했다.윤혜인은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했다.움츠린 몸을 떨며 기다시피 할머니 곁으로 갔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떨고 있는 할머니를 감싸 안았다.너무 가벼워 금방이라도 멀리 떠날 것 같았다.탁해진 눈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애를 쓰고 있는
할머니는 재빨리 응급실로 옮겨졌다.온몸이 경직된 윤혜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신우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물었다.“걸을 수 있겠어요?”윤혜인의 작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거의 반투명한 상태로 언제든지 쓰저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를 짚으며 강인하게 일어섰다.매우 맑은 눈동자를 가진 윤혜인이지만 지금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고마워요.”윤혜인은 가볍게 인사했다.할머니 앞에서 어느 정도의 품위는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줘서 그에게 고마웠다.잠시 숨을 돌린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치 한 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그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왔고 윤혜인에 허리를 굽히며 차분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낮은 목소리는 마치 저주처럼 들렸고 텅 빈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윤혜인은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뒤로 한 발 물러섰다.그녀의 두 손은 의사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착간 한게 아니에요?”이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의사가 그저 남은 날이 많지 않았고 했을 뿐 지금 당장 떠난다고는 하지 않았다.“그럴 리 없어요... 그렇죠?... 아침에만 해도 할머니는 고향의 잣빵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직 드셔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는 겁이 어디 있나요?”그녀는 무릎을 꿇고 의사의 팔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제발... 할머니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돈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의 병을 볼 수 있을 정도는 있다고요... 적어요...”그녀는 낮은 소리로 울먹였다.“적어도 잣빵정도는 드시고 가야죠...”할머니가 배를 곯으면 어떡하는가.윤혜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녀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다.옆에 있던 간호사는 급히 그녀의 팔을 잡으며 위로했다.“아가씨의 마음을 이해해요. 진정하시고 눈으로 할머니를 마지막을 담으세요.”하지만 윤혜인은 가고 싶지 않았다. 붉어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는... 거기에 없어요... 병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세요.”그녀는 몸을 돌려
그녀의 비명이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응답이 없었다....윤혜인은 계속 해서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절차를 밟고 장례식장을 예약했다.그녀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싶었다.600km가 넘는 거리, 밤새도록 운전해도 다음 날에야 도착할 것이다.간병인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조금 쉬라고 타일렀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그저 단호하게 벤치에 앉아있었다.그녀는 할머니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이신우가 다가와 윤혜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우연히 들른 것이어서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윤혜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은 하도 많이 울어서 약간 부어있었다.몸을 일으킨 그녀는 정중하게 경례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마치 깨진 북처럼 쉬어 있었다.“오늘 감사했어요. 제가 휴대폰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서 병원비 영수증을 보내주시면 일이 끝나는 대로 빠른 시일내에 입금할게요.”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이신우가 각종 비용을 납부했다.이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준혁이가 절 삼촌이라고 부르니 그럴 필요 없어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요.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할 건 해야죠. 돈은 제가 꼭 갚을게요.”송소미가 그를 삼촌이라 부르고 그의 외모가 이준혁과 비슷한 것을 보아 이 씨 가무의 사람인 것 같았다.이신우는 조금 당황했다.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선을 긋는 것을 보니 혹시 이준혁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나?그가 떠난 후.윤혜인은 병원의 벤치에 아침까지 앉아있었다.날이 밝자, 그녀는 수의와 장례를 위한 용품을 구입했다.8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차가 도착했다.간병인도 윤혜인과 함께 인하로 갔다. 오랫동안 보살펴서 감정이 남달랐고 어르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윤혜인은 침착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빈소를 골랐다.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 같으니 마지막 가는 길은 생략하는 것 없이 모두 할 것이다.그녀는 제사상에 올려놓을
인하의 절차에 따라 먼저 화장하고 나서 영정실에 올려드려야 했다.기다리는 동안 윤혜인은 몇 번이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마음에 새기려는 듯했다.시신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철문은 윤혜인의 눈앞에서 닫혔다.이번에는 정말로 할머니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이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슬픔이 밀려와 그녀는 철문을 두드리며 흐느꼈다.“할머니, 불을 피해요. 불을 피해야 해요, 할머니...”하지만 응답하는 것은 철문이 닫히는 소리뿐이었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 그 철문이 열렸다.화장 직원이 할머니의 골회를 넣었고 윤혜인은 골회암을 안고 영정실로 갔다.영정실은 이미 잘 준비되어 있었다. 윤혜인은 골회암을 올리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안고 무릎을 꿇었다.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중간에, 간병인이 그녀에게 밤을 먹으라고 했지만, 물만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그런 윤혜인이 안쓰러워 그녀는 보다 푹신한 쿠션을 무릎 아래에 깔 수 있게 했다.저녁 무렵, 빈소에 첫 번째 조문객이 찾아왔다.급히 달려온 문현미였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윤혜인이 검은 복장에 조복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진실임을 깨달았다.짧은 2날 동안 윤혜인은 너무 야위였다. 조문을 마친 문현미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결국 그녀는 힘겹게 한마디 했다.“착한 혜인아, 미안하구나.”철부지 아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었다.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윤혜인의 곁을 지키지 않으면 그 후에는 기회가 있을까?다행히 윤혜인은 문현미를 배척하지 않았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남는 것을 묵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두 명의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왔다.문미정이 송소미와 함께 조문하러 왔다.송소미는 어제서야 윤혜인의 외할머니가 돌아갔다는 소실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하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자신 때문에 돌아간 사람 때문인
육경한이 그래도 대꾸하지 않자 육연주는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삼촌, 나 성폭행당했어요. 흑흑흑...”이말에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육경한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육연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육연주는 면죄부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육경한의 관심만 남아있다면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육경한에게는 살아있는 혈육이 별로 많지 않았기에 육연주와 이지애가 제일 가까운 가족이었다. 게다가 육경한은 육연주가 커가는 걸 지켜본 사람이었기에 그 정은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나도 몰라요... 방씨 가문인지 서씨 가문인지 모르겠어요. 내 눈을 가리고 골목으로 끌고 가서 바닥에 누르고는... 반항할 새도 없이...”육연주는 이미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꼴이 왜 그 모양인지, 괴롭힘당한 흔적은 뭔지 알 것 같았다.경비원들은 이미 육연주를 잡고 경찰이 오면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해치려고 한 건 엄연한 죄였기에 그대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육연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하지만 소원은 육연주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태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얘기를 꺼낸 걸 봐서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는 일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말할 여자는 이 세상에 없었지만 그중 어딘가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요소도 들어있는 것 같았다.“삼촌, 삼촌,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육경한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육연주의 사정이 딱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했다.“네가 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비록 소원이 다치지 않게 육경한이 막아주긴 했지만 육연주가 정말 해치려든 사람은 소원이었기에 육경한이 용서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
육연주도 깜짝 놀란 상태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경비원에 의해 바닥에 제압되고 나서야 훌쩍훌쩍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삼촌, 삼촌... 나 좀 살려줘요...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삼촌...”얼굴이 굳어진 육경한이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남은 힘으로 소원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너 괜찮아? 황산에 맞은 건 아니지?”육경한이 아래위로 훑으며 소원의 몸에 망가진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소원은 육경한에게 고려 백자 같은 존재였기에 조금의 흠집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아직 놀라움을 떨쳐내지 못한 소원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괜찮아...”“정말 괜찮은 거 맞아?”육경한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다시 한번 되물었고 소원이 고개를 저어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보기 드물게 중얼거렸다.“너만 괜찮으면 됐어. 그러면 된 거야.”육연주가 아직 뒤에서 울부짖고 있었다.“삼촌, 이 사람들 좀 어떻게 해줘요... 너무 아파요. 빨리 풀어주라고 해요.”육경한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끔찍이 아껴왔던 조카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육연주는 이제 육경한이 기억하던 순진하고 해맑은 여자아이가 아니었다.“연주야. 너무 실망이다.”육경한이 침통한 심정으로 말했다. 소원을 해치려 드는 사람이 가족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지금 소원에게 손대면 소원뿐만이 아니라 소원 뱃속의 아이까지 위험해지게 된다. 아까와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 간의 정이라 해도 더 봐줄 수가 없었다.육연주는 살짝 무섭긴 했지만 지금까지 줄곧 자기를 아껴줬던 육경한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울기만 하면 육경한의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육연주가 무슨 사고를 치든 나서서 뒤처리를 해주던 사람이 바로 육경한이었으니 이다.육연주가 이렇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변한 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삼촌... 삼촌...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
소원이 비웃으며 물었다.“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는 게 사랑이라면 그 사랑 참 위대하네요.”“현재 씨는 원래 내 꺼였어요. 소개팅한 그날부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왜 나와 소개팅했겠어요?”육연주가 늘어놓는 말은 정말 갈수록 가관이라 소원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행색이 다소 이상해 보이는 육연주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육경한에게 제안해 볼 참이었다. 얼핏 보기엔 큰 자극을 받아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았다.육연주는 아직도 씩씩대며 중얼거렸다.“다 너 때문이야. 빌어먹을 년. 여우 같은 년. 우리 삼촌을 꼬드긴 것도 모자라 내 남편까지 꼬드겼잖아.”소원은 새로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욕을 들으며 어이가 없었다. 아까 이지애도 똑같은 욕을 했고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이 막무가내라 입씨름을 벌여봤자 전혀 의미가 없었다.더는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던 소원이 자리를 떠나려는데 육연주가 갑자기 쫓아오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병사리를 들고 욕설을 퍼부었다.“죽어. 네가 없어지면 현재 씨도 나 바라봐주겠지. 그래야 현재 씨가 나 영원히 사랑해 줄 거야.”마침 차를 끌고 온 주석훈이 이를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소원 씨, 조심해요.”차로 박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먼저 세우고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육경한의 보디가드도 이지애를 끌어내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소원 옆에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소원은 육연주의 손에 들린 게 뭔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지만 좋은 물건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뚜껑이 열리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공기 속으로 퍼졌다.눈살을 찌푸린 소원은 속에 든 것이 황산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미쳐버린 육연주가 소원의 얼굴을 망가트리려 하고 있었다.소원이 자기도 모르게 한 손으로 얼굴을 막으며 다른 손으로 육연주를 밀어내려 했지만 육연주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그럴 수가 없었다.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육연주가
두 사람의 관계는 이혼한 거나 다름없지만 이혼 신청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보충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게다가 소원은 육경한이 했던 말을 도로 무를까봐 그러는지 변호사까지 대동했고 이혼 협의를 공증까지 하겠다고 했다. 소원도 쩍하면 제멋대로 약속을 어기는 육경한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남기는 건 육경한의 제안뿐만이 아니라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서 포지션이 다시 엄마로 변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처음에는 따듯하게 반겨주지 못했지만 아이의 형상이 소원의 마음속에서 점점 입체감 있게 만들어지고 있었다.잘못은 어른이 했고 아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에 소원도 아이의 살 권리를 함부로 뺏을 수는 없었다.육경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비웃듯 웃었다. 이런 불평등 조약에도 속수무책인 건 그가 이기적이게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걱정하지 마.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 자유롭게 해줄게.”육경한이 사인하며 말했다. 이젠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질 때가 된 것이다. 소원과 아이를 보호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이제 정말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다른 일 없으면 이쯤 하자."소원이 이렇게 말하며 주지훈과 자리를 떠났고 육경한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뒤에서 지켜봤다.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앞에 육연주가 나타났다.“소원.”육연주가 소원을 불러세웠다. 옷은 어딘가 헝클어져 있었고 표정도 약간 이상했는데 더 무서운 건 몸에 괴롭힘과 학대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소원은 육연주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몰라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누가 모녀 아니랄까 봐 하는 말도 이지애와 똑같아 소원은 절로 웃음이 났다.“당신들이 내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잘못을 저질러서 벌받는 건데 왜 자꾸만 다른 사람이 당신 인생을 망쳤다고 하는 거예요?”소원은 이 사람들의 뇌 회
방씨 가문에서 지키려 한다 해도 방민아의 인생은 별로 희망이 없었다.육연주는 적게 연루되기도 했고 육경한이 손쓴 덕분에 구치소에 한 달 구금되었다가 나왔다. 육경한이 육연주에게 변호사를 찾아줬지만 육연주 모녀는 이를 소원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한사코 거절하면서 일부러 육연주를 구치소에 들여보냈고 육경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하지만 육연주 모녀가 모르는 게 있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원칙인 방씨 가문은 방민아가 이 지경까지 된 게 다 육연주 탓이라고 생각한 이상 복수를 준비할 것이고 그 후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그다음은 서씨 가문이었다. 육연주가 서씨 가문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오라지 않았지만 서현재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이 점점 이상해진 데다 원래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재벌 집 아가씨라 서씨 가문에 척을 진 사람이 많았다.지금의 서씨 가문은 몰락하게 되었고 서현재가 암 덩어리 같은 사람들을 서씨 가문에서 몰아내긴 했지만 줄곧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그 어떤 미친 생각을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육연주가 계속 서울에서 나댄다면 앙심을 품은 서씨 가문 사람들이 기회를 노리고 복수해 올 수도 있기에 아예 이지애와 함께 외국으로 나가 피신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지만 모녀는 육경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소원에게 홀려 인사불성이라고만 생각했다.이지애는 끌려가면서 육경한에게 원망을 퍼붓기도 했다.“경한아, 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래? 우리가 잘해준 거 다 잊은 거야? 여자 하나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이 우리를 내치겠다고? 가족인데 어떻게 그래?”사실 잘해줬다고 할 것도 없었다. 상대편에 서서 손가락질하지 않고 돈 몇십만 원 쥐여준 게 전부였다. 이지애도 그때는 살만했기에 양심이라는 게 남아있었고 조금의 ‘선심’을 베풀었지만 육경한은 갚아야 할 돈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많은 돈으로 보답했다.다만 이지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빚쟁이 대하듯 대했다. 돈이 많으니 이걸로는
“경한아... 억울해서 죽을 것 같구나. 쟤가 어떻게 했는지 아니? 날 욕하고 때리고...”이지애는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소원은 어이가 없는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고 한편으로는 육경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육경한은 이 일에 엮이고 싶은 생각조차 없는지 차가운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경호원을 바라봤다.“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빨리 데려가.”육경한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경호원들은 두피가 저릿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데려가겠습니다.”이지애는 육경한이 자신의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해 재빨리 다각 그의 손목을 잡았다.“역시 경한이가 최고야. 우린 가족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저 여자가 우리 남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연주가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살도 많이 빠졌어. 삼촌이 무시한다며 얼마나 울었는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지애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경호원이 왜 나한테 오지?’‘저 천박한 계집애를 끌어내지 않고 뭐 하는 거야.’“잠깐만... 지금 착각하는 모양인데 경한이는 저 여자를 끌어내라고 한 거야. 옆에 있는 변호사까지 묶어서 밖으로 쫓아내.”경호원들은 이지애처럼 눈치가 없고 멍청하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육경한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는 이지애였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빽이 있다며 대표님과 미우 그룹을 언급하는지...’‘대표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거지?’경호원들은 이지애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그녀를 끌고 나갔다.현실 부정 중인 이지애는 육경한의 팔을 꽉 잡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경한아, 말 좀 해봐. 저 여자 쫓아내려고 했잖아. 나는 네 누나야.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외부인 편을 들 수 있어? 경한아...”이지애는 눈물을 쏟았다.“말 좀 해봐.”“누나.”육경한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진지하게 말했다.“여러 번 말했잖아요. 소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대뜸 욕을 바가지째로 먹었다.그럼에도 이지애는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X신들. 멍청하기는.”방금까지 동정심을 느끼던 여자에게 심한 욕을 먹었으니 다들 어이가 없었고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을 지껄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저렇게 추잡스러운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그러니까요. 좋은 사람이었다면 구치소에 수감되었겠어요?”이지애는 여론이 이렇게 빨리 바뀔 줄 몰랐는지 더욱 흥분했다.“너희들이 뭘 알아. 이 여자가 내 딸을 해쳤고 내 딸은 피해자야. 이 여자가 헛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수감될 일도 없었어.”사람들은 더 이상 이지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 지르며 욕하는 모습은 정말 품위가 없어 보였다.“그쪽이 돈 많고 대단한 사람이라면서요? 딸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면 당연히 빼냈겠죠.”이때 한 아주머니가 일침을 놓았다.“맞는 말이에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잡았겠어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이유 없이 사람을 잡았다면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우리가 일 순위이겠죠.”“됐어요. 됐어요. 이만하고 다들 들어갑시다. 구경났어요?”아파트 단지 관리자가 달려와 구경 중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그 시각.육경한은 고위급 회의에 참석 중이었고 황진수는 전화를 받고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육경한은 해외의 유명 대기업과 협상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중요한 회의인 만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하지만 소원에 관한 일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황진수는 몇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회의실로 들어갔다.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그는 육경한에게 다가가 보고 했다.그러자 육경한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황진수를 회의석으로 끌어당겼다.“네가 해.”‘지금 나한테 이 중요한 회의를 떠맡기고 간 거야? 내가 이런 걸 할
소원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그녀를 부축했다.“소원 씨, 괜찮아요?”말을 건넨 사람은 주석훈이었다.오늘 아침 두 사람은 합의 사항을 만들기 위해 만나기로 약속했다.그러다가 미친 사람처럼 소원에게 달려드는 이지애를 목격했고 소원이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넘어지려던 찰나에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부축했다.옆에서 발악하던 이지애는 어디선가 나타난 경호원에게 제압되었다.“너 누구야? 감히 날 막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경호원에게 꽉 붙잡힌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럽다.이지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장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미우 그룹 대표가 내 동생이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다들 죽고 싶어서 환장하는구나. 내 동생이 오면 너희는 하나도 빠짐없이 서울에서 쫓겨날 거야.” 이지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반응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육경한이 보낸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다.경호원들은 육경한과의 관계를 듣고 쉽게 손을 쓰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는 소원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기에 이지애가 해치지 못하게 손을 묶어두었다.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지애와 소원이 다투고 있을 때 곧바로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이지애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녀는 소원을 부축하는 주석훈을 보며 막말을 퍼부었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 동생이랑 헤어진 지 며칠 됐다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 너는 남자를 꼬시는 게 취미야?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하여튼 개 버릇 남 못 준다니까.”이지애의 말은 듣기 굉장히 거북했고 소원은 방금 한 대만 때리고 멈춘 자신을 원망했다.그 시각 주석훈은 단호한 표정으로 이지애를 바라봤다.“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도 처벌 대상입니다. 제 의뢰인이 내연녀라는 증거가 있나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일방적인 모함에 속하고 법에 의거하여 충분히 고소할 수 있
이지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생트집을 잡았다.그러나 사건의 경과를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무작정 소원을 내연녀라고 생각했다.하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시간이라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소원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이를 본 이지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오늘 기필코 소원을 짓밟으리라 다짐했다.그녀는 계속하여 소리쳤다.“빈말이 아니라 여러분은 남편 간수 잘해요. 한동네 살다가는 이 여자한테 홀랑 넘어갈 수도 있다니까요?”소원은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말조심하세요. 계속 이런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고소할 겁니다.”소원이 경찰에게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꺼내자 이지애는 단번에 핸드폰을 쳐냈다. 소원을 모욕하려고 찾아온 만큼 절대 경찰에 신고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핸드폰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화가 났던 소원은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그 타이밍에 이지애가 손을 들어 그녀를 밀었다.계단에 서 있던 소원은 이지애가 손을 뻗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허리를 짚었다.그러고선 자신의 본능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다,‘내가 왜... 이 아이를 신경 쓰는 거지...’그녀의 몸은 이미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 같다.비록 소원은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지만 본능이 이렇게 행동하게끔 그녀를 이끌었다.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건 타고난 모성애일까?이지애는 죄책감을 느낀 소원이 겁을 먹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착각했다.아니나 다를까 더욱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다.“다들 봤죠? 겁먹었잖아요. 잘못한 게 있으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겠어요?”“이 여우 같은 계집애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세요. 남자에 환장한 X이에요. 천박한 것.”주변 사람들은 이지애의 말을 듣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우리 동네에 이런 여자가 살고 있었다니. 정말 몰랐네요.”“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저 예쁜 얼굴로 이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