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모두 네가 꾸민 짓이지?”송소미는 못 들은 척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비록 예전에는 그랬던 적이 있지만 이미 잘못을 뉘우친 상태야. 그러니 헛소리하지 마.”이 말에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이제 보니 상습범이었네?동정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잖아?뚱뚱녀도 자신감을 되찾으며 윤혜인의 휴대폰을 낚아채 바닥에 던져버리고 발로 밟았다.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증거? 내가 지금 인정하게 해줄게.”그리고 가방에서 사진들을 한가득 꺼내 윤혜인의 얼굴에 뿌렸다.사진들이 바닥에 한가득 널브러졌다.예리한 사진 모서리가 윤혜인의 얼굴을 스쳤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진을 보았다.자태가 너무 난해했다.모두들 태세 전환하며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겉으로 봐선 아니더니 진짜네? 이렇게 미친 짓을 했을 줄이야.”“너무 역겨워! 맞아도 싼 년이야.”“나도 한때 때리고 싶네. 가증스럽긴.”“...”악의가 담긴 듣기 거북한 말들이 사방에서 공격했다.윤혜인은 천천히 몸을 돌렸고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줍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당황한 윤혜인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마치 둔탁한 무언가가 그녀를 덮친 것 같았다.모두 거짓이고 조작된 것이라고 할머니께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실망이 극에 달한 할머니의 표정에 그녀는 입술을 뗄 수 없었고 목구멍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다.순간, 윤혜인은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찰칵! 찰칵!”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휴대폰을 꺼내 증거를 남기며 인터넷에 올렸다.각종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으며 새로운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윤혜인은 다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이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거에요...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라고요...”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듣지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비웃음과 경멸의 소리는 더욱 거세
이 일은 원래부터 그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고 그저 돈만 받고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송소미가 이렇게 큰 그림을 만든 것은 마치 우연처럼 가장하기 위함이었고 더욱 손쉽게 배 속의 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뚱뚱녀와 사진들은 모두 사전에 준비된 것이다.나중에 실수했다고 하면 되고 좀 더 돈을 들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 와중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줄은 몰랐다.그녀는 이상야릇하게 말했다.“또 새로 꼬신 남잔가? 정말 대단하네 윤혜인. 양쪽에 하나씩 끼...”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얼굴에 송소미는 입을 틀어막았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숨도 크게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남자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있지 않았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들의 휴대폰을 전부 확인해 봐. 영상은 하나도 유출돼선 안 돼. 만약 삭제를 원하지 않는다면 법무부의 고소장을 받을 준비하라고 해.”감정 기복 없은 말투였지만 현장의 사람은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일 처리를 확실하게 했고 병실에는 이제 송소미만 남았다.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는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가려 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삼...촌...”이신우는 그녀를 흘겼다.“오늘 네가 한 짓은 결국에 이씨 가문의 얼굴을 깎는 거야.”“삼촌,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저 지나가다 들린 것뿐이에요...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나가. 아직은 내가 직접 나서지 않을 거니까.”이신우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송소미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이게 무슨 말이가?그럼 누가 그녀를...”그리고 송소미도 끌려 나갔다.병실은 조용했다.윤혜인은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했다.움츠린 몸을 떨며 기다시피 할머니 곁으로 갔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떨고 있는 할머니를 감싸 안았다.너무 가벼워 금방이라도 멀리 떠날 것 같았다.탁해진 눈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윤혜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애를 쓰고 있는
할머니는 재빨리 응급실로 옮겨졌다.온몸이 경직된 윤혜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신우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며 물었다.“걸을 수 있겠어요?”윤혜인의 작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거의 반투명한 상태로 언제든지 쓰저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를 짚으며 강인하게 일어섰다.매우 맑은 눈동자를 가진 윤혜인이지만 지금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고마워요.”윤혜인은 가볍게 인사했다.할머니 앞에서 어느 정도의 품위는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줘서 그에게 고마웠다.잠시 숨을 돌린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치 한 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그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왔고 윤혜인에 허리를 굽히며 차분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낮은 목소리는 마치 저주처럼 들렸고 텅 빈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윤혜인은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뒤로 한 발 물러섰다.그녀의 두 손은 의사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착간 한게 아니에요?”이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의사가 그저 남은 날이 많지 않았고 했을 뿐 지금 당장 떠난다고는 하지 않았다.“그럴 리 없어요... 그렇죠?... 아침에만 해도 할머니는 고향의 잣빵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직 드셔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는 겁이 어디 있나요?”그녀는 무릎을 꿇고 의사의 팔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제발... 할머니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돈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의 병을 볼 수 있을 정도는 있다고요... 적어요...”그녀는 낮은 소리로 울먹였다.“적어도 잣빵정도는 드시고 가야죠...”할머니가 배를 곯으면 어떡하는가.윤혜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녀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다.옆에 있던 간호사는 급히 그녀의 팔을 잡으며 위로했다.“아가씨의 마음을 이해해요. 진정하시고 눈으로 할머니를 마지막을 담으세요.”하지만 윤혜인은 가고 싶지 않았다. 붉어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는... 거기에 없어요... 병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세요.”그녀는 몸을 돌려
그녀의 비명이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응답이 없었다....윤혜인은 계속 해서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절차를 밟고 장례식장을 예약했다.그녀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싶었다.600km가 넘는 거리, 밤새도록 운전해도 다음 날에야 도착할 것이다.간병인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조금 쉬라고 타일렀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그저 단호하게 벤치에 앉아있었다.그녀는 할머니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이신우가 다가와 윤혜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우연히 들른 것이어서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윤혜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은 하도 많이 울어서 약간 부어있었다.몸을 일으킨 그녀는 정중하게 경례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마치 깨진 북처럼 쉬어 있었다.“오늘 감사했어요. 제가 휴대폰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서 병원비 영수증을 보내주시면 일이 끝나는 대로 빠른 시일내에 입금할게요.”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이신우가 각종 비용을 납부했다.이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준혁이가 절 삼촌이라고 부르니 그럴 필요 없어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요. 하지만 확실히 해야 할 건 해야죠. 돈은 제가 꼭 갚을게요.”송소미가 그를 삼촌이라 부르고 그의 외모가 이준혁과 비슷한 것을 보아 이 씨 가무의 사람인 것 같았다.이신우는 조금 당황했다.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선을 긋는 것을 보니 혹시 이준혁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나?그가 떠난 후.윤혜인은 병원의 벤치에 아침까지 앉아있었다.날이 밝자, 그녀는 수의와 장례를 위한 용품을 구입했다.8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차가 도착했다.간병인도 윤혜인과 함께 인하로 갔다. 오랫동안 보살펴서 감정이 남달랐고 어르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윤혜인은 침착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빈소를 골랐다.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 같으니 마지막 가는 길은 생략하는 것 없이 모두 할 것이다.그녀는 제사상에 올려놓을
인하의 절차에 따라 먼저 화장하고 나서 영정실에 올려드려야 했다.기다리는 동안 윤혜인은 몇 번이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마음에 새기려는 듯했다.시신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철문은 윤혜인의 눈앞에서 닫혔다.이번에는 정말로 할머니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이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슬픔이 밀려와 그녀는 철문을 두드리며 흐느꼈다.“할머니, 불을 피해요. 불을 피해야 해요, 할머니...”하지만 응답하는 것은 철문이 닫히는 소리뿐이었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 그 철문이 열렸다.화장 직원이 할머니의 골회를 넣었고 윤혜인은 골회암을 안고 영정실로 갔다.영정실은 이미 잘 준비되어 있었다. 윤혜인은 골회암을 올리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안고 무릎을 꿇었다.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중간에, 간병인이 그녀에게 밤을 먹으라고 했지만, 물만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그런 윤혜인이 안쓰러워 그녀는 보다 푹신한 쿠션을 무릎 아래에 깔 수 있게 했다.저녁 무렵, 빈소에 첫 번째 조문객이 찾아왔다.급히 달려온 문현미였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윤혜인이 검은 복장에 조복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진실임을 깨달았다.짧은 2날 동안 윤혜인은 너무 야위였다. 조문을 마친 문현미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결국 그녀는 힘겹게 한마디 했다.“착한 혜인아, 미안하구나.”철부지 아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었다.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윤혜인의 곁을 지키지 않으면 그 후에는 기회가 있을까?다행히 윤혜인은 문현미를 배척하지 않았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남는 것을 묵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두 명의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왔다.문미정이 송소미와 함께 조문하러 왔다.송소미는 어제서야 윤혜인의 외할머니가 돌아갔다는 소실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하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자신 때문에 돌아간 사람 때문인
문미정이 거들었다.“맞아. 소미가 나한테도 별것도 아닌 것을 크게 만들었다고 그 사람 욕을 어찌나 하는지.”“이건 아줌마가 주는 것이니 받아. 이 일은 소미가 입이 싸서 벌어진 거여서 할머니께 정중하게 사과드리라고 내가 단단히 일렀어.”윤혜인은 그 봉투를 문미정의 얼굴에 뿌리며 분노했다.“꺼지라고 했잖아! 안 들려? 당장 꺼져!”지폐가 공중에 흩어졌다. 예리한 모서리가 하마터면 두 모녀의 얼굴에 상처를 남길 뻔했다.그날 소위 말한 그녀의 ‘부끄러운’ 흔적들처럼,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언어폭력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지만, 거짓된 사죄 한마디면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간다.왜!송소미는 겁에 질려 소리쳤다.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정도껏 해야지 할머니가 노쇠해서 돌아간 거지 나와 무슨 상관이에요? 게다가 80세가 넘지 않았어요? 매일 병원에 서 누워있으면서 돈만 축내고 있는데 당신 같은 가난뱅이가 어떻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당신을 도와준 거나 다름없은데 나에게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인데...”“닥쳐!”문현미가 송소미의 따귀를 날리려 했다. 하지만 윤혜인이 한발 빨랐다. 그녀는 송소미의 목을 졸랐다.그녀는 화난 한 마리 야수 같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너무 힘을 준 탓에 하얗게 변했고 손등의 힘줄이 떠질 듯이 돋아났다.마음 깊숙히 억눌려 있던 아픔과 분노 그리고 미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무엇 때문에 그녀가 이런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할머니는 정직하고 부지런히 살아왔던 아들을 잃었지만, 단 한 번도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한 적 없었고 오히려 삶을 갈망하고 사랑했으며 열심히 그녀를 보살폈다.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걱정했고, 그녀를 믿는다고 말하며 거듭 미안하다고만 했다...이렇게 자애롭고 착한 사람인데 어째서 이런 불행을 맞이해야 하는가! 왜 마지막까지
이준혁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항상 착하고 고분고분한 윤혜인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을 줄은 몰랐다.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송소미는 호흡을 되찾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문미정은 그제야 안도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내 딸을 죽이려 해!”“죽어 마땅해!”단답으로 내뱉는 윤혜인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문미정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흠칫 놀랐고 공포를 느꼈다.윤혜인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겨우 정신을 차린 송소미는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다.“엄마... 저년이 날 죽이려 해요. 도와줘요.”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문미정은 달려들어 윤혜인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그 둘 모녀를 보고 싶지도 않았던 이준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끌어내! 다시 나타나면 그때는 강에 던져버려!”그렇게 빈소는 고요를 되찾았다.이준혁은 외할머니의 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머리를 숙였다.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윤혜인에게 다가갔다.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항상 씩씩했지만, 지금은 미움과 자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같이 극심한 고통이 이어졌다.그에게 할머니를 보러 오라고 애원했을 때, 뭐라고 했던가?억지 부리지 말라며 유치하다고 했고 왜 그렇게 독하냐고 무턱대고 차분해지라고만 했다.그녀가 제일 힘든 순간에 그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고 냉혹한 말들로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그는 할머니를 유감 가득한 채로 떠나게 했다.그는 나쁜 자식이다.“혜인아... 미안해...”이준혁은 무릎을 꿇었다. 마음 아팠던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려고 했다.하지만 윤혜인은 그를 뿌리쳤다.눈시울이 붉어지고 긴 머리가 흐트러졌다. 그녀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그녀의 두 눈은 차갑게 식었다.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인 것 같다.그저 아주 평온했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그런 느낌.오후에 이신우가 빈소를 찾았다.그는 이준혁을 지나치면서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할머니에게 정중한 인사를 했다.그리고 그는 윤혜인을 마주했다.수없이 많을 도움을 받았기에 윤혜인은 몸을 일으켜 고마움을 표시했다. 너무 급히 움직인 탓 그녀는 잠시 휘청거렸고 이신우가 잡아주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이준혁은 이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윤혜인과 삼촌... 어떻게 아는 사이지?이신우는 이내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가 문을 나서려는데 이준혁이 먼저 그를 불렀다.“삼촌.”이신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짙은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이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혜인이는 내 와이프예요.”경고이면서도 떠보고 있는 것이었다.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삼촌이기 때문이다.모두들 36살 이신우가 아직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어서라고 여겼지만 이준혁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란 것을 알고 있었다.그 사람 때문에 할아버지와 대적할 정도였으니까.하지만 어렴풋하게 전해 들은 데 의하면 명문가의 아가씨라 윤혜인과는 출신부터 달라 이신우가 이러는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이신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지금은 너의 와이프란 걸 알고 있어.”지금은?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는 한마디에 이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하지만 이신우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떠났다.이준혁의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었다.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윤혜인은 억지로 몇 술 뜨는 정도였다.이준혁이 뭐라 하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밤에 윤혜인은 빈소를 지켰다.이것은 그녀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내일이면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한다.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고 이준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있었다.이건 그가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소원이 멈칫하자 서현재가 설명했다.“소원 씨 지금 몸 상태로는 술 마시면 안 될 것 같은데. 약속이 있더라도 조심해요.”서현재는 소원이 약속 때문에 온 거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숨기지 않았다.“약속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여기서 출근하고 있어요.”“...”서현재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원은 대화가 끝난 줄로 알고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뜨려고 했다.“소원 씨.”서현재가 소원을 불러세우자 소원이 걸음을 멈췄다.“혹시 요즘 돈이 부족한가요?”서현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소원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내 의지로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고마워요.”소원이 이렇게 말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소원은 이렇게 말하면 서현재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기억을 잃은 바에는 철저히 잃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소원의 일에 끼지 않는 게 서현재의 발전에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처럼 기억을 쭉 잃는 것도 어찌 보면 좋은 일이다. 이게 소원이 서현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일지도 모른다.서현재는 멀어져가는 소원의 뒷모습을 보며 침묵에 빠졌다. 왜 여기로 출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원은 이런 곳에서 출근할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원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서현재도 과도하게 참여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소원의 삐쩍 마른 뒷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소원은 이제 종이 인형처럼 말라 있었지만 허리를 꼿꼿이 편 모습이 겨울에 피어난 매화와도 같았다. 그 누가 뭐라 하든 절대 꺾이지 않는 그런 매화꽃 말이다.덤덤하던 서현재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 여자를 마주칠 때마다 텅 빈 가슴이 조금씩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느낌인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떨치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았다.서현재는 소원의 뒷모습이 금빛으로 빛나는 대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안으로 들어가자 카운터 직원이 소원에게 누구를 찾아왔냐며 물었다. 소원이 이름을
서현재는 물건에 부딪쳤을 때만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육연주는 뒤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내키지 않는지 가방을 주워 들고는 핸드폰을 꺼내 서진태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할아버지, 현재가 저 괴롭혀요. 저랑 파혼하겠다고 막 그러고 있어요.”육연주가 울먹거리며 일러바쳤다.서진태가 한참 말려서야 육연주는 눈물을 그쳤다.“알겠어요. 할아버지. 저도 그냥 갑자기 울분이 터져서 그래요. 현재 씨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결혼할 텐데요.”서진태가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우리 연주 어쩌면 이렇게 착할까. 걱정하지 마. 정해놓은 결혼식 날짜는 변하지 않아. 네가 우리 서씨 가문 며느리라는 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서진태가 육연주를 열심히 달래는 건 육경한과의 거래뿐만이 아니라 육씨 가문과 서씨 가문이 손을 잡으면 막대한 이익이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결혼에 절대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서현재가 차에 오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서현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핸드폰을 꺼버렸다.코너를 돌자 핸드백을 든 소원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현재는 신분도 그렇고 육연주와 약혼한 사이라 파혼하기 전까지는 다른 여자에게 크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냥 가버리려 했지만 소원이 기둥에 기댄 채 막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걸 보고는 마음이 약해져 앞에 차를 세웠다.서현재가 차창을 내리고 소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소원 씨, 어디 가요?”소원은 여기서 서현재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잠깐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이제 들어가려고요.”소원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면 서현재가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현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바래다줄게요.”소원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이미 차 불렀어요.”서현재는 지도를 힐끔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지금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혀요. 차를 불렀다 해도 그렇게
조금 전 육연주가 뱉은 말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한 것일 뿐이었다.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녀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서현재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그가 정말로 파혼이라도 언급할까 봐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러나 서현재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제 신분이 연주 씨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억지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 없어요. 연주 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요.”“현재 씨!”육연주는 그의 말이 진심일 줄은 몰랐다.‘어떻게 나더러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할 수 있어?!’분노가 차오르니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그러다 육연주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아, 가슴이 아파요...”이 말은 스스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함이었다.이미 결혼 이야기가 대외로 알려졌는데 지금 와서 상대를 바꾸는 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무엇보다 그녀는 정말로 서현재와 결혼하고 싶었다.육연주는 서현재를 좋아했다.아니, 그에게 집착하고 있었다.서현재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줬다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현재 씨가 날 조금만 더 이해하고 한 발만 더 다가왔더라면...’하지만 서현재는 늘 차가웠다.그리고 서현재는 육연주의 연기를 더 이상 참아주지 않았다.“이 결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그의 말은 단호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육연주는 충격을 받았다.‘날 달래기는커녕 파혼하자고?!’“현재 씨, 현재 씨 예전엔 이렇지 않았어요. 날 정말 사랑했잖아요...”육연주는 눈물을 머금고 애처롭게 말했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그녀와 서현재 사이에는 ‘예전’이라 불릴 만한 진짜 추억은 존재하지 않았다.모두 육연주와 그의 외삼촌 육경한, 그리고 가족들이 꾸며낸 이야기였을 뿐이지.당시 육연주는 눈물을 흘리며 육경한에게 하소연을 했고 육경한은 그녀에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 말을 믿지 않았던 그녀는 몇 주 뒤, 서현재의 할아버지인 서진태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육연주는 서현재가 자신의 외삼촌과 관계가 있는 그 비밀스러운 여자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신경 쓰고 있다 하기엔 과장일 수도 있었지만 서현재는 늘 차가운 성격이었기에 그 여자의 말에 직접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육연주의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두 사람의 눈빛 교환 하나하나가 육연주에게 불길한 예감을 들게 했다.왜냐하면 서현재는 그녀에게 한 번도 그런 눈빛을 보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사실 육연주는 서현재가 자신을 제대로 쳐다본 적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 생각에 점점 더 불안해지던 육연주는 그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현재 씨, 지금 아이 가지면 결혼식 때는 티도 안 날 거예요.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 아닐까요?”서현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았다.육연주의 스킨십이 달갑지 않은 듯 보였고 옷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가끔 서현재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와 육연주가 ‘연인 사이였다’는 이야기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게 사실이라면 육연주의 스킨십에 이토록 거부감이 들 리가 없기 때문이다.옷깃조차 스치지 않길 바라는 자신을 보며 의문이 들곤 했다.아이를 갖는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여 서현재는 단순히 무심하게 대답했다.“다음에 얘기해요.”하지만 육연주는 그 말이 회피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오히려 희망을 품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오늘 밤 제가 집에 갈까요? 우리...”그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서현재는 발걸음을 떼며 육연주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뿌리치고 냉정하게 말했다.“지금은 곤란해요.”이 정도 표현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거절이었다.서진태는 항상 그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네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는 건 안 된다. 연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고 항상 체면을 세워줘야 해.”그러나 육연주와의 관계는 서현재에게 끝없는 인내심을 요구했다.그녀는 항상 자신이 특별 대
소원은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퇴원을 고집했다.결국 의사는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허락했고 소원은 퇴원 수속을 마친 뒤 계좌를 확인하다가 거기에 꽤 많은 돈이 입금된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소종이 대신 납부한 병원비일 것이다.하여 소원은 미우 그룹의 회사 계좌를 찾아 병원비를 곧바로 송금했다.그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육경한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그와 조금의 연관조차 맺고 싶지 않았고 오직 유진이의 양육권을 되찾을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다.아침에 알아본 바로는 병원에 안지철의 진료 기록이 없었고 근처 다른 병원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안지철은 행방불명 상태였다. 아마 이미 죽었을 가능성도 컸다.유시연 쪽으로 연락이 닿을 가능성도 없었다.이미 발각된 이상, 소종은 모든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했을 테니 말이다.소원은 소종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한 번 손을 대면 단 하나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반년 동안 추적해왔던 일이 이제야 결실을 맺으려는 찰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절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소원은 병실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려 했다.2층 복도 멀리서, 서현재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그는 아래층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소원의 모습을 보았다.희미한 실루엣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또 그 여자네?’왠지 모르게 익숙한 감정이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다.소원의 모습은 생기라고는 없는 듯했다.생각에 잠긴 채 그녀는 마치 허공을 떠도는 것처럼 걸어가고 있었다.알 수 없는 연민에 가슴이 저릿한 서현재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심장이 자꾸 통제되지가 않아...’“현재 씨!”밝은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서현재가 멍하니 있는 걸 보고 육연주가 다가오며 물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그러자 서현재는 소원의
소원은 육경한을 잘 알고 있었다.그가 방민아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사업가로서 육경한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이익과 평판이었다.방씨 가문은 미우 그룹이 가장 어려운 시절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육경한은 방민아와 결혼해야 했다.그렇게 해야만 상업계에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결국 아무도 ‘이용하고 버리는 사람’이나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방민아와의 결혼은 육경한에게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미우 그룹의 서울에서의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한 중요한 한 수였던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육경한은 유진이를 위해 방민아를 꾸짖을 리 없었다.육경한에게 있어서 그건 ‘손해 보는 거래’일 뿐이었다.그렇다. 모든 게 결국 거래였다.육경한의 머릿속에서 세상 모든 일은 하나의 거래로 계산되었다.“소원 씨, 이렇게 좋은 기회인데 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요? 시간을 끌수록 소원 씨 아이만 더 힘들어질 텐데요.”방민아의 이 말 한마디는 소원의 모든 선택지를 막아버렸다.아이, 그것이 소원의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그녀는 아이를 외면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었다.“알겠어요. 할게요.”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소원은 거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 앞에 놓인 길은 단 하나, 바로 타협이었다.그러자 방민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소원 씨가 뭘 좀 아시네요. 오늘 밤 바로 그곳으로 가세요. 제가 아는 분을 배정해뒀으니 꼭 잘 대접해야 해요. 손님을 실망시키면 안 돼요, 알겠죠?”소원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 사람이 누군데요?”방민아는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굳이 묻지 않아도 돼요. 가보면 알게 될 거니까.”그녀의 비정상적인 웃음에 소원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사람이 아닐 거라는 것은 분명했다.그럼에도 소원은 어쩔 수 없었다.아이를 위해서 그녀는 방민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민아 씨 말대로 할게요. 하지만
“민아 씨는 육경한이 이런 짓을 눈감아줄 거라고 생각해요?”소원은 단호하게 물었다.아무리 그래도 육경한은 아이의 아버지였다.그가 자기 친자식의 목숨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설령 유진이가 그에게 단지 협박을 위한 도구일지라도, 유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소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육경한도 알고 있을 것이다.“하하하하...”방민아는 소원의 말을 듣고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소원 씨, 정말 순진하시네요. 유진이는 병약하잖아요. 열이 나거나 음식 하나만 잘못 먹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애를 제가 굳이 손까지 대야겠어요?”방민아는 소원의 순진함을 산산조각내고 싶다는 듯 미소를 띤 채 속삭이듯 말했다.“경한 씨가 그런 거로 저랑 싸울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그녀의 말은 명백했다.자신은 유진이를 해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더라도, 유진이가 육경한의 곁에 있는 한 기회는 충분했다.게다가 방민아의 말처럼 유진이는 정말로 사소한 자극에도 버티기 힘든 아이였다.크게 손대지 않아도 작은 계략 하나면 충분히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소원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위험을 상상하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듣자 하니 그 아이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만약... 그냥 만약에요, 이식받기 전에 죽게 된다면 정말 안타깝겠네요.”방민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아직 어린애라 세상을 즐길 기회도 없었을 텐데 그렇게 가버리면 정말 아쉽지 않을까요?”“감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소원은 손에 힘을 주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기만 해봐. 내가 너희 모두를 죽여버릴 거야.”소원은 ‘너희’라고 말했다.육경한이 아이를 방민아 같은 여자에게 맡긴 순간, 그는 이미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기대할 건 없었다.만약 유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소원은 어떤 수를 써서
“헛소리하지 마세요!”소원은 화가 치밀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유진이는 체질이 약하기는 해도 아주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에 아픈 일이 드물었다.그런데 육경한에게 데려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열이 났고 게다가 방민아 같은 여자가 아이를 돌보게까지 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네.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가 다른 여자가 낳아준 그 사람의 자식을 진심으로 잘 돌봐줄 리가 없잖아. 육경한이 미친 게 틀림없어. 어떻게 방민아가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거지?’소원은 연달아 떠오르는 의문들에 답답함이 몰려왔지만 스스로를 다잡고 차분히 물었다.“민아 씨,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요. 대체 무슨 속셈이에요?”“이렇게 나오신다면야...”방민아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며 나직하게 말했다.“듣자 하니 소원 씨가 예전에 경한 씨를 따라다니며 술자리에서 접대도 하고 꽤 능숙했다고 하던데요?”소원은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훗, 재미없네요. 얘기할 생각이 없다면 전 이만 가볼게요.”곧 방민아는 손가방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소원은 다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가지 마요. 잠시만요... 생각해볼게요.”소원은 머릿속을 뒤지듯 기억을 더듬었다.그러다 문득 딱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육경한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서는 그녀에게 요란한 옷을 입히고 KB 클럽에 가서 여러 대표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한 일 말이다.그것은 단 한 번 발생한 일이었고 그마저도 ‘접대’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모욕하려는 목적이었다.지금도 그때의 치욕적인 기억이 떠오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원은 꿀꺽 침을 삼키며 말했다.“그런 일이 한 번 있었어요. KB 클럽에서. 하지만 그게 다예요. 그리고 저는 접대를 하러 간 게 아니었어요.”이를 듣고 난 방민아는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육
방민아는 초대도 받지 않고 소원의 병실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침대 옆에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씨, 또 입원하셨네요. 몸은 괜찮으세요?”소원은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해서 온 게 아님을 알고 있었는지라 무표정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뭘까요?”“당연히 소원 씨를 보러 왔죠...”소원은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을 찾아왔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그녀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소원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우리 사이가 그런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요. 할 말 있으면 솔직하게 하세요.”“소원 씨, 왜 저한테 그렇게 적대적이에요?”그러자 방민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가 뭘 잘못했나요?”소원은 헛웃음을 지었다.‘연기를 참 잘하네.’그날 법원 밖에서 방민아가 했던 말들을 그녀는 하나도 잊지 않았다.방민아는 유진이를 이용해 자신을 협박하려 했고 이것은 소원의 한계를 건드리는 일이었다.소원은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를 건드리려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고라도 맞설 것이었다.“제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는 민아 씨가 더 잘 알 텐데요.”소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정말 모르겠는데요? 설명 좀 해보세요.”하지만 방민아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말했다.피곤했던 소원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딱히 할 말도 없고 민아 씨도 이미 저를 봤으니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랑 할 얘기도 없는 것 같은데.”소원의 단호한 태도에 방민아의 얼굴빛이 변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소원을 바라보았다.부상 때문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했고 그 약간의 나약함이 오히려 소원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어쩐지 남자들이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심지어 육경한처럼 냉정한 사람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방민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나더러 그냥 가라고요? 난 소원 씨가 아이 소식을 듣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이 말에 소원은 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