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김성훈은 돌면서 외쳤다.“고마워! 정말 고마워! 넌 내 여신이야!”그가 안고 도는 탓에 여 박사는 어지러워하며 소리쳤다.“김성훈! 나 토할 것 같아! 빨리 내려놔!”“미안, 미안...”김성훈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두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정말 고마워. 네 노력 덕분에 돌파구를 찾은 거야. 내 친구... 이제 살 수 있게 됐어!”그들은 매일 4시간밖에 자지 않고 각종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실험실에 갇혀 지냈다.한 달 동안 실험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끝에 마침내 치명적인 주사제의 성분을 밝혀냈다.처음 이 독액을 연구한 유전자 전문가는 이 주사제가 해독할 수 없다고 했지만 성분이 밝혀진 이상 이제 해답이 없는 건 아니었다.여 박사는 그에게 말했다.“가장 시급한 건 네 친구에게 다른 주사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그래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어.”“맞아, 맞아! 지금 바로 전화할게.”김성훈은 즉시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핸드폰이 꺼져있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꺼져있었다.당황한 김성훈은 주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연결되었다.“주 비서님, 지금 어디에 있죠? 준혁이는요? 핸드폰이 왜 꺼져있죠?”“김 대표님, 이 대표님은 지금 결혼식장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 결혼식장 밖에 있어요.”“...결혼식장?”김성훈은 실험실에 오래 틀어박혀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렇습니다.”주훈은 설명했다.“오늘이 대표님과 원지민 씨의 결혼식입니다.”“뭐라고요?!”김성훈은 충격을 받았다.“준혁이가 원지민과 결혼을 한다고요?”“네, 그렇습니다.”주훈이 대답했다.“막아요! 빨리 막아요! 준혁이는 절대 원지민과 진심으로 결혼하려는 게 아니예요!”김성훈은 믿을 수 없었다.그가 아는 이준혁이라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할 리 없었다. 설령 세상이 뒤집혀도 그는 원지민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주훈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건물 아래에는 무장을 한 특수 요원들이 가득 서서 그들을 막아섰다.“이곳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W는 혼혈아로 성격이 매우 불같아 바로 검은 옷을 입은 특수 요원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훈이 재빨리 W를 붙잡아 막았다.“경거망동하지 마!”주훈이 W를 꾸짖었다. 이곳 한국에서 그는 W가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도록 반드시 신경 써야 했다.“안녕하세요.”주훈은 명함을 내밀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말했다.“저희 대표님이 안에 계십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죄송합니다. 공무 수행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즉시 철수하십시오.”W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주훈이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건물에서 멀지 않은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초조해진 W가 물었다.“무슨 상황이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지?”주훈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가 특수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대피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정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 주세요.”주훈은 전화를 끊지 않고 그쪽의 답변을 기다렸다.5분 후, 정보센터에서 답이 왔다.“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 다량의 폭탄이 설치된 것 같아요.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해야 한다고 합니다.”주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누가 폭탄을 설치한 거죠?”상대편이 답했다.“찰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찰스... 찰스...’주훈은 머릿속으로 이준혁의 최근 일정을 빠르게 훑어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비 내리던 밤에 이준혁의 팔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문득 깨달은 듯 소리쳤다.“20일 전에 북안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줘요!”상대편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략 10분쯤 지나자 타이핑 소리가 멈췄고 정보센터가 답했다.“20일 전에 발
이선 그룹 정보부의 해석에 따르면 그때 사용된 폭탄은 찰스 일가가 계획한 것이었다.그리고 에단 찰스의 추적 명단에는 윤혜인이 올라가 있었다.당시 그는 차량에 탑재된 블루투스 기능으로, 기술 조사 결과 실제로 서울에 오지 않았고 원격으로 명령하며 마치 게임을 하듯 사건을 조종하고 있었다.확실한 정보에 따르면 에단 찰스는 몇 년 동안 한국에 오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주훈은 에단 찰스가 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 갑자기 나타난 것과 폭탄 사건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느꼈고 심지어 이 사건이 이준혁의 목적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정보센터는 이어서 말했다.“중요한 정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그래요. 말해봐요.”“그 애첩이 서울에 와서 죽었다는 겁니다.”주훈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 사람은 왜 서울에 왔죠?”“그 애첩의 할머니가 1/4 한국 혈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할머니가 고향을 방문하면서 그 여자도 함께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이 말에 주훈은 더욱더 이마를 찌푸렸다.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애첩의 죽음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었고 목적은 에단 찰스의 복수를 유도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설마 대표님께서?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한 목적은 뭐지?’그러다 주훈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아마 찰스 가문의 추적 명단과 관련이 있을 거야...’주훈이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W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에단 찰스의 총애를 받던 그 여자, 나도 알아.”주훈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네가 어떻게 알지?”“잊었어? 우리 할아버지는 북안도 출신이고 아빠는 한국으로 이주해서 엄마를 만났잖아.”W는 가족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편이었기에 주훈은 짜증이 난 듯 말했다. “중요한 부분만 말해.”그러자 W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북안도에서 찰스 가문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거야. 에단 찰스가 그 여자를 유독 아낀 이유는 그녀가 에단 찰스와 똑같이 잔인하고 냉혈한 성격을
“이제 모든 게 끝났어.”원지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준혁아, 도대체 무슨 뜻이야...”이준혁은 갑자기 마음을 열고 설명하기 시작했다.“왜 내가 이 결혼식을 반드시 해야 했는지 알아? 네 오래된 친구를 불러오기 위해서야.”원지민은 점점 더 두려워졌다.“오래된 친구? 무슨 소리야.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이준혁은 힌트를 주듯 말했다.“5년 전 혜인이가 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너와 함께 일했던 그 친구 말이야.”그 순간, 원지민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준혁이가 알고 있는 거였어!’“네가 말하는 그 사람은 설마...”하마터면 이름을 말할 뻔했지만 즉시 입을 다물었다.원지민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됐다.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준혁은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그러나 증거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미 5년이 지난 일인데 에단 찰스가 목숨을 걸고 증언해 줄 리는 없지 않은가.‘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거야.’그때 대부분의 일은 임호가 처리했지만 원지민이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에단 찰스와 접촉한 것이었다.에단 찰스 같은 사람은 소위 잔챙이들과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그가 일을 맡는 이유는 오로지 자극을 즐기기 때문이었다. 하여 고용주가 직접 자신에게 찾아와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요구했다.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일을 맡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용주를 역으로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그래서 에단 찰스를 만나는 일은 매우 위험했다.하지만 원지민의 삼촌과 찰스 가문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원진우의 이름을 대고 나서야 에단 찰스는 원지민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그녀는 이야기를 하러 갔다.그녀는 에단 찰스가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비밀 연
이준혁의 차가운 비웃음이 귀에 닿는 순간, 원지민은 마치 커다란 벼락에 맞은 것 같았다.‘어떻게 나를 지켜본 것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거지?’모든 일을 비밀스럽게 처리했지만 이준혁은 원지민의 문제를 깨닫고 난 후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그는 윤혜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상황을 하나씩 드러내며 칠판에 정리했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모든 인물 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한 후 그가 마주한 것은 원지민의 집요하고 무서우며 어두운 본모습이었다.그 순간 이준혁은 원지민이 한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윤혜인은 원지민에게 계속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원지민이 임호라는 희생양을 세운 탓에 그녀는 아마도 손쉽게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준혁은 원지민이 원했던 결혼식을 계획한 것이었다.조금 전까지도 이준혁은 원지민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그녀가 사실을 고백하고 서울에서 자수하기만 한다면 이준혁은 더 이상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원지민은 죽어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짧은 몇 분 동안 원지민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지금 넌 날 모함하고 있는 거야!”원지민은 오랫동안 써온 가면을 벗지 않았다.‘난 절대 인정하지 않아!’그러나 이준혁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너는 이천수, 그리고 한구운과 결탁해서 아름이와 내 어머니를 납치했지. 그리고 차를 준비해 아름이와 어머니를 치려 했고 그 대사도 네가 시켜서 처리한 거야. 또 나와 혜인이의 첫 아이도 네가 부추긴 일이었어.”이준혁은 원지민을 문짝에 몰아붙이며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직설적으로 말했다.“원지민, 네 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어.”“아아!”원지민은 비명을 질렀다.“넌 미쳤어...”그녀는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문손잡이를 돌리려 했지만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살의를 품은 이준혁의 눈이 원지민을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원지민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날 내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극을 찾아다니지 서울에 특별히 집착하는 것은 아니었다.이준혁은 원지민에게 친절하게 말했다.“에단 찰스가 온 이유는 본인이 가장 총애하던 애첩이 죽었기 때문이야.”“애첩이 죽었다고? 그게 왜 여길 포위하는 이유가 되는 거지? 난 에단 찰스의 애첩을 죽인 적이 없는데...”원지민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두 눈에 공포가 가득 차 이준혁을 바라보며 더듬거렸다.“설마... 네가 한 거야?”이준혁은 얇은 입술을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 그 침묵은 곧 인정과 같았다.사실 그가 한 일은 아니었다.찰스는 적이 많았고 그의 애첩은 오는 길에 원한을 가진 적들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서울에서 벌어진 일이 우연이었을 뿐이었지만 이준혁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해 에단 찰스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의 계획은 찰스를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이준혁은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에단 찰스가 살아 있는 한, 그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애첩이 죽은 만큼 에단 찰스는 본인의 성격상 복수를 위해 상대방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곧바로 원지민과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몄다.방황하던 그가 결국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소꿉친구가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깨달았고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그 후 매일같이 애정을 과시하며 국내외의 화제에 오르내리게 했다.이준혁은 에단 찰스가 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 도착하는 시점에 맞춰 특수 요원들에게 자신이 적극 협조해 에단 찰스를 잡을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번만큼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찰스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하지만 이준혁은 에단 찰스의 세력을 과소평가했다.그는 결혼식장 건물 안에 수많은 폭탄을 은밀하게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치밀했다. 다행히 이준혁은 선견지명이 있어 찰스가 도착하기 전에 모든 사람을 비밀리에 대피시켰다.지금 이
원지민은 온몸에 힘이 빠져 벽에 기대며 중얼거렸다.“이준혁, 너는 완전히 미친놈이야!”“원지민, 이건 네가 치러야 할 대가야.”남자는 한 치의 연민도 없이 조롱했다.원지민은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 느꼈다. 정말로 무너진 것이다. 모든 게 끝나버렸다.하지만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죽는다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이준혁, 네가 이긴 것 같아?”원지민은 냉소하며 말했다.“사실 넌 이기지 못했어. 넌 세상에 네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나라고 선언했잖아. 결국 널 사랑하던 그 여자는 깊이 상처받았을 거야!”이 말에 이준혁의 평온하던 얼굴이 급격히 차가워졌다.그의 얼굴은 살벌하게 굳어졌고 무자비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시간이 있다면 네가 곧 직면할 일이나 생각해.”그는 차갑게 말했다.“난 아무 상관 없어.”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던 원지민은 빠르게 태도를 바꾸었다. 그 변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네가 나랑 함께라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것 같아. 죽는다고 해도 함께 죽으면 죽은 후에도 연인이 될 수 있잖아. 그거 괜찮지 않아?”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이준혁은 차갑게 말했다.“원지민, 누가 너를 죽게 한다고 했어?”그러자 원지민은 고개를 들어 이준혁을 바라보며 의문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툭.그 순간, 하나의 주사기가 원지민 발치에 떨어졌다.이준혁은 말했다.“넌 살길을 시도해볼 수 있어.”하지만 원지민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물었다.“왜 나한테 이걸 주는...”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이준혁, 네 의도는 날 죽이는 게 아니구나!”역시나 수많은 음모를 꾸민 여자인 만큼 그녀의 머리는 순식간에 돌아갔다.“내가 에단 찰스를 죽이게 만들고 그 후에 공포 속에서 내 남은 인생을 살게 하려는 거지? 하루하루가 찰스 가문에게 쫓기며 지옥 같은 삶을 살도록 만들려는 거야. 그렇지?”이준혁의 눈에 핏기가 서리며 살기 띤 빛이 스쳤다.“죽음을
이준혁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경악에 휩싸였다.“뭐라고 했어?!”원지민은 미친 듯한 표정으로 얼굴에 추악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네가 사랑하는 그 여자가 임신했어. 그리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네 아이일 거야...”그녀는 일부러 말을 끊으며 의미심장하게 남겼다.이미 이준혁이 원지민을 죽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이상 그녀도 가만히 머리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차라리 끝까지 싸우고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 후에 함께 망가져 버리는 편이 나았다.이준혁의 얼굴에 있던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한걸음에 원지민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원지민의 옷깃을 움켜쥐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물었다.“무슨 뜻이야...”하지만 원지민은 미친 듯한 웃음을 지을 뿐 말은 하지 않았다.그러자 이준혁은 더욱 미친 듯이 그녀를 흔들며 소리쳤다.“말해! 그건 어떻게 안 거야!”그러나 원지민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마치 벙어리가 된 것처럼 그저 섬뜩한 웃음소리만 낼 뿐이었다.“하하하하하...”마치 자신만 알고 있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정말로 기뻐하는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원지민은 진정으로 기뻤다.그녀가 아는 바에 따르면 윤혜인은 한구운이 사람을 시켜 다시 끌어온 상태였다.어쩌면 모든 일이 이렇게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두려움보다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윤혜인이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지민은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이준혁은 원지민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혼란스러웠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판단으로도 원지민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혜인이는 왜 임신했으면서 나에게 알리지 않았지?’하지만 이준혁은 이 기간 동안 원지민과 에단 찰스를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그런 이유로 윤혜인이 말하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그가 알고 있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이준혁은 그저 윤혜인의 미래를 최대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