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준은 눈을 피하면서 돌아서서 민정화에게 말했다.“혼인관계증명서는 찾아내고 이혼합의서에 사인시켜. 난 밖에서 기다리지.”그러더니 나가 버렸다.“알겠습니다.”민정화는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애진작부터 강여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여기거지 몸을 뒤지는 척하며 여름의 니트를 벗겨내 안에 입은 얇은 슬립이 드러났다. 여름은 바닥에 눕혀진 상태라 순식간에 노출이 심하게 되었다.옆에는 죄 남자들이었다. 여름은 수치심에 고개를 쳐들었다.“이게 대체….”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정화가 여름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저 ‘읍읍’소리가 날 뿐이었다.문정화는 하준이 들어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입에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아무리 욕해봤자 입만 아플 뿐입니다. 저는 그냥 혼인관계증명을 찾으려는 것뿐이에요.”그렇게 말하면서 청바지를 더듬어 갔다.“이 안에 숨긴 거 아니야?”옆에 있던 지룡파 둘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미 보이는 것만 해도 꽤나 화끈한 장면이었다.여름의 흰자에 핏발이 올라오더니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어찌나 몸이 꽉 눌려있는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여름이 부끄러워할수록 문정화는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여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서두르지 마세요. 내가 하나하나 다 벗겨줄 테니까. 남자 유혹하는 게 강여름 씨 전문 아니던가? 함 해보자고요. 도와드릴 테니까.”문정화가 하는 짓을 보고 상혁은 도저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문정화 씨, 옷 벗기러 왔습니까? 수색하러 왔습니까?”강여름을 철저히 괴롭히려던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문정화가 상혁을 한번 쳐다보더니 억울하다는 듯 답했다.“어디 몸 안에 숨겼을 것 같아서 그러죠. 내가 잘 못하는 것 같거든 김상혁 씨가 직접 해보시던 가요.”상혁은 순간 당황했다. 어쨌든 하준이 다른 남자가 여름에게 손대는 것을 좌시할 리 없었다. 이때 문 밖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문정화가 여름에게 얼른 외투를 덮었다.하준은 들어오더니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문정화의 눈에 짜증이 스쳤다. 지룡파 둘은 조용히 여름을 풀어주었다.여름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 눌려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하준의 다리가 움찔하더니 하마터면 후다닥 다가가서 여름을 부축할 뻔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더니 냉정한 얼굴로 합의서를 건넸다.“사인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마. 위자료는 넉넉하게 준비해 줄게. 이혼하자고.”여름이 비웃듯 웃음을 띠었다.하준은 여름을 보고 있을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부러 더욱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나중에 질척거릴 생각이 안 들게 하려는 것뿐이야. 얼른 사인해. 나 바쁘다고.”“그래.”결심한 듯 여름이 펜을 들고 합의서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가만히 사인하는 여름의 손을 보고 있던 하준은 여름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수시로 여름에게 이혼해 달라고 했었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오자 해방감이 느껴지기는커녕 문득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몰려왔다.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았다가 다시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자, 가져가.”여름이 건넸다. 시선은 사뭇 평온해졌다.“오후에는 처리될 거야.”하준은 서류를 들고 돌아서 가버렸다.문정화는 기세등등하게 여름을 한번 꼬아 보더니 모두를 따라 갔다.집에 조용해지자 여름은 문에 등을 기대고 손에 든 펜을 보며 웃었다.‘결국 이혼했구나.이것도 괜찮지. 어쨌든 복수하러 온 거잖아. 최하준에게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최하준은 1층으로 내려오더니 이혼합의서를 상혁에게 주었다.“처리해.”“알겠습니다.”상혁은 문정화를 흘끗 보고는 자리를 떴다. 상혁은 은근히 여름에게 차라리 더 잘되었다고 생각했다.‘이제는 회장님과 얽히지 않아도 되시겠구나. 이미 눈이 멀어버린 우리 회장님은 더 이상 강여름 씨에게 어울리지 않지.회장님 주변에 있는 저 불여우들은 정말이지 못 봐주겠다고.’곧 이혼결과가 하준에게 통보되었다. 하준은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다.문정화가 말을 건넸다.“회장님, 저…
여름은 담담히 웃고는 TV를 껐다.‘지금은 행복하겠지. 기다려. 결혼식 날 내가 아주 큰 선물을 해줄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맛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한편 최근 내내 세상의 온갖 악플의 대상이던 위자영, 서유인, 서경재 세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은근히 통쾌했다.특히나 위자영은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강여름, 지가 돌아왔으면 어쩔 거야? 최하준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데.”“맞아. 전에 내게서 최하준을 뺏어 가더니 결과적으로 나보다 결혼을 잘 한 것도 아니네.”서유인도 속 시원한 듯 말했다.그러나 서경재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둘이 그렇게 허구한 날 남의 가십에 열 올리지 말라고. 지금 당장 우리에게 급한 일은 어떻게 벨레스를 되찾아 오느냐 하는 문제잖아.”위자영은 태연자약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서경주는 지금 하루하루 몸이 허약해져서 곧 벨레스를 경영할 수준이 안 될 거예요. 강여름은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고요. 때가 되면 여론은 우리와 당신의 관계를 다 잊어버리고 문제삼지 않을 거예요.”서경재가 인상을 썼다.“우리 형님만 죽어주면 강여름 따위야 걱정할 것 없지. 하지만… 그 감유한이라는 사람은 정말 문제 없겠어?”“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내가 그 인간 약점을 꽉 잡고 있으니까. 그리고 벨레스 별장에는 내가 다른 눈도 심어 놔서 감유한이 발각된다면 바로 알 수 있어요.”위자영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때 바로 전화가 울렸다.“감유한입니다. 지난 번에 주셨던 약이 없어졌습니다.”“없어졌다고?”위자영이 인상을 썼다.“이번에 한 달 분량만 주셨잖아요. 지난 번에 커피에 타려다가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리는 바람에 왈칵 쏟아서 커피를 다시 내렸거든요.”“내일, 늘 만나던 데.”위자영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위자영이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려 교외의 외딴 창고에 나타났다. 곧 감유한도 차를 몰고 나타났다.위자영은 곧 뭔가로 싼 물건을 감유한의 손에 쥐여주었다.“6개월 뒤에는 서경
모두들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니 대표라는 사람이 조제사 하나 정도 밟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는 잘 알았다.게다가 임윤서가 정말 레시피를 표절했다면 어떻게 갑자기 국제적으로 최고로 인정받는 조제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임윤서는 실력만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송영식은 화나 가서 무릎에 올려 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은 시퍼렇게 변했다.“당시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이 뭔가 오해했던 모양입니다.”송영식은 한참 만에야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변명해 보았다.“그래군요.”임윤서가 시원스럽게 웃더니 놀리듯 말했다.“잘 몰랐다는 말씀 한 마디면 날 그렇게 모함해도 되는 건가요? 하지만 어쨌든 저는 송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대표님께서 제 발목을 잡아주신 덕에 제가 해외로 나가 심슨 선생님께 사사받을 기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이어서 임윤서는 화장품 브랜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송영식은 발로 확 차주고 싶을 정도로 윤서가 미웠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강의 자체에 빠져들게 되었다.지금의 임윤서는 지식이 풍부해서 자기 회사의 어느 조제사 보다고 훌륭했다.포럼이 끝나갈 때쯤 기자가 질문했다.“이제 보니 생각났는데, 3년 전 임윤서 씨는 영하 그룹의 백윤택 대표를 꼬셔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았습니까?”SE 한 대표의 안색이 확 번하더니 기자를 노려보았다.“어디서 온 기자인데 함부로 말 하는 거야?”“저는 사실 대로 말씀 드리는 건데요. 당시 그 사건은 매우 큰 사건이었죠. 병원에 입원도 하셨었잖아요?”기자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러나 끝까지 떠들었다.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윤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임윤서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느긋하게 무대에서 내려와 기자에게로 걸어갔다.전혀 두려워 하거나 당황한 빛이 없었다.“그래서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해요. 사람이 힘이 없으면 잘못한 게 없어도 누군가가 권력으로 내려 찍어 누르는 경우 무자비한 폭력을 당
보도가 나가자 다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세상에, 대체 뭔 매력이냐? 벨레스 회장과 결혼해서 시동생을 가지고 놀더니 그 비서와 얽히다니, 벨레스 회장은 아주 제대로 당했네.-이거 서경재는 아는 거야? 완전 피를 토하고 있겠네.-다른 남자 더 있다는 데 500원 건다.-그래서 서유인도 바람둥이 기질 타고 나지 않았을까? 추성호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님?-서유인 모녀가 서경주를 독살하려고 했던 일을 서경재는 모를까? 아무래도 다 알 것 같은데.- 아주 집안이 시궁창이구먼. 추신은 어쩌다가 저런 집이랑 사돈을 맺어가지고, 쯧쯧…“……”댓글을 보고 서유인은 폭발하기 일보진전이었다. 침실에 있던 컵을 냅다 집어 던졌다.“어디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이래?”마침 들어서던 추성호가 그 장면을 보고 별안간 벌컥했다.“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야? 아주 망신스러워 죽겠다고. 지난번에 나온 추문만 해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 이제는 아주 내 평판까지 있는 대로 다 잃었어. 내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랑 결혼을 해가지고.”“나랑 결혼한 게 뭐 어쨌다고요? 우리 벨레스가 아니었으면 추신이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나 있었고?”서유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추성호의 말에 있는 대로 약이 올라서 마구 쏘아 붙였다.추성호의 눈에 혐오스럽다는 빛이 스쳤다. 말투도 점점 무시가 짙어졌다.“뭐라는 거야? 당신 아버지는 서경재고, 보유한 벨레스 주식도 서경주와는 비교도 안 되잖아? 당신 아버지가 서경주가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았으면 애초에 결혼하지도 않았어.”“이… 이런 나쁜!”서유인이 발작적으로 베개를 잡아 추성호에게 집어 던졌다.“당신이 지금 날 칠 수 있는 상황이야? 결혼하고 몇 년 째 애가 안 생기는 거 보면 어디 나가서 다른 놈이랑 노느라고 피임하고 있는 거 아냐?”“뭐… 뭐라고?”서유인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내 말이 틀려? 내가 진작부터 당신이 어려서부터 남자들이랑 어울려 노는 거 좋아해서 집에도 안 들어 간다는 말은 듣고 있었다고. 벨레스라는
“아빠,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가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서유인이 고개를 흔들며 열심히 변호했다.“유인아, 그만 하거라. 나도 다 알아보았다.”서경재의 분노가 폭발했다.“경찰이 현장을 덮쳤을 때 네 엄마는 감유한의 옷을 막 잡아 당기고 있더란다. 백주대낮에 창고에서 말이다! 경찰에서 감유한에게도 물어보았는데 둘은 4~5년 전부터 그런 관계를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매달 평균 한두 번은 만났는데, 호텔, 차 안, 야외에서도 만났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서유인은 얼굴이 백지장이 됐다.서경재는 점점 흥분해서 완전히 이성을 잃은 짐승 같은 모습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 던졌다. 두 눈에 잔혹한 빛이 가득했다.“날 무시하는 거야. 내내 나 같은 병신을 우습게 알았던 거지.”서경재는 자신의 두 다리를 마구 내리쳤다.“나는 위자영을 위해서 강신희까지 죽였는데! 위자영 때문에 식구들 모두와 맞서고 오명을 뒤집어 썼는데, 나한테 감사하기는커녕 날 도구로 이용해 먹었어.”서유인은 깜짝 놀랐다.“가…강신희를 아빠가 해치웠다는 게 사실이에요?”서경재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나는 네 엄마를 좋아했다. 하지만 네 엄마는 서경주를 사랑해서 죽어도 서경주와 결혼하고 싶어했어. 난 네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내가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래서 서경주와 네 엄마가 같이 하룻밤을 지내도록 만들었지. 사실 그날 밤 서경주는 네 엄마를 건드리지도 못했따. 하지만 네 엄마는 아이를 가져서 서경주와 결혼하고 싶어 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어.”서유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엄마는 정말 미쳤어….’서경재가 한탄했다.“기상국에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태풍의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가 일부러 태풍이 몰아치는 시기에 강신희에게 전화해서 형님이 외국에서 술에 취해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 놓고 계속 강신희의 이름을 부른다고 말해서 강신희가 당장 그곳으로 무리해서 달려가게
“추성호 이 자식이….”위자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경재 씨가 널 도와 주면 벨레스는 네 손에 들어올 거고, 추신에서 널 떠받들게 될 거다.”“엄마, 아빠랑 제가 엄마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서우ㅠ인이 울먹이며 말했다.----여름은 링거를 맞는 서경주 옆에 있었다.위자영이 잡혀가면서 서경주는 한을 풀기는 했지만 크게 충격을 받아서 다시 몸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얼마 되지 않아 서신일과 박재연이 서둘러 왔다. 서경주의 모습을 보더니 박재연이 눈물을 흘렸다.“위자영 그 정신 나간 것,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3년 전 자동차 사고도 고것하고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때 나랑 네 아버지가 여름이 더러 널 돌보라고 했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서신일도 치를 떨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새삼 여름에게 고마웠다.“우리가 너에게 빚이 많구나.”여름은 담담하게 웃었다.“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벨레스에 기대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안았어요.”“얘야….”서신일은 갑자기 너무나 여름을 볼 면목이 없었다.박재연이 서신일을 슬쩍 잡아당겼다.“여름이 말이 맞아요. 우리가 한 짓이 확실히 잔인한 짓을 했죠. 다 내 탓이다. 애초에 우리 경주랑 네 엄마가 결혼하는 걸 말리지 말았어야 해. 내가 정말 너무나 미안하구나.”서신일이 난처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네 할머니 말이 맞다. 앞으로는 본가에 자주 들리거라. 거긴 네 집이기도 하다.”여름은 적잖이 놀랐다. 심경이 복잡해졌다.’막 서울에 왔을 때 얼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가? 하지만… 아니, 난 영원이 저분들에게 가족이 아니야. 외부인이야.’이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서유인이 서경주의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왔다.“너희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서경주는 서유인 부녀를 보더니 노기가 올라 극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얘야, 너무 흥분하지 말거라. 네 몸에 해롭다.”서신일이
“유인아, 날 좀 꿇어앉게 해다오.”서경재가 고집스럽게 말했다.어쨌거나 자기 자식이라고 그 꼴을 보고 있던 박재연은 결국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넌 다리도 불편한데 어떻게 꿇어 앉니? 어서 일어나거라.”“그래요. 전 다리가 불구죠.”서경재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울었다.“태어나서부터 저는 불구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절 무시했죠. 저는 형님께 감사하면서도 형님을 질투했어요. 위자영을 좋아했지만 위자영은 절 우습게 봤죠. 수십 년을 위자영 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원도 한도 없이 위자영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어요. 벨레스를 제 손에 넣으면 위자영이 날 사랑해 줄 줄 알았습니다. 제가 틀렸어요. 이제야 위자영의 됨됨이를 알았어요. 아버지, 어머니,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박재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지 못하고 말했다.“다 내 탓이다. 내가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널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고 자기 비하를 하게 만들었어.”“절 탓하셔도 됩니다. 그저 유인이만은 미워하지 말아주세요.”서경재가 고개를 들고 애원했다.“유인이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평생 결혼도 안 하고 그저 저 아이 하나 있습니다. 유인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손녀잖아요.”“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가 점점 저와 소홀해 지니 마음이 아파서 전에 얼마나 절 사랑해 주셨던지 잊었어요.”서유인도 바로 서경재 옆에 꿇어 앉아 울며 빌다가 고개를 들면서 머리를 넘기니 퉁퉁 부운 얼굴이 드러났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서신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서유인이 울먹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서경재가 씁쓸하게 답했다.“추성호가 애를 섭섭하게 했나 보더라고요.”“이런 놈을 보았나!”서신일이 불같이 화를 냈다.“추신 녀석들이 아주 기고만장이로구나. 내가 그 녀석 할애비를 좀 만나봐야겠다. 우리 벨레스가 한창 잘 나갈 때 그야말로 하찮던 것들이 말이야!”“됐어요, 할아버지. 그 연세에 굳이 저에게 나서실 필요까지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