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 마음이 다급해졌다.“할머니,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요….”“나하고 네 하래비는 이제 늙었다. 이젠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악독한 마음은 내가 견디기가 힘들구나. 정아, 너도 엄마처럼 그런 마음이 들면 앞으로는 우리 집에 안 와도 된다.”장춘자는 정말이지 최민 모녀의 모진 마음에 넌덜머리가 나서 손을 휘휘 저었다.바로 집사를 불러서 두 모녀를 밖으로 모시라고 일렀다.“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여름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네가 왜 사과를 하니? 내가 내 두 눈으로 다 봤다. 걔들이 먼저 너한테 달려들었잖니? 내가 널 뭐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그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시비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널 미워하지도 않는다.”장춘자가 대놓고 솔직하게 말했다.여름도 그런 말을 들었다고 마음이 괴롭지도 않았다. 되려 장춘자의 그런 솔직함에 안심이 됐다.“앞으로 누가 널 괴롭히거든 나한테 말하렴. 그리고 넌 이제 하준이 아내니까 우리 세상 떠나고 나면 이 집은 네가 관리하게 될 게다. 그러니 산책하면서 이 집에도 익숙해지렴.”여름은 흠칫 놀랐다.‘할머니가 날 받아주시는 건가?’하지만 지금 여름과 하준이 관계로는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장춘자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여름을 들여다보더니 심란한 듯 한숨을 쉬고는 집사와 함께 갔다.“에휴, 그런데 이제 FTT 안주인이 될 애 얼굴을 저 지경을 만들어 놔서….”집사가 끄덕였다.“그렇죠. 하지만 회장님께서 계속 실력 있는 성형외과의를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그래, 애 얼굴을 좀 되돌려 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구먼.”******밤 9시 반.여름이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걱정하지 마. 동성은 내 구역 아니냐? 교도소에 연락해서 머리카락 얻어내는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윤서가 말을 이었다.“재촉해 놔서 이틀이면 결과 나올 거야.”“그래, 잘 부탁할게.”“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인사치레를 하냐? 적응 안 되게.
“걸어. 이 시간이면 할머니 전화기 꺼놓고 주무실 시간이거든.”하준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여름을 와락 안았다. 왼손으로는 여름의 배를 문질렀다.“어디 보자. 오늘 우리 아기들은 얼마나 컸나?”“아니 이제 6~7주 된 아기들이 뭐 만져진다고.”여름은 어이가 없어서 하준을 밀어냈다.“가요. 난 잘 거야.”“아까 물어본 거 대답 안 해줬잖아.”하준이 눈빛을 빛내며 여름을 쳐다봤다.“누가 우리 아기들 이모가 돼 주냐고? 임윤서는 영 머리가 영리한 것 같지는 않으니 별로고, 백소영이면 더 동의할 수 없고….”“최하준 씨, 오밤중에 와서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예요?"여름은 화가 나서 베개를 집어 던졌다.“애는 내가 낳을 거니까 누가 이모가 되던 내 문제지. 한 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다 그만둘 거야.”“뭐라고?”하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하면 안 되지. 아기가 아직 요만하다고 해도 우리 하는 말 다 들릴 텐데. 우리 아기들 기분이 어떻겠어?”여름은 임신으로 인해서 쉽게 흥분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하준에게 지적질을 당하자 갑자기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누가 막 그렇게 자극하라고 했나? 당신이 나랑 다시 같이 살고 싶다면 이제 내 친구도 다 받아줘요.”하준은 여름이 울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알았어, 알았어. 울지마.”여름은 그치기는커녕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당신이 뭔데 내 친구를 두고 마음에 드니 안 드니 그래? 송영식은 머리가 좋아? 내가 보기에는 무식하던데. 이주혁은 완전 여자만 밝히는 바람둥이고. 당신 친구도 괜찮은 사람 하나도 없던데.”“……”하준은 여름의 팩트 폭격에 놀라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원래라면 이렇게 여름이 자기 친구를 모욕하면 화가 나야 정상인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름을 보니 그저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울지 마. 울면 아기한테 안 좋아.”“울 거야. 누가 오밤중에 내 방에 들어와서 나랑 싸우래? 나도 밤에 가만히 잠
第 “어라? 윤서 언니?”상대 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여우 같은 신아영의 얼굴이 나왔다. 임윤서를 만나서 사뭇 반갑다는 표정이었다.임윤서는 울컥했다.‘와 씨, 동성에 오자마자 제일 짜증 나는 얼굴을 만난단 말이야?’“언니 동성에는 어쩐 일이에요? 새 남친 생겼다면서요? 언니가 상원이 오빠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신아영은 눈썹을 여덟 팔 자로 만들면서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남이사! 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안 들리니? 너 내 차 받을 뻔했잖아!”임윤서는 이제 참을 수가 없었다.신아영이 억울하다는 듯 우물쭈물했다.“미안해요, 그게….”“내가 대신 사과할게.”보조석 문이 열리더니 윤상원이 나왔다. 그 위풍당당하던 윤상원은 이제 파리하고 힘이 없었다. 미간은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그런 꼴을 보니 임윤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그러나 얼른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걱정의 말을 꿀꺽 눌러 삼켰다.이미 헤어졌으니 윤상원이 어디가 아프던 이제 임윤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예전처럼 윤상원이 병이 나니 신아영이 곁에 붙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내가 너무 속이 안 좋아서 아영이가 급하게 자리를 찾느라고 그런 거야.”윤상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임윤서를 쳐다봤다. 하얀색 SUV를 끌고 옅은 화장을 한 임윤서는 너무나 근사했다.윤상원은 자신이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내내 단 한 순간도 자신은 임윤서를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임윤서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내내 우울하기까지 했다.전에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않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이번에 속이 안 좋은 것도 어젯밤 너무 마셔서 위를 상했기 때문이었다.신아영은 윤상원이 내내 임윤서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불타올라 억지웃음을 지었다.“언니, 언니가 오빠랑 먼저 들어갈래? 전에는 늘 언니가….”‘늘 언니가…?’임윤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말 이상하게 하네?그래. 늘 내가 윤상원하고 같이 있었지. 그런데 나만
“임윤서! 글쎄 병원 유전자 감별 센터에 들어가더라. 어디 가서 누구 혼외자식이라도 임신한 거 아닌지 몰라?”“유전자 감별 센터?”저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임윤서가 동성에 있어?”“그래,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났는지 나도 이상하더라니까. 또 상원 오빠를 뺏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 꼴은 못 보….”“아영아,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음 얘기는 나중에 해야겠다.”전화를 끊고 나니 강여은은 아직도 따끔따끔한 두피가 떠올랐다. 강여름에게 머리를 잡아 뜯긴 자리가 아직도 욱신욱신했다.그러고 나니 가슴이 철렁해서 바로 미스터리의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여름의 친구인 임윤서가 갑자기 동성의 한 병원 유전자 감별 센터에 갔대요. 강여름이 나와 아버지의 친자 감별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내가 알아보지.”“최하준 쪽에서 내가 가짜 지다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날 죽이려고 할 거예요.”“걱정하지 마. 우리를 위해서 일해주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지.”----병원.임윤서가 금방 유전자 보고서를 받게 되었다. 위에 커다랗게 쓰인 ‘친자 확인’이라는 글씨를 보고 임윤서는 강여경의 조상님 무덤에라도 절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얼른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우와, 정말 네 말이 맞았어. 지다빈하고 강태환 유전자 감식결과 둘이 친자로 확인됐어. 걔가 강여경이야.”여름은 이마를 짚었다. 정말 바라지 않던 결과였다.그러나 지다빈을 만나고 점점 심각해지는 병세와 매일 하준에게 따라주던 우유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그게 다 제대로 된 약이었을까?’그런 생각을 하니 몸에 한기가 들었다.“결과서 찍어서 보내줄게. 빨리 최하준한테 보여줘.”여름은 사진을 받자마자 하준의 서재로 들어갔다.요즘 하준은 거의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서재에서 일했다.여름이 서재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하준은 여름을 보더니 눈이 반짝했다. 최근 여름이 주동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나 보고 싶어서 왔어?”“왜 그래?”하준이
여름이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잘 생각해 봐요. 당신 친구들은 자꾸 내가 당신을 자극해서 당신 증상이 나빠졌다고 말하는데, 백지안이 죽었을 때도 정서적으로 크게 타격 입지 않았나요? 그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이전에도 이렇게 기억력에 문제 있고 머리가 아팠던 적 있었어요? 왜 지다빈이 당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기억력이 급속도로 나빠졌을까요?”하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확실히 최근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난 걔가 지다빈이라고100% 확신해요. 걔가 당신 주변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당신이 평소 마시던 우유랑 약에 뭘 넣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해본 적 있어요?”여름의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그렇게 매일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데 전에는 호전이 됐었는데 요즘은 왜 하나도 안 들을까?”하준은 말문이 꽉 막혔다.드디어 여름의 말에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지금 당장 걔 잡아다가 강태환이랑 유전자 검사해 봐도 좋아요. 지다빈의 부모님은 살아 계신가요? 난 걔가 강여경이라는데 다 걸겠어요.”여름이 덧붙였다.“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요. 걔를 데려간 사람이 걔를 당신 주변에 심어둔 거예요. 당신과 맞서려는 사람이 배후에 있는 거야.”“그래.”하준은 바로 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가서 지다빈 잡아와. 24시간 내에 지다빈하고 지영수 친자 감별해 봐.”여름은 살짝 실망했다.결국 하준은 여름이 보여준 친자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하니 직접 해보아야 믿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어쨌거나 ‘그 지다빈’은 강여름이 성형한 가짜라는 점은 사실이니 여름은 상관없었다.----밤 12시.갑자기 상혁에게서 전화가 왔다.“회장님, 큰일입니다. 지다빈이 사망했습니다.”“어떻게 된 일이야?”하준이 벌떡 일어났다.“제가 사람을 시켜서 교외 별장에 데리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새벽에 침입자가 있어서 지키고 있던 사람이 지다빈을 먼저 구하려고 놈을 쫓았는데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이 기절해 있고 집에는 불이 붙었더
“이주혁 선생님네 병원 연구소에 의뢰한 결과이니 잘못됐을 리 없습니다. 부검을 할 때 성형 여부도 확실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래.”하준이 머리 양옆을 꾹 눌렀다.“어젯밤에 침입한 자는 누구 보낸 건지도 좀 알아봐.”“찾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 데도 강여름을 감싸고 도는 거냐?”송영식이 소리쳤다.“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악독할 수가 있어? 다빈이는 눈곱만큼도 널 유혹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고. 그런데도 강여름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다빈이를 못 잡아 난리더니….”“여름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준은 부인했다.“여름이도 분명 누구한테 속은 거야.”“정말 속았다면 그건 강여름이 멍청하고 그만큼 속이 좁다는 뜻이잖아!”“송영식, 말 다했냐?”하준은 이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었다.“아니, 다 못했다. 그래도 강여름이 네 와이프라고, 내가 내내 참아왔어.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송영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그만들 해.”차에서 내리다가 둘의 대화를 들은 이주혁이 다가왔다.“어쨌든 이번 일은 내가 그냥 이렇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하준이가 보호한다고 해도 내가 이번 사건 배후의 인물을 잡아서 가만두지 않을 거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이주혁이 하준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여름이가 질투심은 있는지 몰라도 그렇게 막 돼먹은 인간은 아니야.”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백소영이 여름이에게 지다빈이 가짜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의심을 품지도 않았을 거야.”“백지영!”이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또 그 녀석이야?”잠시 후 이주혁이 차갑게 내뱉었다.“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않았기만 바란다.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면 반드시 복수할 거야.”----오후가 되어 부검ㅜ결과가 나왔다.“회장님, 현장에서 나온 시신은 확실히 지다빈 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모님들과 전면적인 유전자 검사를 거쳐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상혁이 말을 마치자 하준이 온몸을 떨며 옆머리를 꾹 눌렀다.
“알겠어요.”백소영은 부모님의 다정한 말씀에 가슴이 따뜻해졌다.“한 번만 더 노력해 보고 영 부품 조달이 어려우면 회사는 매각해야죠. 나중에 우리 다 같이 서울을 떠나서….”백소영이 말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경찰이 들이닥쳤다.“백소영 씨, 백소영 씨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파악되었습니다. 함께 경찰서로 좀 가주셔야겠습니다.”경찰 한 명이 다가서며 수갑을 채웠다.백소영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살인 사건이라니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지다빈 씨가 사망했습니다. 차대풍과 진소인 등이 방화와 살인에 대해 모두 시인했습니다.”백소영은 머리가 윙윙 울렸다.“그럴 리 없어요. 차대풍이랑 진소인은 제가 부리는 사람들은 맞지만 난 그런 일을 지시한 적이 없는데요.”“본래 처음부터 자기가 했다고 순순히 시인하는 범인은 별로 없죠. 하지만 우리가 이미 정황을 다 확보했습니다.”경찰 두 사람이 다가와 그대로 백소영을 끌고 갔다.“아닙니다. 내 딸은 사람을 죽이는 그런 애가 아닙니다.”서인수가 따라가며 경찰을 막으려고 했다. 경찰이 서인수를 막아섰다.“따님은 살인을 교사하는 등 죄질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서인수는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여보!”연화정이 놀라서 달려와 구급차를 불렀다.백소영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고용인들은 몇 년 동안 따스했던 그 집안의 분위기가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요 며칠 여름의 눈꺼풀이 계속 떨렸다.여름이 지다빈이 가짜라는 증거를 찾았으니 하준도 분명 뭔가를 알아냈을 터였다.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하준은 집에 돌아오지도 않고 심지어 전화 통화도 되지 않았다.뿐만 아니라, 백소영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일종의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임윤서가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아이씨, 짜증나 죽겠어. 송영식 그 인간이 오슬란에서 날 쫓아냈어. 돌았나 봐, 진짜.”“어떻게 된 일이야? 계약서 쓰고 들어간 거 아니야?”“그렇지. 계약도 5년이나
‘이런 우연이 있을까?’전화를 끊고 나서 여름은 하준에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결국 상혁에게 전화했다.한참을 울리고서야 상혁이 느릿느릿 전화를 받았다.“네, 사모님. 무슨 일이십니까?”“하준 씨가 왜 전화를 안 받죠?”“회장님이… 회의 중이시라서요.”“그러면 어제랑 그제는요? 계속 내 전화 안 받던데?”여름이 다소 짜증스럽게 물었다.“어쨌든 오늘 밤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해주세요. 안 그랬다가는… 오늘 밤에 내가 직접 찾아간다고.”“저한테 이러셔도 회장님이 일이 있으면....”“아무리 일이 바빠도 이렇게 며칠을 연속으로 밤샘할 일은 아니겠죠. 아니면 밖에 여자가 생겨서 내 전화 안 받는 건가요?”여름이 차갑게 웃었다.“이번에도 백지안을 닮은 여자가 나타났나 봐요?”“…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오후 2시가 되니 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큰일 났어. 소영이 난리 났더라. 경찰에 잡혀갔대. 지다빈 살인 사건에 연루됐다네? 걔네 아버지는 심장병이 도져서 입원하시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아무도 손을 안 내민다네. 최하준, 송영식, 이주혁 셋이 손을 써놨대. 백소영 도와주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한다면서.”“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여름은 머리가 굳어서 안 돌아가는 느낌이었다.“지다빈이 죽어?”“그래.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니? 걔는 지다빈이 아니라 강여경이잖아. 그런데 강여경이 죽은 거랑 소영이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임윤서가 말을 이었다.“나 지금 병원에서 소영이 아버지 간호하고 있거든. 고용인들도 다들 도망갔고 영하는 지금 부도 직전이야.”여름은 머릿속이 온통 엉켜버렸다. 도저히 저녁에 하준이 퇴근하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바로 차를 끌고 나왔다. 그러나 대문 수위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사모님, 어르신들 허락을 받지 못하시면 혼자서는 못 나가십니다.”수위가 사뭇 곤란한 얼굴로 해명했다.“이러지 마세요. 저 지금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