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 호텔이 추 서방 거였구나. 연매출이 어마어마 하다던데 대단하다!”“맞아요.”서유인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추성호를 바라보았다. 최하준만큼 잘생기지도 키가 크지도 않았지만, 얼굴은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게다가 전도유망하지 않은가!무엇보다 오늘 FTT 일가부터 정·재계 고위 인사들까지 모두 불러 모았으니 서유인의 체면을 제대로 세워준 셈이었다.서유인이 꿈꿔 온 결혼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이제 최하준이 이걸 다 보고 나면 엄청 후회하겠지? 그러게 누가 날 마다하래? 그리고 강여름, 얼굴마저 그 꼴이 됐겠다, 내가 부러워 죽겠지?’“최하준이다. 옆에 강여름도 있네.”서원희가 소리쳤다.비치에 있던 하객의 시선이 온통 그쪽으로 향했다. 하준은 흰색 수트 차림이었다. 원래 이런 자리에 흰색 슈트를 잘 입지 않았지만 오늘 하준은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 근사했다. 그 수많은 하객들 사이에서 홀로 찬란히 빛났다.그 무엇보다 하준과 마찬가지로 흰색 슈트를 차려입은 오늘의 남자 주인공 추성호는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너무 화가 나 당장 호텔을 다 뒤집어엎을 기세였다. 화가 나기는 서유인도 못지않았다. 여름이 입은 드레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인은 약혼식에 레오의 역작인 그 드레스를 입고 싶었지만 아무리 거금을 줘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드레스를 여름이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서동희가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며 말했다.“저 드레스 언니가….”서유인이 무섭게 쏘아보았다. 서동희가 곧 태도를 전환했다.“무슨 상관이야. 얼굴이 저 꼴인데, 드레스만 아깝네.”“맞아.”예전에 서유인은 여름이 예쁜 게 너무나 샘이 났었지만, 이제 엉망인 여름의 얼굴을 보니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기분이 좀 나아지자 유인은 추성호와 함께 최하준 쪽으로 갔다.“제 약혼식에 참석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자리가 빛이 나네요.”추성호가 다가가며 형식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손을 내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여름은 추성호와 초면이었다.사실,
”그래, 참 안 됐지 뭐야.”서유인이 맞장구를 쳤다.“사람이 체면 때문에 그럴 때도 있지.”“그래, 체면 정말 중요하지. 추 대표만 해도 그러시더라. 내가 막 서울에 왔을 때 여대생하고 뜨거운 사이길래 신데렐라 스토리 하나 나오나 했는데 그냥 내 망상이었지 뭐야.”여름이 진지한 태도로 서유인에게 말했다.“동생 약혼식이니 언니로서 진심으로 한마디만 할게. 나이 들면 누구나 늙게 돼 있어. 예쁜 여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귀하지. 변치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혼인 관계를 오래 유지시켜 주는 비결이야.”“당신 말이 맞아요.”하준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도 회장에게 말했다.“그건 우리 도 회장님께서 잘 아시지. 평생 스무살 짜리만 좋아하셨거든. 이번에 또 애인이 바뀌었다던데 연로하신 사모님께선 그저 모른 척하고 계시겠지.”여름이 갑자기 정색하며 추성호에게 말했다.“도 회장님과 친분이 깊으신 걸로 아는데, 설마 그런 것도 배우는 건 아니죠? 우리 유인이한테 미안할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약혼식 날 졸지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게 된 추성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의기양양하던 서유인도 이제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추성호가 어린애와 사귀었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럴 리가요. 유인 씨에게 전 첫눈에 반했습니다. 평생 유인 씨만 아껴줄 겁니다.”추성호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그랬군요. 그럼 그동안 짝사랑하시느라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남자한테 죽자사자 매달려서….”여름이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어머, 나 좀 봐,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강여름! 일부러 이러지?”서유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전에는 내가 눈이 멀어서 사람을 잘못 봤지. 뭐로 보나 우리 성호 씨가 백배 낫다고.”“그래.”여름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제 최양하가 FTT회장이라 추 대표가 FTT를 등에 업었으니까. 안 그랬으면 네 눈에 들었으려
”서유인 엄마가 한 짓이에요.”여름이 서경주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그 분이 하준씨 고모를 시켜서 제 밥에 약을 탔어요.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됐고요.”“뭐라고?!” 서경주는 무척이나 놀랐지만, 위자영의 그간 행적으로 보아 충분히 했을 법한 짓이었다."이 사람이 정말.... 내가 당장 가서….”“오늘 좋은 날이잖아요. 하객도 많은데 괜히 소란피우지 마세요. 하준 씨 할아버지도 와 계시니 아무도 아버지 편이 돼주지 않을 거예요.”여름이 말렸다.서경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네 얼굴이….”“아버님, 천천히 하시죠.”하준이 침울하게 말했다.“여름 씨를 건드린 사람은 제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서경주는 마음이 무거웠다. 반평생 사업에 미쳐 살면서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지냈지만, 딸에게만큼은 빚진 게 너무나 많았다. “유인이 결혼식만 끝나면 나는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벨레스에서 아무리 말려도 할 거다.”여름이 의아하다는 듯 서경주를 바라보았다. 사실, 여름은 아버지가 위자영 모녀에게 쩔쩔맨다고 생각했었다.“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진심이니까. 벨레스 지분 절반의 40퍼센트는 내 거다. 그중 35퍼센트를 너에게 주고 유인이에게 5퍼센트를 줄 생각이다. 곧 변호사 통해 공증받을 거야.”“아니….”“그러기로 결심했다. 넌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돼. 남은 생은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주마. 비록 몹쓸 짓을 당했다만, 그거라도 받아서 얼굴을 어느 정도 복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서경주는 말을 마치고 최하준을 도발이라도 하듯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름은 침을 삼키다가 하마터면 목에 걸릴 뻔했다.아버지가 이렇게 저돌적인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저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아버님.”최하준이 웃으며 말했다.“흥, 남자 말을 어떻게 믿나?”불신이 가득한 목소리였다.최하준: “…….”여름이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빠 재밌는 분이셨네.’멀지 않은 곳에서 위자영이 이 광경을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자, 앉읍시다.”최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름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테이블에는 각종 과일과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여름은 앞에 놓인 잣을 몇 알 까다가 너무 귀찮아서 곧 포기해버렸다. 최하준이 그 모습을 보고는 대신 까서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그 세심한 배려에 여름은 마음속까지 달콤해지는 기분이었다.“여름 씨….”갑자기 양유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름이 고개를 들어보니 흰색 바지에 남색 상의를 걸친 댄디한 모습의 양유진이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한 발짝 다가선 양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여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하준이 바로 그 손을 잡아 저지하더니 여름을 안으며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뭡니까?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남의 와이프에게 집적거리다니?” “최하준, 이제 옛날의 당신이 아닐 텐데. 내가 곧 여름 씨를 되찾아 올 거니까 두고 보시지. 여름 씨에게 당신은 어울리지 않아.”양유진은 이렇게 경고하고는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름에게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여름 씨.”“여긴 어떻게 왔어요?”이 두 남자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여름은 화제를 돌리려 했다.“최근에 추신과 합작 건이 있어서요.”때마침, 추성호의 비서가 반갑게 걸어왔다.“양 회장님, 앞쪽에 자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여긴 VIP석이 아닙니다.”“그래요? 하지만 여기 최하준 회장이….” 양유진은 최하준에게 이를 갈아온 지 오래였다. 드디어 보복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회장은요, 무슨… 어디 우리 추 대표님 뒤꿈치나 따라오겠어요?”비서는 비웃으며 양유진을 데리고 앞으로 갔다.“여름 씨, 나랑 같이 안 갈래요?”양유진이 여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사람들 모두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얼굴도 다 망가진 여자를 두고 이렇게 잘생긴 남자 둘이 싸우고 있다니,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여름은 난감할 뿐이었다.“몇 번을 말합니까? 내 아내입니다.”하준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
“난….”“들었습니까? 내 와이프가 가라잖습니까? 뭐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하준이 여름의 허리를 감아 올리며 다정하게 말했다.“앉아요, 여보. 잣 까줄 테니 먹어요.”양유진이 하준의 품에 안긴 여름을 빤히 쳐다봤다. 눈 속에 어두운 기색이 스쳐가더니 보기 싫을 정도로 찡그린 얼굴로 돌아섰다.여름은 고개 들어 양유진의 뒷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정말이지 양유진이 하루빨리 자신을 놓아줬으면 했다.하준의 곁에 남기로 결심한 이상 여름은 더 이상 양유진과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이제 여름과 하준은 이혼도 하지 않았으니 더욱 안 될 일이었다.“다른 남자 생각하지 말고 이거나 좀 먹어봐요.’하준이 여름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양유진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닙니다.”“……”“오늘 이 약혼식에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뒷배경도 없는 사람이 이런 곳에 발을 들일 수 있는 데다, VIP석이라니, 그렇게 간단할 것 같습니까?”여름은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오늘 본 양유진의 모습은 사뭇 낯설었다.******약혼식이 끝난 뒤.벨레스에서 초대한 하객은 잔디밭으로 이동해 오후에는 댄스파티가 벌어질 예정이었다.이제 돌아가는 하객들이 이동하던 중 여름은 막 일어나다가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그리고 뚱뚱한 남자가 갑자기 돌아보더니 여름에게 욕을 퍼부었다.“이거 왜 남의 엉덩이에 손을 대고 지랄이야?”지난번에 FTT 자선의 밤에 여름에게 손댔던 구 이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뭐야? 어디서 남의 남편을 건드려? 감히 남의 남편을 꼬시려고 들어? 어디 너 죽고 나 죽자.”구 이사 곁에 있던 부인이 바로 나서며 여름을 밀쳤다.“거 손을 못쓰게 되고 싶어서 이러시나?”하준이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그 부인의 손목을 확 잡았다.막 자리를 뜨던 하객들이 고성에 구경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다.“아니, 구 이사님, 무슨 일입니까?”추성호가 중재하고 나섰다.구
구 이사는 하준의 가족들이 정색하는 모습을 보니 전혀 하준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뭐 별 건 없고, 내 손을 이 지경 만들어 놨으니 나도 당신 손 한 번 꺾으면 되지 않겠어? 그리고, 당신 마누라가 날 꼬드기려고 교양 없이 굴어서 우리 마누라가 화가 났으니까 뺨이나 한 대 맞으시던지.”여름이 그 말을 듣더니 웃었다.“내가 그쪽을 꼬드기려고 들었다고? 입으로 무슨 말을 못 해? 내가 그쪽에 손을 댔는지 안 댔는지는 여기 사방에 CCTV가 잔뜩 있으니까 확인해 보면 되겠죠.”구 이사가 버럭 화를 냈다.“무슨 소리야? 내가 너 같은 거에게 누명을 씌웠다 이건가?”“구 이사 같은 사람이 굳이 당신 같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이유가 있나?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인정을 안 하다니 그냥 한 대 맞아도 싸지 싶은데.”도 대표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서유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얼른 사과 드려. 다음부터는 그런 짓 좀 그만하고.”여름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알겠네. 오늘 다들 우리 부부를 손보려고 작정했군. 진상이 어떤지는 다들 관심 없었어.”“강여름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뭐 어쩔 수가 없군요.”추성호가 느긋하게 말을 받았다.“하지만 잘못했으면 응당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모든 시선이 최하준에게로 향했다.한 때 모두가 우러러보던 신과 같은 남자였다.그런 신 같은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니 다들 몰려와서 한 번 밟아보며 남의 불행을 즐기려고 들었다.그런 시선을 모두 받으며 하준의 깊은 눈이 가족에게로 향했다.“다들 저 사람들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시나요?”가족들에게는 하준이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보였다.장춘자가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내 생각에는….”“잘못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지.”최대범이 장춘자의 어깨를 잡으며 말을 받았다.“우리가 잘못 가르쳐서 저 녀석을 너무 기고만장으로 만들었어.”최민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하준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다들 깜짝 놀랐다.FTT 가족들은 더욱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여하그룹이 네 거였더냐?”최대범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무슨 짓이니?”최란도 믿을 수가 없었다.“FTT 회장 자리에 앉아서 뒷구멍으로 새 회사를 만들어 FTT와 경쟁하고 있었어?”“저런 배은망덕한 놈을 보았나? 애초에 저 녀석에게 FTT를 맡기는 게 아니었어.”최대범은 당장 뭐라도 들어서 하준을 후려쳐 버리고 싶었다.“화내지 마세요. 겨우 그까짓 여하그룹, FTT의 상대가 못 된다고요.”최민이 깔보듯 말했다.“그래요. FTT 전자가 세계 일류 브랜드인데 그깟 여하, 우리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최정도 비웃었다.그제야 최대범의 얼굴이 좀 풀렸다.“너는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 아니다. 각오 단단히 해. 양하야, 3개월 안에 여하를 흔적도 없이 밟아버리거라.”“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최양하가 눈 속의 두려움을 억지로 감추며 답했다.하준이 그들의 모습을 즐기듯 바라보며 웃었다.“양하는 아직 어른들께 FTT 전자 랩의 심희철 팀이 단체로 회사 그만둔 거 말씀 안 드렸나? 아, 심희철 팀은 우리 여하로 들어왔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여하에서 신규 제품 발표회가 있을 겁니다. 오전 11시에 글로벌 생중계니까 놓치지 마십시오.”현장은 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건 FTT에서 발표하려고 했던 거잖아? 그걸 왜 여하가 발표해?’최양하가 냉랭하게 웃었다.“뭔가 착각하시나 본데, FTT에서 3년 동안 심희철 팀에서 만들어낸 제품인데, 그 데이터를 가지고 여하에 갔다 이거지? 우리 쪽에서는 100% 지적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어. 게다가 심희철하고 여하를 다 고소할 수도 있지.”“재미있군.”하준이 웃었다.“심희철 팀장 계약서 안 읽어 봤구나. 애초에 심희철은 FTT와 계약한 적이 없어. 최하준 개인과 했지. 연구 자금도 FTT에서는 한 푼도 대지 않았어. 내가 혼자 출자했으니까.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고소를 하겠다는 거지?”“되려…”하준이 느
구 이사와 도 회장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방금 한창 최하준을 닦아 세운 것을 생각하니 후회막심이었다.“최, 최 회장. 미안하네. 내가 눈이 멀었지. 날 한 대 쳐.”구 이사는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최하준은 그 기름진 얼굴에 손도 대기 싫었다.“아니, 그렇게 기세등등하시더니, 내 와이프가 손댔다고 큰소리 치지 않았습니까??”“아, 아니야. 내가 잘못했네.”구 이사가 손을 모았다.“빌려면 최양하에게 비시죠. 누가 압니까? 일주일 안에 칩을 개발해 낼 수 있을지?”하준은 한껏 입꼬리를 올리더니 여름을 데리고 나가버렸다.이제 아무도 둘을 막지 않았다. 심지어 추성호와 서유인도 불안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입구에 도착하자 하준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모두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시선은 마지막에 추성호에게로 향했다.“추 회장, 오늘 이 파티는 내가 꼭 기억해 두겠습니다.”추성호의 얇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애초에 추성호가 상상했던 것과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아 참, 내 와이프 강여름 씨는 누구도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특히 내 와이프의 외모를 비하하는 사람은 나와 직접 싸울 생각을 하셔야 할 겁니다.”말을 마치더니 하준은 여름을 데리고 성큼성큼 나가버렸다.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서유인은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다시는 최하준이 일어서지 못할 줄 알고 추성호를 택했는데 최하준이 다시 살아난 데다, FTT라는 배경이 없이도 최하준의 앞날은 밝았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이때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약혼식은 엉망진창이 되었다.최대범은 충격으로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와 버렸다.식구들이 최대범을 휴게실로 옮겼다.“양하야, 이리 와 보거라.”최대범이 최양하에게 손짓했다.“할아버지….”불안해하며 최양하가 다가갔다.최대범이 지팡이를 들더니 내리쳤다.“심희철 팀이 회사를 나가는 일이 벌어졌는데 나한테는 말도 안 했어?”“아버지, 진정하세요. 하준이가 너무 비열했어요.”최란이 얼른 아들을 감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