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쯤 된 모습.하얀 셔츠를 입은 모습이 조용하고 아름다웠다.그는 심지철의 아래쪽에 점잖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하지만 조은혁은 동영상을 보았기에 심경서가 점잖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몸속의 포악함을 억누르고 심지철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었다.“어르신께서 저를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도 어르신을 마침 뵙고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심지철은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조은혁을 바라보았다.조은혁이 물러서지 않자 심지철이 웃었다. “은혁아, 왜 이렇게 진지한거냐. 하늘이 무너져도 당연히 내가 너를 지지해 줄 거야.안그래도 내가 지금 이 쓸모없는 짐승 같은 놈에게 그 일을 낱낱이 너에게 들려주라고 할 참이었다. 만약 이 애가 감히 조금이라도 속인다면 네 앞에서 내가 얘 다리를 부러뜨리고 다시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유혹하지 못하게 하겠어.”그는 말은 공평한 듯 했지만 실제로는 심경서를 감싸고 있다.조은혁이 모를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조용히 있었다.조은혁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심지철이 호통쳤다.“이 짐승 새끼가, 아직도 무릎을 꿇지 않느냐. 그 일에 대해 한 번 솔직히 털어놓아보거라.”심경서가 무릎을 꿇으려 할때, 입구에서 심경서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심지철을 원망했다.“아버님, 경서는 몸이 약한데 이렇게 괴롭히다니요. 애를 벌하고 싶어도 일이 제대로밝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정말 경서의 잘못이라면... 제가 절대 이 애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심지철이 그녀를 욕했다.“네가 그렇게 무르니까 애가 이 모양이지.”그가 조은혁에게 사과했다. “은혁아, 웃음거리를 보여서 미안하게 됐구나.”조은혁이 냉소했다.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악역을 맡고, 나머지 하나가 심경서를 감싸고...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채지 못할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심경서가 입을 열었다.그는 말하는 것도 점잖았다. 심경서는 모든 것이 오해라고 말했고 그와 박연희는 정말
30분 후, 차는 별장으로 돌아갔다.차에서 내린 조은혁은 빠른 걸음으로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그는 박연희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마음은 착잡했다.심씨 가문이 끼어든 이상 앞으로 편히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그러나 그가 침실 문을 열고 박연희가 침대에서 깊이 잠든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속은 이유없이 평화로워졌다.그와 박연희가 함께한 세월이 그렇게 긴데, 심경서 하나가 어찌 그들 사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단 말인가?심씨 가문이 확실히 세력이 있지만 조은혁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심지철은 이런 태도가 아니었을 것이다...몇 초 동안 조은혁은 많은 생각을 했다.그는 침대 곁으로 가서 박연희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요즘 줄곧 그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그의 침대에서 푹 자는 경우는 드물었다.조은혁은 그녀를 보면서 넥타이를 벗었다.그는 그녀 옆에 누워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연희가 깨어났고 그녀의 눈에서 떨림을 보자, 그는 순간 화가 치밀고 가슴이 쓰려와 그녀의 얇고 둥근 어깨를 단번에 감싼 채 그녀를 품에 안고 키스를 했다.“으음...”그녀는 싫어서 몸부림을 심하게 쳤고, 가늘고 긴 다리를 그의 품에서 필사적으로 걷어차다가 실수로 그의 명치를 찼다.순간 그녀가 그에게 눌렸다.그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희고 깨끗한 피부나 붉은 눈은 전혀 진범이를 낳아본 엄마 같지 않고, 오히려 20대 초반 같았다.조은혁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움직이지 마. 연희야, 널 다치게 할까 봐 걱정돼.”“놔줘요.”박연희는 작은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작은 코끝이 살짝 붉어지며 부드러운 베개에 묻혔다. 목소리는 짙은 콧소리를 띠고 있었다. “조은혁 씨, 당신 또 나한테 강요할 거예요?”몇 차례의 좋지 않은 경험이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반항하였으나 남녀의 힘 차이는 뚜렷하여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조은혁이 그녀와 깊이 결합했을
박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은혁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그도 너무 뻣뻣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어조를 부드럽게했다.“이리 와서 좀 자.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잤잖아?”박연희는 물컵을 들고 통창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잠시 후,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집으로 갈래요. 이미 보름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아서 아주머니가 나를 걱정하실 거예요.”조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기가 네 집이야.”“우리 별거 중이잖아요.”박연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조은혁 씨, 설마 당신이 행패 몇번 부리고 강요 몇 번 했다고 제가 당신과 함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이제 제겐 자존심도 없는데, 뭐가 무섭겠어요?”조은혁은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임우빈의 일은 어떻게 계산해도 그의 잘못이 맞았다.그래서 그는 생각 끝에 그녀를 놓아주었다....조은혁이 박연희를 배웅하려고 했지만 박연희가 거절했다.그녀는 운전기사의 차를 탔다.보름 만에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돌아온 그녀는 느낌이 남달랐다.장숙자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사모님, 캐리어는요?”박연희가 말했다.“갤러리에 있어요.”장숙자는 별 생각 없이 따라 들어와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저는 갤러리에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어요. 오늘 아침 일찍 대표님이 갑자기 오셔서 제가 그런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대표님께서 사모님은 곧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 근데 정말 이렇게 돌아오셨네요.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맞는 것 같아요.”박연희가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다.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 그와 잘 될 수 없어요. 평생 불가능해요.”그녀는 오랫동안 두 아이를 보지 못했기에 침실로 들어서자 마자 조진범에게 다가갔다.조진범은 다정하게 엄마를 안고 부르며 같이 동생을 보러 가자고 했다.하민희는 곧 6개월이 된다.장숙자가 그녀에게 분홍 옷을 입혀 주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잘 어울렸고 작은 얼굴도 보기 좋았다. 그녀는 박연희를 알아보고는 작은 손을 흔들며 씩 웃었다.
하인아는 속셈이 들통나자 오히려 화를 냈다.“거짓말 하지 마요! 우빈이는 분명히 당신 때문에 피해를 입었어요.”박연희는 줄곧 냉정했다.그녀가 담담히 말했다.“남녀의 감정은 억지를 부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조은혁의 마음속에는 당신이 없어요. 그는 당신을 신경쓰지도 않는데 왜 그에게 집착하는 거죠? 당신은 분명히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요.”하인아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사실 그녀는 박연희의 말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그녀의 열정이 결국 조은혁에게 쓰레기처럼 버려졌는데 그렇게 비참하게 퇴장하는 걸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떨며 한참 동안 박연희를 바라보다가 결국 얼굴을 가리고 도망갔다.텅 빈 응접실, 식어버린 커피, 박연희는 홀로 앉아 있었다.그녀는 임우빈에게 미안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보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그를 해칠까 봐 두려웠다.하인우로도 그녀가 평생 속죄하기에는 충분하다...따스한 봄꽃 필 무렵.그녀는 하민희를 데리고 하와이로 돌아가 그녀의 부모님의 제사를 지냈다.봄바람이 한들거리며 불어왔다.바람결에 흔들리는 노란 데이지꽃은 마치 전소미가 하인우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인우야, 하민희라는 이름이 난 좋아.”“인우야, 우리 시골로 가자.”“인우야, 아직도 날 탓하는 거야? 그때 내가 너한테 사실을 숨긴 걸 탓하는 거야?”...바람이 불어오자 박연희 얼굴에 맑은 눈물이 스치고 지나갔다....2.14 밸런타인데이에 박연희의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그녀는 자금과 인맥이 있었기에 갤러리는 개업 당일부터 장사가 잘 되어 오전에만 42폭의 그림이 팔렸고 그중 몇 개는 몇 십억 급이다. 시작이 좋았다.박은화는 외지에 있어서 특별히 전화해서 축하해줬다.박연희가 전화를 받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운이 좋았죠. 여사님의 도움에 감사드려요.”박은화는 잘 알고 있었다.비록 박연희와 조은혁 부부의 감정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아직
...박연희는 조용히 글을 다 읽었다.그녀는 이 축하 선물이 그가 마음 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쓴 카드도 진심이겠지만, 그녀는 받을 수 없다.그녀는 그림을 창고에 넣고, 그 카드는 쓰레기통에 버렸다.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사장님, 어떤 손님이 가장 비싼 그림 5점을 모두 사고 80억짜리 수표를 줬습니다. 그 손님이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박연희가 몸을 일으켰다.“지금 갈게요.”그녀는 비서를 따라 전시 구역에 왔다.VIP 코너.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최민정은 검은 머리를 뒤에 곱게 묶고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만 봐도 기품이 넘쳤다.박연희가 걸어갈 때 최민정이 몸이 돌리고 빙그레 웃으며 박연희를 바라보았다.”박연희 씨죠?”박연희가 순간 굳었다.최민정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제 남편은 심씨예요. 경서가 그쪽 얘기를 하면서 그쪽을 존경한다고 해서 일부러 와봤어요. 과연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재능이 있네요.”박연희가 부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날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지만 그녀는 심경서를 호스트로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심경서의 어머니가 오셔서 그녀의 사업을 지지해주고 그녀와 말을 나누기까지 하시니...박연희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그날은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최민정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경서가 뭐 숫처녀도 아니고,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집안 어르신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굳이 경서에게 설명을 듣고 경서를 박연희 씨에게 주겠다고 헛소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박연희 씨가 지금 이혼 수속을 밟고 있으니 앞으로 사귈 기회는 많을 거라고 해뒀죠.”“...”“...”박연희와 그녀의 비서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민정은 목적을 달성하였다.그녀의 점잖은 아들이 그녀에게 와서 개업하는 날에는 시끌벅적해야 한다고, 박연희를 추켜세워 달라고 부탁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대신 말도 전했다
조은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두 개의 핸드폰을 갖고 다니는 건가?유선우가 샤워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애인이 셀카 한 장을 보냈다.아주 젊은 여자였는데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싼 옷들을 입고 있으니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선우 씨, 생일 선물 고마워요.」조은서는 눈이 아플 때까지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유선우 곁에 여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이런 여자일 줄은 몰랐다. 마음이 아픈 외에, 남편의 취향을 알게 되어 놀랐다.그녀는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유선우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등 뒤에서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선우가 물기에 살짝 젖은 채로 나왔다. 새하얀 샤워 가운은 선이 분명한 복근과 가슴을 가려주고 있었는데 더욱 섹시해 보였다.“언제까지 볼 거야.”그는 조은서 손에서 핸드폰을 뺏고 그녀를 힐긋 보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유선우는 아내에게 불륜을 들켜서 미안하다거나, 마음이 찔린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조은서는 그런 유선우의 태도가 그의 경제 수입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조은서는 결혼 전에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지금은 그저 유선우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는 가정주부니까.조은서는 그 사진으로 따지고 들지 않았다. 따지고 들 수 없었다.나가려는 유선우를 본 조은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선우 씨,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유선우는 천천히 벨트를 매고 조은서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아마도 아까 침대에서 가냘픈 목소리로 반응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또 하려고?”이건 사랑이 아닌 그저 관계일 뿐이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아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실수였을 뿐이고,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니까.시선을 거둔 유선우는 침대맡에 놓인 파테크 필리프 시계를 손에 차며 담담한 말투로 얘기했다.“오 분 정도밖에 없어. 운전기사가 밑에서 날 기다리고 있고.”조은
6년이다. 조은서는 유선우를 6년 동안 좋아했다.힘이 빠진 조은서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유선우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금요일 저녁, 조은서의 친정에는 큰일이 생겼다.조씨 가문의 장남인 조은혁이 JH 그룹의 경제 범죄 사건 때문에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0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충분한 시간이다.그날 밤, 조은서의 아버지는 급성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 갔고 상황이 긴급해 수술이 필요했다.조은서는 병원 복도에 서서 계속 유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유선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은서가 포기하려고 할 때, 유선우가 문자를 보냈다.여전히 짧은 문자였다.「H시에 있어. 일이 있으면 진 비서에게 연락해.」조은서가 또 전화를 걸자 유선우는 전화를 받았다. 조은서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 지금 우리 아빠가...”유선우는 그런 조은서의 말을 끊었다. 귀찮아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얘기했다.“돈이 필요한 거잖아? 몇 번을 말해. 돈이 급한 거면 진 비서를 찾아가라고. 조은서, 듣고 있어?”...조은서는 고개를 들어 무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스크린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YS의약 그룹 대표 타워랜드 대절, 이성 친구를 위한 불꽃 축제」화면 속에는 불꽃이 예쁘게 터지고 있었다.젊은 여자가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은서의 남편인 유선우는 바로 그 휠체어 뒤에서 핸드폰을 쥔 채 그녀와 통화하고 있었다.조은서는 눈을 깜빡였다.그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선우 씨, 지금 어디예요?”유선우는 잠시 멈칫했다. 조사받는 기분이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대충 대답했다.“바빠. 별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 진 비서한테 연락해.”유선우는 울먹이는 조은서의 말투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숙여 옆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꽤 다정했다.조은서는 눈앞이 까매지는 기분이었다.아, 유선우에게도 부드러운 면이 있구나.등 뒤에서는 새엄마인 심
3일 후, 유선우는 B시로 돌아왔다.저녁, 어둠이 드리워진 별장에 검은색 차량이 들어와 시동을 껐다.운전기사가 내려서 차 문을 열었다.차에서 내린 유선우는 문을 닫았다. 물건을 들려고 하는 운전기사를 보며 담담하게 얘기했다.“내가 직접 올려갑니다.”거실에 들어서자 고용인들이 몰려왔다.“며칠 전, 장인어른께서 쓰러져서 사모님의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위층에 계십니다.”조씨 가문의 일은 유선우도 이미 알고 있었다.조금 무거운 심정으로 짐을 들고 올라와 침실 문을 여니 조은서는 화장대 앞에 앉아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짐을 내려놓은 유선우는 넥타이를 풀면서 침대 옆에 앉아 조은서를 쳐다보았다.결혼 후, 조은서는 항상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물건 정리라거나, 디저트 만들기라거나. 만약 그녀의 예쁜 외모와 몸매가 아니었다면 유선우에게는 진짜 가정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한참이 지나도 조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출장을 다녀온 유선우는 피곤했다. 조은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옷장에서 가운을 가진 후 샤워실로 들어갔다.샤워를 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조은서처럼 나약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유선우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이미 그의 짐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원래의 부드러운 아내로 돌아올 것이라고.유선우는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하지만 샤워실에서 나온 그가 원래 자리에 있는 캐리어를 봤을 때, 유선우는 조은서와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유선우는 소파에 앉아서 아무 잡지나 들었다.한참 지나서야 시선을 들어 조은서에게 물었다.“아버님은 좀 어떠셔? 그날 밤은... 이미 진 비서를 혼냈어.”성의 한 톨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말투였다.조은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시선을 들어 거울 속의 유선우와 시선을 맞추었다.거울 속의 유선우는 선명한 이목구비에 우아한 자태를 가진 남자였다.한참을 보던 조은서는 눈이 뻐근해질 때야 입을 열었다.“선우 씨, 우리 이혼해요.”유선우는 놀라서 굳어버렸